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24번째 인터뷰이는 현재 항암과정을 담은 인스타툰을 그리면서 완치 이후의 삶을 꿈꾸고 계시는 프림 님입니다.
1. 인물소개
2. 어제의 나 : 나는 폭주기관차였다!
3. 오늘 여기의 나 : 암, 쉼표
4. 삶에 대한 평가
5.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6. 기타질문
7. 자기PR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8. 마침
이름(별명) : 프림
나이 : 만 28세
성별 : 여성
학력 : 대졸 / 컴퓨터과학부
경제력 : 치료 중으로 경제활동은 없음. 인스타툰 수익화를 막 시작하려는 단계.
안녕하세요. 저는 프림이라고 합니다. 여성이고 아직 만 28세입니다.
대학교 졸업했고 컴퓨터과학부 나왔어요. 지금은 이것저것 기획도 하고, 인스타툰을 그리고 있어요. 인스타툰은 이제 막 수익화를 시작하려고 하는 단계예요.
아무래도 치료를 받고 있기 때문에 따로 경제력이 있지는 않고, 용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프림 님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제가 중점을 두고 있는 건 ‘스토리’예요. 저는 저를 스토리텔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주로 스토리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풀어가는 작업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원래 대학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는데, 적성에 안 맞아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 당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어서 대학 졸업하고 나라의 녹봉을 받으며 2년 6개월 일하다가 24살쯤 사회로 나왔어요.
그 후 뭘 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우연히 동네에서 청년들이 모여 낙후된 지역을 살리는 로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거기서 프로젝트 매니저나 마케터 역할을 모집하길래 지원했어요.
제가 마케팅에도 관심이 있었거든요.
(학과랑 정말 안 맞았나 봐요.)
네, 정말 안 맞았어요. 코딩 자체를 싫어했고, 컴퓨터를 켜는 것도 싫었어요. 학과 시절에 안 맞는 전공 때문에 고통받았기 때문에, 제가 잘할 수 있고 하고 싶기도 한 일이 뭘까 고민해 봤죠. 그런데 그 프로젝트는 정말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참여해 보니 진짜 재미있었어요.
그곳은 동네 서점 겸 청년들이 운영하는 로컬 프로젝트 공간이었는데, 국가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사업이었어요. 대표님이 재정을 책임지고, 저와 친구 한 명이 모든 기획을 맡았죠.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해서 사진전을 열고, 동네 유휴 공간을 활용해 전시를 기획하고, 인터뷰도 진행했어요. 굿즈 제작, 원데이 클래스 운영, 온라인 세미나 섭외 등 진짜 별 거 다 해본 거 같아요.
나중에 결국 재정 문제로 프로젝트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이 일을 통해 ‘아,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어요. 기획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필요한 걸 파악해서 조율하는 과정이 정말 좋았어요.
몇 개월 동안 이것저것 탐구하면서 고민했어요. 저는 원래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러던 중 스타트업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보니까 모든 기업이 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빅데이터를 배워야겠구나’ 싶었어요. 다음 날 바로 데이터 학원에 등록했죠.
코딩을 다시 시작하게 된 거예요. [웃음]
빅데이터 분석을 배우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신기하게도 매번 조장이 되더라고요.
(프림 님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닐까요?)
그런가 봐요. 사실 저는 코딩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기본기는 있었지만, 깊이 있는 부분에 들어가면 힘들었거든요. 남들은 쉽게 하는데 저는 스트레스만 받았어요.
처음에는 자신 있었어요. ‘나는 컴퓨터과학 전공자니까 남들보다 금방 배우겠지’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웃음] 거기서 몇 가지를 배웠어요.
그중 하나는 제가 안 맞는 사람에게 억지로 맞춰주려는 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거였어요. 특히 마지막 공모전을 할 때 특히 힘들었죠. 공모전을 같이한 친구와 성격이 안 맞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프로젝트는 자체가 저한테는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어요. 조장이니까 책임감이 막중한데,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더 힘들었죠.
