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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북 Oct 29. 2023

서현의 나날.

37화. 과거. (33)

"홀 준비가 미흡하네요."


"도대체 어디가 미흡하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혜은은 이전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로스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체크하며 다른 팀 지원들을 괴롭혔다.


"지금 저기. 먼지가 안 보이나요?" 그녀는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은 환풍기 바로 앞이라서 어쩔 수 없잖아요. 이미 혜은 씨도 다 알고 있으면서 왜 그래요. 정말!" 그녀의 질책을 받던 직원은 화가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혜은 씨?"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직원을 쳐다보며 되물었다. 그녀와 동료를 바라보던 팀원들은 혜은의 눈치를 보며 동료의 팔을 붙잡으며 말렸다.


"죄송합니다. 서둘러 정리하겠습니다." 동료들은 큰소리를 치던 동료의 팔짱을 끼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칠게 숨을 쉬며 동료들의 팔을 뿌리치고 혜은에게 다가갔다.


"혜은 씨! 정말 너무한 것 아니에요?"


그녀는 혜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날카롭게 말했다. "얼마 전까지 혜은 씨도 우리와 함께 일을 해봤으니까 잘 알고 있을 것 아니에요?" 계속 비상식적인 말을 하면서 그런 식으로 꼬투리를 잡아 직원들을 괴롭혀야겠어요?" 그녀의 말을 듣던 혜은은 답변하기 귀찮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제가 일부러 그렇게 한다고요? 내가?"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서비스 수준을 높이려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곳까지 점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죠. 여러분이 잘했으면 제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듣던 직원은 더 이상 화를 찹지 못하고 그녀의 멱살을 잡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그만하고 일하러 가세요." 소현은 부드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소현의 제지에 그녀는 투덜거리며 다른 동료들과 자리를 피했다.


"... 잠시 시간 괜찮으시면 얘기 좀 하실까요?" 그녀는 예를 갖춰 혜은에게 말했다. 그녀는 잠시동안 아무런 말 없이 소현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소현은 웃으며 그녀와 함께 자리를 이동하려는 순간 윤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현 씨. 지금은 업무 시간입니다." 그는 양손을 비비며 불안한 듯 걸어왔다. "홀 업무는 다른 직원들이 하고 있습니다. 잠시 혜은 씨하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요?" 그녀는 물러서지 않고 그에게 말했다.


"소현 씨. 문제가 없다니요. 지금은 업무 시간입니다. 다른 직원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관리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은데요?" 그는 소현이 잠시 사리를 비우고 혜은과 대화하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혜은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둘만 있는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 팀장님. 지금은 사장님 말씀이 옳은 것 같아요. 다음에 얘기해요." 혜은은 힐끗 그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윤식은 그녀의 선택에 만족하는 표정을 지으며 혜은에게 다가갔다.


"거 봐요. 얘기하려면 퇴근한 뒤 하세요." 소현은 실망하면서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녀는 소현을 외면하며 그의 팔짱을 끼고 시야에서 멀어졌다. 소현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자기. 잘 선택했어. 좋아. 좋아." 그는 혜은의 허리를 감싸며 음흉하게 말했다. "당연한 걸요. 지금은 업무 시간인데 팀장님이라도 일은 하셔야죠." 그녀는 미소를 띠며 그에게 말했다. 그는 그녀를 껴안으며 크게 웃었다. 이제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의 품에 안겨 아양을 떨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막아섰던 단단한 마음의 벽이 무너지자 쌓여있던 욕망이 걷잡을 수 없는 파도가 되어 그녀를 덮쳤다. 더 이상 그녀의 이성은 저 멀리 어딘가에 떠밀려 사라졌다. 그렇게 그녀는 욕망에만 충실한 짐승이 되어갔다.


"아 진짜! 혜은 씨 너무하지 않아? 어쩌면 그렇게 변할 수 있어?"


"그러니까. 진짜 너무하네."


환풍기 주변을 청소하는 직원들은 변해버린 혜은을 욕했다.


"나중에 분명히 사장한테 버림받을 테니까 잘 살펴봐." 그녀들이 올라간 사다리를 붙잡고 있는 직원이 밑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 소문이 사실이인가요? 사장이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면 애인을 바꾼다는 소문이요." 먼지를 털어내던 직원이 말했다.


"그럼. 정말이지. 거짓 소문이 아니야.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어리고 이쁜 직원이 입사하면 항상 그래." 그녀는 인상을 찡그린 채 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런데 혜은 씨는 애도 있고 나이도 꽤 있지 않나요?"


"혜은 씨가 동안이잖아. 그리고 가방끈도 길고 지적으로 보이잖아." 


"아. 정말 그렇네요. 생각해 보니까 그래요." 청소 보조를 하던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새로운 애인을 사귀면 기존에 사귄 지구인은 어쩌나요?" 보조를 하던 직원이 궁금한 듯 물었다.


먼지를 털어내던 지구인은 발적적으로 기침을 하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켁. 켁. 어떻게 되겠어? 당연히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 버려." 그녀의 말을 듣던 직원은 놀란 듯이 소리쳤다.


"어머! 사라져요? 와. 무슨 영화도 아니고." 그녀들 밑에서 사다리를 잡고 있던 직원이 소리쳤다.


"이제 그만 말하고 내려와! 힘들어 죽겠어!" 미에서 힘들다고 외치는 동료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들은 대화를 중단하고 눈앞의 먼지를 털어내는데 집중했다.


"다녀왔어." 혜은은 거실 소파에 미끄러지듯이 앉으며 말했다. 하지만 아무런 답변도 그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안 왔나?" 그녀는 시간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잠시 동안 늦은 시간임에도 돌아오지 않은 딸을 생각하다 이내 내일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얼굴을 치장할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 순간 부드럽게 닫히는 현관문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어요." 서현은 조용히 신발을 벗으며 거실로 들어왔다. "응. 다녀왔니?" 혜은은 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충 말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짜증이 난 서현은 엄마를 흘겨본 뒤 방에 들어가며 말했다. "얼굴을 보고 말씀하시는 게 기본 예의 아닐까요?"


딸의 말을 들은 혜은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가 언제부터 나한테 그런 걸 원했니?" 방에 들어가던 서현은 걸음을 멈추고 엄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전학은 어떻게 된 거예요? 더 이상 이 학교에 다니기 싫어요. 배울 것도 없고 재미도 없어요." 딸의 말을 들은 혜은은 멍한 표정으로 딸을 바라볼 뿐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짜증이 난 서현은 날카롭게 말했다.


"도대체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시는 거예요? 정말 이해가 안돼요. 엄마가 그 사람하고 어울리는 이유가 뭐예요? 정말 이해를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혜은은 말없이 딸의 얼굴만 쳐다봤다. 서현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어이없다는 듯이 유심히 쳐다봤다.


동글동글하고 포근했던 털은 윤기 있고 세련되었고 수수하면서도 새하얗던 피부는 촉촉하고 광택이 났다. 엄마는 화려하고 세련되었지만 기품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예전의 포근함과 수수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현은 이상하게 변해버린 엄마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엄마와 다른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중심부에서 살아가는 것.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뿐이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전학에 대한 확답을 얻겠다고 다짐했다.


"내일까지 꼭 말씀해 주세요. 더 늦어지면 여기에서 졸업해야 될 것 같아요. 제발 정신 좀 차리세요." 서현은 쾅 소리를 내며 방문을 닫으며 들어갔다.


딸의 말을 들은 혜은은 말없이 멍하게 딸의 방을 바라볼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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