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꿈을 꾸며 살아가는
29번째 인터뷰이는 몇 년 전 유행했던 게임 모태솔로의 주인공, 배우 박찬호 님입니다.
1. 인물소개
2. 어쩌다 여기 : 태생이 관종이었다.
3. 오늘 여기의 나 : 배우, 그리고 영어강사, 그리고 청소 알바하는 사람
4. 삶에 대한 평가
5.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6. 기타질문
7. 자기PR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8. 마침
이름(별명) : 박찬호
나이 : 만 32세
성별 : 남성
학력 : 대졸 / 영어영문과
경제력 : 배우이자 영어 강사 / 청년희망저축 내고 간신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
저는 박찬호라고 합니다. 남자고 나이는 만 32세. 영어영문학과 졸업했습니다.
현재는 프리랜서 배우이자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경제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청년희망저축 내고 간신히 생활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웃음]
누군가가 제게 왜 배우가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관종이었습니다.’ [웃음]
(어떤 의미에서 관종이었나요?)
아버지가 목사님이에요. 그러다보니 목사 아들은 나대면 안 되고, 예의 바르게 지내야 하고, 공부도 잘해야하고, 그런 틀에 갇힌 삶을 살다보니 아마 스스로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거 같아요.
근데 저는 어릴 적부터 누가 나를 알아봐주는 거, 관심 받는 걸 대단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학창시절 때부터 장기자랑 같은 자리는 빠지지 않았죠. 하교 밴드부에 들어가서 공연도 했어요. 교회 다니면서 얻은 능력 중에 드럼과 피아노가 있어서 그걸 활용했죠. 하지만 고 3이 되면 전공자가 나오거든요. 그때부터 저는 무대에 설 수 없어요. 왜냐, 저는 완전 하꼬니까요.
그렇다면 무대를 지키기 위해 저는 무엇을 하느냐? MC를 하죠. 나는 곧 죽어도 이 관심을 놓칠 수가 없으니까. 절대 포기할 수 없어요. 그렇게 제가 관종의 삶을 살았어요.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대학 학과는 관종의 삶과는 멀어보이는 걸요? 대학에서는 어떻게 관종의 삶을 유지하셨나요?)
대학의 경우 사실 제가 입시에 실패했어요. 그리고 2년간 독학사라는 과정을 통해 편입을 했는데, 나름 그 안에서 관종의 삶을 이어나가려고 했지만 이게 좀 쉽지 않더라고요. 학생부도 들어가고 했지만 제가 원하는 정도의 관심은 안 왔어요.
도통 관종의 자리가 나질 않던 중에 학교에서 뮤지컬 프로젝트를 한다는 거예요. 전체 학과에서 사람을 뽑아서 무대에 한 번 올려보자, 이런 프로젝트였어요. 제가 또 오디션도 보고 들어갔죠. 그걸 하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무대에서 대사도 뱉고, 박수도 받고, 춤도 추고. 이게 딱 관종의 삶에 정확히 들어 맞는 일이었죠. 아쉬운 건 공연이 딱 한 번이었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저는 군대에 갑니다. 사실 이렇게 관종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뭐 배우를 해야겠다, 연기를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럼 언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셨나요?)
군대에서 응답하라 1988이라는 드라마를 봤을 때였어요. 그 드라마를 보면서 너무 깊게 감명을 받았죠. 완전히 제 마음을 헤집어놨어요. 미쳤다! 작가라는 존재는 대단하구나! 도대체 작가는 어떻게 될 수 있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고 보는데, 도저히 제가 작가가 될 순 없는 거 같은 거예요. 그건 저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인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 제 머리를 스친 생각이 있었죠.
내가 천재적인 작가가 될 순 없지만, 천재적인 작가가 쓴 대사를 내 입으로 뱉는 것 정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당시 군 휴학이 3년이었고, 복학까지 1년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저 연기학원에 다녀보고 싶어요.”
(그때 부모님의 반응이 어떠셨어요?)
