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여기] 31. 촬영감독, 풍류

가장 아름답게 「 」 을 담고 싶은

by 김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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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째 인터뷰이는 프리랜서 촬영 감독, 풍류 님입니다.


목차

1. 인물소개

2. 어쩌다 여기 : 처음 시작은 '기술을 배워라'였어요.

3. 오늘 여기의 나 : 프리랜서 촬영 감독

4. 삶에 대한 평가

5.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6. 기타질문

7. 자기PR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8.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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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별명) : 풍류

나이 : 35세

성별 : 남성

학력 : 전문대 졸업 이후 4년제 재입학하여 졸업 / 영상제작 → 사진

경제력 : 동년배에 비해 여유롭게 사는 편. 단, 벌이의 편차가 심하다.




1. 인물소개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름, 나이, 성별(성 정체성)

저는 풍류라고 합니다. 35살 남자고, 20살에 예술대학에서 영상제작을 전공하고, 30살에 다시 사진과에 입학해 졸업했습니다.

프리랜서 촬영 감독으로 일하고 있고, 벌이의 편차가 심한 편이지만 같은 나이대에 비해서 되게 여유롭게 사는 편입니다.




2. 어쩌다 여기 : 처음 시작은 ‘기술을 배워라’였어요.


• 촬영 감독이라는 직업이 어떤 면에서는 독특하게도 느껴집니다. 어릴 적부터 촬영, 영상물에 관심이 많았나요?

원래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대전 시내 쪽에 살면서 학교 축구부를 계속 했는데, 아빠가 직업군인이시다 보니까 수원으로 이사를 가게 됐어요.


수원에서도 축구를 이어가긴 했어요. 초등학교 때 코치님이 새 학교에 전화도 해주시고, 마침 신생학교라 축구부도 새로 만들고. 훈련하고, 대회도 나가고. 근데 신생이라 그런지 뭔가 체계적이라기보단 그냥 방과후 활동 느낌이었어요. 중3 되니까 진로 문제로 시합도 못 나가고, 축구로 두각을 나타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선생님한테 고등학교 스카우터한테 추천서 좀 써달라고 했는데, 안 된대요. 제가 대회 성적도 없고, 골을 많이 넣은 것도 아니니까요.


선생님은 축구를 계속하고 싶으면 다시 대전으로 내려가라고 하셨어요. 거긴 기숙사 학교도 있으니까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고. 근데 엄마는 딱 잘라서 반대하셨어요. "누가 너 키워준다고 하면 생각해볼게. 근데 제 발로 간다는 건 안 된다."


사실 형은 체고에서 스카우트 연락도 왔었거든요. 근데 저는 그런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엄마도 현실적으로 안 된다고 본 거죠.


그 당시 엄마가 청소년 상담사였는데, 고등학교 중에 영상을 하는 학교가 있으니 거기에 지원해 보라고 하셨어요. 거긴 대학교랑 연계되어 있어서 고2까지 학창 생활을 잘 하면 대학교에 곧장 진학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사실 저는 남들 앞에 서는 것도 좋아했고, 개그맨도 하고 싶고, 연예인도 하고 싶어 했어요. 그저 까불이였죠. 그 고등학교에는 방송연예 쪽 과가 없었지만, 대학에서 전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부모님은 연예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두각을 드러내지 않는 한 수명이 짧으니 ‘영상 기술을 배워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고등학생 때부터 영상을 시작했죠.


(어린시절에 축구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상당히 컸을 것 같은데, 어머니 말씀에 설득된 이유가 뭐였나요?)


현실적으로 축구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제가 어릴 때부터 관심받는 걸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방송연예 쪽으로 전과해보자, 그런 생각을 했죠. MC를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제가 말하면 사람들이 눈이 똘망똘망해지고, 애들이 막 자지러지고. 그런 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는 라디오 오디션도 봤어요. 근데 그때 느꼈죠. 아, 내가 갖고 있는 텐션은 그냥 엄마 아빠 앞에서 재롱 떠는 수준이구나. [웃음] 좀 쓴맛을 봤어요. 지금 생각하면 흑역사죠. 그래도 그때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로는 교회 프로그램에서 레크리에이션 자격증도 따고, 지역 이벤트 회사 알바도 했어요. 오리탈 쓰고 애들 운동회 진행도 하고, 겨울에 강당에서 MC도 보고. 그렇게 마이크 잡는 경험을 하나씩 쌓아갔죠.


사실은 그냥 용돈 벌고 싶어서 알바하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학생이 아르바이트 하는 걸 안 좋게 보는 시선도 좀 있고 그래서 엄마가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그럼 진로랑 연결되는 알바만 하자' 이런 식으로 합의가 됐죠.

