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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실 Jul 22. 2024

[ 오늘은, 여기 ] 1. 동양화가, 청운

내일을 그리며 오늘을 달리는

첫 번째 인터뷰이는 인터뷰어 김비실의 문화생활 메이트입니다.

그동안 꽤 많은 문화생활을 함께해온 친구의 오늘을 소개합니다.


목차

1. 인물소개

2. 오늘 여기의 나 - 지금 하고 있는 일

3. 생계 - 장애인 활동지원사

4. 미래 - 부동산전문가

5. 정체성 - 나에게 예술이란

6.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7. 삶에 대한 평가 – 나, 그리고 타인

8. 기타 질문 - 결혼, 워킹홀리데이

9.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 자기PR

10. 마침

이름 : 청운

나이 : 만 31세

성별 : 남성 - 아주 확고한 남성

학력 : 고졸

경제력 : 월 평균 100만원 정도.

부모님 집에 머물고 있어 월세가 따로 나가지 않는다.


1. 인물소개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름, 나이, 성별(성 정체성)

 안녕하세요. 청운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만 31세이고, 아주 확고한 남성입니다.


• 학력이 고졸이신데, 많은 사람들이 대학을 가는 게 자연스러웠던 시기에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나요?

 진짜로 가고 싶은 과가 없었습니다. 어디를 가도 후회할 것 같았거든요.

 재수를 한 번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그 돈으로 호주 워킹 홀리데이 갔다 왔습니다.

 



2. 오늘 여기의 나


•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이런저런 게 많기는 한데……. 저는 지금 동양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이런저런 게 많다면 동양화 외에 하고 계시는 일들은 어떤 게 있나요? 경제적인 활동이나 직업적인 게 아니라도 지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 일상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있다면.

 생계를 위해서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라는 걸 하고 있고, 미래를 위해서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정리하자면 지금 동양화가이자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활동하면서 미래의 경제활동을 위해 공인중개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은 경우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비슷비슷하게 살다가 대학생 이후 삶의 형태들이 나누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으셨으니 20살부터 31살에 이르기까지 약 10년이 넘게 어떤 시간들을 보내 지금 여기에 이르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제 지나온 시간들은 주어진 기회의 연속된 삶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길이나 의미나 내가 이리로 가야지 하는 구체적인 계획이나 생각보다는 ‘지금부터 뭘 해야겠지?’, ‘아, 손에 잡힌 게 이거구나!’ 이런 식으로요.


 지금 내 손에 잡히는 것들 중에 이게 제일 좋고 이게 제일 오래 할 것 같고 이게 지금 비전이 있다 생각한 것들을 선택하면서 살아오다가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 지금까지 해온 선택의 예를 들어주신다면?

 예를 들어 동양화 같은 경우, 제가 원래도 그림을 그리기는 했었어요. 입시미술도 조금 했었고, 성당에서 교회 미술을 해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로 서양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서양화를 오래 그리기도 했고요. 그러다 우연찮게 직장 상사가 자기가 취미로 동양화를 하는데 너도 같이 다녀보겠냐고 했어요.


 저는 이렇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보통 무조건 한다고 하는 편이에요. 기회가 된다면 ‘뭐해볼래?’ 그러면 나는 고민도 없이 바로 ‘네가 하자면 무조건 좋아!’ 이런 스타일이이거든요.


 계속 ‘이거 해볼래? 저거 해볼래?’ 이런 제안을 받을 때마다 거의 놓치지 않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결국 동양화를 제안해 주셨던 분은 동양화를 그만두었고, 저는 데뷔를 했거든요. 정확히는 작년에 작가 자격을 얻었죠. 작가(진)입니다. [웃음]




3. 생계 – 장애인 활동지원사


• 생계유지를 위해서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을 하고 있고, 작년에 막 작가가 되었다고 하신다면 동양화로는 경제활동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사실 제가 동양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아마추어로 시작해서 이제 막 등단을 한 거라. 그리고 이게 돈 벌기 힘들어요.

