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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비실 Jul 23. 2024

[ 오늘은, 여기 ] 2. 대기업 대리, 김대리

명찰 뒤에 사람있어요!

두 번째 인터뷰이는 요즘 보기 드물게 한 직장에서 5+a 년을 근무하고 있는 방 탈출 마니아 김대리 님입니다.

인터뷰 당일 함께한 방탈출!

목차

1. 인물소개

2. 오늘 여기의 나 - 지금 하고 있는 일

3. 대기업 대리의 삶

4. 한때의 열정, 물리학

5. 내 삶의 핵심 요소, 취미 - 방탈출

6.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7. 삶에 대한 평가 – 나, 그리고 타인

8. 기타 질문 - 결혼, 가장 좋았던 시절과 그렇지 않은 시절

9.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 자기PR

10. 마침

김대리 님이 직접 그린 김대리 캐릭터

이름 : 김대리

나이 : 30대 초반

성별 : 여성

학력 : 대졸(학사) - 물리학과

경제력 : 하고 싶은 건 다 할 수 있고 웬만하면 딱히 아쉬운 거 없는 정도




1. 인물 소개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름, 나이, 성별(성 정체성)

 안녕하세요. 김대리입니다. 30대 여성입니다. 학교는 대학교 학사까지 졸업했고, 전공은 물리학입니다.


• 대학에서는 물리학만 전공하셨나요? 복수 전공이나 부전공 없이?

 네. 복수 전공 안 하고 물리에만 올인했습니다. 물리 외길 인생이었죠.




2. 오늘 여기의 나


•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현재 회사를 다니고 있고, 직급은 대리입니다.

 회사는 대기업이고, 한 직장에서 5년 이상 좀 길게 근무하고 있습니다.


• 특별히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나 원하는 기업이 있는 게 아니라면 보통 직장 생활은 ‘하고 싶어서’보다는 ‘돈을 벌기 위해서’하는 경우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혹시 본인이 이 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살아갈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시절 꿈꾸던 삶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사실 저는 명확하게 꿈꾸는 삶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대학교 저학년 때는 별생각 없이 놀았어요. 공부하고, 친구들이랑 놀고 그렇게 살다가 한 3학년쯤 돼서 휴학을 잠깐 했습니다.


 (휴학한 이유가 있을까요?)


 그냥 놀려고 휴학을 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대체 내가 이때 아니면 원 없이 놀아볼 수 있는 때가 언제 오겠냐. 작정하고 방탕하게 놀아보 자! 해서 저는 휴학을 하고 정말로 공부 이런 거 하나도 안 하고 방탕하게 하루에 열몇 시간씩 게임만 하고 살았어요.

 그렇게 살았는데 후회는 안 해요, 전혀. 오히려 잘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결론적으로 제 생각이 맞았거든요.[웃음]


 (졸업 후 바로 취직해서 5년 이상 같은 회사에서 계속 일하고 계시고, 또 앞으로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하니 정말 그때 아니면 놀 시간이 없었겠네요.)


 네. 사실 휴학했을 때까지도 사실 별생각이 없었다가 4학년 돼서 슬슬 ‘나 이제 졸업하고 뭐 하지?’라는 생각을 했고, 취업을 하게 됐습니다.


•  그렇다면 직장을 제외하고 현재 내 일상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을까요? 취미나 공부같이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저는 취미로 방 탈출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방탈출을 아실지 모르겠는데……. 설명하자면 어떤 제한된 공간에 갇혀서 문제를 풀고 미션을 수행해서 그 공간을 탈출하는 게임입니다.  방탈출을 꽤나 오랫동안 취미로 즐기고 있습니다.


 (방탈출은 꽤 비싼 취미로 알고 있는데요. 한 번 할 때 인당 2만원 정도는 들지 않나요?)


 네. 그래서 대학 때는 안하고 이제 회사 입사하고 나서, 스스로 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시작한 취미입니다. 입사한 지 좀 됐으니까 방탈출도 그만큼 오래 하고 있는 거죠. 그걸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김대리 님의 취미생활 방탈출


사실 지금의 저로서는 이걸 빼고 저 자신을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제 일상에 깊게 들어온 취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리하자면 현재 방탈출 마니아이자 회사의 대리다, 그렇게 정리할 수 있겠네요?

 네. 방탈출 마니아에, 직장에서는 대리인 평범한 소시민이다.




