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절박해진
세 번째 인터뷰이는 인터뷰어 김비실의 절친한 친구로, 김비실의 인스타툰에 몇 번이나 등장한 적 있는 호랑이입니다.
목차
1. 인물소개
2. 오늘 여기의 나 - 지금 하고 있는 일
3. 세무사가 되고 싶어.
4. 음악, 미련 없는 꿈
5. 우울증, 이젠 그마저도 감사한
6. 돈, 내 삶의 결핍
7. 삶에 대한 평가 – 나, 그리고 타인
8.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9. 기타 질문 - 취미, 결혼, 출산
10.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 적재!
11. 마침
이름 : 호랑
나이 : 30세
학력 : 대졸, 경제학과
경제력 : 전혀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음. 모아둔 돈으로 입에 풀칠할 정도
저는 호랑이고요. 나이는 현재 30살입니다.
경제학과 학사로 졸업했습니다. 입학은 중어중문학과로 했지만, 본디 공작새 같은 사람이라 전공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경제학과 졸업했습니다.
경제력은 입에 풀칠할 정도?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일단 입에 풀칠할 정도로는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뎁쇼. 시작한 지는 이제 딱 3년, 딱 3년 채웠습니다.
세무사 시험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1차는 붙었고 2차를 [인터뷰 날짜 기준] 100일 안팎으로 남겨둔 상태입니다. 하루 종일 공부만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사실상 공부 외에는 하고 있는 일이 없다?)
전혀 없습니다. 진짜 전혀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8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를 하는 스케줄이기 때문에.
다이어트요. 제 인생에서 다이어트는 30년간 떼 놓으려야 떼놓을 수 없는 애증의 관계예요.
(어째서입니까?)
아, 일단 저는 태어나기를 우량아로 태어나서 소아 비만의 과정을 거쳐서 현재 비만인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이 세무사 공부 3년차의 과정을 견디면서 20kg 증량을 했단 말이죠.
(혹시 살이 찌면서 건강이 악화되진 않았나요?)
정말 신기하게도 몸이 더 건강해졌어요. 항상 달고 다니던 위장 장애가 다 사라졌고 스트레스에 예민했던 것도 되게 많이 줄었고. 그래서 과연 이게 나쁜 증량 인가 약간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름만 되면 찾아오는 땀과의 전쟁.
아, 저 이거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이 시험이 끝나는 대로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타인의 시선이나 세상이 나에게 제시하는 아름다움의 기준보다는 본인의 고통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는 거네요.)
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나쁘게 본다? 돈 내고 나쁘게 보라 이 말이에요. 돈 안 줄 거면 나쁘게 볼 가치도 없다고요! 이거 돈 들여서 비싸게 찌운 살인데 왜 그렇게 나쁘게 보냔 말이에요!
돈 많이 들였어요. 아침에 삼겹살 먹고 점심에 스팸 먹는 그런 기름지고 윤택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20kg 증량이 가능한 겁니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남들이 이거 쉽게 생각하지만, 좋아서 한 거지 쉬운 일은 아닙니다.[호랑님은 아주 진지했다.]
(그럼 지금은 다이어트 공부 때문에 바쁘실 텐데 다이어트를 좀 노력하기 어려우실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하는 노력은 일단 하루에 2,000 보는 걷자는 거예요. 내내 앉아서 공부만 하다 보니까 1,000 보도 걷지 않는 날이 있기 때문에 하루 2,000 보 걷기의 노력을 하자. 그리고 집안일을 많이 하려고 하고, 삼시 세끼 고기 먹는 건 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또 배달 안 시키기, 간식 끊기. 이 정도에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초반에는 ‘나 이거[세무사 공부] 왜 했지?’ 이런 회의감이 들 때도 좀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아. 내가 건강하게, 감사하게, 공부를 할 수 있는 상황이구나.’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가족들이 크게 비난하지 않고 친구들도 크게 뭐라 하지 않는, 야유하지 않는 마지노선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제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제 병원을 갔거든요. 거기서 보게 된 약물중독환자분을 통해서 ‘난 정말 감사한 상황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상대적으로 난 효녀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나는 지금 공부하면서 살이 20kg이나 쪘지만, 그래도 크게 뭐 당뇨나 이런 질병이 생긴 것도 아니고, 건강하게 공부에 전념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가진 행복한, 아주 감사한 상황이라고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 그 얘기는 좀 길어지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회계사나 세무사를 하라는 이야기를 엄청 많이 들어왔었어요.