(그 시간을 통해서 ‘사람과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구나’라는 것과 ‘이쪽은 내 길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겠군요.)
맞아요. 제가 학원을 다니면서 웹페이지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잠깐 했었는데, 그게 재미있더라고요. 앞서도 기획하는 게 재미있었다고 했잖아요. 여기서도 기획하고, 간단한 홈페이지를 만들고, 디자인하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이걸 좀 더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진로를 정할 때 살짝씩 방향을 틀면서 탐색하는 스타일이에요. 왜냐하면 일단 해봐야 내가 잘하는지, 좋아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디자인 기초를 배우기 위해 오프라인 학원을 등록했어요. 포토샵, 웹 디자인 기초부터 시작했죠. 저는 비전공자라서 기본부터 배울 필요가 있었거든요. 거기서 기본기를 많이 쌓았어요.
그런데 배우다 보니까 예쁘게 만드는 건 되는데 UX가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걸 설명할 능력도 부족했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도 기업에서 ‘이걸 설명도 못하는 사람을 뽑을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UX 중심의 온라인 코스를 등록해서 4개월 동안 공부했어요.
그렇게 포트폴리오를 만들려고 하던 중, 병이 찾아왔죠.
저는 호지킨 림프종을 앓고 있고, 재발과 불응의 반복으로 1년 6개월 동안 치료가 이어지고 있어요. 보통 6개월 치료과정으로 끝나기도 하는데 말이죠. 지금은 5번째 약으로 항암을 하고 있어요.
2023년 10월쯤이었어요. 당시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친한 언니가 다니는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한 달쯤 지나면서 기침이 너무 심해졌어요. 보니까 코로나에 걸렸었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코로나에 안 걸렸다면 암을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코로나가 전화위복이 된 거군요.)
처음에는 폐암인 줄 알았어요. X-ray를 찍었는데, 한쪽 폐의 절반이 뿌옇게 보였거든요. 제 생각엔 암이 이미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더 커진 게 아닐까 싶어요.
처음에는 격리된 채로 코로나 치료만 받았는데, 병원에서 확실한 진단을 잘 안 해주더라고요. 폐암은 아니라는 것만 알려주고, 흉선암일 수도 있고 림프암일 수도 있는데 조직 검사를 해야 알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다 퇴원할 때쯤 돼서야 "종양 크기가 18cm"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렇게 중요한 정보를 왜 그렇게 늦게 알려줬을까요?)
저도 그게 이해가 안 갔어요. 게다가 의사 선생님이 최대한 빨리 진료를 받아야 한다면서도 병원에서는 일주일 뒤에야 진료 예약이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당장 내일이라도 가야 할 것처럼 말하면서 그렇게 잡아주니까, 이 병원을 믿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엄마랑 상의해서 다른 유명한 대학 병원의 응급실로 바로 갔어요. X-ray 보여주면서 이런 상태다 말하니까 너무 심각한 상태라 바로 받아줬어요. 다행이었죠.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어요. 사실 발병 전 1년 동안 계속 피곤하고, 몸이 가렵고, 살이 급격히 빠졌거든요. 우울증도 있고 잠도 못 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몸의 이상 신호가 계속 있었던 거네요.)
네. 처음에는 갑상선 문제인가 싶어서 병원을 다녔는데, 문제없다고 하더라고요. 정신과도 가봤는데, 불면증 외에는 특별한 진단이 없었어요.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들이 다 암과 관련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중에야 한 생각이지만 잠을 못 자거나 우울증이 왔던 것도 자율신경과 호르몬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어요.
일단 종양내과에서 호지킨 림프종이라고 진단을 받았어요. 처음에 교수님이 굉장히 밝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호지킨 림프종은 호지킨 씨가 발견한 림프종이라서 ‘호지킨 림프종’이라고 하는데, 완치율이 90% 이상이에요. 그리고 사실상 모든 항암치료의 기초가 된 질병이라 치료법도 잘 확립되어 있다고요.