3. 대기업 대리의 삶


• 먼저 현재 다니는 회사에 취업하게 된 경위를 묻고 싶습니다.

 [곤란한 얼굴] 이거 들으면 정말 의미 없다고 생각하실 만한 스토리인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휴학을 하고 이제 4학년이 됐을 때였어요. 이제 졸업하고 뭐 하지? 그런 생각이 딱 든 거예요.

제 처음 계획은 졸업을 천천히 하면서 취업 준비를 하자는 거였어요. 학점을 조금 남겨 놓고 졸업 유예를 하면서 한 반년에서 일 년 정도 졸업예정자로 구직활동을 할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바로 졸업하고 취업하지 않으셨나요?)


 네. 맞아요.


 이게 4학년쯤 되니까 어느 알아주는 회사 공채가 열리면 학교에서 문자로 연락을 줬어요. 구직활동하라고 도와주는 거죠. 그때 지금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공채를 한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사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지원할 생각이 없었어요. 어차피 천천히 준비하려고 했으니까 이번은 그냥 넘기고 다음번에 지원하자, 이런 생각이었거든요. 근데 그 얘기를 들은 엄마가 바로 빨리 지원하라고 하시는 거예요.


 엄마가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 촉이 좋으시거든요. 이거는 꼭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시면서 하도 지원하라고, 하라고 해가지고 언성이 조금 높아질 정도로 다투다가 결국 제가 지고 회사에 지원서를 넣었죠. 그때가 지원 마감 며칠 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때부터 급하게 부랴부랴 자소서를 썼어요. 그것도 어디 가서 첨삭 받고 할 여유가 없으니까 혼자 썼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학교 근처에 스타벅스가 있었는데, 노트북 가지고 가서 자소서 썼던 거요. 질문도 그런 거 있잖아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소서도 급하게 썼는데 심지어 사진도 사진관에 가서 찍을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뒤에 흰 배경해가지고 그냥 스마트폰으로 즉석에서 찍어서 첨부하고, 그냥 날림으로 해서 보냈는데.


 (붙었군요?)


 네. 그게 붙은 거예요. 그러니까 또 부랴부랴 2차 시험 준비를 해야 했어요. 저는 붙을 거라고는 생각을 아예 안 해서 준비를 전혀 안 했거든요.


 (무슨 시험인가요?)


 회사 입사 절차가 1차 서류, 2차 시험, 3차 면접으로 진행되는데, 2차 시험은 그 회사용으로 만들어진 인적성 검사예요. 웬만한 대기업은 다 가지고 있을 거예요. 이것도 한 2주인가 3주 정도 뒤에 시험을 치러야 한다가, 허겁지겁 공부를 해서 시험을 쳤죠.


 (그것도 붙은 거고요?)


 네. 사실, 과목이 몇 개였는지는 잘 기억 안 나는데 그중에 수학이 있었어요. 근데 제가 다른 과목은 그럭저럭 잘 풀었는데 수학은 거의 못 풀었거든요. 근데 붙은 거예요. 그래서 ‘엄마 저 붙었대요!’ 하고 또 부랴부랴 면접을 준비해야 했어요.


 면접도 보통 학원 같은 데를 다니는데, 저는 학원 갈 시간도 없고 해서 아빠랑 준비했어요. 아빠가 언변이 좋으시고 인사 쪽에서 일하신 경력이 있으셔서, 면접 예상 질문 뽑아서 같이 연습하자고 하셨거든요. 그렇게 아빠랑 연습하고 면접을 보러 갔어요.


 면접은 평범한 인성면접이랑, 쉽게 설명하자면 지원자의 문제해결능력을 파악하는 면접으로 나뉘는데, 그것도 덜컥 붙은 거예요.

그렇게 입사를 하게 됐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우리 회사에 들어온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준비를 조금 덜 했지만, 그래도 운이 좋게 붙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죠. 운발이 좋았다. 엄마의 힘이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좋은 운이 왔을 때 그것을 잡을 수 있는 것도 본인의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급하게 했지만 그 와중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으면 분명 날렸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날로 먹긴 했다고 생각해요.[웃음]


• 현재 해당 회사에서 5년 이상을 근무 중이라고 하셨는데, 요즘 사실 같은 회사에서 장기근속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고들 하잖아요. 퇴사의 369법칙이란 것도 있고. 김대리 님이 대리가 되기까지, 어떤 시간들을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음, 쉽지는 않았어요. 특히 입사 초반에는 적응이 좀 힘들었어요.