저희 동양화 선생님도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너 이거 본업 할 거 아니지? 직장 다니면서 남는 시간에 그림 내고 그래야지 본업 하면 안 된다.’ 이러셨어요.


 작가가 되면 전시회를 할 건데 그림 좀 내달라는 연락이 오기도 하고, 작품이 팔리면 돈이 꽤 되기는 해요. 이번에 전시회를 했는데 여사님 한 분이 낸 두 작품 중에 한 작품이 팔렸더라고요. 40만 원에.


 근데 한 달에 한 작품 팔려도 잘 팔리는 수준인데다, 뭐 한 번에 500만 원짜리를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니까요. 사실상 이걸로 돈을 벌기는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죠.


 제가 이전 직장도 돈을 못 버는 직업이었거든요.



• 이전에는 뭘 하셨나요?

 원래는 극단에서 배우를 했습니다.

 배우는 군대 전역하고 1년 정도 후에 24살 무렵부터 하기 시작했어요. 사실상 첫 직업이 극단이었죠.


 (어쩌다 그만두게 되셨나요?)


 코로나 때 저희가 버티다 버티다 결국 각자 흩어지기로 했어요.


 (정말로 어떻게 보면 소위 돈 안되는 일만 한 셈이네요.)


 네. 예술만 했어요.


• 동양화로는 돈을 벌 수 없다고 하셨고, 생계유지를 하고 있는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얼마나 하셨고 어쩌다 하게 되셨나요?

 자격증은 25살에 땄어요.


 이것도 제가 주어진 기회들 중에 하나였다고 생각해요. 사실 제 동생이 일급 중증 장애인이어서 어릴 때부터 장애인 친구들이 많았어요. 돌보는 일도 늘 하던 일이었고요. 지금 제가 활동지원사로 담당하는 친구가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 친구예요.


 제가 알바를 찾고 있던 때에 저희 어머니가 저에게 “너한테 이거는 쉽지 않겠니?” 하시면서 자격증을 따라고 제안하셨어요.


 사실 장애인활동지원사가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에요. 신변처리도 해야 하고, 목욕도 시켜줘야 하고, 아무래도 육체적으로 고되고 비위도 좋아야 하거든요. 중증 장애인의 경우 아예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에 밥 같은 것도 떠먹여줘야 하고, 재활치료도 옆에서 도와줘야 하고, 보조기를 착용하는 것도 주의해야 해요. 잘못 끼웠다가는 관절이 꺾이거나 이런 사고가 발생할 수가 있거든요. 의료지식이 요만큼은[강조] 있어야 해요. 그러다 보니까 이게 어려운 일이기는 한데, 사실 저는 동생을 한평생 돌봐왔으니까요.


• 객관적으로는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던 거네요.

 네. 너무 쉽죠. 저한테는 너무 쉬워서 이 돈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예요.


• 앞으로도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 할 생각이 있으신가요?

 아뇨. 저는 이걸 알바로 생각하고 있어요. 어렵지 않게 할 수 있고, 시간이 잘 맞으면서, 적당한 돈도 벌 수 있으니까 하는 일이에요. 제 정체성보다는 제게 주어진 환경에서 제일 맞는 일이었던 거니까요. 아마 어느 정도 경제력이 갖춰지면 안 할 것 같습니다.

 



4. 미래 – 부동산전문가


•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왜 하필 공인중개사였나요?

 코로나 때 극단이 없어지고 이제 뭘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사실 모두 배우고, 법인이 아예 해체된 것도 아니고, 그래서 다 같이 유튜브를 해야 하나 이러고 있었을 때 또 어머니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는 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공인중개사 이야기는 예전부터 어머니가 하셨어요. 자격증 따라고. 제가 따서 공인중개사를 열고 온 가족이 다 같이 일을 하자는 거였죠. 어머니가 이쪽 공부를 하시기도 하셨고 일하셨던 경력도 있으신데다 운전은 아버지가 다 하실 줄 아니까요. 동생도 중증 장애가 있긴 한데 앉아서 컴퓨터로 하는 작업은 다 할 수 있거든요. 일종의 가족사업처럼요. 약간 노후대비 같은 거랄까요?