그렇게 학교 제도 통해서, 수능 없이 대학까지 가게 됩니다.


• 대학 진학 후 전과를 계획하고 있었다고 하셨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전과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나요?

대학을 갔는데, 알고 보니까 저희 과가 등급이 높더라고요. 공부 좀 하는 애들이 온 거예요. 애들이 다 차분해요. 그러다 보니 과 안에서는 제가 제일 말을 잘하는 거예요. 근데 우물 안 개구리더라고요.


방연과 애들이랑 친하게 지냈는데, 와, 거긴 피가 달라요, 진짜. 도핑 테스트 해봐야 돼. 어떻게 저렇게 텐션이 나오지?


그때 알았어요. 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건 좋지만, 멋있고 싶었던 거지, 막 망가지고 싶은 건 아니었던 거죠. 저는 그냥 재미있는 사람이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영상 공부에 더 집중하게 되신 거군요.)


맞아요. 저는 연출 전공이었는데, 연출하려면 촬영도 알아야 되고 편집도 알아야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 했어요. 그걸 하다 보니 촬영 알바가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웨딩도 찍고 인터뷰도 따고. 그게 재밌는 거예요.


그 당시엔 영상 일이 호황이라, 카메라만 다룰 줄 알면 일할 수 있었어요. 현장 나가면 난 그냥 대학생인데도 ‘아이고 전문가시네요, 잘 부탁드려요~’ 이런 대접도 받고. 어른들이 왜 기술 배우라고 하는지 알겠더라고요.


물론 쫄렸죠. 나 사실 그 정도 실력은 아닌데. 괜히 밑천 드러날까 봐 조마조마하고. 학교에선 학생인데 카메라 들면 돈 받고 일하는 프로잖아요. 그러니까, 실력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게 됐죠.


그렇게 생활하다가 군대에 갔습니다. 군대에서도 계속 영상을 했죠.


• 군생활 중에도 영상을 계속 할 수 있나요?

제가 군대도 영상 쪽으로 갔어요. 군대에는 사진병이랑 정훈병이 있거든요. 사진병은 사진기능사 자격증이 꼭 있어야 돼요. 근데 정훈병은 관련 학과만 나오면 면접 보고 들어갈 수 있어요.


저는 영상 관련 학과였으니까 정훈병 면접을 봤고, 합격해서 특기병으로 갔죠. 주로 촬영, 편집, 포토샵 작업 같은 걸 하면서 부대 신문 같은 것도 만들어요. 부대마다 정훈병이 다 있어요. 제가 갔던 부대에는 딱 두 명이었고, 그 두 명이 그 부대의 영상이랑 편집 같은 걸 다 하는 거예요.


(요즘으로 치면 공군 유튜브 같은 데 올라오는 영상들 만드는 역할이네요?)


맞아요. 근데 막 입대하면 제가 막내잖아요. 정훈병 둘 중에 짬 높은 사람이 편집을 하니까 제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선임이 전역하지 않는 이상 편집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잡일만 해야 돼요.


근데 편집은 손이 녹슬면 안 되거든요. 딱 그 시기에 아이티 파병 공고가 떴어요. 2010년에 아이티에 지진 났을 때, 대한민국도 UN평화유지군으로 파병을 갔는데, 그 부대에서도 영상병을 딱 한 명 뽑는다는 거예요. 거길 가면 편집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원했어요.


(무섭지 않았어요? 여진도 계속 있었을 텐데요?)


무섭죠. 근데 그냥 가만히 있으면 선임 전역할 때까지 편집은 못 하고, 시간만 버리게 되니까. 물론 그때 욕 진짜 많이 먹었어요. "이등병 새X가 도망가려고 한다"는 말까지 들었어요.[웃음] 뭐, 뽑힐지 안 뽑힐지도 모르는데 그냥 썼죠. 근데 합격됐어요. 공문도 나왔고요.


그러고 나서 파병 전에 한두 달 정도 교육을 받았어요. 저는 활동기록영상을 촬영하고 아이티 단비부대 홍보영상을 만드는 업무를 했고, 그 영상을 아이티UN지사, 다른 국가의 파병 부대, 아이티 지역 신문사 등 다양한 매체에 공유했어요. 그리고 아이티에 있는 동안 모든 행사의 끝엔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듯이 아이티도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단비부대가 돕겠습니다.’라는 내용으로 홍보 영상을 틀어주는 줬어요.


