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 26. 건설회사 설비 담당자, J

고점, 저점, 그리고 다시 고점을 향해

by 김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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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번째 인터뷰이는 현재 건설회사에서 설비 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J 님입니다.


목차

1. 인물소개

2. 인생 1막 : 고점을 찍고 2억 빚을 안게 되기까지

3. 오늘 여기의 나 : 상담교사가 되기까지

4. 삶에 대한 평가

5.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6. 기타질문

7. 자기PR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8.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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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별명) : J

나이 : 만 30세

성별 : 남성

학력 : 대졸 / 기계공학과

경제력 : 열심히 하면 아파트 하나 정돈 살 수 있겠다 싶은 정도




1. 인물소개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름, 나이, 성별(성 정체성)

1994년생, 이제 만 30 정도 된 남자입니다. 대학교는 기계공학과를 나왔고요, 지금은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정확히는 설비 담당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제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열심히 모으면 아파트 하나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회사에서 숙소나 부대 비용도 많이 지원해줘요. 통신비, 유류비 같은 생활비 부담이 적어서 마음만 먹으면 월급을 거의 안 쓰고도 살 수 있는 구조예요.




2. 인생 1막 : 고점을 찍고 2억 빚을 안게 되기까지


• J 님은 기계공학과를 나왔다고 하셨습니다. 원래부터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으셨던 건가요?

원래는 신학교에 진학했었어요. 아버지가 목사님이시거든요. 그래서 아버지를 따라서 종교인의 길을 가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으로 진학했는데, 1년을 다녀보니까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학교에 실망한 점도 많았고, 나 자신이 목회자의 삶이 어울리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럼 어릴 적부터 신학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군요?)


전혀요. 사실 좀 치기 어린 생각이었어요. 진로에 대한 확정적인 생각은 없었고, 어릴 때부터 꿈은 오히려 사업을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수능을 봤는데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왔어요. 그래도 서울에 있는 대학은 가고 싶고, 친구들이랑 떨어지기 싫고.


신학교는 입학 커트라인이 조금 낮은 편이라 들어간 건데, 가보니까 제가 생각했던 목회자상과는 거리가 먼 철없는 친구들을 많이 봤죠. 저는 또 이상하게 ‘얘는 목회자 하면 안 되겠다’ 싶은 친구들이랑 더 잘 어울리고요. [웃음] 그래서 ‘나는 목회자랑은 안 맞겠다’는 생각을 입학하고 세 달쯤 지나서 하게 됐어요. 그래서 군대를 갔죠.


(군대가 일종의 전환점이 됐겠네요?)


맞아요. 중요한 결정을 하려고 할 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나 기대 때문에 쉽게 끊기가 어렵잖아요. 부모님은 제가 신학한다고 하니까 되게 좋아하셨고, 교회 사람들도 “J가 신학교 가더니 더 좋아졌다” 이런 얘기를 하니까 쉽게 정리를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잘 아는 사람들과 단절되어야 했고, 군대가 그 계기가 되어준 거죠.


더군다나 운 좋게 군대가 저랑 잘 맞았어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정해진 업무를 수행하면 칭찬받는 곳이니까요. 그리고 거기서 만난 형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줬어요. 셋 다 기계공학과였고, 재수하고 좋은 대학 간 다음에 늦게 군대 온 형들이었어요. 저는 진로 고민 중이었고, 그 형들이랑 많이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계공학과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게 됐죠.


우리나라는 제조업 기반이니까 기계공학과는 반도체, 자동차, 조선, 건설… 거의 어디든 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아직 갈피는 못 잡았지만, 어딘가에선 분명히 쓰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수능을 다시 준비해서 기계공학과로 입학했어요.


(건설사 입사 준비는 학부 때부터 하신건가요?)