 사실 제 성격이 좀, 할 말은 해야 하고, 틀린 말은 못 하고, 윗사람에게 예쁘게 보이고 하는 것을 잘 못했거든요. 쉽게 말해서 사회생활을 잘 못하는 스타일에 가까웠어요.


 그리고 성격적으로도 조금 예민한 게 있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그때 입사 초에는 제가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경우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팀원들하고 어울리는데도 조금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고, 그거랑 별개로 딱히 내가 뭔가 잘못한 것 없이 그냥 겉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고.


 (팀 내에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맺지 못했던 것 같으셨군요.)


 네. 근데 시간이 흐르고 이제 사람 상대하는 게 좀 적응이 되고 나서는 일이 너무 힘들었어요. 일이 너무 재미가 없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 의욕도 안 생기고 번아웃도 좀 왔던 것 같아요. 사람이 그러면 아무래도 티가 날 수밖에 없잖아요. 주변 동료들이 보기에도 ‘쟤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거 아니냐.’ 이런 말도 나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업무적인 면에서까지 적응하고 마음이 좀 편해질 때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 업무 스트레스를 말씀하셨는데, 대기업의 경우 특성상 경쟁이 치열하고 고과 시스템이 엄격하다고 들었습니다. 일이 많이 힘들고 의욕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5년 이상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본인의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최근에 부서를 옮겼어요. 그래서 지금은 일도 재미있고 잘 맞는데 부서를 옮기기 전까지는 업무가 잘 안 맞아서 힘들었어요.


 일하면서도 내가 그냥 앉아서 돈만 받아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게 일을 하다 보면 입사 동기들이랑 스스로를 비교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제가 또 입사 동기가 꽤 많은 편이었거든요. 물론 당사자가 아니면 그 입장을 알 수는 없지만, 제가 동기들을 볼 때 동기들은 정말 아는 것도 많고 배운 것도 많고 나보다 일도 훨씬 잘 하는 것 같고 평판도 다 좋은 것 같은데 나는 안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일을 못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부서를] 옮기기 직전에 평가를 보면 저도 시키는 일 깔끔하고 꼼꼼하게 한다는 얘기를 들었으니까요. 업무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들어도 저는 스스로 아는 것도 없고 부족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객관적인 평가와는 다르게 스스로 느끼기에 그랬다는 거군요.)


 네. 특별히 뛰어나진 않을지 몰라도 평가적인 측면에서 절대 일 못하는 사원은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하게 하는 사원, 그런 사원이었어요.


 (하지만 일은 즐겁지는 않았다는 거네요.)


 물론하고 나면 보람은 있죠. 해냈으니까. 보고서를 다 쓰고 나면 보람을 느끼는데, 하는 과정 자체가 힘들고 전혀 즐겁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이제 부서 옮기고 나서는 좀 더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됐어요. 취향에도 맞고 즐겁기도 하고,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지금 시점에서 업무에 대해 꽤나 만족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지금은 동기들의 비교는 안 하게 되신 건가요)


 안 하고 있기도 하고, 아무래도 옮기고 난 부서는 사실 업무 성격이 많이 다르거든요. 그래서 비교할 이유가 없기도 하고, 비교할 사람이 없기도 해요. 동기 중에 지금 제가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리고 제가 부서를 옮기기 전에도 비슷한 지금 하는 일과 성격의 일을 몇 번 해본 적이 있었는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꽤 잘했어요. 지금 와서도 이 정도면 나는 잘하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계속하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자신감이 좀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 입사 초기 적응에 어려움도 겪었고, 얼마 전까지는 전혀 즐겁지 않은 일을 하면서 지냈다면 퇴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5년 이상 근무하시면서 퇴사를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퇴사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어요.


 (퇴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이유가 뭔가요?)


 간단한 이유는 그거겠죠. 퇴사를 하면 더 힘들 것 같다.

 제가 다니는 회사가 대기업이잖아요. 제가 이런 말 하기 조금 그렇긴 한데, 대부분의 회사보다는 복지나 월급이 좋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만약에 여기를 퇴사하고 다른 데를 간다고 하면 지금 제가 여기서 누리고 있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회사를 가야만 제가 만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이직 준비에 대한 두려움이 좀 있었나 봐요.)


 두려움도 좀 있고, 부담도 있고. 그렇죠, 굳이 따지자면 두려움보다는 부담에 가까운 것 같아요.