원래 파병은 6개월 코스인데, 중간에 김정일 사망 이슈가 터지면서 국방부에서 귀국 보류 지시가 내려졌어요. 그래서 한 달 더 연장됐고, 저는 상병이 돼서 귀국하게 됐죠.


(그럼 이제 드디어 정훈병으로서 영상 편집을 할 수 있게 된 건가요?)


그게… 제가 파병 간 동안 제 자리에 다른 병사가 충원됐거든요. 그러니까 복귀했는데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경력이 좋으니 어디 삽질하러 보내긴 아깝고. 그냥 옆에 의자 하나 두고 앉아서, 애들이 뭐 물어보면 알려주고 그랬어요. 영상 쪽으로는 제가 경험이 많았으니까요. 그렇게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전역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오니까 시대가 완전 바뀌어 있는 거예요. 전엔 6mm 테이프 썼는데 메모리로 바뀌고, 백업 방식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거예요. 졸업까지 1년 반 남았는데, 그중 1년은 졸업작품 찍어야 하니까 6개월 안에 따라잡아야 했죠. 정신없이 배우고 졸업했어요. 그리고 취업을 합니다.


• 드디어 졸업 후 첫 취업을 하셨습니다. 첫 직장에선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저는 서울 소재의 관공서 홍보팀 계약직으로 들어갔어요.


(방송과 직접 관련된 일은 아니었네요?)


당시 제 동기들이 취업을 했는데, 방송 쪽은 조연출로 들어가도 월급이 두 달에 60~70만 원 수준이었어요. 전부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말이 조연출이지 거의 시다바리 수준이죠. 방송 업계가 ‘네가 원해서 왔잖아. 배워야지.’ 이런 분위기가 있거든요. 이제 막 졸업한 애들은 주로 아침 방송 쪽으로 제일 많이 가는데, 매일 밤새고 찍고 편집하고 넘기고 반복이에요. 근데 저는 그런 곳에 저를 소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 아는 선배가 있다가 나가면서 소개해준 홍보팀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당시에는 월급 150을 받으면서 되게 만족했어요. 같이 졸업한 다른 애들은 두 달에 60만원 받고 라면도 육개장만 먹어야 하고, 왕뚜껑 먹으려면 다음날 굶어야 하는데[※농담], 저는 훨씬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으니까요.


관공서에서는 제가 그래픽을 조금만 만지면 잘한다고 칭찬해주시고 그랬어요. 조금 힘들었던 건, 제가 조금만 새로운 시도를 해도 컷, ‘여기 예술하는 곳 아니야. 그냥 하던대로 해.’ 이런 반응이더라고요. 공무원 사회가 경직된 분위기다보니 결핍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세상의 영상을 하고 싶었어요. 연옝니도 찍고 싶고, 광고도 찍고 싶고.


(보다 트렌디한 작업을 하고 싶으셨군요.)


제가 뒤처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관공서에서 일할 때는 제가 대학교, 군대에서 배운 걸 쓰는 거였어요. 더 배우는 거 없이 고갈되는 느낌이었어요. 맨날 똑같은 것만 하니까요. 그래서 주말에 알바를 나가기 시작했어요. 웨딩 촬영, 광고 메이킹, 광고 연출, 광고 촬영, 인터뷰 촬영 등.


주말 현장에서 막 조명 치는 거 보고 배우고, 되게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평일엔 출근해서도머리는 콩밭에 가 있는 거예요. “이번 주말에 누구한테 연락하지?” 이런 생각만 하고.


회사 출근은 그냥 월급을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니 재미도 의미도 없어졌어요. 그러던 중에 공무원과 계약직 사이의 차별을 체감하는 일도 있었고, “아, 이제 이거 때려치우자.” 결심했어요.


(홍보팀에서는 얼마나 일하셨나요?)


퇴사할 무렵이 5년 차였어요.


(꽤 오래 다니셨네요.)


솔직히 돈이 무서웠어요. 쉽게 때려치울 용기가 없었던 거죠.

때마침 군대 선임 형이 프로덕션을 한다고 해서 퇴사하고 거기에 입사했습니다.


• 관공서 홍보팀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벗어난 뒤의 삶은 어땠나요?


선임 형의 회사는 주로 광고 메이킹 영상을 다루고, 다양한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회사였는데, 더 디벨롭하면 직접 광고도 찍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 저를 촬영감독으로 만들어준 귀인이 될 형님을 만났어요.


“너 회사에 일 없을 때 나 따라다니면서 배워라.”