다들 그렇듯이 4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했죠. 저는 공기업, 그중에서도 발전소에 가고 싶었어요.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전기를 한전이 담당하고 전기를 생산하는 건 기계 쪽에서 맡거든요. 저는 발전소 쪽을 목표로 준비했어요. NCS 준비하고, 가산점 되는 것들, 한국사 1급, 컴활, 기사 자격증 이런 거 하나씩 드래곤볼 모으듯이 다 땄어요. 그래서 서류는 그래도 곧잘 붙었던 것 같고, NCS도 거의 합격선 근처로 나왔었고요. 근데 다 떨어졌어요.


(혹시 왜 떨어졌는지 추측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게… 핑계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제가 2020년에 졸업했거든요. 마침 그때 코로나 팬데믹이 터졌고요.

원래 6대 발전소가 있는데, 그 해엔 한 곳을 제외하고는 전부 채용을 중단했어요. 보통 발전소 하나에 2만 명 정도가 지원하는데, 그 모든 수요가 한 곳에 몰렸고, 뽑는 인원은 고작 3~5명 수준이었어요. 경쟁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고, 제 실력으론 턱없이 부족했죠. 결국 떨어졌고, 그게 제가 다른 길로 방향을 틀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어떤 방향이었나요?)


전업투자자의 길이었습니다.


• 전업투자자라니 전혀 예상 못한 분야입니다. 어떻게 투자자가 될 수 있었나요?

제가 사실 대학교 때부터 코인 투자를 좀 했었어요. 수학적인 방법으로 루틴을 짜니까 성과가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취업도 안 되겠다 싶어서 ‘아예 전업 투자자를 해볼까?’ 하고 시작했어요. 그게 꽤 잘 됐어요. 하루에 백만 원, 천만 원씩 벌기도 했고요. 제가 100만 원으로 시작했는데, 최고로는 5억까지 갔었어요.


(거기서 끊었으면 진짜 대단했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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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하지만 그럴 수 없죠. 혹시 영화 도둑들 보셨어요? 거기 마카오 박이라는 인물이 하루 만에 엄청난 돈을 벌고, 하루 만에 다 잃거든요. 누가 “그때 멈췄으면 됐잖아”라고 하니까, “그때 멈추는 사람은 애초에 그만큼 못 번다”고 해요. 그 말이 딱이었어요. 엄청난 성과를 내는 사람은 매 도전에 모든 걸 거는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저도 그때 성과가 진짜 좋았어요. 사업화도 시도했고, 프로그램도 만들고, 투자도 받았고요. 거의 전문적으로 하고 있었죠. 몇 년 하다 보니까 매수·매도 타이밍이 루틴처럼 잡히면서, ‘이걸 아예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 사업을 해보자’ 싶었고, 팀을 꾸려서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미국 주식이 11주 연속 하락하는 시기가 왔고, ‘이건 경기 침체의 시작이겠구나’ 하는 감이 왔어요. 기반이 무너지고 땅이 내려앉는 느낌이었죠. 그 위에서 사업을 이어갈 순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 사업을 접고, 팀도 해체했어요. 그때 저는 월급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입장이었는데, 매매는 계속 손실을 보고 있었고, 투자금도 있었고…… 빚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죠.


결국 저는 투자자들의 원금 손실선에서 멈췄고, 빚을 갚을 방법을 찾아야 했죠.


(그래서 취직을 결심한 거군요?)


네. 제가 더 이상 생산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부채가 이보다 늘어나면, 인생이 너무 많이 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공기업 준비할 때 따놨던 자격증이 있었고요. 그래서 "일단 당장 취직을 하자"는 마음으로 팀을 해체한 다음 날부터 바로 배달을 뛰었어요.


• 몇 억의 자산을 가지고 있다가 빚쟁이가 되었는데,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진짜 괴리감이 컸어요. 저는 하루에 수수료만 몇십만 원씩 쓰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단돈 4천 원을 받기 위해 배달을 뛰고 있으니까요. 그때 “아 내가 정말 쉽게 벌고 쉽게 썼구나” 하는 자각이 왔어요.


(빚은 어떻게 갚으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일단은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해서 학교 조교로 들어갔고, 새벽에는 시계 고쳐서 해외에 판매하는 일도 병행했어요. 시계 수리 기술은 친구한테 6개월 정도 배웠고요.