대단히 어이없어하셨죠. ‘군대 다녀오면 철 든다던데, 얘는 겉멋만 들어왔네.’ 이런 생각이 서브텍스트에 있지 않았을까.[웃음]
근데 제가 돈 벌어서 학원비 내고 한다니까 알아서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학원비 벌겠다고 아침 6시 반에 나가서 압구정 로데오에서 김밥도 말고 그랬어요. 그렇게 학원을 다녔죠.
(어땠나요? 기대만큼 재미있었나요?)
관종의 삶을 사는 나에게 정말 딱 맞는 걸 찾은 느낌이었어요. 무대 시연, 연습, 뭐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난 뒤 오디션을 봅니다. 보통 학원에서 오디션을 볼 수 있는 길을 열어줘요. 저도 그때 한 회사 오디션을 봤어요. 근데 거기서 또 하나의 벽을 만나게 되죠.
오디션을 보러 간 날, 3명 씩 한 조로 들어갔어요. 근데 그런 거 있잖아요. 누가 봐도 셋 중에서 내가 제일 잘했다 싶은 느낌이 오는 순간. 저는 진짜 그때 느꼈어요. 아, 내가 제일 잘했다. 확신이 있었어요.
근데 문제는 뭐냐, 같이 들어간 형이 엄청 잘생겼어요. 결국 그 형만 붙고 저는 떨어졌죠.
(배우 쪽은 얼굴을 정말 많이 보는 거 같아요.)
그런 거 같아요. 근데 저는 별로 개의치 않았어요. 왜냐면 저는 그 얼굴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들어온 게 아니거든요. 저는 ‘사랑해’라고 말하는 역할 말고, 옆에서 “야, 사랑한다고 해봐.” 이런 거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전 그런 역할을 하려고 연기판에 들어온 거라 괜찮았어요.
다만 그때 하나는 확실히 깨달았죠. 아, 회사가 원하는 얼굴이라는 게 따로 있구나. 내가 진짜 회사를 들어가려면, 뭔가 내 자리를 좀 더 단단하게 잡고 가야겠구나. 그냥 들어가기엔 쉽지 않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연기를 준비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건 학원은 1년이면 족하다는 거예요.
저는 1년에서 1년 반 정도 학원을 다녔는데, 그 정도면 누군가로부터 배워서 얻는 거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현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대부분은 그게 잘 안 돼요. 왜냐하면 학원 시스템이 그래요. 같이 배우는 친구들과의 끈끈한 연합이 생기는데, 그게 진짜 문제예요. 그냥 학원 다니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데도, 그 안에 있으면 마치 내가 ‘연기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돼요.
맨날 같이 어울리면서 “야 우리 진짜 유명한 배우 되자!”, “우리 진짜 잘 될 거야!” 막 이런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내요. 근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진짜 별 의미 없는 시간이었더라고요. 저도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한 6개월 정도는 그냥 흘려보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한 1년 반, 2년 정도 하고 나서 레슨을 그만두고, 이제 진짜 프로필을 넣어보기 시작했죠.
‘필름메이커스’라고 연기자들이 지원하는 플랫폼이 있거든요. 거기 있는 모든 곳에 다 넣었어요.
이게 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제가 처음 프로필 사진 딱 찍고 지원하기 시작할 때 무슨 생각을 했냐면요, ‘세상아, 기다려라. 이제 내가 간다. 너네가 기다리던 그 사람이 간다.’ [웃음] 진짜 그랬어요.
(당시에는 자신감이 넘치셨군요.)
진짜 그랬어요. 그리고 와장창 깨졌죠.
그때 제가 뭐에 제일 좌절했냐면, 하루에 거의 10개씩 메일을 보냈거든요? 그걸 20일, 30일 동안 계속했는데, 읽은 표시가 뜬 게 15개도 안 됐어요.
(아예 읽지도 않은 거군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기다리는 것뿐인데, 기다릴 에너지도 안 나는 거예요. 메일을 읽기라도 해줘야 기다릴 수 있지, 읽지도 않으니까. 답이 올 거라는 희망조차 없으니까 진짜 너무 힘들더라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지원 넣는 것도 안 하게 되는 수준까지 갔어요.