 또 이직을 하면 가서 적응을 해야 할 거잖아요. 제가 지금 회사 생활에 업무라든지 사회생활이라든지 하는 측면에서 조금씩 조금씩 적응을 해가고 있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는데, 다른 회사에 가면 또 반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요.


 결론적으로는 역시 페이에 대한 우려가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어딜 가도 이만큼 받을 수 있을까?


 우리 회사가 대기업 치고도 잘 받는 편에 속하는 회사거든요.

 제 취미가 방 탈출이라고 했잖아요. 이게 또 싼 취미가 아니에요. 한 번 하면 2만 원씩 나가고. 제가 많이 하기도 하고. 이런 비싼 취미를 계속하고 싶고, 제가 누리고 있는 이 삶을 계속해서 누리고 싶은데 이 직장을 떠나서는 그게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 같아요.


•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 회사에서 일할 생각인가요?

 그렇죠. 저는 최대한 오래 있을 생각입니다.

 [김대리 님은 그 이유로 마음속 한편에 조그맣게 남아있는 애사심도 있다고 했다.]


• 추가로 여쭤보고 싶은 게, 대기업을 다닌다는 그 타이틀이 어떤 면에서든지 장점으로 다가올 때가 많나요, 단점으로 다가올 때가 많나요?

 단점인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보통 대기업을 다닌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떤가요?)


 보통은 ‘오, 좋은데 다니시네요.’ 이러세요. 그중에는 대놓고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아예 관심 없는 분들도 많아요. 근데 계속해서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러움을 티 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럼 단점은 없었다고 보면 될까요?)


 연애 관계에서는 한 번도 장점이었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자세히 말하기는 그런데…….


사실 제가 만났던 남자중에 저만큼 스펙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회사 네임밸류나, 경제력에 대해서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게 전혀 상관이 없는데. 저는 연인 간에 열등감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안 좋은 시그널이라고 생각해요.


(비단 연인 간이 아니라 모든 관계에서도 그렇죠.)


상하를 나누고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 관계는 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좀 속상했던 적이 있었어요.


(대기업 타이틀이 이점이 많긴 하지만, 연인 관계에서는 득을 본 적이 없었다는 거군요.)


단순히 제가 운이 나쁜 걸 수도 있지만요.

 



4. 한때의 열정, 물리학


• 대학시절 전공이 물리학이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물리학을 전공하셨나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과학을 좀 좋아했어요. 스스로 말하기는 조금 민망하지만, 소질도 있고 잘하기도 했거든요.


 왜, 학교에서 공부할 때 보면 과목별로 들이는 시간이 있잖아요. 이거는 이만큼 공부해야 성적이 잘 나오고, 또 이거는 이만큼 공부해야 성적이 잘 나오고. 수학 같은 경우는 제가 잘 못해서 3주에서 한 달 정도 문제집을 3~4개 정도 풀어가면서 공부를 해야지 상위권 성적이 겨우겨우 나왔던 반면에 과학은 며칠 안 하고 쓱 봐도 성적이 잘 나왔어요. 그런 면에서 좀 소질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해외에서 국제 학교를 다니면서 과학을 좀 더 깊게 공부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물리 공부를 많이 했었고요. 방과 후에는 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는 했는데, 그때 물리 교양서적들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그때부터 물리를 좀 더 깊게 공부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 원서를 전부 물리과에 넣었습니다. 


 (그 시절 대학 원서 넣던 때에는 보기 드문 패기로운 행동이었군요!)


• 대학에서 물리를 공부하는 건 어땠나요? 즐거웠나요?

 힘들었어요.


 (생각과는 많이 달랐나 봐요.)


 많이 달랐어요. 공부하는 과정은 재미있긴 했어요.


 물리과 가면은 그런 거 하거든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식들, 예를 들어 F=MA 이런 거요. 여기에 이제 공이 뭐 몇 도의 경사에서 굴러가는데 어떤 공이랑 부딪쳐 갔을 때 부딪친 공이 굴러간 경로를 구하시오 같은 상황을 주고 문제를 푸는 거예요.


 이런 게 이제 논리적으로 사고하면서 풀어내야 되거든요.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대학원도 고민했어요. 근데 제가 그렇게 대학원을 갈 만큼 제가 똑똑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물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런 걸 많이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아, 나는 단지 물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지 잘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벽을 느낀다고.)


 맞아요! 벽을 느꼈어요.