그 형님이 이렇게 말씀하셔서 저는 그분을 따라다녔어요. 그렇게 회사를 1년 정도 다니다가 회사의 방향성이 제가 기대했던 것과 조금 다르다는 걸 깨닫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는데, 한동안 번아웃이 왔어요.


(번아웃이 온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인 거 같아요.


당시 광고 대행사랑 일을 많이 했어요. 저는 항상 A, B, C, D안까지 만들었어요. 내 모든 지식, 능력, 테크닉, 어디서 주워들은 것까지다 긁어 모아서 영상을 만들었어요. 1년 동안. 그런데 마지막에 영상 4개를 만들어 보냈더니 콜백이 온 거예요. ‘너무 놓은데, 딴 거 없어요?’ 근데 저한테는 더 이상 다른 게 없었어요. 이게 내 최선인 거 같은데 내 최선이 부족하다고 하니까요.


그런 일이 점점 많아졌어요. 어쩔 수 없이 컨펌이 나는 분위기. ‘열심히’로는 ‘잘’되지 않는 상황.


고등학생 때부터 영상을 했던 게 다 무용지물이 된 것 같고, 쪽팔리고, 내 인생을 비관하게 되더라고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매일 술 마시고 누워있기만 했어요.


하고 싶은 마음은 이만큼인데, 실력은 여기까지야.


(그 좌절을 이겨내셨기에 지금 촬영 감독이 되셨겠죠. 어떻게 딛고 일어섰나요?)


그때 다짐을 했어요. 누군가가 나한테 ‘너 못해. 이제 너 감 다 떨어졌어. 네 영상 별로야.’ 이렇게 말할 때까지 해보기로요.

그래서 다시 학교에 들어갔어요. 서울 소재의 사진과에 입학을 했죠.


• 앞서 전문대를 졸업한 후 다시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고 하셨는데, 그게 번아웃 때문이었군요. 그런데 사진과로 들어간 이유가 뭔가요?

사진과 영상은 한끗 차인데, 완전히 다른 분야예요.

저는 이걸 요리로 많이 비유해요.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모두 재료는 비슷해요. 하지만 그걸 만들어내는 과정과 그 아웃풋이 완전히 달라요.


(비슷한 재료로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매체를 공부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원래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기도 했어요. 근데 사진 전공을 한 지인이 제가 찍은 사진을 보고 ‘그냥 영상하는 애가 찍은 것 같다’는 평가를 하더라고요. 그때 사진을 배워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사진과 영상은 접근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더라고요.


영상은 최소한의 정답이 있어요. 화질 좋고 노출 잘 맞고 오디오 잘 들어가면 좋은 거죠. 근데 사진은 달라요. 노출을 잘못해서 완전히 하얗게 나와도 교수님은 이렇게 찍은 의도가 뭐냐고 물어요. 정답이 없는 거죠.

이런 공부를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더 빨리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말씀을 들어보니 이전에 졸업한 학교에서의 공부와는 배움의 방향이 많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전문대에서는 더 효율적이고 테크닉적인 부분을 가르쳤다면, 사진과에서는 조금 더 학문적인 걸 가르쳤어요. 학문을 배우면서 제 안에 작은 샘이 생긴 느낌이었어요. 적더라도 계속 물이 채워지는 샘이요.


(학교를 다니면서도 계속 일은 하신 건가요?)

네. 아까 말씀드린 형님을 따라다니면서 계속 일을 같이 했어요. 그리고 형님 따라다니면서 일하고 공부하던 중에 형님이 ‘이제 네가 할 때가 됐다.’고 하시면서 카메라를 잡게 하셔서 입봉을 하게 됐습니다.


• 입봉 후 정식으로 촬영 감독이 되었을 때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기업의 바이럴 광고를 찍었어요. 정말 운이 좋았죠. 드라마타이즈 형식이었는데, 그날 제가 얼마나 떨었는지 모니터밖에 안 보였어요. 다른 팀들은 세팅 중인데 저는 카메라 세팅 끝났다고 ‘가시죠!’ 이러고 있고. 현장의 호흡을 전혀 읽지 못하고 손만 바들바들 떨었어요. 콘티를 정말 많이 보고 공부하고 준비해 갔는데, 현장에선 아무 생각도 안 났습니다.


그날 눈이 펑펑 오던 날이었는데, 전 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와, 진짜 잊지 못합니다.


손은 또 얼마나 떨었는지 카메라가 떨리는 장면도 있어서 연출 감독님이 ‘카메라가 왜 흔들리죠?’라고 물어볼 정도였으니까요.