그렇게 꺾이다가도 하나 둘씩 “뭐 해보실래요?” 하고 연락 오는 곳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나가서 촬영을 하게 됐죠. 그리고 그때부터 제가 ‘현장에서 배워야 된다’는 걸 정말 뼈저리게 느꼈어요.
연기 학원에서 많이 배웠고, 나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선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오는 거예요. 물론 학원에서도 카메라 수업이 있긴 있었죠. 근데 그건 그냥 찍어보고 피드백 받는 수준이었고, 진짜 현장은 완전 다르더라고요.
현장에선 두 번, 세 번 기회 안 줘요. 그냥 “그럼 빼요.” 이래요.
제가 제일 기억에 남는 건, 그냥 웃는 역할이었는데요. 대사도 없고, 그냥 웃으면 되는 거였어요. 근데 제가 열심히 웃으려고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이면서 웃었거든요? 그랬더니 “찬호 씨, 그러면 얼굴이 카메라 밖으로 나가요.”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아, 작게 해야 되는구나’ 싶어서 좀 줄였는데도 또 나간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안 찍어,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런 상황이면 자괴감도 들었을 것 같아요. ‘이런 것도 내가 못하나?’ 싶고.)
네, 진짜 그랬어요. 근데 그러면서 하나씩 배우게 되는 거죠. 그렇게 조금씩 배워가면서, 지금도 현장에 있으려고 계속 애쓰는 중이에요. 이게 제 배우로서의 현실이죠.
재미있는 건 제대로 못한 그 영상이, 저한테는 가장 처음이었어요. 그 당시에 현장 나가면서 제가 얼마나 설렜냐면, 촬영 3시간 전에 촬영 장소에 미리 가서 공기도 느끼고, 뭐하지, 나 대사도 없는데, 이런 생각도 하고, 드디어 배우로서 출발이다 이런 설렘도 느꼈다는 거예요.[웃음]
고작 대사 없는 장면 하나 찍겠다고 가서도 이럴 정도였는데, 그런 저에게도 영향을 크게 미치는 작품을 또 하나 만나게 됩니다.
• 배우 생활에 영향을 크게 미친 작품은 어떤 작품이었고,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모태솔로’라는 작품이에요. 인터렉티브 무비 형식, 즉, 사용자가 선택지를 고르면서 엔딩이 바뀌는 형식의 게임이에요.
필름메이커스에 오디션이 떠서 지원을 했었어요. 저는 모태솔로 작품의 주인공의 친구 역으로 지원을 했어요. 그게 제가 생각했을 때는 저랑 잘 맞을 거 같았거든요. 그런데 장문의 메일이 오는 거예요. 우리가 찾던 주인공의 이미지와 당신이 잘 맞는 거 같다. 주인공 오디션을 봐주면 안되겠냐.
(프로필의 이미지가 캐릭터랑 잘 맞았나 보네요!)
그렇죠. 이전 연기 영상들도 많이 보냈어요. 근데 제가 찐따 역할을 많이 했거든요. 그게 정확히 맞았던 거죠.
그렇게 제가 주연이 되고 영상을 찍었는데, 그게 엄청 대박을 친 거예요.
(저도 봤습니다. 많은 스트리머들이 플레이했죠.)
그때 처음으로 밥을 먹는데 누가 알아보는 일을 겪었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미치죠. 저는 관종이잖아요. 심지어 스트리밍 영상 조회수가 얼마나 나왔는지 계산까지 해봤꺼든요. 누적 천만 조회예요.
그래서 제가 누군가에게 저 자신을 소개할 때 누적 조회수 천만 배우 박찬호 이런 식으로 소개합니다. 그 작품 덕에 현장에서 혹은 오디션에서 사람들이 저를 조금씩 알고 부르게 됐어요.
오디션장에 가서도 ‘저 그거 봤어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죠.
저에게는 큰 분기점이 된 작품이에요.
(이전까지는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못하셨나요?)
사실 이전에도 웹드라마를 찍으면서 조회수가 40만, 60만, 100만 이렇게 찍힌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이야, 내 인생 이제 바뀐다.’, ‘100만 명이 내 얼굴을 봤다!’ 이러면서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어요.
