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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Aug 06. 2023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 곽재식

괴물들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최근 드라마 악귀를 보며 귀신을 소재로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거기에 어린 시절부터 신화, 판타지를 좋아했고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초월적인 존재들을 좋아했다. 어찌 보면 괴물, 귀신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와. 분위기 정말 최고네." 악귀를 보며 연신 감탄을 했다.


며칠 후 알라딘 중고 서점에 방문하여 책을 둘러보던 중 '괴물'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집어 들었더니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이 보였다.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아 조금 고민했지만 지금 지나치면 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구매하여 읽기 시작했다.




# 01.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괴물 구미호는 150년 이상 된 기록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처럼 사람들에게 유명한 괴물로 인식된 것은 20세기 중반을 넘어선 시기로 판단된다. 아무래도 대중매체의 발전으로 이웃 나라(중국과 일본)에서 들어온 괴물 이야기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거기에 대중을 위한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들에게도 여우에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 때 매력적인 구미호가 좋은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구미호는 우리에게 친숙한 괴물로 인식되었다.


구미호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과 일본에 더 많지만 우리나라의 구미호와 그들의 구미호는 다르다. 중국과 일본의 구미호는 사악하고 무서운 괴물로 인식되는 반면 우리나라의 구미호는 매혹적인 괴물로 받아들여진다. 거기에 '한'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구미호 하면 '전설의 고향'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라는 드라마가 떠오른다. 특히 '내 여자친구 구미호' 방영을 할 때 일병이었는지 상병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선임들 눈치를 보면서 힐끔힐끔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에게 구미호라는 괴물은 매혹적이면서도 슬픔을 가지고 있는 인간과 같은 괴물이다.


한편으로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사악하고 무서운 괴물로 인식이 된다는데 관련 자료를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23.07.27)



# 02.

괴물 이야기에 중요한 상징이 가득한 신화와 같이 해석하기보다는 괴물에 대한 소문이 돌던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과 사고방식을 발견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다.


물론 중요한 상징이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당시 사람들이 두려워하거나 그들의 생활상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23.07.28)



# 03.

'삼구일두귀' 하나의 머리에 입이 셋인 괴물이다. 이 귀신의 콘셉트는 밥을 엄청나게 많이 먹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두부 국도 반 그릇을 먹었다고 한다. 식량이 풍족하지 않은 시대에 얼마나 민폐인 괴물인가?


거기에 이 괴물은 일기예보, 농사에 대한 예언을 했다고 한다. 밥을 많이 주면 덕담을 해주고 조금 주면 악담을 했을까? 이 귀신을 통해 조선 사람들이 농사일을 어느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남의 밥을 마구 먹어대는 삼구일두귀는 전라도 지역에서 출몰했다고 한다. 귀신들도 곡창지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23.07.28)



# 04.

삼구일두귀는 행운의 편지 방식으로 퍼져나갔다. 조정에서 소문의 진원지를 파악하던 중 발견한 사실 중 아래와 같은 일부 내용을 알 수 있다.

  

    여기 적힌 내용을 믿지 않으면 눈이 먼다.  


    여기 적힌 내용을 한 번 전하면 한 몸이 재난을 피한다.  


    여기 적힌 내용을 두 번 전하면 집안이 재난을 피한다.  


    여기 적힌 내용을 세 번 전하면 태평한 시절을 본다.  


대단하다. 우리 조상님들도 이러셨구나. 더 웃긴 점은 행운의 편지 도입부처럼 "이 편지를 처음 쓴 사람은 요동의 신강 화상이라고 한다." 즉 조선이 아닌 외국에서 왔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23.07.28)



# 05.

삼구일두귀를 통해 당시 전라도 지역 사람들이 어느 정도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고 종이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23.07.28)



# 06.

강철은 가뭄과 홍수 모두를 끌고 다니는 괴물로 받아들여졌고 생김새도 누구는 용과 같다고 말하며 누구는 거대한 소와 같다고 묘사한다. 중요한 것은 강철의 악행이 농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강철을 통해서도 조선 시대 사람들이 농업을 중요시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23.07.29)



# 07.

간혹 물이 붉어져 물고기들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러한 이유를 하늘에서 천구성이라는 괴물이 하늘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적조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바다에서 붉은색을 띠는 미생물이 갑자기 많아지면 물 색이 붉게 보이고, 물고기들이 떼죽음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적조는 현대에도 종종 발생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23.07.29)



# 08.

우리나라의 인어는 서양의 인어들과 다른 의미와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의 옛 기록에 나타난 인어의 모습은 아래와 같다.


"한가운데 주름살 무늬가 있는 손바닥과 발바닥이 달려 있었다. 발바닥이 있다고 했으니 일단 다리가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잡힌 인어들은 모두 새기어서 네 살 난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입주 변에 달린 누런 수염이 눈에 띄었다. 그렇다면 고양이나 염소처럼 날 때부터 수염이 달린 모습이었을 것이다. 메기나 새우 수염과 비슷했을지 모른다.