(조교, 시계 판매, 배달까지… 쓰리잡을 하신 거네요.)


맞아요. 그 당시 저는 무직이어서 대출도 안 됐어요. 그러니까 정말 노동력밖에 방법이 없었죠.


(심리적으로 정말 많이 힘든 시기였을 것 같습니다.)

네.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생길 정도였어요. 저는 원래 스트레스 관리에 자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다 맞아보기 전까진, 사람이 자기가 얼마나 약한지 모르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진짜 겸손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근데 오히려 너무 바빠서 버텼던 것 같아요. 배달, 조교, 시계 수리까지 하면서 숨 돌릴 틈도 없었거든요.


(그런 생활을 딱 1년 정도 하신 거죠?)


네. 조교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이제 준비가 됐다” 싶어서 취업 준비를 시작했고, 첫 번째 넣은 원서가 붙었어요. 종합건설사였는데, 운도 따랐고요. 그때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채용 시장이 조금 열리던 시기였거든요. 나중에 들은 얘긴데, 자소서를 보고 “이 친구는 성실하고 포기 안 할 사람 같다”고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동안 해온 것들이 그 안에 잘 담겨 있었던 것 같아요.


• 혹시…… 빚은 다 해결하신 건가요?

취업 후 입사 1년 차에 나오는 정규직 대출로 갈음했습니다.


(20대 청년 기준으론 생각보다 빨리 갚으신 것 같아요. 쓰리잡까지 뛰면서 다 책임지셨다는 게 정말 대단해요. 그 과정을 통해서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배달 끝나고 밤 12시쯤, 그냥 멍해서 한강 갔어요. 죽으려고 간 건 아니고요. 그때 ‘나는 뭘 원동력으로 삼고 살았나?’ 생각해봤어요. 근데 결국 인정 욕구였던 것 같아요. 나 잘나간다, 나 열심히 산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저는 저한테 돈 쓰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지금도 그렇고요. 돈은 다 남들한테 썼죠. 부모님도, 친구들도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나만 불편하면 괜찮은데, 내가 아는 사람들이 불편한 건 싫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목회자 가정에서 자라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웠으니까 그런 생각도 있었던 거 같고요.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사람을 책임지려고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때 제일 친했던 친구가 “누구도 너한테 인생 책임지라고 한 적 없어”라고 말해줬는데… 그 말 듣고 그냥 주저앉아서 펑펑 울었어요.


(J님은 아무도 지우지 않은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었던 거네요.)


그건 결국 자존감을 메우기 위한 거였던 것 같아요. 제 안에 있는 빈 구멍이 너무 크니까, 그걸 채우려고 사람들을 모았던 거죠. ‘내가 이만큼 해주면 이 사람도 행복하고, 나도 인정받고 행복하겠지?’ 그런 식의 좀 왜곡된 논리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나쁜 마음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본인을 되게 괴롭힌 방식이었네요.)


네, 저는 원래 저한테 좀 엄격한 스타일이라…….


(지금은 좀 괜찮아졌어요?)


많이 나아졌어요. 진짜 힘들어보니까 어쩔 수 없이 남들 도움을 받는 상황이 오더라고요. 근데 그때 알았어요.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고 싶어 할 만큼 가까운 사람이면, 그 사람도 내가 그렇게까지 힘들게 돕는 걸 원하지 않는구나.’ 서로 같이 가고 싶어 하는 관계구. 그걸 그제야 깨달았어요.




3. 지금 여기의 나 : 종합건설사 설비 담당자


• 현재 건설사의 설비 담당으로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습니다. 정확히 일을 하는 직업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건축에서 설비라는 건 건축물의 순환계를 담당하는 일이에요. 우리가 호흡을 하고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해서 배설을 하잖아요. 건물도 똑같아요.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오수를 배수하고, 공기를 순환시키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이 모든 게 설비의 역할이죠.