 그 뭐라고 해야 할까. 제가 전공성적이 객관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는데, 친하게 지낸 친구들 대부분이 다 정말 괴물 같았거든요. 거의 평점 4.5에 가까웠어요. 그런 친구들은 당연히 대학원을 갔고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벽을 느끼고 대학원을 포기하고, 졸업 후에 나는 취직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거군요.)


 그렇죠.


• 혹시 회사에서 하는 일이 물리학을 공부했던 것과 연관이 좀 있을까요? 혹은 물리학 공부가 현재 하는 일에 영향을 주고 있다거나.

 크게 영향이 있지는 않아요. 특히 지금 옮긴 부서에서는 더욱 그렇고요.


 하지만 이전 부서에서는 조금 이과적인 일을 했었어서, 수치를 분석한다거나 하는 식의 업무가 있었거든요. 그때 제가 느끼기에는 물리 전공 자체가 영향을 주거나 도움이 된 건 아니지만, 물리학 공부를 할 때 익힌 논리적인 사고라든지 수치 해석이라든지 하는 것들이 영향을 좀 주었던 것 같아요.


 (공부한 내용보다는 공부하는 과정이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네. 그리고 그런 거 있잖아요. 수학도 수학 지식보다는 수학 문제를 풀면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익히는 게 중요하듯이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 그럼 사실상 이제 물리 공부랑은 영영 이별한 거잖아요. 그거에 대한 아쉬움이나 후회가 남지는 않나요?

 아쉽지 않게 공부했어요.

 물론 가끔, 후회까지는 아니지만 대학원에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을 하긴 하거든요. 실제로 사내에도 대학원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기회가 되면 나중에라도 가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근데 그것도 대학원 안 가서 후회된다 이런 것까지는 아니고 어땠을까? 그 정도.




5. 내 삶의 핵심 요소, 취미 - 방탈출


• 방탈출이라는 취미생활을 상당히 깊게 즐기고 있다고 하셨는데, 김대리 님에게 취미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방탈출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냥 막연하게 처음에 했을 때 재밌으니까 시작했던 거고. 


 근데 그런 게 있어요. 영화라든지 이런 거는 일방적으로 제가 보고 느끼고 [수동적으로] 즐기는 거잖아요. 근데 방탈출은 주어진 미션을 해결해야 하거든요.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이랑 그걸 같이하고요. 그렇게 뭔가를 다 같이 이뤄냈을 때 얻는 성취감이 상당히 큰 편인 것 같아요.


 그 성취감이, 사실, 저도 그렇고 제 주변에 있는 많은 이제 하드코어 방탈출 마니아들이 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제일 큰 것 같아요.


 도파민 중독입니다. 심각한 도파민 중독이고요.[웃음]


 나는 뭔가 해냈어! 나 정말 대단해! 너무 잘했어! 이런 기분이나 성취감이 사실 평소에 얻기 힘든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그런 점에서 이제 방탈출을 못 끊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방탈출 과정 자체가 재미있기도 해요.


 (문제를 풀고, 친구들과 협동하는 과정이요?)


 네. 최근에 친구들이랑 엄청 어려운 방탈출을 하러 갔는데 문제를 풀다 막힌 거예요. 그래서 다 같이 둘러앉아 가지고 ‘야, 어떻게 생각하냐?’ 하면서 한 명씩 의견을 던지면서 풀었거든요. 진짜 어려운 문제였는데, 다 같이 한 스텝 씩 ‘이거는 이렇게 하는 거 아닐까?’ ‘저건 저렇게 하는 거 아닐까?’ ‘요건 요거 같다!’ 하면서 의견을 내서 풀었어요.


 단순히 성취감도 성취감인데. 내가 이 사람들이랑 더 돈독해진 기분이 들더라고요.


 제가 생각하기에 방탈출이라는 게 그 자체가 주는 성취감도 크고, 그다음에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느끼는 관계성에 대한 만족감도 큰 거 같아요. 실제로 이 취미를 깊게 하면서 굉장히 친한 친구도 여러 명 생겨서 관계적인 측면에서 얻은 것도 크거든요.


 (단순히 방탈출이라는 콘텐츠를 넘어서 나에게 일상 중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고, 또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거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딱 현대의 직장인들이 살아가는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 일로 즐거움이나 행복을 느끼지 못하지만, 일로 번 돈으로 취미나 이런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거나 즐거움을 채우고는 하잖아요.)