지금도 저를 이끌어준 형님은 “감독님, 아직도 그때처럼 그래요?” 하고 놀려요.[웃음]


정말 감사한 건 부사수 입봉한다고 사수 감독님이었던 형님께서 1st(촬영팀 퍼스트)로 와주셨습니다. 업계에서 정말 보기 힘든 일이에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형님 분께서 풍류 님을 정말 많이 도와주신 것 같습니다. 풍류 님을 정말 많이 아끼셨나 봐요.)


나중에 물어봤어요. 왜 저를 그렇게 챙겨주고 데리고 다녔냐고. 그랬더니 오지 말라고 신호를 줬는데도 제가 계속 와서 스케줄 이때 됩니다, 실수해서 혼나도 나중에 다시 실실 웃으며 와서 또 일하고.[웃음]


형님께 정말 많이 배웠는데, 그중에서 가장 잘 배웠다고 생각하는 건 사람이 되는 방법이었어요.


나중에 형님이 저 데리고 다니셨던 것처럼 저도 그때의 저같은 애들을 데리고 다닐 때가 올 텐데, 그때 절대 돈 늦게 주지 말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하는 모든 것들을 먼저 잘 지키라고 하셨어요. 촬영 스킬이나 이런 건 나중에 배워도 될 일이니 사람부터 되라고. 그리고 항상 재미있게 일해라. 재미 빼면 없다.


그걸 마음에 새기고 아직까지 지키면서 살고 있어요.


• 그렇게 입봉을 하신 후 지금 벌써 4년째 일을 하고 계십니다. 풍류 님이 생각하시기에 풍류 님 자신은 사업적으로, 또 실력적으로 얼마나 성장한 것 같나요?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아예 다른 사람이 된 느낌이에요. 매년 50% 이상의 성장을 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나 잘한다!’ 이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해요. 그리고 포트폴리오도 최신 6개월치만 쓰려고 해요. 왜냐하면, 1년 전 작업할 땐 호응이 좋았어도 지금 보면 이거 왜 이렇게 찍었지 싶은 게 있어요.

이게 지금은 그때보다는 지금 좀 더 성장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3. 오늘, 여기의 나 : 프리랜서 촬영감독


• 촬영 감독, 그중에서도 프리랜서 촬영 감독으로 일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요. 일반 촬영 감독과 프리랜서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일반 촬영감독이라고 하면 회사 소속 촬영감독일 텐데, 회사에 계신 분들은 보통 촬영 분야가 정해져 있죠. 전부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촬영 범위가 좁기 때문에 비교적 경험이 한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제 주변 친구나 지인을 봐도, 장르에 갇혀 있는 감독들이 많아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프리랜서 감독은, 음, 글쎄요. 장르를 크게 따지지 않고 일을 받다 보니 새로운 경험ㅇ르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는 TV 광고, SNS 바이럴, 기업 홍보가 메인이고, 사진도 찍습니다.


• 프리랜서는 어떤 식으로 일을 구할 수 있나요?

거의 다 소개죠. 소개로 전화가 와요. 기존에 같이 일하던 피디나 연출 감독들이 ‘이번에 스케줄 되냐’고 먼저 연락을 줍니다. 그 연출 감독들은 대부분 제작사에 소속된 분들이에요. 그런 제작사 사람들이 팀 꾸릴 때, 필요한 사람 찾아서 연락하는 구조예요.

간혹 제가 찍은 결과물을 보고 연락이 올 때도 있어요.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와서 이번에 OOO촬영하셨죠? 하고.


(그럼 일이 많을 때, 적을 때 그런 계절적인 흐름도 좀 있나요?)


그럼요, 비수기 성수기 딱 있어요. 장르마다 좀 다르긴 한데, 제가 하는 장르 기준으로 보면 겨울은 비수기예요. 왜냐면 기업들이 제 클라이언트잖아요. 기업은 회계연도가 1월부터 12월이에요. 그러니까 12월 전에 예산을 다 써야 하거든요. 12월에 돈을 다 털려면, 실제 촬영은 11월까지 마무리돼야 해요. 그리고 1~3월은 또 다음 해 예산 짜느라 일이 별로 없고.


그래서 겨울은 진짜 조용해요. 반면에 봄부터 가을까지는 성수기죠. 근데 또 여름, 가을은 장마 때문에 촬영이 자꾸 밀려요. 그래서 저희끼리는 “약속의 9, 10, 11월”이라고 해요. [웃음]


기업들이 하반기 예산을 그때 다 쓰니까, 진짜 평소에 일 없던 사람도 이때는 바빠요.


• 프리랜서 촬영 감독으로서 영상 제작 외적인 부분으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견적이랑 팀 조율이에요. 제가 총견적을 받아서 그 안에서 다 맞춰야 하니까요.