이를 위해 건축물에는 기계실, 전기실 같은 핵심 공간이 있어요. 그곳에서 동력을 만들고, 각 세대까지 배관이 뻗어나가요. 예를 들어 우리가 가스를 쓴다 그러면 시에서 관리하는 인입배관이 있고, 그걸 건축물 내부로 끌어와서 세대까지 연결하는데, 저는 그 전체 흐름을 설계하고, 시공하고, 검수하고, 문제 생기면 해결하는 사람이에요.


• 건설현장에서 설비 담당자의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또 설비 담당자로서 J님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제 하루는 아침 5시에 기상하는 걸로 시작해요. 기상하고 6시 전후로 현장에 출근하죠. 7시에 작업자들과 툴박스 미팅(TBM)이라는 걸 하는데, 작업자들한테 오늘 어떤 일이 있는지, 주요 위험 포인트는 뭐고 어떤 공정이 진행되는지 브리핑하는 거예요. 그다음에는 소규모 미팅으로 들어가요. 설비 파트만 따로 모아서 더 세밀하게 오늘의 작업 지시를 내립니다. 이런 미팅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있어요.


그 후에는 현장에 나가요. 설계도대로 공정이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문제가 생기면 즉시 판단해서 지침을 줘야 하거든요. 변수는 항상 생기니까요. 작업이 끝나도 일이 끝나는 게 아니에요. 저희는 중간관리자니까 본사와 감리에게 제출할 서류도 만들고, 내일 작업을 준비 해야 하죠. 요즘엔 안전 관련 서류도 정말 많아서 제가 지난 3년간 만든 서류가 1만 장이 넘어요.


그렇게 모든 일정을 정리하고 숙소에 도착하면 보통 밤 8시쯤이에요.


(굉장히 바쁘고 치밀한 하루네요.)


맞아요. 저희 관리자는 공사 품질, 협력업체 관리, 공사 일정 조율, 서류까지 다 책임져야 하거든요. 하나의 건물을 완성하기 위해 많은 협력업체와 소통하며 안전과 품질, 예산과 일정을 다 맞춰야 하죠. 그만큼 책임이 크다보니까 현장에서의 권한도 커요.


(어느 정도의 권한인가요?)


실제로 큰 문제가 생기면 협력업체 대표를 소환하는 경우도 있고, 현장 업체 담당자인 소장님들에게 작업지시를 내릴 수 있어요. 그리고 정말 불가피한 경우에는 관리자 판단하에 즉시 퇴출을 시킬 수 있는 권한도 갖고 있어요.


보통 한명의 관리자가 보통 70억에서 100억 정도 규모의 업무를 맡아요. 많은 공정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시간이 곧 돈이다보니 한 공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도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예민하고 화도 많고, 늘 급해요. 만약 공사가 하루 지연되면 지체보상금만 1억이에요. 그런 일을 방지하고 원활한 공사 진행을 위해 관리자의 권한도 쎈 편이죠.


•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과 어려운 점이 궁금합니다.


힘든 점은 내가 아무리 빨리 굴러도, 앞에 있는 공정이 굴러가지 않으면 나는 그냥 멈춰야 된다는 거요. 공정이 정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어야 되는데, 앞에서 버티면 뒤에선 밀고, 나는 끼어 있고. 항상 정체 상태가 생겨요.


설비도 건축 공정에서 딱 중간에 있어요. 건축이 앞에서 끌고 가고, 전기가 뒤에서 따라오거든요. 근데 건축팀은 느려도 크게 문제가 없어요. 자기들 일정만 끝나면 되는 거니까. 문제는 우리가 설비를 마무리하려면 최소 3개월은 필요하거든요. 근데 건축은 계약 기간 3개월 전에 끝내놓고, “우리 다 했어~” 하고 손 털어버려요. 그럼 우리는 시간 부족한 상황에서 전기팀한테 또 쪼여요. 사이에 낀 거죠. 진짜 마음이 급하고 스트레스가 커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이 저희가 현장에서 가진 권한이 크거든요. 이 사람이 뭔가 말을 안 듣거나 안전하지 않게 작업하면 바로 “당장 나가세요”라고 말해야 돼요. 어떤 날은 아버지뻘 되는 분한테 그런 말을 해야 할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때 마음이 정말 안 좋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일을 하고 계신 이유, 보람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가 지시한 게 실제로 실행되고, 그게 건물이라는 구조물 안에서 시스템으로 작동할 때, 그게 진짜 기분 좋아요. 그저 도면에 있던 건물이 실제로 물이 돌고, 공기가 순환되고, 펌프가 작동하면서 ‘살아 있는 구조’가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제 말 한 마디에 수십 명이 동시에 움직일 때 오는 통제력의 만족감? 제가 인정욕구가 큰 편이라서 그런 게 있어요. 면밀히 검토하고 내린 작업 지시가 현장에서 바로 실행되는 그 찰나의 감정이 있어요. 거기서 오는 희열이 커요. 항상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도 즐겁고요.