(이 바닥은 하나 뜬다고 잘 되는 게 아닌 거 같네요.)
전혀 아니에요. 어디선가 제가 ‘내려놓음의 법칙’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말의 의미를 조금 깨달았어요.
모태솔로는 제가 모든 걸 다 내려놓았을 때 만난 작품이에요. 내가 이걸로 잘되고 말고, 그런 기대도 없이 그냥 “어, 저요. 해볼게요.” 그 마음으로 간 거거든요.
재밌는 게, 그 당시 출연료가 시급제였어요. 그래도 ‘그래, 내가 연기로 돈을 번다’ 그거 자체에 의미를 두고 했어요.
근데 진짜, 이렇게 잘 될 줄은 몰랐죠. 찍을 땐 “야 이거 너무 이상한데?” 싶기도 했고, 웃기기도 하고, 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었어요.
그 당시 제가 자신감도 없고, 자아도 쪼그라들어 있을 때였거든요. 근데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그때의 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었는지도 모르죠.
요즘은 딱히 하고 있는 작품은 없고요. 대신 계속 홍보 영상이나 사내 교육 영상 같은 걸 찍고 있어요. 신한은행 다니는 친구가 있다면 아마 조만간 교육 영상에서 절 보게 될 거예요. 또 드라마 즐겨보시는 분이라면, 일일드라마 친절한 선주 씨에 제가 잠깐 나옵니다.
배우라는 직업은 사람을 관찰하고, 그 사람을 알아가는 일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루트가 제겐 영어 선생님 일이에요.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학생들이나 학부모님들 이야기를 막 자세히 하긴 어렵지만,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돼요. 그리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속으로 ‘아 이건 나중에 연기에 쓸 수 있겠다’ 싶은 순간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고시생 역할을 해야 하거나, 학부모 역할을 할 때 ‘이런 포인트 살리면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죠.
그런 게 참 재밌기도 하고요. 또 현실적으로 보면, 강사 일이 제 메인 수입원이기도 하니까 중요하죠. 안정적인 수입 라인이 되기도 하고. 근데 지금 학생이 딱 두 명뿐이라, 많진 않아요. 그냥 용돈벌이 정도?
그래서 요즘 또 하나 하는 게 청소 일이에요. 공유 오피스엔 항상 청소 인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아침 6시 반부터 10시 반까지, 4시간 정도 청소합니다.
(청소 일은 따로 구하신 건가요?)
프리랜서는 일정이 진짜 불규칙하잖아요. 그래서 이런 자투리 일자리를 중개해주는 중간 회사가 있어요. 일정이 생기면 등록된 사람들한테 한꺼번에 쫙 뿌려요. 그럼 시간 되는 사람이 신청하면 가게 되는 거죠.
(일종의 온라인 인력시장 같은 느낌이네요.)
맞아요, 진짜 딱 그런 느낌이에요. 그래서 그렇게 아침엔 청소하고요, 또 서울역 쪽에도 청소하는 곳이 있어서 거기도 가요. 그리고 아내가 판매하는 물건 사입하러 가서 가져오고, 포장도 도와주고요. 수업 있으면 수업하고, 일 있으면 또 연기하러 가고. 그렇게 살고 있어요.
수입이 규칙적이지 않다는 부분인 것 같아요. 지금 아내 뱃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돈 들어가는 단위가 달라지더라고요. 근데 제 수입은… 좀 한계가 있죠.
어느 수준에 딱 부딪힐 때가 있어요. 제일 심했던 게 올해 1~2월이었어요. 촬영도 진짜 하나도 없었고, 청소도 수업도 전부 다 없었어요. 수업을 잡으려고 해도 안 잡히고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그 달 생활비는 겨우 마무리가 됐는데, 다음 달을 생각하는데 갑자기 숨이 탁 막히는 거예요.
살면서 처음으로 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은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어요. 호흡이 불안해지고, 가슴이 꽉 막히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어떻게 견디셨나요?)
그래서 바로 신나는 음악 틀었죠. ‘이건 나랑 안 어울려!’ 하고.
