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멧북 Jul 14. 2023

서현의 나날.

22화. 과거. (18)


"지금 장난해? 뭐? 들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라고?" 서현은 떨리지만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뭐? 지금 반말했냐?" 그녀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험악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며 다투던 그들의 대화에 점잖아 보이는 조정관이 무표정하게 끼어들며 말했다. "두 분 모두 그만하시죠." 조금 전까지 무례하던 젊은 조정관은 그의 차분하고 낮은 음성에 격해졌던 감정을 억누르며 헛기침을 했다. 서현 또한 다른 조정관들과 다르게 정중하고 예의 바른 그의 행동에 마음이 누그러졌다.


조용해진 두 명의 모습을 확인한 조정관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며 서현에게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약간의 소란이 있었네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젊은 조정관이 말했다. "선배님. 죄송하다니요? 이렇게 낮은 자세로 대하면.." 조금 전까지 부드럽고 차분했던 그녀의 표정이 차갑게 돌변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쉬어요." 건방진 조정관은 인상을 구긴 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더욱 긴장한 서현은 침을 삼키며 가만히 서있었다. "이름이 서현이라고 했나요? 아.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죠." 그녀는 다시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서현 씨가 궁금해하는 결과는 오늘 아니면 며칠 뒤에 알 수 있을 거예요. "조.. 금.. 더 확실한.. 날을 알 수 없을까요..?" 서현은 긴장한 듯 조금 떨며 말했다. "흐음.. 글쎄요. 그건 힘들 것 같아요.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녀는 차분히 말했다. 서현은 다른 조정관들과 다른 그녀를 보며 신기함을 느끼는 동시에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서현은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말했다. "네. 서현 씨도 쉬고 계세요."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서현아. 무서웠어." 그녀의 뒤에 죽은 듯이 서 있던 아영이 말했다. "괜찮아. 우리도 쉬자." 애써 서현은 괜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고맙다. 이럴 줄 알고 빵하고 음료를 가져왔다. 어서 와. 같이 먹자." 씩씩한 아영의 언니가 가져온 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네. 먹고 힘내야죠." 서현은 밝게 웃으며 함께 포장된 빵을 먹었다.


"선배님! 아까 너무 하신 것 아닌가요?" 조금 전까지 서현과 다퉜던 젊은 조정관이 카페에 들어오고 있는 조정관에게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며 다가왔다. 보기에는 포근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선임 조정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녀를 내려봤다. 그녀의 차가운 시선에 항의하던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팀장님. 이번 일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신가요?" 그녀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조정관에게 물었다. 그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짜증이 섞인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건을 살펴보니까 별일도 아니야." 그는 탁상 위에 올려져 있는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소파에 누워있던 다른 조정관이 말을 이어갔다. "이거 잡상인 놈들이 주변부에서 잘나가는 아이템을 뺏을 때 쓰는 조악한 방법이잖아." 그는 지루하다는 듯이 실게 하품을 하며 얘기했다.


"정말 멍청한 놈들 아닌가요? 주변부에서 잘 나간다고 중심부로 사업을 확장할 생각을 하다니. 자기들 분수도 모르고 말이죠." 시종일관 무례하고 건방진 젊은 조정관이 말했다. 커피를 마시던 팀장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선임 조정관은 어떻게 생각해?"


그의 말에 조금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는 말했다. "이미 사업 아이템은 빼앗겼으니까 풀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소파에 누워 하품을 하던 조정관이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선임 말에 동의! 그런데 치안대 놈들을 폭행한 건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될 것 같은데." 그의 말을 들은 그녀는 미세하게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그와 가족들의 행동은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하게 잘못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건방진 젊은 조정관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선배님! 폭력을 휘둘렀다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그녀의 말을 듣던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선임 말처럼 풀어주기는 하겠지만 폭력에 대한 벌은 필요해." 아영의 아버지 석방을 주장한 조정관은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를 느꼈지만 법보다는 출신성분이 더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벌이라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녀는 체념한 채 팀장에게 물었다. 팀장은 한동안 말없이 천장을 보고 있었다. "음. 딱히 떠오르는 벌이 없네." 그는 조금 남은 커피를 들이킨 뒤 말했다. "팀장님. 이건 어떤가요?" 가만히 있던 건방진 조정관이 말했다.


"새로운 주변부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겁니다!" 그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선임 조정관은 그녀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 그대로 풀어주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살아갈 확률이 높습니다. 더구나 베이커리는 버젓이 운영 중입니다. 이미 기반이 있는 곳에서 다시 예전과 같이 편안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는 정말 문제입니다." 그녀의 주장에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선임 조정관은 그녀의 주장은 엉터리라고 생각했다.


"법 공부를 다시 해야겠네요. 방금 말한 내용은 본인의 망상일 뿐이에요. 그는 이미 감옥에서 시간을 보냈어. 이번 사건 정도의 죗값은 충분히 치렀어요. 그리고 베이커리는 예전만큼 수익을 얻지 못해요. 아마 한동안 힘들 거예요. 이 부분 역시 그가 치안대에게 폭력을 휘두른 죗값을 치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건방진 조정관은 얼굴을 붉히고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변부 지구인들에게 선뜻 자비를 베풀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큰 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선임 조정관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 일에 후배님 아버지 말씀을 언급하는 이유가 뭐죠?" 하지만 팀장은 선임 조정관의 말을 끊고 그녀의 편을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편을 들어준 팀장을 바라보며 이 사실을 아버지가 아시면 좋아하실 거라는 말을 하며 웃었다. 선임 조정관은 부당한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더 이상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방 밖으로 나왔다.


"서현아. 저기." 앉아있던 아영이 서현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죠? 결과를 알려드릴게요." 그나마 자신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조정관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영만큼 결과가 궁금했던 서현은 그녀가 자리에 앉자마자 얘기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약간 떨리는 서현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숨을 삼키며 말했다.


"고심 끝에 그를 석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 서현과 아영은 기쁜 마음에 소리를 지르며 서로 껴안았다. 그들의 환호가 끝나자 조용히 앉아있던 조정관이 말을 이어갔다. "아직 전달 사항이 더 있습니다."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에 웃던 서현과 아영은 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해졌다.


"그가 석방되면 30일 이내에 다른 주변부로 이주해야 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자 당황한 서현과 아영의 가족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조용히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조정관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요." 당황한 서현은 급하게 조정관에게 말했다. "이건 석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주변부로 이주를 하라니요? 이건.." 그녀는 얼굴이 하얘진 채 말했다.


"... 최종 결정입니다. 그래도 30일 시간을 드렸으니 잘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조정관의 단호한 목소리에 더 이상 그들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전력을 다한 서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현의 나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