다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일은 힘들어요. 근데 매일매일 문제를 해결하면서 배우고 성장하는 느낌이 있어요. 공정마다 다르고, 업체마다 다르고, 상황도 매번 다르니까. 그래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4. 삶에 대한 평가 – 나, 그리고 타인


• 현재 본인의 삶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저는 제 삶을 책임감 있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성향이고, 그 안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지금 삶에 만족하시나요?)


네. 20대를 돌아보면, 단 하루도 후회되는 날이 없어요. 30대는… 기대했던 대로 정말 재밌는 나날들이고요.

(아, 30대가 되면 잘 살 거라고 기대하셨던 거예요?[웃음])


네, 맞아요. 사실 20대는 좀 힘들었거든요. [웃음] 이상은 높은데, 그에 비해 제 실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그래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속도를 더 빠르게 할 순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원하는 궤도에 올라서게 되겠지’라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 언젠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도 좀 줄어들고,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요.


(그 기대가 지금 잘 이뤄지고 있는 것 같나요?)


네. 잘 되고 있고, 요즘 정말 재미있습니다.


•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한다면 어떤 식으로 평가하거나 또 할 것 같나요?

보통은 저를 ‘지독한 놈’이라고 해요. 저는 그 표현이 꽤 마음에 들더라고요. 한 친구가 저한테 “넌 지독하게 선량한 사람이야”라고 했는데, 그 말이 저를 정말 잘 표현한 것 같았어요.


저는 세상에 옳고 그름이 있다고 믿는 편이에요. 정해진 규칙과 법 같은 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제 기준을 넘는 사람들한테는 ‘그럴 수도 있지’가 잘 안 돼요. ‘그럴 수는 없어. 그건 대가를 치러야 해’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J님의 ‘선’은 굉장히 명확하게 설정돼 있는 거군요?)


맞아요. 대신 그 선 안에 있는 사람들과는 진짜 잘 지내요. 끊임없이 좋은 유대도 맺고요. 그래서 ‘지독하게 선량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그 기준도 생각보다 꽤 넓어요. 사람들이 보기엔 “이건 좀 선 넘은 거 아냐?” 싶은 것도 저는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진짜 넘었다 싶으면, 거기서부터는 확실히 선을 긋죠.


(혹시 그 선을 넘은 사람에게 냉정하게 대했던 기억, 하나만 예를 들어주신다면요?)


예전에 시계를 팔다가 사기를 당한 적이 있어요. 피해 금액은 100만 원도 안 됐는데, 저는 형사 끝나고 민사까지 갔어요. 사실 돈을 안 받아도 됐어요. 시계만 돌려주고 사과만 했으면 아무 문제 삼지 않았을 거예요. 근데 그 사람이 오히려 전화를 걸어선 조롱을 하더라고요. “네가 날 어떻게 찾을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요. 그 순간 ‘이건 그냥 넘기면 안 되겠다’ 싶었고, 끝까지 갔어요. 저한테는 그게 ‘선을 넘은 행동’이었던 거죠.


(평소엔 선 안의 사람들에겐 굉장히 부드러운 분인데, 기준을 넘는 순간엔 냉철하게 대응하시는군요.)