근데 이게 매번 달라요. 어떤 팀은 진짜 잘하니까 조금 더 챙겨드려야 하고, 또 어떤 분은 장비도 본인 거 쓰시니까 인건비에 장비값까지 붙고요. 그걸 제가 싹싹 빌듯이 조율해야 돼요.

항상 예산은 한정돼 있으니까, 현실이랑 이상 사이에서 타협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부상조하는 분위기도 있어요. 오늘은 내가 조금 양보하고, 다음엔 네가 좀 도와주고. 그래서 인맥 관리가 진짜 중요하고요.


그리고 또 하나, 절대 사기치면 안 돼요. 이쪽은 돈 문제 깔끔하게 안 하면 금방 소문나요. 그래서 저는 돈 관리나 정산 같은 건 정말 신경 많이 써요.


그만큼 사람 간의 신뢰, 그게 이 바닥에선 제일 중요해요.


• 촬영 감독으로서 일을 하면서 즐거운 점과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즐거울 땐 계획한 대로 장면이 딱 나왔을 때예요.


촬영이란 게, 촬영 당일에 가서 바로 찍고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그 전에 장소 헌팅도 가고, 조명 테스트도 하고, 시간대별로 빛이 어떻게 드는지까지 다 체크해야 해요.


예전에 대학교 홍보영상 하나 찍을 때는, 6개월 동안 준비했어요. 본 촬영 전에는 거의 매일 학교 갔죠. 해 뜰 때, 질 때, 아침, 점심, 저녁, 밤, 그 시간대마다 건물 그림자 어떻게 바뀌는지, 언제 학교가 제일 예뻐 보이는지 계속 보고 기록하고요.


큰 프로젝트만 그런 게 아니라, 작은 작업이라도 저는 무조건 헌팅 가요. 그러면서 또 계속 레퍼런스도 찾아보고, 요즘 뭐가 유행인지, 어떤 무빙을 좋아하는지, 어떤 기술을 써야 비슷한 느낌이 나는지. 집에선 티비도 무조건 켜놔요.


뭐 광고 같은 거 하나 지나가도 ‘어? 저거 어떻게 찍었지?’ 그런 거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그렇게 준비하고 연구하고 테스트한 끝에 딱 내가 그렸던 장면이 나와주면, 아, 그게 진짜 즐거워요.

(반대로 힘든 점은 어떤 점일까요?)


현장에서 항상 하는 말이 있어요.


“즐겁게 일하자.”


왜냐면, 일 자체가 너무 힘드니까. 진짜로 우리끼리는 이 일을 노가다라고 부르거든요. 더울 땐 더운 대로, 추울 땐 추운 대로 밖에서 계속 일해야 하니까요.


어차피 고생하려고 모인 사람들이니까 최대한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 만드는 게 진짜 중요해요. 근데 일이란 게 즐거울 수만은 없는 순간들이 또 오죠. 촬영이 딜레이 된다거나, 돈 문제 생기거나.


그중에서도 전 사기를 꺾는 말, 존중 없는 말 들을 때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다들 그럴 거예요. 그런 말 한 마디에 그날 현장 분위기 다 망가질 수도 있거든요.


(결국엔 제일 힘든 건 사람 사이에서 오는 거네요.)


맞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욕심이 좀 있어요. 연출이 뭔가를 요구하잖아요? 그게 되든 안 되든, 저는 어떻게든 해보고 싶어요.


그게 잘 안 됐을 때 제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진짜 많이 받아요. ‘아, 나 왜 이것도 못하지? 이거 될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다 보면 결국 내가 공부를 더 했어야 했구나. 준비가 부족했구나. 그렇게 돌아보게 돼요. 그러면 또 혼자 후회하고요.


(스스로한테 좀 가혹한 스타일이신 것 같아요. 그런 자세가 결국에는 좋은 작업물로 나오는 거라 생각합니다.)




4. 삶에 대한 평가 – 나, 그리고 타인


• 현재 본인의 삶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저는 지금 삶에 너무 만족해요.


(풍류님의 얼굴에서도 그게 느껴져요. 행복해 보이세요.)


네, 진짜예요. 특히 부모님께 너무 감사하죠. 멘탈이든 신체든 엄마 아빠가 저를 정말 잘 케어해주셨어요. 태어난 순간부터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둘째거든요.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형한테도 예쁨 받았고요. 어릴 땐 부모님이랑 같이 교회가서 목사님께 안수기도 받으면 항상 “사랑 받는 아이”라고 기도해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어릴 때 엄청 까불었는데도 그냥 늘 예쁨 받는 아이였어요.