• 공부는 잘되고 있나요?

 공부는 작년에 시작해서, 작년에는 떨어졌어요.

 올해 다시 하고 있는데, 재미있어요. 저도 놀란 게 저의 중심에는 법이나 논리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명료한 명제 같은 거, 참인 명제들. 시비를 가린다든지 하는 거요.


•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나의 꿈, 삶의 형태 등

 제가 공부를 해보니까 부동산과 부동산 법이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고 행정사 자격증 두 개랑 감정평가사라는 것까지 공부해 보고 싶어요. 최종적으로는 부동산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5. 정체성 – 나에게 예술이란


• 이야기를 나눠보니 예술을 매력적이라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림이며 연극이며.

 이게, 음. 예술이 제 정체성의 일부라고 할 수 있어요.

 나의 핵심이 예술인 건 아니지만, 저를 둘러싸고 있는 겉의 많은 부분이 예술이에요. 이건 부모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저희 아버지가 극단에서 공연을 하셨고, 어머니는 소품을 만드셨거든요.


 부모님 두 분이 그렇게 만나셨군요?

 이게 또 로맨틱한 게, 사실 두 분이 만나기는 저기 용인에 있는 민속촌에서였어요. 아버지는 나무꾼이었고, 어머니는 전 부치는 아낙네였고.


 두 분 다 그렇게 예술을 좋아하셨지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예술을 하실 수 없으셨어요. 부모님 세대에 당시 막내딸 같은 경우 진학을 잘 안 시키다 보니 어머니는 대학에 갈 수 없었고, 아버지도 위에 큰아버지와 고모가 공부를 잘하셔서 네가 일해서 형 누나 뒷바라지해라, 이렇게 됐던 거죠.


 이제 부모님들이 자식들에게 많이 투영을 하잖아요. 어머니는 당신이 하지 못하셨던 것들을 아들만큼은 할 수 있길 바랐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 마당놀이도 시키고, 사물놀이도 시키고, 연극 시키고, 피아노, 악기 같은 거 다 시키고.


 어릴 때부터 예술 활동을 하는 게 당연했어요.


• 어떻게 보면 예술이 본인의 선택이 아닐 수 있었겠네요.

 좋게 말하면 예술은 저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어머니가 여러 가지를 시키시기는 했지만 강요한 적은 한 번도 없으셨거든요. 늘 선택권을 주셨어요.


 피아노도 조금 배우다가 하기 싫다고 하면 그만 두라 하시고, 사물놀이하고 싶어요 하면 사물놀이하고. 사물놀이는 재미있어서 한 1년은 했거든요. 그리고 저 연극하고 싶어요, 하면 또 연극하고. 연극은 초등학교 때부터 3년 정도 한 것 같아요. 어린이 극단에서. 고등학생 때도 연극동아리였고요.


• 무대 활동에 관심이 늘 있으셨나 봐요.

 그랬던 것 같아요.


• 근데 이제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극단을 그만두고 다른 극단을 찾지 않고 동양화라는 길을 선택한 건.

 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거기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아요. 약간 재능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요.

 아, 나는 이 정도 했으면 인생에서 [연극 쪽으로는] 할 거 다 했다. 그때가 너무 치열했기 때문에 추억이 되기는 하지만 그립지는 않아요. 그때로 돌아가도 그 이상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동양화라는 새로운 길이 열렸을 때 더 주저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던 거 같아요.


• 그렇다면 내 삶을 경영할 수단으로서 부동산 전문가가 되고 싶고, 내가 포기할 수 없는 예술성을 동양화로 충족시키고 싶으신 거라 생각해도 될까요?