한 4개월이면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4개월 괜찮네, 호기롭게 항암을 시작합니다.
제가 처음 받은 치료는 독성 항암이었어요.
(독성 항암치료는 어떤 치료인가요?)
말 그대로 독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이에요. 그런데 암세포뿐만 아니라 빠르게 분열하는 모든 세포에 영향을 미쳐서 머리카락이 빠지고, 위 점막이 손상되고, 생식세포도 영향을 받아요. 그래서 난소 보호 주사를 맞았어요. 난소를 셧다운 시키는 방식인데, 이 주사가 정말 아팠어요. 1년 내내 맞아야 했어요.
(항암 치료 중 가장 힘들었던 건 신체적인 변화였나요, 심리적인 부분이었나요?)
심리적인 부분이 더 힘들었어요.
사실 저는 처음 항암 때 운이 좋게도 머리가 안 빠졌어요. 그래서 괜히 미리 밀었나 싶었는데, 재발해서 더 독한 항암제를 쓰면서 결국 다 빠지더라고요. 한 움큼씩 빠지는 게 신기하기도 했는데, 거울을 보면 심각하더라고요. 저는 원래 짧은 머리를 많이 했어서 타격이 없을 줄 알았는데 머리를 민 거랑 모근까지 빠져버리는 거랑은 다르더라고요. 거울을 보기가 싫었어요.
그리고 이게 머리가 없으니까 보온도 잘 안되고, 땀이 잘 흘러서 조금만 더워도 베개가 젖더라고요.
(외적인 변화보다 더 힘들었던 게 있었나요?)
무력감이 가장 힘들었어요. 저는 원래 남을 챙기는 걸 좋아하는데, 이제는 제가 받는 입장이 되니까 익숙하지 않았어요. 처음엔 챙김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내 의지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게 괴로웠어요.
독성 항암을 하면 뭘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 정도로 무기력해지거든요. 그냥 누워 있는 거죠. 누워만 있다가 하루가 가고, 우울해지고.
제가 가장 힘들었던 때가 2024년 2월, 재발했을 때였어요. 원래는 치료가 끝날 예정이었는데, 재발해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완전히 무너졌어요. 계획했던 일들이 모두 무산되고, ‘나는 정말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이전까지는 치료를 받으면 나을 거란 확신이 있었고, 누구도 재발할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한 번 재발하면 두 번 세 번 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그런 두려움도 같이 왔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정말 힘들어서 누워있는데 토할 것 같더라고요. 불안감이 너무 커서.
그때 읽은 책이 저한테는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라는 책이었는데,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다는 개념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내려놓았어요. 누구나 살다 보면 힘든 일이 생겨요. 그 힘든 일의 정도와 닥쳐오는 시기가 다를 뿐이지. 그때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까지 내 탓을 하면 스스로만 괴롭히는 거잖아요. 쉽지 않았지만, 그런 과정들이 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된 거 같아요.
먼저 올해 인스타 팔로워 1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1만 명을 달성하면 수익화가 조금 더 용이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해외 인턴십도 다시 도전하고 싶어요. 준비하고 있다가 재발하는 바람에 중단한 게 있거든요!
(프림 님의 빠른 완치와 목표 달성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여태까지 제 삶은 변화가 많았어요.
예전에는 조금 조용하고 신중한 타입이었다가, 대학교 가서 망나니처럼 날뛰다가, 생각 없이 살았죠, 그때는. [웃음] 그리고 첫 직장 그만두고 나서는 뭔가 내가 잘하는 일을 좀 찾고자 하면서 사람들 만나는 게 되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또 사람들한테 너무 맞춰주다 보니까 제가 저를 잃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아프면서 굉장히 저를 많이 돌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나를 돌보는 것. 그게 너무 중요하더라고요. 일단 내가 온전히 서 있어야지 누군가를 케어를 해주든지 말든지 할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저는 나를 중심으로 사는 게 너무 이기적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된다라는 강박 같은 게 있었군요.)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혼자서 미움받기 싫어했어요. 그런데 아프면서 나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그걸 적용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암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나를 돌보는 방법, 먼저 나를 온전히 두고서 내 주변 사람들 챙기는 방법 같은 것들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군요. 그래서 지금의 상태에 대해서는 만족하시나요?)