그러다보니 사실 학교 성적 같은 건 그렇게 중요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어요. 왜냐하면 난 이미 사랑받고 있으니까요.


제가 엄마 아빠한테 늘 그랬어요. “나도 빨리 결혼해서 애 낳고 싶다”고. 엄마 아빠가 저한테 보여준 양육 방식이 너무 좋았거든요. 저도 나중에 그런 부모가 돼서, 저처럼 행복한 아이를 키우고 싶어요.


• 다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한다면 어떤 식으로 평가하거나 또 할 것 같나요?

사람들은 제가 되게 맘 편히 사는 부자라고 생각하는 거 같더라고요.

사실 저도 생각이 되게 많고 스트레스에 취약해요.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거든요. 그런데 남들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나 봐요.


(어째서 그런 거 같은가요?)


제 이름의 뜻이 ‘높은 자리에서 풍류를 즐긴다’예요. 그래서 그런지 정말 풍류를 즐기는 것처럼 살아요. 가장 재미있고 즐겁고, 또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사는 건데 남들이 봤을 땐 부럽게 보이나 봐요.

나이나 돈 같은 걸 신경 안 쓰고 사는 것처럼 보여서 그럴 수도 있는 거 같아요.


(자신들이 평가하는 풍류 님과 실제의 풍류 님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느끼는 듯하네요.)


제가 평소에 장난을 많이 치다 보니까 좀 가볍고 진지하지 못하게 보이나 봐요.

같이 일하는 동생들도 ‘형님, 체통 좀 지키세요.’이러고요. [웃음]

또 겉이 유해보이니 속도 유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은 거 같아요.


• 혹시 풍류 님을 그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 생각보다 잘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해 준 사람들한테만 집중해도 예, 부족하다.


•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신 가요?

일적인 걸 먼저 말하자면, 나중엔 교육을 좀 하고 싶어요. 촬영 관련해서요. 저랑 비슷한 레벨의 친구들이나 이미 업계에 오래 있었던 숙련자들 말고, 정말 완전 초보자들. 영상에 관심은 있는데 접근하기 어려운 분들이 있잖아요. 예전에 제게 귀인이나 다름없는 형이 저에게 해줬던 것처럼요.


실제로 영상을 한번 해보려고 하면, 되게 어려운 점도 많고, 현실적으로 힘든 부분도 많거든요. 근데 저는 그 모든 걸 덮을 만큼 좋은 경험이 많았고, 그걸 좀 나누고 싶어요. 단순히 기술적인 거 말고, 제가 사진 공부하면서 쌓은 시선이나 철학 같은 것들 있잖아요. 그걸 영상이라는 매체에 녹여서 내가 나름대로 만들어온 것들을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외에는 사실 깊게는 생각 안 해봤는데요. 그래도 어릴 때 친구들이랑 많이 했던 얘기가 있어요. “나는 할아버지 돼서 웃다가 갈비뼈 한 번 나가봤으면 좋겠다.” [웃음]


내가 막 웃고 있으면 우리 아들이든 딸이든 와서 “아빠, 그만 좀 웃으세요. 저번에도 웃다가 갈비뼈 나갔잖아요.” 막 이렇게 말하는 거죠.


(풍류님은 화목하게 웃을 일 많은 삶을 살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맞아요. 그리고 진짜 오래 살아서, 나중엔 TV에도 한번 나가보고 싶어요. [웃음]




5. 후회하는 일과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


•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을까요?

공부를 좀 더 할 걸 그랬어요. 어릴 땐 공부를 그냥 성적 잘 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했거든요. 그러니까 당연히 재미가 없었죠. 근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과목은 진짜 재밌더라고요. 막 100점도 맞고. 그게 암기가 아니라, 그냥 이해가 돼서 너무 재밌는 거예요.


(공부의 본질을 모를 땐 싫었는데, 알고 나니 재미있어졌군요. 아마 사진 공부를 하시면서 공부의 맛을 경험했을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그거 진짜 제대로 맛봤죠. 그 이후부터는 친구들한테 “야, 학교 가. 일하지 말고. 지금 일해서 1년에 10억 벌 거 아니면 그냥 공부해.” 이래요. [웃음]


제가 3년 정도 공부를 하면서 쌓은 것은 어느 순간 고갈되는 시점이 올 거예요. 채웠으면 비우고 소비하고, 또 결핍이 생기는 만큼 다시 채우고. 앞으로도 공부를 하겠지만, 저는 그 결핍을 느끼는 것 자체가 좋더라고요.