 아뇨. 저의 정체성과 생계, 모두 다 부동산에요.

 

 예술은 취미죠. 예술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본업에 가까운 좀 딥한 취미랄까요?


 동양화를 하게 되니까 옛날 고문서나 고문헌 같은 것도 많이 찾아보게 돼요. 제가 하는 장르가 문인화(文印畵)라는 장르인데 문인화가 글, 도장, 그림이 다 있는 걸 문인화라고 하거든요.


 옆에 쓰는 글이 시나, 천자문, 채근담이라든지, 그런 좋은 글귀들이 많아요. 그리고 그림도 매화는 우아한 선비의 품위, 대나무는 곧은 절개, 참새는 번창, 다산 같은 걸 의미해요. 때에 따른 그 의미들이 다 있거든요. 그런 걸 보면서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갖고 있었던 철학, 그림이 가지고 있는 맵시나 이런 게 정말 고급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대에 와서 그게 너무 많이 잊힌 것 같아요. 그 부분이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죠. 안중근 선생님이 한 얘기는 아니라고 하는데, 아무튼 왜 미래가 없냐면 잊어버린 그 역사를 또 반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한국인의 문화적인 정체성 중에 잃어버린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이런 걸 보면서 우리가 지금 잃어버리면 안 되는 걸 잃어버리고 있지 않나, 너무 안타깝다, 누군가가 저걸 이으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문득 ‘내가 이으면 되잖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청운님이 동양화를 하는 건 계속 이어나가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이어나가기 위한 목적인가요?)


네. 뭐랄까. 한국인으로서의 의무 같은 느낌? 저는 이 한반도라는 땅이 너무 좋거든요. 정부를 좋아하는 건 아니고요.[웃음]



 

6.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을까요?

 허송세월했던 20대 초중반의 시간들? 술도 많이 마셨고요.


 (20대에는 극단 생활을 치열하게 하셨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와중에도 허무하게 놓친 시간들이 많더라고요. 오전에 할 일 끝내고 오후에 연습 가기 전에 몇 시간 남아있으면 생산적인 활동을 하기보다는 그냥 핸드폰 붙잡고 늘어져서 유튜브나 보고. 오히려 공인중개사를 좀 일찍 시작하고, 동양화를 일찍 시작하고, 자투리 시간을 잘 쓸 걸 하는 후회가 있어요.


 (진지하게 후회하기에는 너무 평범한 일 아닐까요?)


 아, 그런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순수하게 휴식과 즐거움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본인에게는 상당히 후회로 남는 것 같네요.)


 사실……. 허송세월이 이걸 생각하면서 한 말 같은데, 제가 코로나 시기에 술을 정말 많이 마셨어요. 알코올 사용 장애가 생길 정도로. 얼굴이 노랗게 뜨고 수전증이 올 정도로 마셨거든요.


 그때 정말로 술 먹고 자는 게 일상이었어요. 숙취가 있으면 아무런 의욕도 의지도 없잖아요. 그러면 이 숙취가 깰 때까지 10시간이고 12시간이고 유튜브를 보다가 친구 만나러 술 마시러 또 나가고. 새벽에 블랙아웃 어떻게 들어왔는지도 모르고. 일어나면 숙취에 또 시달리다가 또 술 마시러 나가고. 뭐 물론 코로나 초창기에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저도 그중에 하나였어서. 그 시간들이 최악이었고, 인생의 밑바닥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고 일찍 공부를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 반대로 내가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까요?

 공인중개사 시험 보기로 한 거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에 ADHD 진단을 받았어요. 최근에는 알코올도 못 끊고 있었고. 이 년 됐으니까.


 술도 못 끊었고, ADHD도 있고. 이것 때문에 대인기피나 여러 정신질환들이 있었어요. 그런 상태에서 공부를 한다는 게 사실 쉽지는 않아요.


