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떠나며 - 이연식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by 멧북


이 책은 일본 패전한 뒤 한반도 그리고 만주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의 삶의 궤적을 쫓는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 사이에서도 계층에 따라 다른 삶을 살아갔다.


최고급 정보를 독점한 엘리트들은 즉시 재산을 챙겨 본토로 떠나기 위해 노력했고 실지로 평범한 사람들보다 일찍 떠났다.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들 사이에도 지역에 따른 격차가 생겼다. 이남에 거주했던 사람보다 이북과 만주의 거주민들이 훨씬 괴로운 삶을 살았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패전 직후 이북의 권력은 2차 세계대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소련이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독일과의 전쟁으로 상시 물자와 인력이 부족했고 한반도 이북 지역에 진출했을 때 생필품을 비롯한 많은 물자를 현지 조달했다. 그 과정에서 물건뿐만 아니라, 조선인, 일본인에 대한 크고 작은 폭력, 약탈이 발생했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도 발생했다. 특히 그들은 일본인에게 더 가혹했다. 때로는 현지 조달이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행동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일부 조선인들이 미리 일본인들에게 소련군의 동태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의 극심한 고통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피난길에서도 이어진다.


혹독한 날씨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거나, 많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버리고 이동하는 일도 발생했다. 이때 가장 많이 희생된 사람들은 여자아이들이었다. 가문을 이끌어야 하는 남자들보다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북에 거주하던 일본인들 중에서도 기술을 가진 이들은 고통스러운 피난길에 오를 필요가 없었다. 상황이 안정되자 멈췄던 공장 등 생산시설의 운영이 절실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조금 슬펐다. 오랜 시간 동안 조선인들은 고급 기술을 배울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그저 일회용품처럼 단순하고 힘든 노동 환경에서 착취 당하고 버려졌을 뿐이었다. 결국 기술을 가졌던 일본인들은 한동안 많은 돈을 받으며 일을 하다가 안전하게 본토로 돌아갔다.


이에 비해 이남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의 삶은 평온했다. 미군이 진출했을 때 일본인들은 겁을 먹고 이후에 펼쳐질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은 소련군에 비해 차분하고 신사적이었다. 물론 이남에 거주하던 일본인들도 예전에 비해 많이 고생하며 살았지만, 적어도 이북에 비해 인간적인 대우를 받다 본토로 돌아갔다.


이러한 공간의 차이 때문에 시간이 흐른 뒤 한반도에 대한 인식의 큰 차이가 생겼다. 이북에서 온 대다수는 수십 년간 조선인들이 겪었던 고통에 대해 아주 조금이라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남에 거주했던 이들은 조선인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오히려 조선인들 때문에 본인들의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이들 모두가 이러한 비극이 무엇 때문에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끝내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그렇게 조선인과 일본인 모두를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갔던 제국주의의 야만성은 잊혔다.

난 이들의 모습을 보며 공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든 뒤 그들만의 마을을 만들고 그 안에서만 살아갔다. 그곳에서 살았거나, 이미 먼 곳에서 살던 조선인들은 그들의 세상에 없던 존재였다.


"마리코는 (중략) 1930년 자연스럽게 조선철도 부설 유치원에 입학했으며, (중략) 1944년 (중략) 청화여숙을 졸업 (중략) 패전 즈음인 1945년 5월부터 총독부 서무과 (중략) 업무를 담당 (중략) 20세에 패전을 맞이했다. (중략) 마리코는 노년에 딸 사와이와 함께 그녀가 태어난 서울을 다시 찾아왔다. (중략) 그녀의 동선은 집과 학교가 있는 태평로와 서대문 일대, 그리고 일본인촌의 중심가였던 명동에서 충무로 일대가 전부였다. (중략) 그녀의 공간 체험은 곧 역사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략) 파고다공원을 방문했는데 (중략) 그곳에서 전개된 3.1운동에 관해 처음으로 들었다고 한다. (중략) 엄마는 긴장과 추위, 그리고 충격적인 이야기 내용 때문에 얼굴이 점점 굳어져갔다. 고 당시 상황을 적었다.(p.257~259)"


결국 폐쇄적인 공간에서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살았던 그녀는 삶의 끝자락에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만약 그런 장소에서 살았더라도 균형 잡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그들이 본토에서 받았던 차별, 비참한 삶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혀있고 이를 통해 차별, 혐오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만약 우리나라의 근현대 부분에 대해 더욱 깊이 알고 싶은 분들이나, 당시 일본인들의 삶이 궁금한 분들. 그리고 제국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매거진의 이전글단 한 번의 삶 - 김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