그때 청소하러 가는 길이었거든요. 새벽에 일어나 4시간을 일을 해도 5만원도 못 버는 거예요. 이거 벌고 괜찮나… 이런 생각이 드는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사람이 진짜 끝도 없이 가라앉아요. 그래서 그럴 때마다 그냥 ‘괜찮아!’ 하고 내려놓으려고 노력해요.
그랬더니 또 3~4월엔 촬영이 확 몰리더라고요.
(안정적인 수입이 없다는 것이 찬호 님이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군요.)
맞아요. 근데 또 있잖아요, 돈을 잘 버는 프리랜서? 와… 그만큼 좋은 게 없어요.
시간 내가 마음대로 쓰지, 내가 좋아하는 일 하지. 솔직히 연예인 걱정하지 말란 얘기 있잖아요. 왜 그런 말 나오는지 알 것 같아요. 저는 이렇게 무명인데도요, 가끔 2~3시간짜리 촬영에 나가서 1시간 만에 끝나잖아요? 그래도 똑같이 줘요. [웃음] 그래서 가끔 아내한테 “1시간에 이만큼 버는 남편 어떤데?” 막 이래요. 하하. 제가 지금 이 정도인데, 진짜 유명하신 분들은 얼마겠어요. 지금은 일을 구하기도 어렵고 수익 들쭉날쭉 하지만 내가 유명해지고 일을 꾸준히 할 수 있게 되면 아이 키울 정도의 돈은 벌 수 있겠다고 기대합니다.
제 궁극적인 목표는 연기만 해서 돈을 버는 거예요.
그냥 열심히 하고 있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남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솔직히 다들 자기 삶 사느라 바쁘잖아요.
제가 오늘 이 인터뷰를 기대했던 이유는 누군가가 저를 궁금해 해준다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남들이 나를 평가한다? 사실 제 삶을 남들은 그렇게 깊게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족들은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그런 말 한마디가 원동력이 되는 거 같아요. 저는 이게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 같아요. 내 편이 있어준다는 것. 날 응원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거.
(아내분이 늘 응원을 해주시나 봐요. 그래서 더 기쁘고 힘이 되는 거겠네요.)
맞아요. 그래서 또 에너지를 내게 되죠.
(저 같은 경우는 누가 날 직접적으로 평가하진 않아도, 문득 ‘내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냥 백수, 아무것도 안 하는 청년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들 하게 되더라고요. 찬호 님도 혹시 그런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그런 생각을 했었죠. 언제 많이 했냐면 결혼 전 소개팅을 많이 하던 시절에요. 한창 연애 해보려고 마음먹었을 때였는데, 한 4~5년 전쯤? 그때가 아마 가장 그랬던 것 같아요.
(연애를 무척 하고 싶으셨나 봐요.)
그럼요, 하고 싶었죠! 그때는 삶이 뭔가 밋밋했어요. 좋은 사람 만나보고 싶었고요. 아마 연애가 내 삶에 생동감과 에너지를 줄 수 있는 포인트가 될 거라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소개팅을 진짜 많이 했어요. 거기서 제가 ‘남들이 날 어떻게 평가할까?’를 가장 많이 느꼈던 게 직업 이야기 나올 때예요.
제가 제 직업을 말하면요, 대부분 “아, 멋지세요” 하거든요? 근데 거기서 끝이에요. 그날 만남도, 다음 만남도. 그 말 나온 이후엔 애프터가 없어요.
(그 사람들 눈에는 찬호 님이 어떻게 보였을까요?)
그걸 제가 스스로 생각해보면 ‘아직도 꿈을 좇네’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20대 후반인데도 아직. 그게, 남들이 저를 평가한다면 아마 그런 상태일 거예요.
네 쫓고 있습니다. 쫓고 있고, 보여드릴게요. 내 꿈이 어떤 얼마나 큰지.