네. 오히려 지금이 가장 안정적이에요.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상황적으로는 되게 고생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안타까워하거든요. 다들 안 겪어본 거니까. [웃음] 난 너무 괜찮은데. 저는 진짜 배운 게 많아서, 이전 삶보다 더 만족스럽고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암 환자는 우울하고 무기력한 이미지일 것 같습니다. 근데 프림 님께서 오히려 그렇지 않다고 말씀해 주시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비단 병이 아니더라도 힘든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걸 통해서도 배울 게 있어, 괜찮아, 그런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진짜 하나하나 감사하게 된 거 같아요. 막 빨래 너는 것도 되게 감사하고.
(오히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태도를 갖게 된 계기가 됐다. 그리고 또 어차피 나을 거니까.)
솔직히 뭐 이제 낫기 아니면 죽기인데 죽는 거 언제 사람 다 죽는 거잖아요.
그냥 즐겁게 하루하루 살면 된다.
글쎄요. 엄청 씩씩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네. 아주 씩씩한 것 같아요.)
사실 뭐 씩씩해야지 별 수 있나요?
저는 앓는 소리는 듣는 것도 싫고 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솔직히 다 힘들잖아요. 맨날 힘들지는 않을지 몰라도 누구나 다 힘든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가끔 나 너무 힘들어, 이런 말 하는 시간이 엄청 필요하긴 해요. 그치만 만날 때마다 우는 소리를 하는 건 관계에 있어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온 것 같지 않아요.
사실 제가 씩씩하게 살아야지 이건 아닌데,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좀 더 즐기려고 요즘에 노력하고 있어요.
(일상도 즐기고 뭐 조금 더 재미있게 다양한 시도들 해나가는 모습들이 남들 눈에는 씩씩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웃음]
일단은 다들 자기를 먼저 돌보았으면 좋겠어요. 다들 나름대로 잘 살고 있으니까요.
아픈 가족을 돌보는 분들, 특히 저희 엄마나 언니한테도 하고 싶은 말이에요. 걱정되는 마음은 알지만 그것도 자기 몸을 좀 돌보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가족들의 마음은 그런가 봐요. 사랑하는 만큼 걱정도 커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유쾌하고 가끔 용돈 많이 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도 되게 열려있고, 사람들한테도 많이 배우고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굉장히 나누고 베푸는 거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그게 어디서 오는 것 같아요?)
그냥 성격인 거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약간 좀 우울한 친구 보면 도와주고 싶고, 얘기 들어주고 싶고. [웃음] 남들의 삶도 좋게 좋게 저로 인해 좀 좋은 영향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닿을 수 있다면요.
사소하게는 지나온 관계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게 옳았던 것인가를 후회하는 게 있지만, 인생을 돌아봤을 때 후회하는 건 없는 거 같아요.
사실 후회해서 달라질 게 없기 때문에 후회를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결론적으로는 나쁜 선택이었어도 나는 거기서 배우면서 분명히 성장했고,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또 그 선택을 할 거예요. 그래서 후회하지 않아요.
그냥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했다. 잘한 것보다는 약간 자랑스러운 느낌.
나 자신, 고생했다.
(이런 마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누가 욕해도 나는 나를 위하는 거야.
(저도 안 될 때가 많기는 하지만 그런 마음 가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지하기는 쉽지 않죠.
결혼은 좋은 짝을 만나면 하고 싶어요. 병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서로 챙겨주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이더라고요.
근데 아프고 나니까 ‘내가 누구랑 만나도 괜찮을까?’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또 아플 수도 있다는 두려움일까요?)
그냥 과거 병력으로 남을 수도 있는 거고, 현재나 미래에 또 아플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잖아요.)