제 당숙부님께서 크게 세무사 사무실을 운영을 하고 계셔서, 저한테 어차피 꿈이 없으면 공부도 곧잘 하니까 세무사 자격증을 따서 당숙부님 밑에서 일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 했던 거죠.
그런데 저는 그 당시에 음악에 미쳐있던 당시라.
내가 세무사? 아니 난 예술을 할 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러다 엉겁결에 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 미성년 시기에는 예술에, 특히 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대학 진학하기 전부터 회계사나 세무사 쪽으로 꿈을 펼쳐보라는 어른들의 조언이 있었던 거네요.)
그렇죠.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세무사로 꿈을 바꾼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렇게 엉겁결에 대학교를 진학을 하게 된 뒤에 여러 일들을 겪었어요. 특히 집안 환경이 크게 꺾이는 일도 있었고, 할머니께서 제가 이십 대 초반에 크게 아프시다가 돌아가셨어요.
근데 할머니 병원비가 진짜 말도 안 되게 드는 거예요. 중환자실에 계시니까 진짜 하루에 입원비만 몇 백 단위로 쭉쭉 올라가는데, 저희 집이 팔 남매다 보니까 나눠서 분담을 해서 그게 겨우 극복이 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아, 우리 엄마 아빠도 언젠가는 저렇게 갑자기 아프실 수 있는 건데 내가 돈을 못 벌고 경제력이 없으면 나는 진짜 이거는 큰 불효가 되겠다, 정말 허망하게 부모님을 보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경제력을 갖는 직업을 갖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말도 있고, 제가 그 당시에 경제학 전공 중이어서 자연스럽게 세무사를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 20대 초반에 그런 일들을 겪고, 중반까지는 그냥 취업할까 했어요. 공부 준비도 살짝 해봤다가, 아닌 것 같다, 발 뺐다가, 좀 방황하는 시기 들을 거쳤어요. 인턴도 해보고.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세무사를 해야겠다는 확신이 더 들어서 시작한 게 이제 20대 후반인 거죠.
서점에서 1년 정도 일한 적이 있고, 그 외에는 아르바이트랑 인턴 경험 한 번. 이런 경험밖에 없습니다.
아뇨. 구직 활동은 했었죠. 하지만 실패했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돌아 세무사를 시작했죠.
(구직활동을 했었지만 실패하고 역시 나는 세무사가 맞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한 걸까요?)
솔직히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어쭙잖은 기업을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전문직 공부하는 게 낫지 않나. 어차피 나는 숙부님도 계시니까 여차하면 빌어먹자는 마음도 좀 있었죠.
(약간 뒷배가 있었네요!)
그런 걸까요? 엄밀히 말하면 세무사 공부하는 사람들은 ‘아세’ ‘엄세’라고, 뒷배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소위 아빠가 세무사 엄마가 세무사라는 건데요. 그건 정말 최고의 뒷배거든요.
세무사 같은 직업군은 사실 상속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자식이 세무사 자격증을 따게 만들어서, 자신의 기장처와 거래처를 그대로 물려주는 거예요.
(아무래도 고객을 유치하고 유지하는 게 어려우니까요.)
네. 그걸 그대로 받으니까 아세 엄세들은 사실 최고의 뒷배를 가진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저는 숙부님이 세무사업을 하고 계시니까, 혹시 나중에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던 거구요.
(그러니까 나 정도의 스펙으로 어쭙잖은 중소기업 들어가서 개고생하면서 사느니, 공부 열심히 해서 자격증 따서 전문직으로 살자는 계획이었군요.)
네. 그게 이렇게 길어질진 몰랐는데…….[웃음]
공부는 즐거워요. 근데 시험이라는 제도가 즐겁지 않게 만들어요.
(압박감 때문에?)
네. 어쨌든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이고, 이 시험이 어그러지면 또 1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저를 힘들게 하거든요. 그렇지만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나 그런 공부량은 충분히 소화 가능한 정도라서 괜찮습니다.
네. 근데 수습을 6개월 정도 하고, 세무사회에 300만 원을 내고 등록을 해야 해요. 그러면 이제 세무사 자격증이 나와서 바로 개업이 가능한 세무사가 됩니다.