그렇게 말을 할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본가에 살 때, 그 집이 살짝 반지하 같은 구조였거든요. 거기 벽에다가 뭐라고 붙여놨냐면요, "십일조 10억." 제가 낼 최종 십일조는 10억이다. 이 말은 곧 100억을 벌겠다는 거죠. 거기다 좋은 아파트, 좋은 차, 매니저까지 다 붙여놨던 기억이 나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냥,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면서 짜장면이랑 탕수육을 시킬 때 ‘뭐가 더 싸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삶. 가족들에게 시간을 막 쪼개서 겨우겨우 내지 않아도 되는 삶. 그런 게 저한테는 진짜 자유로운 삶 같아요.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리고 개인적인 목표로는 시상식 무대에 한 번은 서는 거죠. 저는 그 장면을 진짜 생생하게 그려요. 카메라가 제 뒷모습을 찍고, 줌 딱 들어오고, 무대 올라가고. 수상 소감은 이렇게 시작할 거예요. “저는 너무 부족한 사람인데요, 이 자리에 세워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웃음]
네, 저는 지금 그 꿈을 향하는 과정 속에 있는 것 같아요.
글쎄요, 딱 어떤 사건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그때 그 행동 안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어요. 하지 말아야 될 걸 한, 그런 소소한 실수들?
예를 들어… 어머님 앞에서 제가 담배 피우는 걸 보여드린 적이 있어요. 그런 바보 같은 순간들. 그런 건 후회돼요. 근데 제 인생 전체로 봤을 땐, 후회 없다!
저는 대학 입시요. 편입이었는데, 그걸 해낸 게 제 인생에서 진짜 잘한 일 1번이에요. 그걸 마무리하고 나서 ‘야, 나 편입도 했는데 이건 못하겠냐?’라는 마인드셋이 생겼어요. 그 에너지 덕분에 연기도 버티고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해내고 나니까 '앞으로 뭘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군요.)
맞아요. 그리고 만약 제가 영문학과 안 나왔으면? 솔직히 밥벌이 뭐 하고 있었겠어요. 연기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대도 훨씬 심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시에 부모님께서는 그래도 아들이 대학은 갔으니까 연기하다가 지쳐도 어딘가 취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학생들 과외할 때 꼭 얘기해요. ‘자기가 노력해서 뭘 이뤄본 경험이 되게 중요하다’고. 단어시험이든 뭐든. 그렇게 연결 지어서 공부시키는 거죠.[웃음]
이렇게 대학을 잘 간 게 첫 번째로 잘 한 일, 그리고 다음은 결혼을 잘 한 거죠.
원래 저는요, 소개팅 한창 할 때 ‘아, 나 결혼 못 하겠다’ 이 생각에 좀 사로잡혀 있었어요.
(어떤 면에서 그런 생각이 드셨던 걸까요?)
사람들이 제 직업만 보고 판단하니까요. 사람은 많이 만나봤는데, 제 상황을 진짜로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는 느낌이 컸어요. 그리고 제가 버는 돈만 봐도 그냥 저 혼자 살아가기엔 괜찮지만, 누군가와 함께 인생을 꾸려가긴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동생한테 늘 말했어요. "너 먼저 가. 선물 좋은 걸로 해줄게!" [웃음]
근데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됐어요. 그 사람이 저한테 딱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나는 찬호만 있으면 돼.” 물론 빈말일 수도 있겠죠. 근데 그 말이 용기를 줬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아, 이제 못 찾겠다. 이 사람이어야겠다' 그런 생각이 확 들었어요.
(너라는 사람 자체가 좋다는 말이었네요. 꿈이나 현실 조건보다 그냥 ‘너’가 좋다.)
그쵸. 그 말 듣고, 진짜 마음이 움직였던 것 같아요. 선배님들이 그런 얘기 많이 했거든요. “결혼은 남자가 마음을 먹어야 진행이 된다.” 그땐 잘 몰랐는데, 진짜 그렇더라고요. 저도 결혼해야겠다 마음먹으니까, 일자리도 구하고.
(책임감이 생기고, 진짜 이 사람과 함께 살아야겠다 결심했을 때, 나도 따라 움직이게 되는 거네요.)