 공인중개사 시험이 다른 자격시험과 비교했을 때 조금 쉬운 편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저한테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사실 10년 가까이 공부를 해본 적도 없으니 공부 습관도 없었고. 저는 대학을 위해서 입시를 하느니 자유를 위해서 떠나겠다, 이런 스타일이었으니까. 가만히 앉아서 그걸 한 문제만 가지고 골똘히 생각하고 이래본 적이 없었어요.


 근데 이제 와서 다시 공부를 하려고 하니까 도저히 안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30분도 못 앉아있었어요. 근데 열망이 컸어요. 타이머 달려있는 통 사서 핸드폰 처박아두고, TV는 전원이랑 리모컨 챙겨서 본가에 부모님한테 드리면서 이거 내가 본가가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겨 달라고 했어요. TV도 불통 만들어놓고 노트북도 어린아이들 유해 차단 걸어놓는 거, 결제는 제 돈으로 하고 아이디는 엄마 걸로 만들었어요.


(사실상 공부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환경을 만드셨구나. 이렇게 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나요?)


 일단 뭔가를 의미 없이 보고 낄낄거리고 그럴 게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누굴 만나지 않으면 혼자서 술을 못 먹겠더라고요. 적막강산에, 노래도 틀어 놓을 수가 없으니까 술맛이 안 나서 먹을 수가 없어요. 이게 술 마신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술을 마셔야지 먹고 취하는데, 집중할 게 없으니까 술에 집중하게 되거든요. 그럼 내가 이걸 왜 마시고 있지? 이렇게 되다 보니 안 마실 수 있겠더라고요.


(공부를 하면서 알코올 사용 장애도 많이 개선되었겠네요.)


 네.

 ADHD도 검사를 하면 남아는 있겠지만, 더 이상 제 인생에 방해가 안 된다고 느껴요. 보통 쇼츠한 번 보면 40~50분은 금방 갔는데 요새는 하루에 몇 시간씩 그렇게 안 봐 버릇 하니까, 이제는 미디어 이런 거에 그렇게 막 빠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공인중개사 공부를 통해서 부수적으로 제가 성장을 한 게 큰 것 같아요.




7. 삶에 대한 평가 – 나, 그리고 타인


• 지금의 상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만족하는지, 행복한지 등

 사실 만족한다거나 현재 상황에 감사한다거나 이런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결론이 난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지금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이니까 서둘러서 빨리 가야지. 이게 주된 생각인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의 선택에는 만족합니다.


• 동양화를 하고 공인중개사를 공부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 만족하신다는 건가요?

 네. 지금의 방향성에 대해 만족해요. 그리고 행복한 편인 것 같아요.


 사실 그림 그릴 때 서서 그리다 보니 무릎이 끊어질 것 같아요. 그리고 활동지원사 일을 할 때 제가 담당하는 친구가 뜨거운 물을 좋아해서 더운 날에도 반드시 뜨거운 물로 씻겨줘야 하거든요.[청운님은 더위를 무척 많이 탄다. 인터뷰 당시 4월 초였지만 반팔을 입고도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있었다.] 그리고 공부도 공시법, 공법 이런 게 나오면 어려워서 머리를 쥐어뜯게 되고. 그런데 이 와중에도 내가 원하는 거를 하고 있으니까 여러 가지 고통을 견딜 수 있을 만큼은 행복한 것 같아요.


 고통보다는 행복이 더 크다. 대체적으로 행복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을 이어나가기 위해 동양화를 계속하고, 부동산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 만 31세의 남자인 나, 청운이라는 사람을 볼 때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할 것 같나요? 

 제가 실제로 들은 걸로는 철딱서니가 없다, 사춘기다, 아직도 방황한다고. 그리고 이제 세상 물정을 모른다. 어리바리하다. 그런 말들이 있습니다.


 (그런 식의 무례한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건가요?)


 삼촌 이모… 어른들이라. 


 (가족들은 어쩔 수 없네요.)