(등록비가 좀 비싸네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데 세무사회로부터 매년 개정되는 세법 책들도 지원받는 게 있어서 따지고 보면 그리 비싼 건 아니에요.
일단 세무사가 되면…… 남들은 뭐 개업을 해서 돈을 왕창 벌겠다, 이런 게 있지만 저는 달라요.
일단 확실히 개업은 할 건데, 개업을 해서 제가 딱 원하는 양 정도, 입에 풀칠할 정도 일만 하면서 취미 생활을 할 예정이에요.
세무사라는 직업 자체가 일을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는 구조예요. 그래서 내가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면, 뭐 양도세나 상속 증여세 같은 손님들 영업을 많이 뛰어서 바짝 벌 수도 있고 아니면은 꾸준히 기장 같은 업무를 받아서 기반을 닦으면서 운영을 할 수도 있어요.
저는 자유롭고 싶은 마음이 좀 더 크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회계사가 아니라 세무사가 되기로 선택한 것도 있거든요.
(회계사랑 많이 일하는 방식이 많이 다른가 봐요.)
네. 회계사는 업무 형태가 좀 더 직장인에 가깝다고 보시면 되고, 세무사는 자영업자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세무사를 택한 거라 제가 원하는 정도의 양을 조절하면서 일을 하고 싶어요.
하지만 만약에, 진짜, 아주, 찰나의 신의 장난에 넘어가버려서 떨어진다면, 하…….
저는 뜨개방을 운영하고 싶어요. 제가 뜨개질을 재능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뜨개방 운영하고 싶은데, 그럼에도 저는 공부를 또 할 것 같기는 해요.
(공부라면 어떤 공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세무사 공부를 다시 한번 더 도전하지 않을까 싶어요.
현재 모의고사 성적도 좋게 나오고 있고, 만약에 떨어진다면 정말 한 끗 차이로 떨어질 것이 분명할 거기 때문에. 그러면 또 1년을 더 하지 않을까?
그런데 경제 활동은 할 것 같아요.
(근데 일과 공부를 같이 하는 건 힘들지 않나요?)
그래도 일단 해 놓은 기반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또 아무것도 없이 다시 공부하면서 세무사를 준비하기에는 제가 멘탈이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쉬움은 있어요. 한 5% 그 정도의 아쉬움은 있는데, 그거는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남은 아쉬움이지 그 직업을 택하지 않아서의 아쉬움이 아니에요.
저는 제가 음악을 잘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어렸을 때요?)
네. 근데 막상 유튜브도 해보고 나니까 제가 생각했던 저의 실력이 그 정도는 아니었던 거예요. 그냥 잘하는 취미 정도였던 거지.
‘이 정도에 불과한 나’를 인정하는 과정이 이십 대 초반이었던 것 같아요.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평범한 사람이야.’라는 거를 인정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후회가 남지는 않고요, 그 과정과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오히려 행복하게 음악을 즐길 수 있어서 지금은 더 좋은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럼 지금 음악은 포기하지 못한 직업적인 목표라기보다는 내 삶을 좀 더 윤택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취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될까요?)
네. 맞습니다.
정신과 치료는 공부 때문에 받기 시작한 건 아니에요. 가정 상황상 경제적으로 좀 힘든 일이 있어서 우울증이 생겨서 치료를 받기 시작하게 된 거긴 한데, 이게 의외로 공부에는 도움이 되게 되고 있어요.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게 도움이 된 거예요, 아니면 병 자체가 도움이 된 거예요?)
병 자체가 도움이 되지는 않죠.
하지만 어차피 공부를 오래 하는 고시생들은 기본적으로 많이들 우울증에 빠져요. 이제 그때 돼서 병원에 가서 약물 조절을 하고 하려고 하면은 솔직히 공부랑 병행하기가 조금 힘들어요. 근데 저는 애당초 병이 있었고, 이미 약물 치료를 받아 오고 있었고, 저랑 맞는 약물도 다 이미 찾고 자리를 잡은 상태였거든요.
공부를 하면서 ‘어라? 요즘 좀 불안한데.’ 싶으면 그냥 고민 없이 의사 선생님이 불안 관련 약을 살짝 더 주시고, ‘어? 요즘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잠이 안 오는데?’ 싶으면 잠을 때려잡는 약을 살짝 더 주시고 해서 진짜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게 의사 선생님이 세팅을 해주는 느낌? 그게 되고 있어서 저는 오히려 이 정신병도 나한테는 감사한 일이다.
