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이야기 15권 - 모리 카오루.

스미스와 탈라스의 이야기.

by 멧북


삼십 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곧잘 만화책을 읽었습니다. 가끔 만화 카페나 라면에 김치 그리고 후식으로 과자를 한꺼번에 먹고 싶은 날에는 오래된 만화방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흔히 말하는 소년 만화를 보면서 재미와 감동을 느꼈나 봅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고 점차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만화와 멀어졌습니다. 더 이상 소년 만화의 주인공들과 같이 이상적이고 빛나는 삶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겁니다. 더 이상 소년 만화가 재미 없어졌어요. 그래서 더 이상 만화책을 읽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그림과 관련된 콘텐츠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좋아해서 였을까요? 다른 장르 만화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발견한 작가. '모리 카오루'입니다.


처음에는 유려한 작화와 고증이 잘 된 의상, 배경 등에 빠져들었습니다. 만화를 화집처럼 봤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섬세한 감정 표현과 부담스럽지 않고 잔잔한 이야기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순정만화로 분류되지만 저는 작가의 작품을 특정 시대의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그려내는 시대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만약 작가의 작품이 일반적인 로맨스 장르였다면 분명 읽지 않았을 겁니다. 판타지같이 작위적인 사랑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작가의 작품에 빠졌고 결국 셜리부터 엠마, 신부 이야기, 습유집까지. 우리나라에 정식 출간된 작품은 모두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번 출간된 15권은 스미스와 탈라스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이 번 권에서 드디어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시기는 19세기입니다. 돌아온 스미스와 탈라스가 겪는 일들을 보면 당시 영국의 사회상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스미스의 어머니가 탈라스를 전염병을 퍼뜨리는 존재로 여기며 멸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당시 인종차별적인 요소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영향력이 집 안에 한정된다는 사실까지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다행인 점은 스미스가 굳세게 탈라스를 사랑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한다는 점입니다. 가족들은 그에게 현실적이지 못하며 어딘가 나사가 빠진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연하면서도 고집스러운 성격을 가졌고 평하죠. 그의 형과 동료는 탈라스를 하녀 또는 정부로 생각하면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함께 지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말 현실적인 조언이죠. 하지만 그는 그녀는 하녀도 정부도 아니라며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그리고 이번 권 끝에 혼인 신고를 하기 위해 스코틀랜드로 떠납니다.


저는 이 작품에서 스미스를 좋아합니다. 현실적이지 못하고 유연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고집스러운 그의 모습에서 저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와 저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살아갑니다. 반면 저는 그렇지 못하죠. '현실'이라는 실체가 없는 무언가의 핑계를 대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저는 왜 그럴까요?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어찌 되었든 저와 비슷한 사람이 가상의 세계에서라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스미스 못지않게 탈라스도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삶의 아픔이 많지만, 타인을 깊게 배려할 줄 알고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그가 가족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 또한 거부 당했다는 사실도요.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분노하거나, 우울해하며 많은 시간을 보낼 확률이 높지만 그녀는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며 쉽지 않은 현실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며,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어찌 되었든 그와 함께 살기만 하면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또한 스미스와 다르게 현실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이번 권에서 그녀가 가족처럼 생각하는 말의 새끼를 거래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이에 대해 스미스는 앞으로 태어날 새끼 말도 가족이라 생각해서 거래를 거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다양한 모습이 그가 그녀를 인생의 동반자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그런 그녀의 모습을 좋아합니다.


마지막으로 스미스의 몇 안 되는 친구 호킨스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고결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한가."(p.158)


그렇죠. 전쟁 같은 현실에서 고결하게 살아가기는 굉장히 힘듭니다. 때로는 본인의 가치관과 어긋난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고 본인이 원하지 않았지만 옳지 않은 선택을 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은 만만치 않죠.


그럼에도 저는 최대한 고결하게 살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그래야만 살아가면서 최악의 선택은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스미스와 탈라스가 스코틀랜드로 떠나며 마무리됩니다. 다음 16권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최근 연재처가 또 바뀌었다는 소식도 있고 출판사 사정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습니다. 음.. 난감합니다. 아무래도 16권은 출간이 더 늦어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예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총 18권으로 기획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습니다. 부디 나머지 이야기들도 문제없이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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