 뭐 먹고 살 거냐가 제일 메인이죠.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부분일 것 같아요.)


• 나에게 그런 평가를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하고 싶은 말이 있기보다는 오히려 오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사실 잔소리를 들을 때 할 말이 없어요. 당장은 눈에 보이는 게 없고, 결과가 나온 게 없으니까요.


 너 그 그림 그려서 언제 장가가고 언제 애 낳을 거냐. 그러면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듣고 있고, 속으로 생각하죠. ‘언젠가 내가 성공하면……!’ 이런 거. 사실 가끔은 그 말[잔소리]에 설득되고는 해요. 너무 맞는 말 같아서.


 그럴 때 내가 이걸 왜 시작했는지 다시 생각하면서, 나는 내가 선택한 내 길을 가보자, 마음을 다잡는 거죠.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사람들과의 싸움보다는 내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이랄까요?

 



8. 기타 질문


• 잔소리에 장가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이야기인데요, 요즘 우리 세대가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고, 혹은 연애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세대잖아요.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살아가거나 그렇게 살기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청운 님은 어떠신가요?

 저는 반드시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싶습니다. 저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의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어머니 아버지가 워낙 사이가 좋고 가정이 화목하거든요. 그게 너무 멋지고 아름답고 그래서 당연히 저런 게 내 미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이야 혼자 사는 게 괜찮지 나중에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됐을 때 아내와 아이가 없으면 나는 뭐 하고 살지?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래에 느낄지도 모르는 외로움과 무상감을 벌써부터 느끼고 계신 건가요?)


 벌써부터 무서워요. 저는.


• 아까 대학 진학 대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셨다고 했는데 워킹홀리데이는 어땠나요?

 저한테 엄청나게 많은 경험을 안겨주었던 것 같아요.


 (워킹홀리데이에 관해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을 하나씩 꼽는다면?)


 좋은 경험은 그곳에 가려고 도전했던 것 그 자체예요. 그때도 대인기피증도 있고 ADHD도 있었는데, 거기를 가기 위해 비자를 받고, 무서워 죽겠는데 성공해 보고 싶고 나도 이겨내고 싶어서 엄청 떨면서 노력했거든요. 워킹홀리데이 6개월 중에 처음 인천공항에서 부모님이랑 인사하고 비행기 딱 탔을 때, 그 한 30분이 가장 무섭고 괴로웠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한계를 넘고 이겨냈던 거, 그게 가장 좋은 경험인 것 같아요.


 반대로 나빴던 건……. 제가 이렇게 도전을 해서 워킹홀리데이를 가긴 갔는데, 그 안에서도 도전할 만한 것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중에 몇 개는 제가 귀찮고 무섭다는 이유로 등을 돌렸어요.


 예를 들어 돈이 안 되지만 쉬운 일과 돈이 되고 경험이 되지만 어려운 일이 있었어요. 제가 당시에 언어가 안 됐거든요. 한인 사장님 밑에서는 편하게 일할 수 있지만 성장은 안 되죠. 돈을 더 많이 주는 외국인 사장님 밑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제가 언어가 안된다는 이유로 무서워서 지레 겁먹고 회피했던 적이 있어요.




9. 자기PR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어필하고 싶은 게 있나요? SNS 홍보나, 자기PR 등

 사실 SNS를 하지 않습니다.


 (할 계획도 없으신가요?)


 네. 전혀 없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가 과시욕이 좀 많아요. 한 번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나머지는 제가 좀… 디지털에 약해요. 기계를 잘 못 씁니다.


 (전혀 MZ 답지 않네요.)


 그리는 것도 동양화잖아요.[웃음]


 (그럼 홍보하거나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없으신가요?)


 저는 동양화, 그중에서도 제가 하고 있는 문인화라는 장르를 홍보하고 싶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정말로 전통을 잇고 싶어서거든요. 이게 없어지지 않고 쭉 이어지면 좋겠어요.