맞아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듣는 말들이 또 있어요. 열정적이다,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다, 그런 얘기들요. 근데 저는 누구나 다 자기가 꼭 붙들고 있는 밧줄 하나씩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게 외적으로 좀 더 드러나는 쪽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 같고요.


• 혹시 나를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음… 있다면, “해치지 않아요.” [웃음] 저는 생각보다 무해한 사람이고, 선을 넘기 전까지는 정중하게 세 번 이상 경고합니다. “그러지 마세요.” 진심 담아서 말하거든요. 근데 그 경고가 끝났는데도 계속 그러면… 그때는 좀 다른 저를 볼 수도 있어요.


(평소에는 배부른 사자와 같다.)


추구하는 바입니다. 배부른 사자.


• 앞으로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 있는 좋은 사람들과 무탈하게 같이 인생을 걸어가고 싶은게 제 꿈입니다. 지금있는 친구들과 각자 가정도 이루고, 아이도 키우면서 가끔 같이 놀러도 가며 평범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많이 배우고,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서 저와 제 주변을 넉넉하게 지킬 수 있으면 좋겠어요.




5.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을까요?

살면서 힘든 일들은 많았죠. 근데 돌이켜보면 제가 살아온 시간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어요. 어쨌든 그 시간들이 다 저를 만든 거니까요.

• 반대로 내가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까요?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던 거예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16살 때부터 했고요. 지금까지 한 20개 정도 해봤던 것 같아요.


(굉장히 일찍부터 시작하셨네요. 그 경험이 어떤 점에서 잘한 일이라고 느끼세요?)


저는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게으르지 않게 된 게 가장 커요. 원래도 그런 성향이 있었지만, 그 시기에 제 장점들이 더 강화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회에서 가면을 쓰고 있을 때의 제 모습과, 저 자신 본래의 모습을 구분하는 법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혔던 것 같고요.


(일할 때의 나, 그리고 집이나 편한 자리에서의 나, 이런 분리가 잘 되는 거네요.)


맞아요. 근데 사실 그런 분리가 잘 안 돼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정말 많거든요. 저도 지금 건설사에 있다 보니까, 아까 말씀드렸듯이 인류애가 있는 사람들한테는 특히 더 힘든 일이 많아요. 저보다 훨씬 연배가 높은, 거의 아버지뻘 되는 분들이나 정말 고생하며 땀 흘려 일하시는 분들한테도 화를 내고, (규정에 맞게) 교정을 시켜야 할 때가 많아요. 그런 상황이 수백 번 반복되다 보면 마음이 정말 안 좋아요.


회사가 요구하는 품질 및 안전 기준에 맞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그분들을 현장에서 내보내야 하거든요.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프죠. 그러다 보니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사람을 판단하고 분석하고 평가하고, 심하면 쳐내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돼요. 일종의 직업병처럼요.


(그런 태도들이 일상에서도, 친구나 가족한테도 그런 태도가 한 번씩 튀어나올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근데 저는 어릴 때부터 일을 해와서 그런지, ‘이건 일하러 온 나야’라는 감각이 오래전부터 자리를 잡았어요. 그래서 일할 때는 되게 냉철하고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다가도, 가족이나 연인이랑 있을 땐 또 원래 제 모습, 활기차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잘 돌아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해온 경험으로 일과 삶의 분리가 자연스럽게 잘 되는 거군요.)


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사회 경험을 한 게, 특히 지금 하는 일에서는 제게 정말 큰 장점이 되고 있어요.




6. 기타 질문


•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결혼, 정말 하고 싶습니다. 출산과 육아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원하시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한국 사회에서 이걸 설명해야 되는 게 너무 슬픈 것 같아요.


일단 출산은 제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일이에요. 저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더 리스펙하게 되는 것 같아요. 몸이 한 번 아파보고 나니까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어요. 근데 출산은 사람의 몸에 엄청난 부하를 주는 일이잖아요.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됐어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이 아닌가 싶어요.


