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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ul 02. 2023

서현의 나날.

18화. 과거.(14)

소현은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을 고이 접어 혜은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그날 이후 유나가 자신이 괴롭혔던 애들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끝까지 사과를 받아주지 않은 아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유나의 사과를 받아줬어요. 정말 감사하죠." 그녀는 혜은의 얼굴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 학교에 전학을 갔어요. 다행히 빵을 만드는 일에 관심도 있고 재능도 있어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지금도 그쪽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녀는 웃으며 혜은에게 말했다.


"저는 혜은 씨가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조건 좋은 환경, 좋은 학교가 행복한 삶을 보장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서현이 하고 얘기를 많이 나워요. 서현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요." 진심 어린 소현의 말에 혜은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최근 걱정도 많고 미래에 대해 불안함을 느꼈는데 많이 줄었습니다. 좋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현은 그런 혜은을 보며 말했다.


"로스터리 일뿐만 아니라 서현이와 힘든 일이 있으면 제게 말해줘요. 도와줄 수 있는 부분까지 최대한 도와줄게요." 혜은은 웃으며 감사하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혜은은 얼굴에 미소를 띤 채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서현아! 오늘도 웃으면서 잘 지내자. 엄마도 다녀올게."


"응. 엄마. 이따 봐!"


혜은은 소현과 자주 대화를 나눈 뒤 업무시간을 줄이고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렸다. 서현은 이런 엄마의 노력에 부응하듯이 어린 시절과 같이 밝고 활동적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했다. 혜은은 이런 딸의 모습을 보며 한때의 생각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며 반성했다. 하지만 이런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기! 이것 좀 더 줘!"


"네!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여전히 로스터리는 손님이 넘쳐났고 언제나 직원들은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A 씨. 여기 좀 도와줘요!" 다른 직원들보다 적극적으로 일하는 혜은은 성실함과 성과를 인정받아 '소현 다음 팀장은 그녀'라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그녀의 입지는 단단했다. 그녀가 로스터리에서 인정을 받는 만큼 다른 직원들보다 훨씬 바빴고 그로 인해 딸과 함께 하는 시간은 줄었다.


하지만 이런 엄마의 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서현은 더욱 학교생활에 성실히 임했고 매번 가져오는 성적표에는 높은 점수가 적혀있었다. 혜은은 남편이 죽고 부당하게 연구소에서 쫓겨나 삶의 큰 위기와 고통을 겪었지만 삶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결과 지금 같이 행복한 날이 왔다고 믿었다. 그녀는 이 행복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러기 위해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더욱 로스터리 업무에 더욱 몰입했다.


"혜은 씨.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소현은 웃으면서도 걱정스럽게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혜은은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말을 마친 그녀는 밝게 웃으며 밀려있는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몸을 움직였다.


"서현아! 같이 가!" 교문을 빠져나가는 그녀의 등 뒤에서 생기가 넘치는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친구를 기다리기 위해 잠시 멈춘 서현의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학교생활에 만족했다. 최고 수준의 학교는 아니었지만 선하고 밝은 친구들 그리고 중심부로 갈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이곳에서 성적이 우수하면 충분히 주변부에서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서현아. 이번에도 1등이야?" 허겁지겁 뛰어온 친구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음.. 아직 잘 모르겠어. 너는 어때?" 그녀는 차분하게 친구에게 말했다. "헤헤. 모르겠어. 알잖아. 나는 공부에 관심 없는 거."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다수의 주변부 지구인들은 자녀 교육에 관심이 없었다. 공부를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겪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에이. 또 그런 말 한다." 서현은 친구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 몰라. 빵이나 먹으러 가자!" 여전히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웃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서현은 마음이 아파졌다.


"저렇게 밝고 순수한데 왜 무시를 당하며 괴롭게 살아야 하는 걸까?" 또래보다 똑똑한 서현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 등에 대해서도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넓혀갔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내 침울해졌다.


"그래. 오늘은 얼마 전에 새롭게 오픈한 곳에 가자." 잠시 생각을 접고 친구와 함께 웃으며 즐겁게 거리를 걸었다.


