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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Oct 18. 2024

과거 04.

8화.

“서현아. 어떻게 된 일이야? 힘들겠지만 엄마한테 알려 줄 수 있을까?” 미칠 듯이 가슴이 뛰었지만 딸이 놀라지 않도록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하게 말했다.  큰 소리로 ‘엉엉’ 울던 서현은 조금씩 울음을 그치며 말했다. “애들이 나한테 아빠도 없다며 놀렸어. 처음에는 혼자 그러더니. 나중에는 다른 애들도 같이 놀렸어!” 눈물은 멈췄지만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아빠가 바빠서 잠시 집에 없는 거라고 말했어. 그런데 애들이 나를 더 괴롭혔어.” 서현은 다시 조금씩 울먹였다. “그러다. 그러다가 어떤 애가 내 머리를 잡아당겼어!” 서현은 속상한 마음에 다시 ‘엉엉’ 울며 말했다.


“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도 계속 내 머리를 잡아당겼어. 너무 아프고 화가 나서 나도 똑같이 해줬는데.. 같이 있던 애들도 나를 때렸어!” 말과 울음이 뒤 섞여 딸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자신의 딸이 친구들에게 놀림과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그랬구나. 많이 아프지? 엄마가 약 발라줄게.” 혜은은 자신의 딸을 꼬옥 안은 채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내일은 주말이니까 집에만 있어. 내일은 엄마도 일찍 올게."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던 서현은 훌쩍이며 물었다. “엄마. 아빠는 언제 와? 아빠 보고 싶어.” 혜은은 촉촉해진 동그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딸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서현이도 아빠 보고 싶지? 엄마도 보고 싶은데 바쁜가 봐. 아직 못 오신대." 아빠가 못 온다는 말을 들은 서현은 또다시 큰 소리로 엉엉 울며 목소리도 들려주지 않는 아빠가 밉다고 말했다. 하지만 혜은은 아무런 말 없이 딸의 말을 들어주며 때때로 안아 줄 뿐이었고 오늘 같은 날에는 먼저 죽어버린 그를 원망했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혜은은 오전 일이 끝난 뒤 팀장을 찾아가 어제 딸이 겪었던 일에 대해 설명한 뒤, 내일 하루 일을 쉴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녀의 말을 들은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장님에게 보고 하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혜은은 최근 바쁜 일 때문에 딸에게 너무 관심이 없었다는 죄책감을 느끼며 어떻게 해서라도 한 번쯤은 학교에 방문하여 딸이 당한 집단 괴롭힘과 폭력에 대해 항의하려고 굳게 마음을 다졌다.


“혜은 씨. 사장님께서 내일 쉬어도 괜찮다고 말씀하셨어요.” 팀장은 일을 하고 있는 혜은의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잘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혜은이 말했다. “내가 뭘.. 사장님한테 감사해요. 아. 그리고 서현이 일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어린 나이에 받은 상처는 나이를 먹어도 잊히지 않으니까. 잘 보살펴줘요. 상처가 잘 아물게.” 팀장은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혜은은 진심으로 서현이를 걱정해 주는 팀장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표현한 뒤 다시 일에 집중했다.


“엄마! 내일은 쉬는 날이야?” 며칠 전에 비해 정서적으로 많이 안정된 서현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응. 내일 엄마 휴일이야.” 오랜만에 딸의 밝은 웃음을 본 혜은도 웃으며 말했다. “응. 내일 엄마 휴일이야.” 평소와 다르게 엄마와 시간을 보내게 된 서현은 집안을 뛰어다니며 좋아했다. 오랜만에 일에서 벗어난 혜은은 기쁜 마음으로 서현과 함께 웃었다.


“서현이가 피해자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먼저 서현이를 놀리며 폭행을 가했습니다.” 입학식 이후 처음 만나는 선생님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혜은의 말을 들었다. “선생님. 제가 무슨 보상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현이를 괴롭힌 애들의 사과를 받기 원할 뿐입니다.” 계속되는 혜은의 말을 경청하던 선생님이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서현 어머님. 방금 말씀하신 아이들이 본인들도 서현이에게 맞았다며 억울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혜은은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를 두둔하는 듯한 선생님의 행동에 화가 나 크고 단호하게 말했다. “선생님. 분명한 것은 그 아이들이 가만히 있는 서현이를 집단적으로 괴롭혔다는 점입니다. 저는 그 아이들이 서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할 수 있도록 선생님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인상을 찡그리며 아까와 같은 말을 할 뿐이었다. 이러한 선생님의 모습에 실망한 혜은은 한숨을 쉬며 인사를 한 뒤 교무실에서 나왔다.


혜은은 알고 있었다. 여성 지구인에 아이를 홀로 기르고 있는 자신은 이 사회의 골치덩어리며 기피 대상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분명히 서현이를 괴롭힌 아이들은 부모가 모두 살아있을 것이고 평범한 주변부 지구인들과 다르게 번듯한 직업을 가졌을 것이다. 이러한 부당한 현실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지만 혜은은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괴로웠고 하나뿐인 딸에게 미안했다.


