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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Jul 07. 2023

서현의 나날.

21화. 과거.(17)

“아영아! 찾았어!” 베이커리에 방문한 서현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응? 정말?” 아영은 밝게 웃으며 서현에게 다가왔다.


“응. 여기 봐.” 그녀는 밤새 정리한 노트를 펼치며 말했다. “여기를 읽으면 법률 전문가가 없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적혀있어.” 확신에 찬 그녀의 설명에 몰입한 아영은 몸을 들이밀며 말했다.


“정말이네. 고마워 서현아!” 그녀는 서현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서현은 마음 깊은 곳에서 뿌듯함과 뭉클함이 올라왔다.


“별말을 다하네.” 부끄러운 듯이 살짝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녀들의 대화를 듣던 아영의 언니와 엄마가 제빵실에서 나와 서현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소소한 다과를 준비해 함께 대화를 나눴다.


“이제 구체적으로 사례와 해당 법률을 찾으면 돼요." 서현은 아저씨가 겪은 비슷한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비싼 법률 자문료를 지불하지 못하는 그들은 서현의 말을 경청하며 희망을 느꼈다.


“그러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뭐니?” 다부진 몸을 가진 아영의 언니가 말했다. “다음에 형사과에 방문할 때 동행해 주세요.” 서현의 요청에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그런 곳에 우리 같은 지구인들이 함께 가도 괜찮아?” 서현은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약간의 화가 치밀었다.


“그럼요.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죠.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서현의 확고한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라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서류 절차는 제가 정리할게요. 나중에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만 해주세요.“ 그녀의 말에 아영의 가족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말을 했다. 만반의 준비를 한 서현은 희망을 느끼며 감옥에서 걸어 나오는 아영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된다는 생각에 기뻤고 그 순간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정했다.


“안녕하세요. 저번에 찾아왔던 서현입니다.” 며칠 전과 변함없는 형사과는 구석구석에서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며칠 전 그들을 귀찮아하던 그는 여전히 서현을 노려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후.. 정말 나하고 장난하냐? 정말 혼 좀 날래?” 그는 구부렸던 어깨를 켜며 위협적으로 서현에게 말했다.


서현의 뒤에서 겁을 먹은 듯 그를 바라보는 아영의 가족을 바라본 뒤 물러서지 않고 떳떳하게 말했다. "자료를 찾아봤더니 꼭 법률 전문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더군요." 정리한 자료를 그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료를 살펴보지도 않고 옆으로 던지며 얘기했다.


"이런 쓰레기는 필요 없어. 여기는 너 같이 어린 지구인과 놀아줄 만큼 한가하지 않아!" 그는 소리를 지르며 얼굴을 서현의 코앞까지 들이밀었지만 그녀는 꼼짝하지 않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접수를 거부하시는 건가요?" 당돌한 서현의 말에 그는 헛기침을 한 뒤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꼬마야. 그만하자. 어차피 너 같이 어린 지구인들의 얘기는 들어주지 않아.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며칠 전 베이커리 사건을 말하는 것 같은데 얼마 뒤면 조용히 해결될 거야. 지금은 얌전히 돌아가면 된다." 그는 비밀 정보를 알려주는 듯한 자세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죄가 없는 아저씨가 하루라도 빨리 감옥에서 나오기를 원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서현은 점차 목소리를 높였다. "야.. 목소리 낮춰." 그는 당황하며 말했다. 그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 주변부 지구인이라고 무시하는 건가요?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녀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근처에 있는 지구인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들었다.


"어이. 무슨 일이야?" 동료인지 경쟁자인지 알 수 없는 덩치들이 모여들자 그는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야. 아무 일도 없어. 무슨 사건을 접수하러 왔데." 그의 말을 들은 덩치들은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중 누군가 그에게 말했다.


"얼마 뒤에 중심부에서 감사가 나오니까 조심하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서현과 아영의 가족들을 위협하던 그는 "알아.. 알고 있어."라고 말한 뒤 고개를 돌려 서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아.. 진짜. 너 같은 꼬맹이는 처음이다. 접수하마. 잠시 기다려." 그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서현에게 받은 서류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아영과 그녀의 가족들은 침을 삼키며 오히려 서현을 다독였다.


"괜찮아요. 이제 접수하니까. 조정관하고 얘기할 수 있는 일정이 정해지겠죠." 그녀를 바라보던 아영이 말했다. "서현아. 학교는? 주로 평일에 일정이 잡히는 것 아니야?" 아영의 걱정에 서현은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괜찮아. 몇 번 정도는 빠져도 돼." "하지만.."


