9화.
“우리 남편은 정부에서 일을 했어요. 아. 물론 공무원은 아니었어요.” 팀장은 덤덤하게 말을 했다. 남편은 사설 보안 업체에서 일을 하는 곰 지구인이었죠. 아무래도 곰 지구인이라 덩치도 크고 힘도 세고..” 팀장은 잠시 동안 옛 생각에 잠긴 채 말을 멈췄다. “든든하셨겠어요.” 혜은은 차분하게 말했다. “그럼요. 듬직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지구인이었죠. 말도 없고 애정 표현도 서툴지만 저와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정말 멋졌어요.”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어머. 나 좀 봐. 주책이야.” 혜은은 괜찮다는 듯이 말없이 웃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혜은의 표정을 확인한 팀장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평범하고 행복하게 지냈어요.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아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우리에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점차 팀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괜찮으세요? 힘이 드시면 말씀을 안 해주셔도 괜찮습니다.” 혜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을 했다. “아. 괜찮아요.” 팀장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혜은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그때 당시 아이들이 공부를 잘했어요. 애들이 성적표를 가져와 일등을 했다며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았어요. 물론 아이들의 성적이 우수해서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나는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 그 자체를 보는 것이 더 행복했어요. 아마 아이들이 공부를 못했어도 밝게 웃으며 생활했다면 그건 그것대로 행복했을 거예요. 그런데요. 참.. 지구인이 간사하더라고요.” 팀장은 아무도 없는 공터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점차 아이들이 더 좋은 학교로 전학을 해서 부유한 중심부에서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똑똑한데 부모인 우리가 조금 더 주변 환경을 좋게 만들어주면 지금보다 아이들이 뛰어난 능력을 펼치며 더 행복하게 살아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요. 그래서 이런 저의 생각을 남편에게 말했어요.” 팀장은 고개를 숙인 채 조금씩 인상을 찡그리며 바닥을 바라본 채 말을 이어갔다.
“평소 의사 표현을 하지 않는 남편도 그날만큼은 고개를 끄덕이며 저의 생각과 같다고 말했어요. 아이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일치했지만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했어요. 우리는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전학시킬만한 경제적 능력이 없었어요.” 이제 그녀는 어두운 표정을 숨기지 않고 얘기했다.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ㅁㅁ 시티 입주를 목표로 잡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 시작했지만 지금의 행복을 유지하며 달성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눈 뒤 결심했어요.”
“어떤 결심이요?” 어느새 그녀의 말에 몰입한 혜은이 숨을 죽이며 물었다. 팀장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했다.
“남편은 ㅇㅇ 행성의 치안대에 지원하고 저는 아이들과 이곳에 남아 일을 찾아보기로 결정했어요. 혜은 씨도 알고 있죠? 다른 행성 치안대로 일을 하면 급여가 높은 것을요.” 팀장의 말을 경청하던 혜은은 치안대에서 근무를 하다 ㅁㅁ 행성에서 순직한 남편이 떠올랐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었던 그녀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인류는 최후의 전쟁 이전부터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를 꿈꿨다. 극 소수의 인간은 순수하게 새로운 외계 문명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지만 다수의 인간들은 자신들이 파괴하여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구 인류는 힘을 합쳐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결국 구 인류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들에 진출하는데 성공하였고 도착하는 곳마다 새로운 거주지인 '마을'을 건립했다.
“정말 최고입니다! 우리가 지구를 벗어나 살아갈 수 있다니! 이제 우리 인류는 새로운 시대에 돌입하였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지구를 벗어나게 된 인류는 기쁨에 심취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았다. 가끔 소수의 지식인들이 앞으로 발생할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정부와 국민들은 오히려 이들을 탄압했다.
사실 행성의 삶은 인류가 생각한 만큼 놀랍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행성은 지구와 달리 황폐한 곳이 많았고 인간들은 어떻게든 과학기술로 식량과 식물들의 생명체를 만들어 활용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예측했던 수확량에 훨씬 미치지 못한 결과를 맞이했다. 하지만 지구의 국가들은 지배층의 실수를 숨기기 위해 이러한 상황을 국민들에게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주를 권장했다. 결국 이러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많은 인간들은 개척된 행성들로 이주를 했다. 결국 소수 지식인들의 주장처럼 행성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속보입니다. ㅁㅁ 행성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특파원을 연결해 보겠습니다. 특파원! 특파원!” 한동안 반응이 없던 화면이 지직 소리를 내며 거대한 화재가 발생한 ㅁㅁ 행성 마을을 보여줬다.