 실제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지금이야 회사에 만족을 하고 있지만 부서를 옮기기 전에 좀 힘들었던 시기에 평일에 나는 죽어 있는 것 같고 주말이 됐을 때 사람들을 만나고 방탈출을 할 때는 내가 살아있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니까 직장을 때려 치고 싶을 때도, 아까도 얘기했지만 방탈출이라든지 이런 취미활동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하려면 이만큼의 돈이 필요하니까 참아야지, 주말에 열심히 놀아야지, 이랬거든요.

지금은 평일에도 잘 만족하고 살고 있지만요.


 (정말 방탈출을 좋아하시는 게 느껴집니다.)


 제 인생의 행복입니다. 저는 결혼하면 방탈출 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거예요.[웃음. 김대리 님은 진심이라고 했다.]




6. 삶에 대한 평가 – 나, 그리고 타인


• 방탈출을 사랑하는 대기업을 다니는 직장인으로서의 나. 모르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평가할 것 같나요?

 사실 내 주변 지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는 항상 생각해도, 나를 모르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질문은 흔한 질문이 아니다 보니까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보통은 완전 타인의 생각에 관심을 갖지 않으니까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나를 보면…… 내 스스로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는 전혀 상관없이 그런 생각을 할 것 같아요.

 막연하게 딱히 부족한 게 없을 것 같다. 그냥 잘 살고 있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산다. 잘 지내네. 좋은 삶을 사시네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혹시 나를 부러워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요?)

 부러워할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해도, 사실 저는 제 삶이 대단하다는 인식은 없거든요.


 하지만 그런 건 있어요.


 저도 회사를 다니면 힘든 일들이 생기잖아요. 업무적으로 잘 안 풀리거나 하는. 제가 친구들에게 회사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이 ‘너는 그래도 대기업 다니잖아.’, ‘너는 돈 많이 받잖아.’ 이런 반응이 돌아와요. 야근을 많이 해서 힘들다고 해도 ‘야근 수당 잘 주잖아. 밥도 잘 나오고. 복지도 좋잖아.’ 이런 식의 반응이 올 때가 있어요.


뭐랄까 나의 힘듦을 조금 평가절하하는 말이랄까요?


솔직히 친구들이 하는 말에 틀린 건 없어서 반박은 못하는데, 좀 서운할 때는 있어요.


(절대적 환경이 좋더라도 그 안에서 힘든 것들이 분명 있는데, 사람들이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어려움은 보지 않고 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군요.)


 물론 저도 돈 잘 버는 연예인들이 힘들다고 하면 솔직히 감정이입이 잘 안되는 건 똑같아요. ‘쟤네는 억씩 벌잖아.’ 이러면서. 하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들으니까 서운하더라고요. 반박은 못하지만, 그렇다고 안 힘든 것도 아닌데.


 그래서 조금은 서운하다. 뭐, 저랑 안 친한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가까운 사람들은 나에게도 힘든 점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 김대리 님 본인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저는 제가 느끼기에 정말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내면에 두 가지 생각이 상충되는 생각이 있어요.


 하나는 ‘나 정도면 대단하지!’라는 생각이에요.

 좋은 대학 나오고, 좋은 회사 다니고, 벌이도 괜찮고, 회사도 잘 다니고 있고, 대인관계 원만하고. 그러니까 나는 굉장히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반대로 그보다 덜한 인식이 하나 있어요.

 나는 정말 굉장히 평범하고, 딱히 잘난 것도 없고,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닌 것 같다. 좀 자신감이 없는 나 자신이 또 있어요.


 (팩트적 측면에서 ‘나는 괜찮아.’랑, 심리적으로 느끼는 자존감이 다소 낮은 내가 공존하고 있군요. 그렇다면 자존감이 낮은 나를 팩트가 북돋아 주고 있을까요?)


 그러려고 노력은 하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총체적인 평가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 거 같아요?)


 자신감 없고, 객관적으로 어떻고를 다 떠나서 그냥 저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 같긴 해요. 


 뭐 의욕이 없어서 드러누워 있는 순간도 있긴 하지만. 어찌 됐든 제가 생각하기에 저는 매 순간 나름 열심히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삶을 힘껏 살려고 하는 것 같다. 뭐가 됐든 간에 그래도 열심히 사는 거는 맞는 것 같다. 그래도 내 딴에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는 스스로 좀 대견한 건 있죠. 잘하고 있다.