"휴.. 힘들었다." 집에 돌아온 혜은은 기지개를 켜며 털썩 의자에 앉았다. 매일 이어지는 고된 업무로 지친 혜은은 퇴근하면 녹초가 되어 집에서는 한 발짝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집도 있고.. 서현이도 학교 잘 다니고.." 고된 로스터리 업무로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적으로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댄 체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귀에 현관문이 열리며 사랑하는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어요."


"응. 잘 다녀왔어?"


혜은은 천천히 눈을 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딸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학교는 어땠어? 별일 없었니?" 혜은은 웃으며 딸에게 말했다. 서현은 옅은 미소를 띠며 가방에서 직사각형의 작은 종이 한 장을 꺼내 엄마에게 전달했다. "오늘 성적표 나왔어요." 혜은은 딸이 건넨 성적표를 살펴보며 말했다.


"역시! 우리 딸! 이번에도 1등이네!" 그녀는 기쁜 마음에 크게 소리를 지르며 딸을 끌어안았다. 서현 역시 그런 엄마의 애정 표현이 싫지 않았고 엄마를 꽉 끼어안았다. 한동안 혜은은 딸을 안은 채 기쁨에 취해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로스터리에서의 피로는 이미 잊힌지 오래였다.


"오늘 뭐 먹을래? 오늘은 나가서 먹자. 가격 생각하지 말고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서현은 엄마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언제나 거기지 뭐." 딸의 말을 들은 그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오늘은 다른 곳에 가도 괜찮아. 외식할 때마다 햄버거집에 가는 것도 조금 그렇다. 다른 음식점이나 햄버거 말고 먹고 싶은 거 없어?"


잠시 동안 고민하던 서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햄버거가 제일 좋아요. 매장도 거기가 제일 좋아요." 혜은은 평소 신경 써주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성실히 학교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딸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다. 거기에 공부까지 열심히 하는 딸이 자랑스러웠고 혜은은 그런 딸에게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 대신 비싼 거 먹어!"


"네." 그렇게 모녀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햄버거집으로 향했다.


"진짜 맛있어. 언제나 맛있다니까." 서현은 모락모락 따뜻한 김이 나는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어 우물우물 씹으며 말했다. "어휴. 오늘은 비싼 햄버거 시켜도 된다니까." 이곳에 방문할 때마다 같은 햄버거를 먹는 딸의 모습을 보며 말했다. 서현은 괜찮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엄마. 오늘 친구하고 얘기를 하는데 그 친구 말이 기억에 남아요." 혜은은 진지하게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친구가 뭐라고 했는데?" 서현은 휴지로 입 주변에 묻은 음식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친구가 자신은 공부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어요. 저는 그게 신경 쓰였어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딸의 표정을 보며 그녀는 딸의 생각이 궁금했고 지체하지 않고 물어봤다. "어느 부분이 신경 쓰여?" 서현은 자신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엄마를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친구 말고 다르 친구들도 그런 말을 자주 하거든요. '나는 공부에 관심이 없어.' '공부를 왜 해? 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돈만 낭비하는 거지. 완전.' 대부분 주변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해도 자신의 삶이 나아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저는 그런 생각이 싫어요. 정말로요." 서현의 진지한 표정에 혜은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저는 그 친구들과 생각이 다르거든요. 주변부에서 살아도 지금의 자신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친구들처럼 지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똑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진취적인 생각을 하며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는 딸이 기특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딸의 말에 공감했다.


"저는 믿어요. 여기에서도 열심히 하면 더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요." 서현은 눈을 반짝이며 활기차게 말했다. "그래. 맞아. 공부를 포기하면 지금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갈 수도 있어." 혜은은 눈을 반짝이는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멋져. 앞으로도 열심히 하자. 엄마도 열심히 일할 게." 서현은 자신의 생각에 공감해 주는 엄마를 보고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먹었습니다. 하던 공부 마무리하고 바로 잘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응. 그래. 잘 자."


혜은은 심성이 곱고 예의 바른 딸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로스터리 일 때문에 자신에게 신경 쓰지 못하는 엄마와 든든한 아빠가 없는 아이임에도 올바르게 자라는 딸의 모습을 보며 여유롭지 않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머물렀다. 혜은은 지금보다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 식탁에 앉아 가계부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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