(오히려 이제 잘 관리가 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감사하다.)
네, 그렇죠.
예전에 어디서 본 말인데, 사람이 보통 어떤 갈림길에서 선택을 할 때 자신이 결핍이 있는 부분 때문에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대요. 뭐,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애정이 결핍인 상태면 이 애정을 채우려고 선택을 하는 거죠. 모든 면에 있어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제 인생의 결핍은 돈이었기 때문에 제 모든 선택이다 돈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직업선택도 그렇고, 전 남친과의 헤어짐도 돈 문제였고.
만일 누가 나한테 뭐라 하면 ‘저 사람은 나를 왜 싫어하지?’ 이게 아니라 ‘돈도 안 되는 나쁜 말을 하네? 돈 주고 하세요!’ 그런 것들이다 돈으로 귀결이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돈이 떨어지면 예민도가 엄청 높아져요.
(어릴 적부터 경제적인 문제에서 결핍이 있어서 돈에 대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구나. 하지만 세무사가 된다면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죠.)
그렇죠. 왜냐하면 저는 부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저는 돈 때문에 하고 싶었던 선택을 못한 경우가 너무 많아서, 돈 때문에 그렇게 가로막히지 않을 정도면 족한다고 생각해요.
어릴 적에 미술대회 나가서 상 받고 그러다 보니 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포기를 했고요. 좀 더 자라서 영재과학원에 다니면서 과학고를 다니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돈 때문에 포기를 했어야 됐고. 고등학생 때부터 음악을 더 하고 싶었는데 돈 때문에 포기를 했어야 됐어요. 대학생 때도 대학원을 가고 싶었는데 돈 때문에 포기를 하고 했기 때문에 세무사가 되면 부자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돈 때문에 선택하지 못하는 일은 없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아, 그렇죠. 약간 사회의 암적인 존재다. 그렇게 볼 거 같아요.
미디어에서 가끔씩 그런 식으로 표현할 때가 있긴 있어요. 청년인데 돈을 벌지 않는 청년. 돈벌이는 하지 않으면서 부모님 품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
하지만 그러면 뭐 어떱니까! 살아 있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요?
그리고 솔직히 3년이나 했지만, 1년 차 때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어요. 자랑은 아니지만, 그땐 사실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뭔지 알아요.
도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 근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나 공시생이야 고시생이야라는 타이틀을 붙여 놓고 노는 거죠.
그들의 마음이 뭔지 잘 알기 때문에, 그들도 얼른 빨리 저처럼 정신 차리고 공부에 전념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조금 사회의 암적인 존재처럼 비칠 수 있지만 나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너희들도 빨리 세상으로 나와라!
걱정하실 거면 돈 주고 걱정하세요. 제가 그 걱정 들어드릴 수 있으니까. 페이 먼저 선지급 해주세요. 선지급해 주시면 제가 진짜 열심히 경청할게요! [웃음]
좀 대견한 것 같아요.[호랑 님의 얼굴 표정까지 스스로를 대견하게 느끼는 것이 확연히 보였다.] 정말 대견하고 갸륵하달까?
아니, 솔직히 저는 좀 성장 과정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거든요. 빚쟁이들한테 쫓기면서 살았고. 그랬는데 솔직히 크게 엇나가지도 않았고.
이 암적인 손길들이 많이 다가오면서 엇나갈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도 엇나가지 않고, 어쨌든 난 나만의 주관과 신념을 지키면서 정말 평범한 청년으로 성장을 했단 말이에요. 저는 이것 자체가 일단 제 자신에 대해 가장 대견해요.
그리고 그 힘든 와중에서도 어쨌든 우울증이라는 과정을 이겨내려고 계속해서 발버둥 치는 제 자신이 너무 대견하고 갸륵한 거죠.
저는 항상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노후가 있는데요. 할리 바이크를 타고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 단발머리를 날리면서 운전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항상 그려왔는데 말이죠.
현실적으로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할리가 남자 혼자도 들기 힘들 정도의 엄청 무거운 오토바이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깨닫고 나서 아 나이 들어서는 진짜 어렸을 때 보던 쿠키 jar에 쿠키 담아놓고 벽난로 앞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늙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공부하는 대로 세무사가 되면 그 정도 노후를 꾸리기에는 전혀 부담이 없을 것 같고요.