"야! 접수했다. 이리 와 봐." 아영이 말을 하려는 순간 그가 서현을 불렀다. "다녀올게." 긴장하고 있는 아영에게 말한 뒤 그에게 다가갔다.


"언제 조정관 님과 얘기할 수 있나요?"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다. 아마도 며칠 뒤, 중심부에서 감사를 나올 때 그놈들도 함께 오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 뒤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아영에게 다가갔다.


"가자.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며칠 뒤에 연락을 준다고 했어." 그녀의 말에 아영과 그녀의 가족들은 안도하며 함께 집으로 향했다.


"주신 자료에 언급된 사건과 이번 베이커리 폭행 사건은 다른 사건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치안 대로부터 연락을 받은 서현은 조퇴를 한 뒤 아영의 가족과 함께 치안대 행정실로 향했고 그곳에는 말끔한 정장 차림의 구 인류 지구인들이 점잖게 앉아 있었다.


"아니.. 제가 보기에는 이번 사건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업종이 다를 뿐이지 어느 날 갑자기 치안대가 몰려와 마땅한 근거도 없이 영업 정지를 통보하고 이에 저항하는 지구인들을 폭행했습니다." 서현은 본인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서현이 건넨 꼬깃꼬깃한 종이를 넘기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행동에 답답하고 초조해진 서현은 아무 말이 없는 그들을 다그쳤다.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까? 뭐라 말씀 좀 해주세요." 조금씩 커지는 서현의 목소리에 조정관 중 가장 젊어 보이는 자가 말했다. "제출하신 자료를 읽어봐도 답변을 드릴만 한 내용이 없습니다." 그는 딱딱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말이 맞네. 도통 말을 할 부분이 없어." 옆에 앉아 있던 남자도 말했다.


"자세히 읽어주세요! 비슷한 부분이 이렇게 많은데 할 말이 없다고요?" 그들의 무관심에 화가 난 서현은 소리쳤다. "음.. 목소리 좀 줄이세요. 여기 귀먹은 사람 없습니다." 또 다른 조정관이 말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일에 대해 이렇게 논의까지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음.. 그렇군요.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렇네요." 여러 명의 조정관들은 귀찮다는 듯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얘기했다.


"조정관님. 방금 이런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런 일이라니요?" 화가 난 서현은 거칠게 숨을 쉬며 말했다. 태도가 거칠게 바뀌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조정관들은 조금 전 보다 더 냉담하게 바라봤다.


"행복했던 가족이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라니요? 조정관님들이 해야 하는 일 아닌가요?" 서현의 말에 조정관들은 수군거렸다.


"무례하군."


"어이가 없네."


"..."


조정관들은 각기 다른 말을 했지만 공통적으로 냉담한 시선과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요즘 주변부 지구인들이 많이 건방져졌네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조정관이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다른 조정관들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얘기가 끝난 건가요? 결과는 언제 알 수 있는 건가요?" 얘기가 마무리되는 분위기를 감지한 서현은 초조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잠시만요! 말씀은 해주셔야죠! 그렇게 아무런 말씀도 없이 가버리면 어떡합니까?" 서현도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흐음..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주변부에도 저런 지구인이 있다니.. 신기하네." 자리에서 일어난 조정관들은 서현을 내려보며 말했다.


"어서 결과를 말씀해 주세요." 서현은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조급해하며 말했다. "음. 아직 몰라요. 우리도 조금 휴식이 필요해요." "맞아요. 이런 열악한 곳에서 이렇게나 고생을 했는데.. 당연히 쉬어야죠." "맞아. 어휴.. 여기 좀 봐. 더러워!" 여전히 그들은 서현과 아영의 가족들은 신경 쓰지 않았고 본인들의 품위와 기분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 그러면 결과는 언제 알 수 있습니까?" 자신이 말한다고 달라질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서현은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다." 아까와는 다르게 가장 젊어 보이는 지구인이 반말로 대답했다. 결국 그녀의 무성의하고 예의 없는 반응을 참지 못한 서현은 화를 냈다. "모르신다니요! 어서 말을 해주세요!" 하지만 그들은 서현을 무시한 채 대화를 나누며 한 명, 두 명씩 행정실에서 빠져나갔다.


"잠시만요! 기다려주세요. 아니! 나가지 말고 답을 주세요!" 소리를 지르는 서현에게 가장 젊어 보이는 조정관이 말했다. "버릇없는 행동을 받아주는 것도 여기까지예요. 우리가 결과를 알려드릴 때까지 조용히 계세요." 그녀의 차가운 표정에 서현은 순간 돌처럼 굳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적당히 하세요. 우린 바빠요. 이렇게 당신들의 호소를 들어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굳어버린 서현의 모습에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못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서현은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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