결혼이나 육아가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건 저도 잘 알아요. 사실 지금 내가 버는 돈의 일부만 써도 혼자 잘 먹고 잘 살 수 있거든요. 아이 키우는 건 20년 넘는 장기 프로젝트고, 아이들이 커서 저를 부양할 거란 보장도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번 돈으로 가정을 이루고, 사랑하는 사람과 한 생명을 만들고, 그 생명이 나의 의지와 유전자를 이어 받아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저한테는 가장 큰 의미고, 가장 큰 기쁨이 될 것 같아요. 나중에 제 아이가 “아빠 정말 잘 사셨어요”라고 말해주는 상상을 하면, 그게 저한테는 인생의 정점일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결혼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어요.


• J 님이 생각하는 저출산의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는 요즘 젊은 세대가 결혼을 안 하려는 이유가 사람들이 너무 똑똑하고 너무 합리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결혼은 결국 희생과 헌신을 필연적으로 따라오는데, 그걸 하기 싫은 거죠. 우리는 부모님 세대의 희생을 보면서 자라왔어요. 그분들이 우리를 위해 젊음과 재화를 소모하고, 지금은 지쳐 계신 모습만 보다 보니까, ‘나도 저렇게 될까 봐’라는 두려움이 생긴 거죠.


사실 부모님도 우리를 키우면서 느낀 기쁨이 분명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걸 어린 시절엔 잘 몰랐고, 지금은 그분들의 고단한 현재만 보게 되니까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요즘은 워낙 선택지가 많은 시대잖아요. 인생의 기쁨과 의미를 줄 수 있는 대안이 너무 많다 보니 나를 희생해서까지 뭔가에 몰입하는 게 어려워진 세대가 된 거죠. 그건 진짜 큰일이라고 생각해요.



7. 자기PR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어필하고 싶은 게 있나요?

저는 이런 쪽에 대해 싶은 말이 정말 많은 사람이에요.[웃음]


저와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하지만,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도 큽니다.


제 성향은 기성세대와 조금 더 가까운 편이에요. ‘열심히 하면 평타 이상은 친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같은 다소 고루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죠. 그런데 요즘 세대는 정말 똑똑한데, 오히려 끈기나 집념은 부족한 것 같아요.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생긴 문제라고 봅니다. 한 가지 일에 전념하기엔 즐길 수 있는 게 너무 많고,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사라진 시대인 거죠.


저는 그런 절박함이 인간이 가진 큰 저력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목표에 몰입해서 이뤄내는 과정이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들고, 나를 성장시킨다고 믿습니다.


물론 요즘은 말만 해도 텍스트가 기록되고, AI가 많은 걸 대신해주는 시대예요. 그래도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뭔가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지금 세대는 집중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 모두가 그런 부분에서 조금 더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이 지금 많이 어렵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어요. 저 역시 경제와 투자 분야에 10년 넘게 관심을 가져온 사람으로서, 저희 나라가 대내외적으로 참 어려운 시기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를 정말 사랑하기에 잘이겨내길 바래요.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조금은 공동체 의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정치나 사회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이건 답이 없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간다면 사회는 분명히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말에도 동의합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게 결국 나라 전체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경제, 투자, 코인에 빠졌던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결국 중요한 건 ‘현생’을 잘 살아가는 거예요. 지금 내가 가진 역량으로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저도 어떻게 보면 인류애가 많이 떨어져있는 사람이지만, 어디서 들으니까 결국 사람은 공동체 의식을 통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 내가 하는 일이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나도 행복해지고 사회도 조금씩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비관적인 시선만 가지면 끝도 없이 어두워질 수 있지만, 인류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전쟁 중에도, 기근과 전염병에서도 살아남았고, 지금보다 훨씬 힘든 시대도 견뎌왔어요. 그런 시대를 버텨내게 해준 그 고루한 가치들을, 지금 다시 한번 꺼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8. 마침


• 혹시 오늘 인터뷰 소감 여쭤봐도 될까요?

정말 편안한 인터뷰였고, 커피도 맛있었습니다. 머릿속으로만 맴돌던 생각들을 이렇게 말로 꺼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좋았고요. 제가 안타까워하던 가치들이 사라지는 것을 함께 안타까워해 주는 분을 만나서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아주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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