한 번도 이런 병에 걸려본 적 없는 사람에 비하면 ‘쟤는 멀쩡한데…….’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해도 될까?’ 이거에 가까운 것 같아요.
(좋은 인연이 있으면은 결혼을 해서 이제 아름다운 노년을 좀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지만 동시에 병과 관련된 두려움에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있는 상태인 거군요.)
• 그렇다면 출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 절대 (출산) 안 할 거예요.
(이토록 명확한 의견을 갖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긍정적으로 살아보려고 노력은 하는 편입니다마는, 이 세상을 사는 게 녹록지가 않고 매 순간 즐거움만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이런 세상에서 저는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줄 자신이 없어요.
이미 태어난 아이라면 그런 고민을 해야 하지만, 애초에 태어나지 않은 아이라면 그런 걱정조차 할 필요가 없으니까, 굳이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요.
하지만 아이는 엄청 좋아해요.
(아이는 좋지만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큰 거네요. 앞으로 더 안 좋아질 세상에 만들어내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저는 입양하고 싶어요.
(오히려 이미 세상에 태어났지만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는 친구에게 내가 사랑을 주고 싶다는 거군요.)
맞아요. 세상에 나왔는데 부모 잘못 만난 애기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혹시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독신입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신가요?)
독신이면 못할 것 같아요.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아이를 꼭 원한다면 합의 하에 입양을 하는 쪽을 생각하고 있어요.
삶의 질? 일단 경험의 폭이 너무 좁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경험의 폭이 좁다 어떤 의미인지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저희는 살면서 거의 다 똑같은 루트를 밟잖아요.
해외 유학 같은 걸 가지 않고 한국에서 자랐으면 유치원, 초중고, 학원 열심히 다니면서 대학교를 가죠. 그다음에 취업을 해야 해요. 저는 그 과정에서 삶이 행복하다 이렇게 느낄 틈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외국 같은 데는 여름에는 가족들과 같이 바다로 휴가를 가고, 여행도 가고, 이런 게 많잖아요. 물론 어디든 빈부격차가 있겠지만 그래도 통상적으로 한국에 비해 자연과 어울리고 다채로운 경험을 하는 방식으로 양육을 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좀 삭막한 것 같아요.
(확실히 먹고사는 게 급급하다 보니까 어려운 것 같습니다.)
네. 먹고사는 일들. 그게 일단 해결이 돼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고.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내 손에 쥔 좁쌀 하나를 나눠서 먹을 순 없잖아요.
제가 운영하고 있는 인스타툰, ‘프림툰’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프림툰에 대해 더 설명해 주신다면?)
캐릭터 ‘프림’은 림프종의 ‘림프’를 뒤집어서 프림이 되었어요.
(저 처음 알았어요. 커피, 프림 할 때 그 프림인 줄 알았거든요.)
헷갈릴까 봐 걱정되긴 했는데요. [웃음] 그래도 어쨌든 림프종과 함께 태어난 캐릭터라서 ‘프림’으로 정했어요.
프림을 만들게 된 건, 뭔가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내가 죽고 나면 사람들이 내 사진을 보며 잠깐 추억하다 말겠지, 나는 책을 쓴 것도 없으니 그냥 잊히겠네,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왜 미리 뭔가 남길 생각을 안 했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프림툰인데,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셔서 정말 큰 힘이 되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이 프림툰을 더 키워가면서 노하우를 쌓고, 나중에는 암 환자분들이나 다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인스타툰 같은 걸 해볼 수 있도록 노하우를 나누고 도와드리고 싶어요.
(프림툰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모두 건강하고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추신. 프림님께서 삼성서울병원과 협업하여 온라인 청년 암환우 자조모임을 운영하신다고 합니다. 더 자세한 정보는 프림툰을 통해 확인하세요!
https://www.instagram.com/prim.tun/
제가 뭐라도 된 것처럼 잘 들어주시고 정리를 잘해주셔서 좋았어요. 마치 상담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2026년 2월 프림 님이 먼 여정을 떠났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