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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ul 01. 2023

서현의 나날.

17화. 과거.(13)

“오랜만이네.” 소현은 처음으로 로스터리에서  휴일을 사용하여 딸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 방문했다. 물론 유나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분명히 딸에게 말하면 오지 말라며 한바탕 소란을 피울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 시간도 아이들이 모두 하교가 끝난 시간으로 정했다. “뭐. 별다른 일이 있겠어?” 소현은 며칠 전 평소와  다른 딸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딸에 대한 믿음은 여전했고 걱정을 내려놓고 교무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소현은 편안한 마음으로 딸의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시작했다.


“..”


상담을 마친 소현은 한동안 굳은 표정으로 교무실에 앉아 있었다. “어머님. 이제 학교 문을 닫을 시간이라..” 방금 전까지 그녀와 상담하던 담임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소현은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 딸.. 유나는 지금처럼 학교를 다닐 수 있나요?” 그녀의 말을 들은 담임 선생님은 조금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음.. 글쎄요. 사실 며칠 전에 치안대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공문이요?” 소현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네. 보통 공문도 아니고 치안대에서 보낸 공문입니다.” 담임 선생님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게 우리 유나와 무슨 상관인가요? 아까 말씀하시기로는 불량한 애들과 어울리며 힘없는 아이들을 괴롭힌 사실은 알겠습니다. 혹시..” 소현은 불안에 떨며 말했다.


“치안대에 끌려갈 만큼 심하게 괴롭혔나요?” 갑자기 소현은 두통과 어지러움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담임 선생님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단순히 괴롭힘과 구타에서 끝난 게 아니라..”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한 번 고개를 좌우로 저은 뒤 소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어머님. 얼마 전 주변부에서 떠들썩했던 미성년 지구인 성매매 사건. 기억나시나요?”


소현은 서서히 일을 하며 TV에서 방영했던 뉴스가 떠오르며 조금씩 인상이 구겨졌다. 소현의 표정을 확인한 담임 선생님은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다행히 유나는 깊이 개입되지 않은 것으로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따돌리고 폭행한 정도가 너무 심해서 지금처럼 학교생활을 유지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소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울먹였고 믿었던 딸의 학교생활은 끝나버렸다.


“끼이익..”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돌아온 소현의 눈에 여전히 멍하니 거실 천장을 바라보는 유나가 보였다. 그녀는 딸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에 마음이 거친 파도처럼 요동쳐 참지 못하고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는 딸에게 다가가며 소리를 질렀다.


“야. 야! 엄마하고 얘기 좀 해!” 소현은 거칠게 딸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그럼에도 한동안 멍하게 있던 유나는 점점 어깨에 통증이 느껴지자 소리를 지르며 거칠게 엄마의 손을 밀어냈다.


“아파! 정말 왜 이래!” 하지만 분노에 휩싸여 이성을 잃은 소현은 딸의 말을 무시하며 소리를 질렀다. “너 이게 뭐야? 학교에서 애들을 때리고 괴롭혔어?” 유나는 엄마의 질문에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닥을 내려본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딸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난 소현은 손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는 딸을 바라봤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유나는 몸을 떨며 울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무너진 모습을 보이지 않던 딸의 낯선 모습에 소현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며 덜덜 떨며 올렸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거실에 있는 한 명은 의자에 앉은 채 "잘못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울었고 그녀를 지켜보는 다른 한 명도 조용히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한동안 말하지 않고 가만히 제자리에 서있었다. 그렇게 모녀는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어쩔 거야? 모녀는 눈물이 멈추자 소현은 차분하게 딸에게 얘기했다. 하지만 유나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 자신이 화를 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현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한숨을 쉬며 집을 나섰다. 유나는 엄마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아직까지 자신의 잘못을 받아 들이기 힘들었다. 그렇게 소현의 혼란스러운 하루는 끝났다.


“쾅!” 소리가 들리는 현관문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승훈이 서있었다. “후.. 진짜 터질게 터졌네. 어쩔 거야?” 동생은 구부정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있는 누나에게 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한 유나는 동생에게 소리를 질렀다.


“몰라. 짜증 나니까 말 걸지 마.” 그녀는 최대한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말했지만 승훈은 그런 누나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누나가 괴롭혔던 애들한테 사과해. 미안하다고.” 유나는 동생의 말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질렀다.


“내가 뭐를 그렇게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 그리고 지금 사과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어.” 한심한 누나의 말이 끝나자 승훈은 크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좌, 우로 저으며 말했다. “됐다. 성매매 사건에 깊이 개입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그는 누나를 노려본 뒤 방으로 들어갔다. 유나는 거실에 홀로 앉아 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무런 사과도 없이 끝없이 고민을 하며 학교를 다니는 유나에 대한 괴롭힘은 줄어들었지만 더 이상 그녀를 아는 척하는 아이들은 없었고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생활했다. 그녀는 이런 학교생활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필요가 없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평온했고 자신은 큰 잘못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에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다녔다.


“야. 장난하냐? 진짜.”