 (실제로 한 회사에서 5년 이상 근무하는 게 요즘 우리 나이 대에서 드문 일이잖아요. 여러 조건에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힘들고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 버틴 것도 또 본인의 능력이죠. 제게도 김대리 님이 잘하고 있고,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웃음!]


• 그렇다면 앞으로 김대리 님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가요?

 약간 농담 삼아 얘기하는 것 중 하나는 ‘나는 70살 할머니가 돼서도 선글라스 끼고 방탈출 다니면서 멋있게 살 거다!’예요.


(정말 방탈출을 사랑하시는구나.)


 [웃음] 그래서 친구가 나중에 70살 김대리 할머니 방탈출 신기록 세워…… 이런 기사 나오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70살쯤 되면 더 이상 리얼 월드에서 방탈출을 하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누구나 메타버스 속의 방탈출을 하게 되겠죠.)


 그럼 누워가지고 하고 있겠죠? 할머니여도 충분히 할 수 있을 테니까 더 좋겠어요. 그 정도로 그때까지 방탈출을 계속하고 싶다, 이런 게 있어요.


 다른 쪽으로 넘어가 보면, 제가 좀 가족에 대한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좀 막연하긴 한데 저는, 제가 사랑하는 만큼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서 충분한 애착관계를 맺고, 결혼을 해서 같이 살면서 그 아이도 낳아서 오순도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요.

그 외에는 딱히 지향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직업적인 부분에서는 어떤가요? 일반 직장인의 경우 보통 50살 전후로 해서 은퇴를 하잖아요. 우리가 백세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보통 50에 새로운 삶을 또 시작을 해야 되는데, 혹시 은퇴하고 난 그 뒤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이 있을까요?)


 사실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약간 먼 미래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막연히 그때 가면 알아서 잘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하는 것 같고. 물론 나이 차면 은퇴준비는 해야겠지만…… 아직 딱히 이 직장을 나간 뒤의 삶에 대해서는 상상해 본 적이 없어요. 왜냐면 이 회사에서도 아직은 할 것도 많고, 자리를 완전히 잡은 것도 아니거든요.


 사실 저는 과장급은 되어야지 어느 정도 자리가 딱 잡혔다고 생각을 하는데, 저는 아직 대리기 때문에 거기까지 생각하기는 좀 멀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7.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을까요?

 제가 좀처럼 잘 후회하지 않아요. 일단 선택을 하면은 뒤를 안 돌아보려고 해요. 왜냐하면 바꿀 수 없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까지 해온 선택에 대해서는 딱히 후회하는 게 없으신 거군요.)


 근데 그건 하나 딱 생각나더라고요.


 제가 아주 오래전에 한 친구와의 관계에서 큰 말실수를 했었어요. 그것 때문에 사실상 절교를 했거든요. 엄청 오래 시간이 흘렀는데 그게 아직도 생각이요.


 내가 왜 그랬을까…….


 사실 그때 기회가 없어서 제대로 사과를 못했어요. 마음에 짐으로 남아있는 일이에요. 아마 앞으로도 평생 생각이 날 것 같아요.


 (그 일을 통해서 뭔가 다시는 말실수를 그런 식으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조금 하게 됐겠네요.)


 그렇죠. 그 뒤로는 그런 심한 말은 하지 않죠.


 (김대리 님은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를 준 일이 크게 남는가 봐요.)


 네. 좀 그런 게 있어요. 최근에도 다른 친구에게 예의 없게 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사과를 한 일이 있었거든요. 정작 본인은 장난으로 여기고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있었지만. 


 말씀하신 대로 타인에게 함부로 대했다고 생각되면 오랫동안 생각이 나는 것 같아요. 다른 때도 말실수를 하면 혼자서 계속 생각하다가 사과하는 경우가 있어요.


 내가 왜 그랬지, 내가 왜 그랬지, 하면서.


 (어떻게 보면 내가 그런 대우를 받는 게 싫어서 더 그런 것도 있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단은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고, 내가 인격적으로 조금 미숙했다고 느끼던 시절에 한 실수에 대한 어떤 마음의 짐 같은 게 남아 있다. 정도로 정리를 해도 될까요?)


 네.


• 반대로 내가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까요?

 가장 첫 번째는 역시 방탈출을 한 거죠. 지금 제 인생에 있어서 제일 큰 행복이니까요.


 (방탈출 정말 좋아하시네요. 방탈출 말고는 또 뭐가 있을까요?)


