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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Apr 30. 2023

최초의 여신 인안나 - 김산해

인안나를 통해 생각하는 인간의 욕망, 사랑 그리고 삶

오늘도 합정 교보문고에서 어슬렁거리며 책을 찾고 있다. “한니발이 어디 있을까?” “으음..” 오늘은 검색을 하지 않고 느긋하게 다른 책들을 둘러보며 찾아보려 했지만 답답한 것을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로서 즉시 책의 위치를 검색했다.


편안해진 마음으로 ’한니발’이 꽂혀있는 책장을 살펴보던 중 하얀 바탕에 금박으로 제목이 새겨진 책이 눈에 들어왔다. ‘최초의 여신 인안나’ 책을 보는 순간 “오.. 판타지인가..”라며 갑작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지금 살펴보고 있는 책장은 역사와 관련된 곳이었다. “판타지 소설은 아닌가 보네.” 계속 혼잣말을 하며 책을 살펴봤다.


“거룩하고 위대한 최초의 여신.. 악카드의 이쉬타르, 그리스의 아프로디테.. 이 모든 여신의 원형은 수메르의 인안나였다!”


“여신의 원형..” 혼자 중얼거리며 한 손에 한니발과 함께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 01.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이 어떻게 세상이 만들어지고 신들의 가족관계에 대해 언급한다. 많은 신들 중 특별한 존재가 있는데 그녀가 바로 인안나이다. 그녀는 자기중심적이고 감정적이며 직설적이다. 격렬한 사랑을 하기도 하며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전부를 포기할 줄도 아는 여신이다.


어느 날 지상에서 모든 명예, 사랑을 차지한 그녀는 저승을 경험하기 위해 지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저승으로 떠난다. 단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 중 절대로 버릴 수 없는 ‘메’ 와 아직 알 수 없는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욕망을 안고 말이다.


나는 그녀의 뻔뻔하면서도 욕망에 충실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한 번 사는 생인데 다양한 규칙, 규범에 둘러싸여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지 못한 삶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삶인가? 물론 신과 다른 인간은 서로 어울려 살아야 되기 때문에 인안나와 같이 살아갈 수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저승으로 갈 때 많은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모습만큼은 인간도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핵심인 ‘메’는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똑똑하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자신의 욕망을 위해 어떤 것들은 포기할 줄 알아야지만 포기해서는 안 될 핵심은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 02.

지혜의 신 엔키가 ‘메’를 인안나에게 빼앗기는 모습을 보며 술이나 중독성이 있는 것들에 너무 몰입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장 지혜의 신이라는 엔키도 술을 절제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신 결과 지상을 지배할 때 가장 중요한 ‘메’를 빼앗기고 만다.


술에서 깨어난 엔키는 늦었지만 ‘메’를 돌려받기 위해 인안나에게 사정도 하고 위협도 가하지만 결국 ‘메’는 인안나에게 내어준다. 이런 엔키의 모습을 보며 한 번 빼앗긴 것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빼앗긴 것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엔키는 더 이상 추태를 부리지 않고 깨끗하게 ‘메’를 포기하고 인안나를 축복하고 ‘메’를 맡기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난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로 인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엔키의 모습은 내 삶에 도움이 되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 03.

인안나는 저승으로 가면서 시종 닌슈부르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이 어려움에 빠지거나, 돌아오지 않는다면 도움을 청할 신들을 알려준다. 심지어 부탁을 할 순위까지 말이다. 이러한 인안나의 치밀한 모습을 보며 신화를 만들어내는 고대의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상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때 나 지금이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남들과 다르고 독한 구석이 많았다.



# 04.

“신과 인간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공경에 처하는 일이 종종 있다. (중략)  사랑과 자비심으로 가득 찬 위대한  신  엔키의 도움이 필요했다.”(p.136)


저승까지 탐낸 인안나는 큰 곤경에 처한다. 다만 그녀가 저승에 오기 전 닌슈부르에게  부탁한 도움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난다. 결국 위대하다는 인안나도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곤경을 이겨낼 수 없는 것이다. 하물며 인간은 어떠할까? 이러한 인안나의 모습을 통해 신이 되었든, 인간이 되었든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니 서로 증오하며 살지 말고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 05.

책을 읽다 보면 길가메시가 자주 언급된다. 그중 기억에 남는 내용은 엔키가 그에게 해 준 말이다.


“그렇다 하여 슬퍼해서도  절망해서도 의기소침해서도 안 된다. 너는 이것이 인간이 갖고 있는  고난의 길임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너는 이것이 너의 탯줄이 잘린 순간부터 품고 있었던 일임을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날이 이제 너를 기다린다. (중략) 그러나 너는 분노로 얽힌 마음을 갖고 저승에 가서는 안 된다.”


필멸자인 인간은 언젠가 저승으로 향한다. 이 문장에 따르면 저승은 끝이 없는 고난의 길이다. 그렇기에 분노에 휩싸인 채 저승으로 향한다면 저승에서 더 많은 고통을 당할 것이다.



# 06.

아버지 엔키, 엔키야 말로 진정한 사랑의 신이었다.

아버지 엔키, 엔키를 기억하라.

아버지 엔키, 엔키를 찬미하라.

사랑과 지혜의 신 엔키를 찬양하라!


책에 언급되는 엔키의 모습을 보며 우리들이 원하는 어른의 이상이라 생각했다.



 # 07.

“나는  당신을 나의 여종으로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중략) 또한 당신이 나를 위해 빵을 만드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두무지가 인안나와 결혼을 하기 위해 했던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저승에서 생사를 오갈 때 그녀의 충직한 심복들은 자신을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며 그녀를 기다렸지만 그의 남편 두무지는 깨끗한 의복을 입고 빛나는 왕좌에 앉아 편한 삶을 살았다. 결국 인안나는 분노하며 자신을 대신하여 남편을 저승으로 보낸다. 달콤한 말만 해온 두무지의 최후이다.


두무지의 모습을 통해서 상대방과의 관계는 달콤한 말보다 실질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말보다 행동을 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야 된다.





오래전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떠올려보면 평범하지 않은 신들의 모습에 불쾌했다. 하지만 이번 ‘최초의 여신 인안나’를 읽으며 예전과 다르게 불쾌함보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때로는 비상식적인 생각과 행동을 보이며 자신의 지나친 욕심을 충족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이용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최고라는 자만심까지 보인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녀의 모습을 불쾌하게 느낄 수 있으나, 나의 마음 깊숙한 곳의 욕망을 살펴보면 인안나와 같이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안나와 같은 욕망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방법과 행동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에는 여신 인안나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본인의 욕망을 인정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핵심 가치만 남기고 다른 것들은 포기할 수 있는 용기와 만약을 대비하는 치밀함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거기에 더해 인안나의 삶을 통해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는 사랑, 자비 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대 신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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