• 반대로 내가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을까요?

부모님 말 듣고 고등학교 원서를 그 학교로 넣은 거요. [웃음] 원래는 수원에 있는 실업계 가고 싶었거든요. 거긴 머리 기를 수 있었어요. [웃음] 하지만 엄마가 하라는 대로 넣고, 그 학교 가서 졸업하고, 대학도 가고, 그게 지금까지 다 연결이 됐어요. 지금 생각하면 진짜 신의 한 수였죠.


이렇게 말하니까 마마보이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부모님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잖아요![웃음]




6. 기타 질문


• 풍류 님은 앞서 결혼하고 아이도 갖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어째서 결혼과 아이를 원하시나요?

음… 저는 일단 우리 가족을 진짜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처럼 살고 싶었고요. 엄마 아빠만 좋은 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들까지 다 너무 좋았거든요. 할아버지가 저를 볼 때 그 눈빛 같은 게 있어요. ‘아,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그런 느낌.


그러면 나도 아이를 낳으면, 우리 엄마 아빠한테 그런 사랑을 돌려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그런 눈빛을 받는 할머니가 될 수도 있을 테고. 내가 못 겪어본 어떤 감정이나 순간들을, 아이를 통해서 경험할 수 있을 거 같았어요. 그래서 낳고 싶었고, 지금도 그래요.


(풍류 님이 이 세상에서 느낀 아름다운 감정이나 순간들을 아이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거네요.)


맞아요. 그리고 애가 태어나서 막 걷고 하면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우리는 다 익숙해져서 지루해진 오브제들, 예를 들어 매연 냄새, 담배 냄새, 바닷물 짠맛 같은 것들이 그 아이한테는 다 처음일 거 아니에요. 그런 신기한 순간들을 보면서 나도 다시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원하는 마음이 커요.


• 풍류 님이 생각하시기에 우리나라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근데 그게요, 제 친구들은 다 결혼했어요. 맨날 고등학교 친구들이 연락 와서 "야, 전화 너만 남았다" 이래요. 이미 다 결혼하고, 애도 낳고, 뭐 일찍 사고쳐서 결혼한 친구들도 있고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결혼을 안 한다는 말이 전혀 체감이 안 돼요. 청첩장이 매일같이 날아오거든요.


(풍류 님의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에 "결혼 안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피부로 느껴지진 않는다 이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통계가 잘못된 것 같고요.[웃음] 아니면 제가 결혼을 아직 안했기 때문에 못 느끼는 걸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아무튼 제 주변 사람들은 다 결혼해서 저만 남았습니다.[웃음]


(여태까지 이런 시각에서 말씀해주신 분은 처음이에요. 굉장히 신선하네요!)




7. 자기PR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어필하고 싶은 게 있나요?

베이컨 만들기는… 여름엔 하지 마세요. 진짜로요. [웃음] (풍류님의 취미는 베이컨 만들기다. 여름에 하다 더워 죽을 뻔 했다고.)

그리고 혹시라도 이거 보시는 분들 중에, 영상이나 사진이 필요하신 분이 있다면 잃어버린 앵글, 제가 찾아드립니다.

정성스럽게 모시겠습니다. 제가 올라운더라 뭐든 잘 찍긴 하지만, 특히 공간을 정말 잘 찍어요. 평범해 보이는 공간도 조금 더 아름답게 담아드릴 수 있어요.




8. 마침


• 혹시 오늘 인터뷰 소감 여쭤봐도 될까요?


진짜 특별한 이벤트였어요. 제안이 왔을 때는 좀 어벙벙했거든요. 너무 신기했죠. 저는 제 얘기하는 걸 되게 좋아해서, 인터뷰가 길어지긴 했는데 작가님이 힘들진 않으셨을까 걱정도 좀 되고요. 사실 중간에 빼먹은 에피소드도 많아요. [웃음]


[※ 인터뷰는 총 3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인터뷰 정말 재미있었어요. 집에서는 뭔가 멋있는 말을 해야 하나 정리도 해봤는데, 사실 그런 거 다 필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제가 느낀 걸 그대로 쏟아낸 거니까요.


이 텍스트는 앞으로도 남아 있을 거잖아요. 나중에 10년, 20년 뒤에 제가 이걸 다시 봤을 때 ‘아,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만약 그때 제가 행복하지 않더라도, 지금 행복했던 이 마음이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까요. 그걸 보면 많이 힘이 날 것 같아요. 이 인터뷰가, 제 기록이, 지칠 때마다 저한테 다시 원동력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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