 물리학 공부하기 잘했다, 그 생각이 들 때는 있어요. 하고 싶었던 공부를 주저 없이 선택했다는 거에 대한 자부심이라고 해야 되나, 뿌듯함 같은 기분도 있는 것 같고.


 가끔 생각했거든요. 내가 만일 다른 전공을 선택했으면 뭘 선택했을까? 떠오르지가 않더라고요. 딱히. 한 번 떠올렸던 게 뭐 산업디자인 이런 거 생각했는데, 그걸 했어도 잘 했을 것 같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역시 물리를 선택해서 엄청난 남초과에서 버티면서 인간관계도 지잘 쌓고, 학생회 활동도 하고, 일련의 대학 생활 자체도 나름 잘 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 그리고 제가 마라샹궈를 진짜 좋아해서, 인생에서 마라샹궈를 만난 일 역시 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8. 기타 질문


• 앞서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요즘 세상에 결혼과 출산을 원하지 않거나 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잖습니까? 김대리 님은 왜 꼭 결혼을 하고 싶은 건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기본적으로 제가 애착에 대한 욕구가 큰 사람이에요.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들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 대체 어떤 식으로 신뢰 관계와 애착관계를 쌓았길래 평생을 함께 할 만큼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어떻게 믿고? 사실상 남인데 어떻게 평생 서로에게 의탁하면서 그렇게 살 생각을 하는 건가?

 저는 그게 좀 부럽더라고요. 그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사실 연인은 헤어지지 않으면 언젠가 결혼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연애의 끝은 결국 결혼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요.


 물론 연애를 안 하고 쭉 살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뭔가 좀 더 깊고 지속될 만한 관계를 맺으려면 연애를 하다가 결국에는 결혼이라는 단계로 넘어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저는 깊고 지속되는 관계를 원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결혼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깊이 있고 지속 가능한 관계를 원하는데, 그 관계의 종착지가 사실상 결혼인 거군요.)


• 그렇다면 아이를 낳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의외로 결혼을 해도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제가 그 이유를 정확히 찾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을 늘 하는 것 같아요.


 삶이란 게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많고, 어려움들이 있지만 여전히 세상은 살만하다.

[제 대가리가 좀 꽃밭입니다. - 김대리 님은 이렇게 덧붙이며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닮은, 아마 내가 가장 사랑할 자식에게도 이 세상의 좋은 면을 좀 보여주고 싶어요. 물론 이 세상은 어두운 면이 굉장히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만하다, 아름답다는 것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고 행복을 가져다주고 싶어요.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김대리 님은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잘 받으면서도 또 큰 행복을 느끼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 혹시 살면서 내 인생에 이때는 참 좋았다, 하는 시기가 있을까요?

 대학 시절이요. 지금도 사실 굉장히 만족하면서 잘 살고, 아마 미래에는 이 순간이 좋았다고 평가를 할 것 같긴 한데. 근데 질문을 딱 들었을 때 먼저 떠오른 건 대학 생활 때입니다.


 친구들과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그 순간을 만끽하고, 하고 싶은 공부 하고. 또 시간에 대한 자율성이 가장 컸던 시기거든요. 스스로 느끼기에도 굉장히 자유로웠고, 얽매이지 않는 느낌이었던 게 되게 좋았던 것 같아요.


 (확실히 대학 졸업 이후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은퇴할 때까지 계속 일할 생각이라고 하셨으니, 그때가 가장 자유로운 시기였겠네요.)


• 반대로 정말 별로였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있다면요?

 고등학교 시절이요.

 해외에서 국제 학교를 다녔는데, 적응하기도 힘들었고 감정적으로 좀 예민했거든요.


 (아무래도 사춘기였으니까요.)


 네. 그래서 좀 많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아마 고등학생 때가 좀 별로였던 것 같아요.




9. 자기PR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어필하고 싶은 게 있나요?


 사실 제가 그림을 조금 그립니다. 아주 잘 그리는 건 아니고, 조금이요.

 그래서 방탈출 관련 이모티콘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걸 올해 내로 내보는 걸 목표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응원 많이 해주시고, 만일 출시되면 아, 이거 걔가 낸 거구나 하고 많이 좀 써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10. 마침


 대기업을 다니고 있는 김대리 님.

 어떤 누군가가 보기에는 날로 먹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그 안에서 자신의 선택에 절대 후회하지 않으며 굉장히 치열하게, 있는 힘껏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김대리 님이 앞으로도 힘껏, 또 즐겁게 살아가기를 응원하며 인터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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