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멧북 Oct 18. 2024

과거 06.

10화.

“비켜봐요! 왜 다가가지 못하게 막는 겁니까!” ㅇㅇ 행성으로부터 이번 수송 차량을 통해 남편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도착한 정류장에는 정부 소속의 치안대가 지구인들의 접근을 막았다. 드디어 ㅇㅇ 행성으로 떠나 오랜 시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정류장에 도착한 그녀는 정류장에 있는 지구인들의 표정과 격해진 감정 상태를 본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불안해졌다.


소현은 지속적으로 정류장 안쪽에 위치한 승강장의 접근을 제한하는 치안대원들에게 큰 소리로 항의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위잉.. 푸슈욱..”


불안한 소현의 눈에 상공에서 정류장으로 내려오고 있는 수송 차량이 보였다. 곧 건강하고 듬직한 남편이 차량에서 내려 무표정하지만 손을 흔들며 자신에게 인사하며 다가올 것이라 기대하며 밝은 표정으로 그를 기다렸다.


“쿠웅.. 끼이익..” 수송 차량이 땅에 정차하자 정류장의 스피커에서 기계음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 ㅇㅇ 행성의 영웅들이 별이 되어 도착했습니다. 치안대원의 안내에 따라 한 분씩 승강장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무슨 말이야? 별이 되었다고?” 현재의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소현은 당황하여 주변을 살펴봤다. 지구인들은 울먹이거나, 초점이 없는 눈을 하고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ㅇㅇ 영웅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정류장에 기계음이 울려 퍼지자 그녀 옆에서 훌쩍이던 지구인이 승강장 입구로 걸어갔다.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치안 대원이 그녀에게 정중한 자세로 인사를 한 뒤 승강장으로 안내했다. 소현은 계속 옆자리 지구인의 모습을 지켜봤다. 치안 대원의 안내를 받아 승강장으로 이동한 지구인이 도착한 곳에는 나무로 만든 네모난 커다란 상자가 놓여있었다. 지구인은 나무 상자를 감싸 안으며 통곡을 했다.


이제 소현은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가 사랑한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지훈 영웅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정류장에 남편의 이름이 울려 퍼졌다. 잠시 동안 멍하게 있던 소현은 남편의 이름이 들리자 정신없이 승강장 입구로 뛰어갔다. 그 곳에서 안내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치안 대원은 당황하며 그녀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이미 그녀는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승강장에서는 흰색 천으로 덮여있는 커다란 상자가 내려지고 있었다.


“끼이익..” 그녀가 긴장하여 온몸을 덜덜 떨며 흰색 천을 젖히고 상자를 열려는 순간, 옆에서 지켜보던 치안 대원들이 그녀를 가로막았다. “뭐예요? 당신들 지금 뭐 하는 거야!” 소현은 자신을 가로막는 자들을 노려본 채 소리를 지르며 저항했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강한 힘으로 그녀를 압박하며 밀어냈다.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녀도 거세게 저항했다.


“영웅님은 화장을 한 뒤 가족분들에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간단히 마지막 인사만 해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뒤에서 기다리는 분들도 생각하셔야죠.” 그녀를 가로막고 있는 치안 대원 중 한 명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무슨..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분노와 슬픔으로 인해 상황 판단이 흐려진 소현은 소리를 지르며 남편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들을 밀었지만 그들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고 오히려 다음 일정에 악영향을 주는 소현을 승강장에서 강제로 끌어냈다. 이렇게 마지막으로 얼굴도 못 본채 남편과 이별할 수 없는 그녀는 그들에게 다시 달려들었지만 그들은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구석으로 끌고 가 구타했다.


그녀는 구타를 당하며 남편의 이름을 불렀지만, 냉혹한 현실은 그녀를 짓눌렀다.


“엄마! 아빠는?” “아빠! 아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아이들이 뛰쳐나와 아빠를 찾았지만 옷은 찢어지고 털이 헝클어진 채 돌아온 엄마가 보였다. 몇 시간 전에 이쁜 옷을 입고 외출한 엄마가 누군가에게 폭행당한 듯한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아이들은 가만히 엄마를 바라봤다.


소현이 움직이자 겁에 질린 아이들은 엉엉 울기 시작했다. 소현은 ㅇㅇ 행성에서 일을 하겠다는 남편을 말리지 못해 그가 죽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여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쾅!” 방문을 세게 닫고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린 채 조용히 울었다. “엄마.. 엄마..” 겁에 질린 아이들은 잠긴 문고리를 돌리며 엄마를 불렀지만 홀로 울고 있는 소현은 죄책감과 분노, 혼란에 사로잡혀 아이들의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갈증을 느낀 소현은 물을 마시기 위해 거실로 향했다. “탁.” 방문을 열자 거실 바닥에 눈이 퉁퉁 부은 채 엎어져 잠든 아이들이 보였다. 그녀는 아이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그이는 없어도 우리 아이들이 있어. 이제 내가 아이들을 지켜야지. 그래.. 그래야 나중에 그이에게 할 말이 있지.” 소현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조용히 이불을 덮어준 뒤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물을 들이켰다.


