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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Sep 08. 2023

서현의 나날.

30화. 과거. (26)

"하아." 서현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정말 중심부 대학에 진학하면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알 수 있을까?" 그녀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두 가지 고민이 맴돌았다. 하지만 지금 서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만 생각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서현아. 무슨 걱정이 있니?" 선생님은 의자에 앉아있는 서현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니요." 서현은 어제 찾아본 글들이 떠올라 부지런히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교사는 일어서는 서현을 가로막으며 한 번 더 말했다.


"킁킁. 선생님이 보기에는 걱정이 있는 것 같은데." 서현은 불쾌하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자신 앞에 있는 선생님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 공부할 시간이라서.." 잠시동안 서현은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보며 말했다. "선생님께서 부모님이 잘 지내시는지 궁금해하신다고 말씀드릴게요." 서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그는 서현이 '부모님'이라는 단어를 말하자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 서현아. 어머니에게 잘 말씀드리렴."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서현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며 역겨움을 느꼈지만 내색할 수 없기에 조용히 답변을 한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더러운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 후.. 더러워." 교실에서 빠져나온 서현은 인상을 쓰며 조용히 말했다.


"저기. 서현아. 잠시만!" 복도를 빠져나가고 있는 서현의 뒤에서 역겨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히 혼잣말을 하던 서현은 놀라 답하며 뒤를 돌아봤다.


"네. 선생님." 다행히 그는 저 멀리 교실에서 "헉헉" 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서현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출렁이는 혐오스러운 뱃살을 보며 한숨을 쉰 뒤 다시 표정을 다잡았다.


"후우. 후우. 잠시만.. 아까 말한다는 것을 깜빡했다." 그는 얼마 뛰지도 않았지만 힘이 들었는지 숨을 몰아쉬며 얘기했다.


"너 혹시 중심부 대학 진학에 관심이 있니?" 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서현은 관심이 있다고 말할 뻔했지만 그의 표정을 본 뒤 아슬아슬하게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미 제자의 행동을 관찰해 온 교사는 여전히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중심부 대학에 입학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중심부 대학 입학하는 방법'이라는 단어가 들리는 순간 서현은 표정을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물었다.


"입학하는 방법이요?" 미세하게 입술을 떨며 말하는 서현의 표정을 확인한 교사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이 우수 학생을 선정해서 학교에 추천하면 확실하게 입학할 수 있어." 그는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저를 추천해 주신다는 건가요?" 서현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는 서현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그런데.." 갑자기 교사는 고개를 숙이며 서현의 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학생을 추천할 때 학부모님과 대화가 필요한 부분이 많단다." 서현은 그의 미지근하고 역겨운 입김을 참으며 말했다. "부모님 하고 말씀이요?" 서현은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단다! 아무래도 서류에 작성해야 할 내용도 많고 작성하려면 어머님께 여쭈어 볼 것도 많단다." 서현은 웃음과 역겨움이 섞인 그의 표정을 보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당장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숙인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렇게 고민할 필요 없단다. 오늘 집에 가면 어머니에게 꼭! 말씀드리렴."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자리에 서있는 서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서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순종적인 제자의 모습을 보며 비열한 웃음을 지은 뒤 교무실로 돌아갔다.


"..." 서현은 머릿속에서 끝없는 고민들이 스쳐갔다. 중심부 대학에 입학하고 싶은 욕망, 아영이와 같이 힘없는 지구인들을 돕고 싶은 욕망, 엄마와 조금 더 좋은 곳에서 살고 싶은 욕망. 하지만 자신이 중심부에 가기 위해서는 엄마의 희생이 필요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서현은 자신의 부족함에 몸이 떨렸다. 온갖 걱정, 고민에 눌린 서현은 하루가 다르게 우울하고 야위어갔다.


"아이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정말 아쉽다. "혜은 씨가 없으면 이제 어째?" "아니. 에이스를 데려가면 어쩌자는 거야?" 동료들은 며칠 뒤 팀을 떠나는 혜은에게 아쉬워하며 말했다.


"제가 없어도 잘 운영될 거게요. 제가 뭐라고요." 혜은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동료들은 그런 말은 하지 말라며 그녀에게 말했다. "에이. 그런 말 하지 마!" "맞아요. 맞아!" 언제나 정신없이 돌아가는 홀에서 그녀 옆을 지나가는 동료들마다 그녀의 팀 변경에 아쉬워하면서도 새로운 삶을 응원해 줬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일이 끝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던 혜은은 동료들의 아쉬움과 격려, 응원이 떠올랐다.


"정말 감사해.." 혜은은 아무도 없는 탈의실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혜은은 연구소에서 쫓겨나듯이 나와 한동안 힘들었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때는 정말 막막했는데.." 혜은은 훌쩍였다. 경력의 전부였던 연구소에서 쫓겨나듯이 사직했던 그날. 혜은은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서현이가 있었고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아닌 소중한 딸 서현이만 생각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경력을 포기하고 예전 같으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고 이곳. 네발 로스터리에서 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텃세와 동료들의 그녀에 대한 오해로 인해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이것저것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한 결과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착실한 직장생활을 했다. 그랬던 팀에서 떠나게 된 혜은은 마음이 아팠지만 딸의 미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하아. 오늘은 빨리 퇴근하자." 혜은은 눈물을 닦으며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입구 쪽에서 익숙하고 역겨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기. 다 끝났어?"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윤식이 삐딱하게 벽에 기대 서있었다.


"네. 사장님." 혜은은 차분히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고분고분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히죽이며 말했다. "오늘은 차분하고 좋아. 아주 좋아." 그녀에게 다가가며 음흉하게 말했다.


혜은은 당장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딸의 미래를 위해 참으며 말했다. "네.." 그녀는 달리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간단한 답변을 한 뒤 제자리에 서 있었다.


"흠. 흠. 애교 좀 떨면 얼마나 좋아?"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혜은은 그의 모습에 역겨움을 느끼는 동시에 궁금한 점이 떠올랐다. "사장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던 직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녀는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질문했다.


"그런데 사장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그녀는 구역질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얘기했다. "응? 궁금한 게 뭐야?" 그는 혜은이 자신에 대해 궁금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아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혜은은 짜증이 났지만 기분을 드러내지 않고 차분히 물었다.


"제가 듣기로는 과거에도 아꼈던 직원들이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혜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인상을 구기며 날카롭게 말했다.


"누구를 말하는 거지?" 서서히 인상이 구겨지는 그의 얼굴을 보며 혜은은 긴장했지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제가 다른 분들에게 듣기로는.."


"그러니까! 누구!"


그는 허리춤에 한 손을 걸치고 고개를 꺾으며 미친 사람 마냥 소리를 질렀다. 혜은은 그의 행동에 화가 치밀었지만 그와 같은 지구인이 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겠네요." 혜은은 단호하게 말한 뒤 그를 뒤로하고 좁은 통로를 걸었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날카롭고 모기 같이 가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누구한테 들었어! 어디 가냐고!" 하지만 혜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조금 마음이 진정되면 연락하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시끄럽던 복도는 조용해졌다.


혜은의 마음은 한 층 더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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