네 저는 그냥 딱 그 정도로만 살고 싶어요. 엄청 큰 부자가 돼서 세계 여행을 하겠다. 이런 것도 없고 막 건물주가 되겠다. 이런 것도 없고. 저는 딱 그 정도.
가장 후회하는 일, 후회라…….
포기를 하는 일들이 많아서 후회가 많았는데 돌이켜보니까 그 선택들이다 저를 만든 발판이 됐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후회가 아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건 우울증 치료 과정 중에서 변한 부분인데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제가 돈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 후회하면서 안고 살았는데, 그런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에 저는 지금 더 세무사에 집중해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지나온 시간들이 모두 저한테는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런 부분에서는 이제 후회하지 않아요.
아, 후회하는 게 하나 있어요.
20대 초반에 집안이 갑자기 경제적으로 힘들어졌을 때 저희 언니가 특히 제일 힘들었는데. 저희 언니한테 협박을 하던 사채업자 한 놈이 있었어요. 남자였는데, 그 새끼 한 번을 골탕을 진탕 먹였어야 했다. 그게 가장 후회가 됩니다.
왜냐하면 언니가 아직까지도 그 트라우마로 덩치 크고 파우치 끼고 반팔 쫄티에…… 그 느낌 아시죠? 그런 사람들을 보면 PTSD가 좀 크거든요.
내가 그때 만약에 언니를 조금이라도 더 도와줬다면 언니가 그런 트라우마를 가지진 않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후회는 남아 있습니다.
그 외에는 크게 후회가 없습니다.
대학교 진학한 거요.
원래는 대학교를 오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근데 진짜 대학이 갑자기 붙었거든요. 진짜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고 적성 시험을 보러 갔어요. 심지어 시험 준비하는 책도 한번 풀지도 않고 가서 문제를 풀었는데도 그냥 붙었어요. 그래서 아까 엉겁결에 대학에 갔다고 한 거거든요.
근데 저희 할머니가, 저희 집이 워낙 모태 신앙 가톨릭 홀리한 집안이기 때문에, 가톨릭 종교 계열 대학교에 붙었다는 거에 너무너무너무 기뻐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 뭐, 가보자! 해서 갔는데 얼마 안 있어서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거든요. 그래도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큰 기쁨 하나는 남겨 드린 것 같아서. 그거는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효녀시네요.)
네. 저는 효녀입니다.[당당]
이렇게 하나하나가 켜켜이 쌓여서 완성이 됐을 때 짜잔 하고 뭐가 나오는 것들을 좋아해요. 레고, 뜨개질, 이런 것들이요.
게임을 하더라도 한판으로는 끝나는 그런 게임들은 별로 안 좋아하고 RPG 게임 같은 걸 좋아합니다. 내가 노력과 성을 들여서 짜잔 최대한 결과물이 나오는 것, 타이쿤, 게임 이런 것들을 되게 좋아하는 편이고. 그래서 그 예시 중의 하나가 뜨개질이 아닐까 싶어요. 제일 좀 자유롭다고 해야 되나? 표현하는 방식이.
(물론 지금은 당장은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취미를 많이 못 즐기겠지만, 가장 많이 즐기는 취미가, 그 노래 부르기와 뜨개질일까요?)
네. 노래는 대학교 후배들하고 밴드 바다거북이라는 밴드라는 걸 하면서 거의 격월로 겨우겨우겨우 모여서 합주를 하고 있어요.
뜨개질은 사실 지금 실만 저기 모아가고 있는 상태고요. 왜냐하면 뜨개질이 생각보다 시간을 엄청 잡아먹는 작업이라 저쪽 구석에 숨겨놨어요. 제가 좀 충동적인 성향이라 공부해야 하는데 뜨개질 할까 봐요.
(충동적인 성향인데 3년 동안 세무사 공부를 잘하고 계시네요?)
그러니까 제 자신이 대견하고 갸륵한 거죠. 변덕과 충동 성향이 강한데 그럼에도 하고 있으니까요. [호랑 님이 다시 한번 스스로를 대견해했다.]
Maybe?[진짜 이렇게 대답했다.]
근데 저는 아이를 낳고 싶어요. 출산을 반드시 하고 싶습니다.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있잖아요. 미혼모라든지, 아니면 요즘에 뭐 사유리 씨처럼 기증을 받아서 하는 경우도 있고. 저는 다 괜찮거든요.