정신을 차리자 현실적인 걱정들이 그녀를 조여왔다. 그동안 저축한 돈이 떨어지기 전에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래야만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열심히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덩치가 큰 여성 곰 지구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드물었다. 그럼에도 일자리를 포기할 수 없던 그녀는 동네 근처의 식당 및 베이커리를 돌아다니며 일자리 공고가 올라온 곳이 있는지 찾아다녔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곰 지구인이 담당할 일이 없습니다.” 소현이 직접 찾아가 이력서를 제출하는 곳마다 그녀의 경력은 확인조차 하지 않고 면접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휴.. 진짜 너무하네.” 그녀는 거듭된 거절로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죽어! 꿀꿀!” 계속된 취업 실패로 의기소침하여 집으로 향하는 소현의 귀에 심한 욕설과 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컥. 꾸..웨..웩..” 그녀의 발치에 삐쩍 마른 돼지 지구인이 굴러왔다. “꾸..울..”


“괜찮으세요?” 놀란 소현은 자신의 앞에 쓰러진 늙은 돼지 지구인을 일으키며 물었다. “ 고..고맙습니다.. 꾸울..” 그녀의 도움을 받아 겨우 일어난 돼지 지구인은 비틀 거리며 어딘가로 걸어갔다. 그 순간 계단 위에서 덩치가 큰 젊은 돼지 지구인이 건방을 떨며 소리를 질렀다.


“꿀꿀꿀. 어디를 와! 늙었으면 얌전히 우리에 박혀있지!” 그 옆에는 로스터리 직원으로 보이는 지구인들이 안절부절못하며 불량배 같은 돼지 지구인을 바라봤다. 소현은 비틀거리며 천천히 걷고 있는 늙은 돼지 지구인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힘든 처지에 있는 자신이 떠오르며 화가 치밀어올라 건방진 젊은 돼지 지구인에게 소리쳤다.


"저기요. 저분에게 당장 사과하세요 !" 그녀의 우렁찬 목소리에 놀란 돼지 지구인은 움찔했지만 남성이 아닌 여성 곰 지구인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히죽거리며 말했다.


“어휴. 뭐야. 나는 잘 못한 게 없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참견이야.” 건방진 그는 계단 위에서 소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미 늙은 돼지 지구인은 사라졌지만 그녀는 건방진 그의 행동을 묵인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소현은 그를 노려보며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덩치가 큰 곰 지구인이 두 발로 계단을 올라오자 겁을 먹은 돼지 지구인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 꾸웨웩!” 그의 앞에 도착한 소현은 무서운 눈빛으로 아무 말 없이 그를 내려다봤다. 건방진 돼지 지구인은 겁에 질려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지만 소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살짝 들어 올려 계단으로 밀어버렸다.


“꾸웨웩!” 젊은 돼지 지구인은 고함을 치며 계단으로 굴러떨어졌다. “꾸..울..” 그는 아까 늙은 돼지 지구인이 그랬듯이 비틀거리며 일어나 걸었다. “잠시만요! 잠시만요!” 소현의 등 뒤에서 남성 지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그러자 로스터리의 직원으로 보이는 지구인이 말을 했다.


“아. 아. 다행이에요.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사장이란 지구인은 안도하며 말을 했다. “아.. 저기 사장님. 그..” 무언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듯이 직원이 말을 이어갔다. “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나요?” 사장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돼지 지구인 두 분 모두 계산을 하지 않고 가버리셨습니다.” 직원은 큰 죄를 지은 듯이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아.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 다친 분들이 없어서 다행입니다.” 사장은 돈을 받지 못한 직원을 나무라지 않고 다독였다. 이런 그의 행동에 직원은 감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된 것을 확인한 소현이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저분은 누구신가요?” 그러자 옆에 있던 직원이 소현의 행동을 설명했다. “저분이 폭력적인 돼지 지구인을 제압해 주셨습니다.” 로스터리 사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로스터리가 곤경에 빠질 뻔했습니다.” 뜻밖의 감사 인사를 받은 소현은 그에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했다는 말을 한 뒤 자리를 뜨려는 순간 또다시 그가 말을 걸었다. “아. 혹시. 저희 로스터리에서 일을 할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세요. 저희 홀에는 항상 직원이 부족해서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다음 날부터 소현은 네발 로스터리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전 09화 과거 0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