 (문인화에 관심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문인화를 접하기 제일 쉬운 곳이 박물관 일 거예요.


문인화의 예시 : 세한도 - 끝나지 않는 감동 [국립중앙박물관]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recommend/view?relicRecommendId=623104


 동양화[중에서도 문인화]는, 하 이런 말 하면 진짜 옛날 사람 같은데, 우리 겨레의 정체성이거든요.

어떤 작품이 있으면 그 작품이 갖고 있는 스토리가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이게 동양 철학이랑 연결이 되기 때문이에요.


 사실 동양화의 자유로움은 서양화보다 한참 떨어져요. 정해진 대로 그려야 해요. 틀에 박혀있다고 느낄 수도 있죠. 최근에는 동양화가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긴 하지만 전통적인 동양화의 경우 여전히 정해진 규칙대로 그려야 해요. 특히 제가 하는 문인화는 더 그렇죠. 그게 어떻게 보면 동양화의 한계이고, 현대 미술에서 동양화가 서양화보다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이 한계에서 매력을 느껴요.


 서양화 같은 경우에는 옛날에는 귀족과 왕족을 위해서 그림을 그렸고, 그리고 나중에는 산업화가 되면서 디자인이라든지 순수예술의 경향으로 갔어요. 반면에 동양화는 옛날 선비들이 정신 수양을 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어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문인화는 전문 문인화가가 있던 게 아니고 글씨를 잘 쓰는 어디 김첨지라든지 어디 댁 양반이라든지, 그런 사람들이 내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그린 거예요.


 만약에 내가 오늘 좀 불안한 것 같다 그러면 대나무를 그리면서, 이 대나무의 자연적인 특성, 예를 들어 곧게 자라는, 그런 것들을 생각을 하면서 명상하는 거죠. 그래서 사상과 이야기들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아마 그림에 무슨 상징이 있는지 이 그림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지, 그런 것에 좀 흥미를 갖고 보시다 보면 아마 소장하고 싶은 마음도 들 거예요.


 (그 이야기에서 매력을 느끼게 될 거란 말씀이시군요.)


 네. 예를 들어서 어른들에게 그림을 선물할 때는 국화랑 빨간 구기자를 같이 그려요. 그게 장수라는 의미가 있거든요. 실제로 국화랑 구기자를 같이 차를 우리면 몸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옛날 양반들끼리는 그림 선물을 많이 했대요. ‘너희 집 자식 장가갔다며. 잘 살아라!’ 이런 의미로 저기 참새 여러 마리가 지저귀고 있는 걸 그려서 보내주고, 그러면 또 답례로 나비가 그려져 있는 난초를 보내준다든지.


 난초의 경우에는 우아함과 고결함의 상징이거든요. 나비가 그려져 있다는 건 그 꽃에서 향기가 날 거야라는 의미를 내포하고요. 그러니 네가 하는 일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를 담는 거죠.


 우리는 그림으로 조롱하고 덕담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단적인 예로 당나라에서 선덕여왕한테 꽃 그림을 보낼 때 일부러 나비가 없는 그림을 그렸거든요. 너는 향기 없는 여자다, 이러면서.


 그러니 작품에 담긴 의미에 관심을 더 가지면, 분명 동양화도 더 재미있게 느껴질 거라 생각합니다.

 ▲ 청운 님의 작품이 출품된 전시회에서 청운 님과 그의 친구들




10. 마침

 이야기를 쭉 듣고 보니 청운 님은 자기 자신에게 매우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도, 혹은 좋고 나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심지어 자신을 향한 타인의 평가에 대해서도 남 탓하는 일 없이 내 밖에 있는 것들보다는 내 안의 갈등에 집중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사실 제가 항상 내면의 대화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그럼 동양화, 그 중에서도 문인화에 대한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바라고 있는 31세 확고한 남성 동양화가이자 장애인 활동지원사이며 공인중개사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청운 님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청운 님의 오늘과 꿈꾸는 미래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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