“엄마!” 학교 운동장의 허름한 의자에 홀로 앉아있던 서현이 웃으며 달려왔다. “오래 기다렸지?” 혜은은 웃으며 딸을 꼬옥 안으며 말했다. “오늘은 뭐 먹을까?”라는 혜은의 질문이 끝나자 서현은 이미 생각해둔 음식이 있다는 듯이 웃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저번에 엄마하고 먹은 햄버거! 그 햄버거 먹고 싶어!” “그래. 햄버거 먹으러 가자.” 혜은은 웃으며 작고 따뜻한 딸의 손을 잡고 학교를 빠져나오며 다짐했다.


“더 열심히 일을 해서 서현이가 명문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하겠어.” 엄마의 다짐을 모르는 서현은 생긋생긋 웃을 뿐이었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온 혜은은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보다 더욱 밝은 딸의 미래를 위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집과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혜은 씨. 요즘 서현이는 어떻게 지내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팀장이 말했다. “다행히 이전보다 밝게 잘 지내요. 함께 지내는 친구들도 생긴 것 같아요.” 팀장은 웃으며 말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문제가 잘 해결되었네요.” 혜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다행이죠.”


사실. 서현과 혜은은 가해자들에게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다. 혜은은 학교 방문 뒤에도 몇 차례 항의 전화를 했지만, 그때마다 같은 내용의 핑계만 들을 뿐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다행히 자신에 대한 엄마의 관심이 늘어난 것을 느낀 서현이 자발적으로 이전보다 밝고 활기찬 학교생활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서현이에 대한 집단 괴롭힘과 폭력 사건은 잊혀갔다.


“하아.. 다행은 무슨 다행이야..” 퇴근하여 집 앞에 도착한 혜은은 크게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했다. “엄마! 왔어?” 현관문이 열리자 뛰쳐나오는 서현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응. 엄마 왔어.” 다시 밝아진 딸의 모습을 보자 마음속에 가득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눈 녹 듯이 사라졌다. 하지만 깊은 마음속에는 “조금 더 나은 곳에서의 삶.”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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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수인은 별도의 심사가 필요합니다. 상담 예약 시 미리 말씀해 주세요.



“수인은 별도의 심사가 필요하다고?” 오래된 모니터를 바라보던 혜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수인은 네발 지구인 보다 이미지가 좋았지만 구 인류와 다른 모습을 가진 그들 역시 온전한 지구인 대접을 받을 수 없었고 거주지, 직장 등 사회적 차별을 당했다. “아.. 문의를 하나마나 보증인 여부를 물어볼 텐데..” 혜은은 턱을 괸 채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했다.


한동안 애꿎은 마우스를 연속으로 누르던 혜은은 결심을 한 듯 강하게 “탁!”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강하게 마우스를 두들긴 뒤 OO 시티 상담실에 전화를 걸었다. “네. 안녕하세요. 입주 문의 좀 하려고요.”



“여기. 맑은 물 좀 가져다줘!”


“...”


“여기! 물 좀 가져다 달라고!”


“아.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바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혜은은 며칠 전 OO 시티에 관한 상담 내용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혜은 씨. 요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바쁘게 움직이는 팀장이 말했다.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집중하겠습니다.” 혜은은 고개를 숙이며 팀장에게 말했다. 심란한 혜은의 처지와 상관없이 네발 로스터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분주하게 돌아갔지만, 그날 이후 혜은은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혜은은 이전과 다르게 지친 목소리로 동료들에게 인사를 한 뒤 제일 먼저 탈의실에서 나왔다. “혜은 씨! 잠시만요.” 그녀의 등 뒤에서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팀장님.” 혜은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잠시 시간 괜찮아요? 괜찮으면 짧게 얘기 좀 나눴으면 좋겠는데요.” 팀장은 혜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평소와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팀장의 모습을 본 혜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혜은 씨. 요즘 무슨 걱정이 있어요? 실수도 많이 하고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 보여요.” 팀장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잠시 동안 고민을 하던 혜은은 지난번 딸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걱정해 준 팀장의 모습이 떠올라 이번에도 자신의 답답한 마음과 처지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며칠 전에 OO 시티 입주에 대해 상담을 진행했는데 보증인을 요구했습니다.” 혜은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서현이가 학교에서 겪은 폭행 사건 이후에 지금보다 더 좋은 학교로 전학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때 우리가 OO 시티에 살고 수준이 높은 학교를 다녔다면 서현이가 상처를 덜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전히 혜은은 바닥을 내려다보며 얘기를 했다.


“그래서 우선 돈이 필요하니까. 이곳에서 일을 더 많이 그리고 열심히 했습니다. 팀장님도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담을 해보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출신, 유전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혜은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정말 분해요. 정말 화가 나요. 제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도 아닌데.. 이 모습은 개인의 노력을 통해 바꿀 수도 없는 부분인데.. 처음에는 분해서 화가 났지만 이제는 화도 나지 않습니다. 그냥 멍하게 있는 시간이 늘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혜은의 말을 경청하던 팀장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혜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제 예상대로 힘든 일이 있었네요. 지금 혜은 씨의 걱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어요. 저도 혜은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거든요.”


혜은은 놀랐지만 진솔해 보이는 팀장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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