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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길 Jan 29. 2022

전철에서 만난 콩쥐 4

얼굴엔 화장기가 없어 아무리 만져도

웃음 색깔이 변하지 않을 콩쥐 입술 여자는

고개를 천천히 돌리기가 즐거운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천천히 움직이는 맛이 오랫동안 익어온 과일보다 맛있다는 걸

그녀는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인 듯.

혹시 고개를 살짝 숙일지라도 눈을 올려 뜨는 법이 없었다.

고개 숙인 만큼 익어 가는 황금벼가

그렇게 숙일 수록 맛이 더 든다는 걸 또한 알고 있는 듯.

그 다음 입술을 약간 벌린다거나,

귀밑머리를 살짝 만진다거나,

네 박자거나 세 박자 두 손 손짓을 책 위에 멈추게 하고.


책에 손가락 사이 갈림 박자를 넣을 때마다

따뜻한 빛들이 너울 몰려다녔다.

춤추는 빛 사이로 보이는 약간의 흔들림 같은 것.

심장 건드리는 손.

엄마 자장가 손이었으면 했다.

그녀가 말했다.

가슴에 오랫동안 빨갛게 묻어두고 다니면

웃으며 걷는데 힘들어져요.

그러니 두고 다니세요.

집에 아니면 맘에 드는 나무,

그 그늘에 두고 다니세요.

그러면 약간은 초르르름 빛들이 가슴에 가득할 거예요.


여자는 살랑 말한 다음, 입술을 다물지 않았다.

그 사이로 계속 새어나오는 연두색 입김들을 보았다.

맞아요. 

혹시 이 입김을 더 보고 싶으면

오래 전에 잊었던 여자의 자근자근한 입술을 기억하도록 하세요.

언제나 느낄 수 있는 숨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그래요. 

헤어졌을 때 그대가 원했던 아릿함이 아니었을까요.

고개를 조금씩 앞으로 내밀라고요?

어쩌지요 그러면 그때 빛을 닮았던 순간들이

손끝 위 구름이 되어 금방 사라지고 만답니다.


그녀가 남긴 것은

내밀어도 내밀어도 내게 닿지 않을 손사래 몇 번

남아 있는 사람 고개를

슬프지 않은 듯 천천히 돌리게 하는 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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