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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길 Jan 30. 2022

전철에서 만난 콩쥐 7

늦은 가을 깊이 먼 산 따라가는 꿈결로 가는 지하철.

쌀쌀한 날이라 하더라도

이럴 때 떠있는 구름이란 굳이 하얄 필요는 없다.

멀면 멀 수록 예쁜 아이 솜털처럼 아스래지는 구름 옆 날개 능선.

정이란 그 누군가 멀리 사라질 수록 두터워지는가.

그도 그럴 것 같은 예감은 그 다음 능선을 넘어,

살폿 웃는 꼬마 아가씨 얼굴 뒤로 겹겹 오래된 실루엣 모양 이어지곤 한다.


제가 코스모스인 줄 아시나요?

훗훗, 연분홍 꽃잎?

훗훗, 그러세요, 그럼.


그런 것 같다.

두 강산이 넘어 지나간 시간 틈틈이 코스모스 갓길을 돌면

행여 그리움 같은 꽃잎이라도 다칠까 서로 마음 설레던 두 손 사이.

그래, 처음 코스모스 보았던 그런 느낌.

그녀가 내게 다가온 것은 같은 팀으로 옆자리에 앉던 때였다.

솜털구름 되어 열흘동안 뺨가에 붉으레 머물던.

화려한 붉은 단풍의 얼굴이 아닌 약간은 갈색을 닮은 얼굴.

언제나 천천히 웃어 차근차근 옮기는 손짓은

살살 바람에 갓 떨어지는 낙엽 손짓이었다.


삼백예순날 넘어 오래 기다려온

그러나 일찍 예감을 할 수 있었던 그 날의 하나둘 손잡음.

그녀를 오래도록 마음밭 코스모스로

품 깊이 안게 한 것은 대성동산골 흐린 날이었다.

서울에서 시외버스로 평택을 거쳐 안성 가까이 이르면,

이제 갓 들어가는 길목을 만들던 대성동산골 숲길이 나온다.

그렇게 안개비 흐릿한 날이 된 것은 우연이었으려니와

힘껏 솟으려했던 하고 싶은 말과 느낌에겐 고마운 하늘 입김인 듯했다.
긴 그리고 아스마한 숲 속으로 들어갔던 길가엔

키 가까이 눈을 어지럽혔던 코스모스의 침묵이 걸음마다 이어졌다.

이제 황폐함을 겨우 면하려는지

코스모스 밑으로 아이 머리카락 같은 잔디들이

제 몸을 드러내고 발 길 닿는 쪽으로만 까불거리고,

다소곳 웃음소리를 감추며 가을 구름 눈물 같은 물이 흘렀다.

어제 흐르던 그리움의 빗물,

그녀의 비이거나 땀이거나 눈물 같다고 생각되었다.

남은 것은 묵직한 황토색 뿐,

세상사 사람이 없어지는 순간을 기다리기 위해

저 홀로 남은 듯한 황토.

아직 기다렸던 사람이 없었다는 코스모스 황토.

죽어도 꼭 하루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에

딛는 발끝마다 잡는 손에 힘이 주어졌다.

발걸음 뼘뼘 두 개 시간에 코스모스 황토 빛 시간 묻던 가을이었다.

살짝 꿈결에 고개 기울이는 꼬마 아가씨 차창 뒤로

재빠르게 한 쌍 참새가 지나친다.


흥, 바보.

지난 것들이 슬프다고 슬픈 것만 붙들고 있는 건 더 슬픈 일이죠.

세상엔 부끄러운 것 투성이예요.

그리 빨리 앞만 보고 가는 것은 부끄러운 게 많아서죠?

감추고 싶어서 보이는 것마다 돌아돌아 앞쪽으로 가는 거죠?

이제 잠시 멈춰봐요.

하늘도 땅도 안 보고 다니는 사람은 부끄럼을 몰라서 그래요.

눈감고 두 손 가려 하늘 보지 말기를 바래요.

그건 너무 무서워요.

눈감고 땅 보는 것도 그래요.

차라리 눈감고 가고 싶으면 말해 줘요.

코스모스 갓길 가고 싶다던 그 곳 손잡고 가줄 게요.


손등을 입술에 대고

잠결이라 감추는 꼬마 아가씨 웃음사이로 코스모스가 보인다.


그래요.

보이는 사람이거나 꽃들은 저마다 코스모스라고 우겨요.

코스모스를 어디에든 피우게 하는 힘이 감추어져 있나봐요.

내리고 싶은 곳 어디든 내리세요.

지금 온통 코스모스 밖에 없는 걸요.

함께요.


그녀 생각 숨끝마다 얇은 손등 살결 내음이 났다.

이제 막 잠드는 코스모스 꽃잎 살결 내음이었다.  




<후기>


이 글엔 40년 지난 첫사랑 이야기가 숨어있다.

숨결을 감추려 했던 곳곳이 눈에 밟히운다.

그뉘  첫사랑이란 누가 들어도 가슴 셀레리라. 

맞다, 첫사랑에는 시간이 지나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울어도 웃어도 변하지 않는다.

누구나, 그냥 그대로 있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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