어느 날 자신보다 늦게 귀가한 동생이 그녀에게 위협적으로 말했다. “뭐가?” 이제는 아무런 죄책감과 고민을 하지 않는 그녀가 물었다. 이런 누나의 모습에 화가 난 승훈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냐? 엄마한테 피해 주지 말라고 했지?” 그는 씩씩 숨을 거칠게 쉬며 말했다. “무슨 피해? 내가 뭘?” 유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동생에게 물었다.


“엄마가 너 대신 애들한테 사과하잖아. 걔네들 집에 찾아가서 욕이란 욕은 다 먹으면서. 진짜 너 미친 거 아니냐?” 동생의 말에 그녀는 잊고 지냈던 자신의 잘못이 조금씩 떠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유나는 인상을 쓰며 동생에게 소리쳤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 그녀는 소리를 지르며 집을 뛰쳐나갔다.


동생에게 욕설을 뱉고 집에서 뛰쳐나온 유나는 잊고 있던 생각에 빠져들었다. 잊힐 듯싶으면 떠오르며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스러운 생각에 그녀는 점점 피폐해졌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밤길을 걷던 유나의 귀에 익숙한 여성 지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하다.” 유나는 본능적으로 익숙한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했다. 소리가 뚜렷해질수록 뿌연 형광등 밑에 서있는 물체가 보였다.


“아. 정말 됐어요! 어머니 사과는 필요 없어요!” 직접 와서 사과하고 그동안 우리 애가 받은 고통에 대한 보상이나 하세요!” “정말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보상은 최대한 빨리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유나도 언젠가는 직접 사과할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소현의 사과를 받은 어린 지구인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엄마. 그만 가요. 아마 걔는 사과하지 않을 거예요. 아빠 없이 자란 애가 다 그렇죠.” ‘아빠도 없는’이라는 소리가 유나의 귓속으로 뚜렷하게 들렸다.


“야. 뭐라고?” 유나는 자신에게 구타 당했던 애를 노려 보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 소현에게 당당한 자세로 험한 말을 하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엄마 등 뒤로 숨어 유나를 힐끗 바라봤다.


“진짜 어이가 없네. 야.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유나는 등 뒤에 숨어있는 아이에게 위협적인 자세를 취하며 다가갔다. 그 순간 아이의 엄마가 그녀를 가로막으며 말했다.


“너야? 참나. 정말 어이가 없네.” 순간 유나는 과거 선우와 어울렸던 때의 못된 습관이 튀어나왔다. “아줌마는 저리 가 봐.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소리를 지른 뒤 그녀에게 달려들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순간 자신보다 덩치가 큰 누군가에게 가로막혔다. 이성을 잃은 유나는 소리를 지르며 앞에 있는 덩치를 밀었으나 꼼짝하지 않았고 그 순간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유나는 휘청거리다 바닥에 쓰러졌다. 그녀의 앞에 있는 거대한 덩치는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더욱 사과했다.


엄마에게 혼난 적은 많지만 처음으로 뺨을 맞은 유나는 충격으로 인해 눈물을 흘리지도 화를 낼 수도 없는 멍한 상태로 바닥에 주저앉은 채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엄마를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한동안 그들은 언성을 높이며 욕을 했지만 진심 어린 소현의 사과에 결국 단호하게 경고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무릎을 꿇고 있던 소현은 비틀 거리며 일어섰고 바닥에 멍하니 엎어져 있는 딸을 바라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일어나. 집에 가자.” 하지만 유나는 당황함과 수치스러움에 사로잡혀 움직이지 않고 여전히 바닥에 엎어져있었다. 소현은 그런 딸의 모습에 크게 한숨을 쉬며 말없이 딸을 내버려 두고 홀로 집으로 걸었다.


“아빠 없이 자란 애.”


어린 시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유나는 아빠가 없다는 말을 가장 싫어했다. 유나가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 였기 때문이다. 친구들에게 “아빠가 없는 애”라고 놀림당한 날에는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화를 냈고 자신을 내버려 두고 죽은 아빠를 원망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아빠는 우리는 위해서 위험한 곳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가셨어. 그런 말은 하면 안 돼.” 유나는 씩씩 되며 말했다. “누가 우리를 위해 그런 곳에서 일해 달라고 그랬어?” 하지만 소현은 유나의 버릇없는 말에도 화를 내지 않고 말했다.


“아빠가 너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다 알고 있으면서 그런 말 하지 마. 오히려 네가 애들한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더 올바르게 행동하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 되지 않겠니? 그래야 네가 그런 놀림을 당하지 않겠지.”


“엄마는 잘 몰라!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유나는 씩씩 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소현은 딸을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엄마가 미안하다. 우리 딸 힘든 걸 몰랐네. 그런데 유나야. 그럴 때마다 아빠하고 보낸 추억을 떠올려 봐.” 울고 있는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친구들이 놀리는 건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건 본인들 보다 우리 딸이 공부도 더 잘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부러워서 괜히 그러는 거야. 우리 딸이 더 열심히 하면 더 이상 친구들이 놀리지 못할 거야.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하자.” 여전히 유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오래전 아빠와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조금씩 화가 누그러졌다.


한동안 유나는 짙은 어둠 속 흐릿한 형광등 불빛 아래 홀로 앉아 지난 시절 다정했던 아빠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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