근데 저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 중의 하나인 저희 가족이, ‘제발 애 아빠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기 때문에.
그래, 뭐 내가 지금 엄청 애 아빠가 갖기 싫은 것도 아니니까, 아기한테 아빠라는 선택권을 주는 거 나쁘지 않겠다. 그런 마인드로 결혼을 이왕이면 하는 쪽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기는 사랑이니까요. 아기는 사랑입니다. 정말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어쩜 그런 존재가 다 있죠?
(호, 호랑님도 그런 존재에서 자라났잖아요?)[호랑 님의 얼굴이 너무 심각해져서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제 자신이 대견하다니까요.
(아이를 키우는 데는 돈도 들고 뭔가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어려움이 많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막막함이나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일단 제가 세무사가 된다면 경제적인 면에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될 것 같고. 그 외에는 주변 여러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건데. 저는 이 부분에 있어서 자신이 있습니다.
저는 아기를 혼자 낳는다고 하더라도 크게 걱정이 없어요. 저는 정말 가족들의 지지를 받을 것을 확신하거든요. 그만큼 제 가족들을 믿는다고나 할까요? 저는 외롭지 않게 아기를 키워줄 자신이 있고, 저는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자신 있습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해 ‘이러이러해서 아이를 안 낳는다’라는 근거들이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중에 하나가 경제력도 있고, 진짜 이 가부장적인 사회구조를 타파하고 싶다, 이런 것도 있고.
또 인터넷에서 남녀 갈등식으로 ‘퐁퐁남 대 식모’같은 것도 있던데, 저는 이 모든 게 다 돈에서 파생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퐁퐁남이란 게 뭡니까? 애 하나 키우고 건사하기도 힘든데 여자가 자기가 번 돈으로 취미생활도 다 하고 그런 거 못마땅한 거잖아요. 하지만 진짜 만수르라면 그런 걱정을 할까요?
반대로 식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가 경제적으로 커리어적으로 쌓았던 걸 다 무너뜨리고 난 식모처럼 사는 게 싫다, 이런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것도 만약에 진짜 만수르만큼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런 커리어적인 게 문제가 됐을까요?
저는 항상 생각합니다. 돈이 모든 걸 해결해 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이 세상 문제의 99%는 돈이 해결해 줄 수 있어요!
음, 딱히 없는데.
(나의 최애를 홍보해도 좋습니다.)
최애를 홍보할 수 있다면 적재! 적재 홍보하고 떠나고 싶습니다.
(적재를 좋아하시나 봐요)
네! 적재! 적재는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과 뮤지션의 모습을 그냥 그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이상의 결정체로군요?)
내가 진짜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으면 저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모습 그대로의 이상향이라서요. 정말 좋아합니다.
적재의 ‘나란 놈’이라는 곡도 추천하고 하고 싶습니다.
(이 노래를 추천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적재한테 빠져든 곡이에요.
그 나란 놈 가사 초반에 ‘난 약해 빠지고 능력 없고 모자란 놈’ 이러다가 ‘그럼에도 나는 참 끈질긴 놈 나는 참 끈질긴 놈’ 이러면서 노래가 끝이 나요.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그 가사가 저한테 와닿은 거예요.
맞아 나는 진짜 공부도 그리 잘하지 못하고, 외모도 그리 빼어나지 못하고, 돈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고, 인품이 뛰어나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하고 있는 참 끈질긴 놈이라는, 이런 게 너무 와닿았어요.
적재가 이렇게 멋진 노래와 가사를 쓸 수 있는 멋진 뮤지션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적재는 이렇게 멋진 뮤지션이니 세상 모두가 알아줘야 한다?)
네. 그는 더 슈퍼스타가 돼야 한다. 더 대단해져야 한다!
8월 10일 토요일입니다.
(시험을 보고 대충 합격 여부를 알 수 있나요?)
네. 시험지를 가지고 나올 수 있고, 강사님들이 모범 답안을 2주 안에 영상으로 올리기 때문에 대충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대충 합격 여부가 나올 때 되면 다시 한번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대견하고 갸륵한 호랑 님의 합격을 기원하며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저는 이 정도로 제가 돈미새일 줄 몰랐어요. 좀 스스로를 알아가는 계기가 됐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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