맞아요, 맞아요. 그런 마음이 딱 생기는 시점이 있는 것 같아요. ‘믿어줘. 내가 보여줄게.’ 이런 마음. 그때부터 남자는 눈이 돌아가는 것 같아요. [웃음]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결혼 얘기를 하자면, 저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용기를 내게 만드는 건 결국 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나 자신이 어떤 의식으로 사느냐인 것 같고요. 그래서 항상 말해요. 좋은 사람 만나야 돼요. [웃음]
(근데 그 ‘좋은 사람’ 찾는 게 어렵잖아요. 결국 나부터 좋은 사람이 돼야 하고요.)
그쵸. 맞아요. 나부터 좋은 사람이 돼야 하고,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죠. 그래서 많이 만나보라고도 하고요. 그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소개팅을 열심히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아내도 그렇고 저도 약간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가정을 꾸린다고 할 때, 아이가 있어야 비로소 함께하는 공동체, 진짜 '가정'이라는 느낌이 완성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요.
만약에 아이 없이 우리 둘만 살 거였다면 굳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힐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을 것 같아요.
(결국 결혼이라는 복잡하고도 귀찮은 절차까지 하는 이유는 법적인 책임을 함께 지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자는 목표가 포함돼 있었던 거네요.)
맞아요. 저랑 아내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제 곧 태어날 아이에 어떤 기대를 가지고 계신가요?)
저희 아이 태명이 ‘루포’예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고 가실 때 대신 짊어진 사람, 구레네 시몬이라는 인물이 있거든요. 그 사람의 아들 이름이 루포예요.
저는 제 삶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서, 또 목사님 아들로서의 삶이 좀 억지로 짊어진 십자가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어요. 근데 성경에서는 그렇게 억지로라도 순종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고 하거든요. 그리고 루포의 어머니도 믿음이 좋았대요.
그래서 저희는 의미를 이렇게 잡았어요. 저는 구레네 시몬, 아내는 루포의 어머니. 이렇게 의미를 담으니까 아내도 되게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기독교인 친구들은 또 더 재미있어하고요.
요즘은 아내한테 매일 저녁 튼살 크림을 발라주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머리카락 끝부터 발끝까지 건강하고, 준수하고, 아름다운 외모까지 갖게 해달라고요.
(아름다운 외모까지요? [웃음])
그쵸. 딸이거든요. [웃음]
암울해요, 암울해. [웃음]
뭐 재정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제일 큰 건, 아마 자유를 포기하기가 힘든 거 아닐까 싶어요.
정확히 말하면 ‘자유’라기보단, 혼자 있을 수 있는 지금 이 시간, 그 에너지랑 만족감이 너무 크고 좋으니까 그걸 누군가랑 나누고 싶지 않은 거죠.
물론 돈 문제도 분명 클 거예요. 근데 결국은 뭔가를 포기해야 된다는 거, 그게 두려운 거죠. 그래서 연애도 힘든 것 같아요. 결혼은 당연히 어렵고, 연애조차도. 왜냐면, 연애를 하려면 무언가를 내려놔야 하잖아요.
그 ‘포기’라는 게 늘 마음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아요.
벌써 끝이에요? [웃음]
TV나 영화에서 더 자주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자주 얼굴 비출 수 있게 노력할게요.
그리고 그냥 아무 말 하나 하자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이 글을 써주는 작가님도, 그리고 저랑 우리 가족 모두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 찬호 님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actor_chano/
관종에게 너무 필요한 시간이었고요. [웃음]
근데 이 관종이 또 어떤 성향이 있는 줄 아세요? 인터뷰를 해준 사람의 느낌도 궁금해한단 말이에요.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저 인터뷰하면서?
(저도 정말 재미있었어요.
사실 우리,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잖아요.
그동안 자주 연락하진 않았지만, 서로가 자라오고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멀리서 지켜봐 왔고요.
‘배우를 한다더라’, ‘영문과에 갔다더라’ 같은 이야기들은 건너 건너 들었지만, 박찬호라는 사람이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왔는지, 또 ‘관종’이라는 성향을 어떻게 충족시키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를 직접 들으니까 정말 새롭게 느껴졌어요.
게다가 지금은 가족을 꾸리고,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의 역할까지 해내며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까지 보게 되니까 참 감동적이었고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내가 몰랐던, 놓치고 있던 이 사람의 시간을 함께 경험한 느낌이라서 무척 감사했고, 진심으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