모든 털이 다 누런색은 아니었는지 검은색 머리털이 이마까지 덮고 있었다고 하며, 몸은 옅은 적색이거나 흰색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등에는 옅은 검은색의 문양이 있었다. 무릎을 껴안고 앉아 있었다거나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된다거나 하는 모습은 사람과 비슷했다고 한다. 놓아주었을 때 헤엄쳐 떠나가는 모습이 마치 자라나 거북과 같았다. 그렇다면 이 인어들은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물고기인 모습이라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네발 달린 짐승이나 평범한 사람의 모습과 더 닮아 보인다."(p.82)


그래서였을까? 우리 조상님들은 인어를 신비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고래기름보다 조금 더 귀한 기름을 얻을 수 있는 물고기였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옛날 기록 중 도망가려는 인어를 창으로 찔렀다는 글이 있는 듯싶다.


서양의 이야기에서는 그렇게 매력적인 존재가 우리 조상님들에게는 좋은 기름을 얻을 수 있는 물고기였다니. 섬뜩하면서도 신기했다.(23.07.29)



# 09.

한편으로 저자는 강치의 모습이 인어로 보였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강치의 울음소리가 아기 같다는 말도 있고 기름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어에 대한 기록을 남긴 관리가 올바른 성정을 갖춘 사람이 아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유학 공부만 했던 그가 어촌에서 생선 손질을 하며 살아가던 백성들의 모습을 더럽고 흉측하게 봤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을 인어로 풀어냈을 수 있다.


나는 저자의 생각을 읽으며 공감했다. 개인적으로 강치보다는 어촌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어민들을 우습게 보고 작성한 것이라고 생각했다.(23.07.30)



# 10.

한양에서 활동하던 지하지인은 대낮에 당당하게 인간들 앞에 나타나서 말을 하며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조선시대 귀신들은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한 듯싶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귀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경연에서 논했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경연이라고 하면 왕과 신하들이 모여 고전, 정치, 철악을 논하는 자리가 떠오른다. 하지만 경연은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현실의 문제까지 논하는 자리였던 것이다.(23.07.30)



# 11.

조선시대에는 포를 소아 귀신을 쫓아내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조선왕조실록>의 1615년 3월 9일 자 기록을 살펴보면 궁궐의 요사스러운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 동궁에 대포를 쏘려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생각이지만 '지하지인' 처럼 대낮에 모습을 드러내 밥을 먹는 귀신들도 있었다니.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더욱 이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23.07.30)



# 12.

나중에는 사람이 귀신과 부딪혀 피가 날 정도로 다쳤다는 기록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창문 종이를 찢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불빛을 내고 어떤 때는 기와와 돌을 던졌다고 한다.(23.07.30)



# 13.

"귀신은 집안의 여러 작업을 하나하나 지휘했다고 하고 아침저녁으로 밥을 바치면 수저를 잡는 것과 밥을 뜨는 것을 볼 수 없지만, 음식은 저절로 없어졌다고 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이것저것 내놓으라고 요구했다는데 만약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몹시 노했다고 한다."(p.132)


개인적으로 지하지인은 삼구일두귀보다 악랄한 괴물이다.(23.07.30)



# 14.

지하지인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도 있고 직접 본 사람들도 있다. 다만 직접 본 사람들의 시분에 대부분은 노비였다. 저자는 이 부분을 언급한다.


삶이 힘들고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살아간 그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헛것을 보거나, 일산화탄소 중독 등으로 인하여 그런 것 아닌가라는 주장을 한다. 특히 귀신 이야기는 9월에 시작하여 11월까지 널리 퍼졌다고 한다.(23.07.30)



# 15.

중종 시대 한양 궁에서 가위에 눌린 사람 다수가 발견된다. 중요한 점은 가위에 눌린 사람들이 하나같이 기괴한 생물을 봤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 괴물의 생김새는 말과 비슷하기도 하고 큰 개와 비슷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체가 뚜렷하지 않았던 것이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이 된 중종 시기에는 유난히 괴물에 대한 소문이 많이 돌았다고 한다. 특히 정순왕후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연산군을 몰아낸 뒤에도 계속된 권력 다툼, 숙청 등으로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았던 듯싶다.


개인적으로 저자가 알려주는 연산군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연산군은 기행을 많이 저질렀는데 그중에서도 궁궐에서 다양한 짐승들을 키웠고 궁궐 내에서 사냥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부분은 처음 알게 되었는데 특이하면서도 잔혹한 왕이었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저자는 아마도 궁궐 사람들이 본 괴물은 연산군이 궁에서 키우던 맹수 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이다. 나도 저자의 생각에 공감했다. 더불어 연산군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23.07.31)




이 책을 처음 접할 때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대와 다르게 괴물의 등장 배경, 그들의 습성 등의 자료를 제시하고 약간의 저자 생각을 덧붙였다. 그래서인지 글이 조금 학술적이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책이 재미없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의외로 괴물들이 살았던 시대 상황을 알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책을 읽으며 괴물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하게 신화와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에 등장하는 괴물들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이러한 이야기가 만들어진 이유를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두려워했었는지, 어떤 생활을 했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괴물 이야기를 통해 당시 시대상, 인간상 등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지만 적어도 자칫하면 잠이 오는 주제에 대한 흥미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특정 시대에 대해 알고 싶은데 접근하기가 두렵다면 당시 유행했던 괴물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괴물 이야기도 다른 지역, 국가에서 시작된 경우가 많고 이야기가 퍼지면서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변형된다. 그 과정에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괴물과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모습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과거의 이야기들이 그랬듯이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이야기도 훗날까지 이어져 미래의 사람들에게 많은 웃음과 영감을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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