“네. 여기는 ㅁㅁ 행성 마을 광장입니다. 현재 폭동 수준을 넘어선 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여기는 마치..”
“두두둑!” 귀가 찢어질듯한 총소리가 들리자 당황하며 ㅁㅁ 행성의 마을 상황을 전하던 특파원이 붉은 액체를 뿜으며 화면에서 사라졌다.
인간들은 행성의 식량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기 시작했고 힘이 있는 자들이 식량과 편의 시설을 장악하여 독점했다. 그들이 모든 것을 독점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힘이 없는 다수의 인간들에게 식사와 편의 시설 이용을 무료로 제공하며 공유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요금을 받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얼마 동안은 다수의 인간들이 착실하게 비용을 지불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진 자들이 갑작스럽게 요금을 인상했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인간들은 거의 없었다. 결국 다수의 행성 인간들은 식사와 편의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빈곤에 시달렸다.
급격하게 삶이 힘들어진 다수의 행성 인간들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비슷한 처지의 인간들과 힘을 합쳤다. 그들은 부유한 행성 인간들을 살해하고 금품과 식량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부유한 행성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지구의 국가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들의 도움 요청을 받은 국가들은 도움이 필요한 행성에 무장한 병력을 파견했다. 겉으로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한 인간들도 지구에 거주하는 인간들과 같기 때문에 보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상은 그들로부터 지구에서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자원을 받기로 했다. 결국 그들만의 거래였다.
지구에서 최후의 전쟁이 발발한 뒤에도 행성에서는 그들만의 전쟁이 지속되었다. 그 결과 현 지구인들과 교류하는 행성은 두 곳이 전부였고 다른 행성들과의 교류는 끊어졌다. 하지만 이 두 곳의 행성 마을은 여전히 식량과 편의 시설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증오하고 죽였다. 다만 예전에는 구 인류의 모습을 한 지구인만 있었다면 지금은 수인과 네발 지구인이 섞여 있었다. 행성의 구성원이 바뀌어도 인간의 욕망을 이어 받은 지구인들은 구 인류처럼 생각하고 행동했다.
구 인류가 그랬듯이 현 인류도 부유한 행성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 소속의 치안대를 파견했다. 하지만 매일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사망하는 지구인들이 많았고 그로 인해 부족한 치안대 인원은 상시 모집했다. 특히 치안대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설 보안 업체에서 활동하는 지구인들을 고용하는 데 공을 들였다. 위험한 만큼 급여가 높아 급하게 돈이 필요한 지구인들이 많이 지원했다. 지구에 살아서 돌아올 수만 있다면 평범한 지구인들이 평생 만져볼 수 없는 돈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행성에서 사망하는 지구인이 많다 보니 그들 가족에게 아주 적은 비용을 제공하더라도 정부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다. 결국 파견의 주체인 정부는 살아서 근무하는 동안 급여를 높이고 죽은 자들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성에서 생존해 돌아온 극소수 지구인들에게는 큰 보상을 제공하며 영웅 대접을 해주었다. 정부는 이런 체계를 통해 지구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부유하고 타인에게 존경을 받으며 살고 싶다는 욕망을 자극하여 행성으로 가는 치안대의 인원을 유지했다.
“남편은 자신을 믿으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마도 제가 불안해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거예요.” 팀장은 여전히 바닥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서로 얘기를 끝내고 남편이 행성에서 근무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어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잘못된 결정이라는 생각이 제 머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음 날에 남편에게 다시 말했어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요. 하지만 남편은 단호하게 이 방법 말고는 없다는 말을 하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결국 남편은 ㅇㅇ 행성으로 떠났어요. 그때 강하게 말렸어야 했어요.” 바닥에 고개를 떨군 채 얘기하는 팀장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혜은은 자신의 손수건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혜은의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맙다는 말을 한 뒤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