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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Oct 06. 2023

서현의 나날.

34화. 과거. (30)

"이게 정말..." 교사는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을 노려보는 서현의 머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제는 친구도 때려?" 교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현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다. 서현은 잠시 충격으로 인해 비틀거렸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다시 고개를 숙인 채 교사를 노려봤다.


"아. 진짜! 공손하게 못 해?" 교사는 여전히 자신을 노려보는 서현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 됐다. 이제 너에게는 할 말도 없다. 부모님이나 모시고 와. 알겠어?" 교사는 자신의 책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 하지만 서현은 아무런 말 없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 내일까지 모셔와. 그렇지 않으면 퇴학이야." 교사는 서현을 쳐다보지 않고 건조하게 말했다. "... 퇴학이라고요?"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던 서현은 퇴학이라는 단어가 들리자 말을 했다.


"참나. 왜? 퇴학이라고 하니까 이제야 잘못했다고 빌고 싶어?" 교사는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제가 왜 퇴학을 당해야 하죠? 저를 먼저 괴롭힌 쪽은 그 돼지년이었어요. 퇴학 얘기를 하시려면 제가 아니라 그 돼지한테 말씀하셔야죠." 서현은 분한 듯 말했다.


"야. 네가 얼마나 심하게 때렸는지 걔는 응급으로 병원에 실려갔잖아." 교사는 더 이상 얘기하기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걔가 먼저 저를.."


"이제 그만! 그만 말해!" 다 필요 없고 내일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와! 이제 가 봐!" 교사는 더 이상 서현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자신이 화를 내도 상황이 변하지 않을 것을 파악한 서현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교사를 노려본 뒤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교사에 대한 분노도 잠시 교무실에서 나온 서현은 지금 상황을 엄마에게 말해야 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씨.. 어떻게 말하지?" 서현은 홀로 조용한 복도를 걸으며 중얼거렸다. 얼마 전부터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엄마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싫은 서현은 계속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마땅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 그래. 말하자. 어쩔 수 없어. 퇴학만큼은 안 돼." 엄마와 다툼으로 잠시 삐뚤어졌지만 여전히 중심부 대학. 그곳에 입학하지 못한다면 주변부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에라도 입학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그래. 말하자. 혼자 생각만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서현은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고 그놈이 마련해 준 '새로운 집'으로 향했다.


"20층. 올라갑니다." 서현이 버튼을 누르자 듣기 좋은 부드러운 여성 기계음이 목적지 층을 말한 뒤 문이 스스륵 닫혔다. 그녀는 몸을 돌려 총창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올라갈수록 창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작아졌다.


그녀는 책으로 접한 구인류의 풍경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기억 속의 유토피아였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희미한 빛을 내며 무너져가는 허름한 건물들과 짙은 어둠만이 보였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갈수록 아래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었다.


"..." 엘리베이터가 층에 가까워질수록 화려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중심부." 저 먼 곳에서 책에서 보았던 찬란하고 화려한 불빛들이 뿜어져 나왔다. 자신이 살고 있는 구질구질한 주변부에서는 눈을 돌렸지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볼 수 있는 찬란한 중심부의 풍경에서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의 중심부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더욱 강렬해졌다.


"어떻게든 들어가야 돼."


"20층. 도착하였습니다.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어느새 20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에서 부드러운 기계음이 울렸다. "휴.." 서현은 심호흡을 한 뒤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와 집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걸었다.


윤식의 구애를 받아들인 혜은은 머무르던 집을 팔고 딸과 함께 그가 마련해 준 집으로 들어갔다. 구인류의 고급 아파트와 비슷하게 건축한 이곳은 주위 건물들과 어울리지 않게 높고 화려했으며 내부 또한 고급스럽고 화려했다. 평범한 주변부 지구인들은 평생을 일해도 거주할 수 없는 곳이었고 이곳에서 거주한다는 것은 중심부에서 살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 아무도 없나." 정돈된 복도를 지나 집에 들어온 서현은 여기저기 살펴봤지만 평소와 같이 조용했다. "아. 아. 오히려 잘됬어." 긴장이 풀린 서현은 기지개를 켜며 큰 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전학은 언제 시켜주는 거야." 그녀는 가죽 소파에 비스듬히 앉으며 투덜거렸다. 엄마가 '그'와 함께 온 날 '그'는 말했다. "우리 서현이. 공부도 잘하고 학교 생활도 잘하니까 문제없이 전학 갈 수 있어. 그 학교에 입학하면 중심부 대학은 충분히 갈 수 있어. 아저씨만 믿어!" 서현은 엄마와 함께 온 '그'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자신이 꿈꾸었던 미래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과 자신이 반대를 한다고 '그'와 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런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고 며칠 뒤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사를 한 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전학에 대한 얘기는 시작 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 뭔가 이상해." 인상을 쓴 채 '그'를 의심하던 중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곳에는 지친 엄마가 들어왔다.


"..."


"..."


하지만 모녀는 서로를 쳐다만 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지친 혜은이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 잠시 드릴 말씀이 있었어요." 오랜만에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는 딸의 말에 지쳤던 혜은은 눈을 반짝이며 얘기했다.


"응? 뭐?"


오랜만에 활기 넘치는 엄마의 표정을 바라본 서현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 좋은 일은 아니에요."


"무슨 일이 있니?" 혜은은 딸의 말에 걱정이 앞섰지만 자신에 대한 문제를 얘기해 준 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최대한 밝게 얘기했다.


"학.. 학교에서 같은 반 애하고 싸웠어요. 물론 걔가 먼저 저를 때리고 밀쳤어요." 서현은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몸을 조금 떨며 얘기했다.


"잠시만. 너 얼굴이.. 누가 그랬어?" 혜은은 오랜만에 딸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봤다. 예전보다 뚜렷해진 이목구비가 눈에 띄었다. 이전과 많이 달라진 딸의 모습을 보며 그녀는 지난 몇 개월 동안의 자신을 되돌아봤고 윤식과 직장 일에만 몰두한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자신의 딸을 구타한 녀석을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어서 말해. 누가 이랬어?" 혜은은 무표정하게 말했다. "같은 반.. 아무튼 이 일 때문에 선생님이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어요." 서현은 요동치는 감정을 참으며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너한테만 그런 말을 했어?"


"네. 아마도요."


"아직도 옛날에 그 선생님이셔?" 혜은은 분노를 억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서현은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혜은은 딸의 말을 듣는 순간 옛날 학교를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고 더 이상 그때 당시 무력했던 자신이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든 혜은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서현아. 이번에는 엄마를 믿어 줘.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해결할게."


"아.. 네.." 서현은 눈을 반짝이며 확신에 찬 표정을 짓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불안했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엄마의 얼굴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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