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봉길 Feb 03. 2022

시낭송바이러스


지난 2022년 4월 둘째 일요일, 서울 시청 앞 덕수궁에선 있었던 일이었다. 초저녁부터 지하철 1호선 시청역 1번 출구부터 덕수궁 돌담을 따라 너나없이 줄을 서고 있었다. 나도 입장권을 치켜들고 한 시간 가까이 줄을 서다가 대한문 안으로 간신히 발을 들여 놓았다.     


나무며 별들 그늘을 피해 하늘이 잘 보이도록 자리를 잡고 풀밭에 앉았다. 구름에서 들리는 듯, 잔잔히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비디오카메라를 꺼내 설치했다. 이미 공중에서는 입체영상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번 입체영상을 비디오에 있는 ‘광결정기억소자’에 담아 시험해보곤, 편히 앉아 현대미술관 앞의 분수대가 연출하는 물꽃춤을 보고 있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자 입체영상으론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 삶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시가 낭송되고 있다. 중간엔 시와 어우러진 입체영상이 한 개인의 좋았던 일 슬펐던 일 등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윽고 내 친구의 목소리가 들리며 얼굴이 서서히 나타나고…….     


그 친구는 국내 최고의 컴퓨터통신 회사에 30년째 있었는데, 10년 가까이 소식이 없길래 왠가 했더니, 낭송공연을 위한 한 기획모임에 참여해 산이며 방송국을 마구 뛰어 다녔다며 시낭송공연 안내장을 내미는 것이었다. 평소 얌전히 직장과 집만 오가던 친구가 이렇게 된 것은 사회 전반에 일고 있는 여가 선용의 일환으로 생활의 양태가 변해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꼭 한번 오란 말과 함께 털어놓은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정년 퇴직을 5년 남긴 시점이었으니, 쉰다섯 살을 넘기던 2017년 겨울이었다고 했다. 보통은 일주일에 3일만 출근하고 4일은 휴식 겸 재택근무를 하면 되는데, 이 친구는 보름 간격으로 출근 혹은 재택 근무하는 직장이었다.     


그 날은 재택근무 날이라 사무실을 겸해 사용하는 방에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시스템의 본체를 작동하기 시작했는데, 본사와 통신을 하는 순간 갑자기 음성인식과 관련된 장치를 제외하곤 동작이 모두 멈추어 버리더란 것이었다.     


이어 화면엔 <1992.4 시낭송바이러스>란 내용과 함께 “지금부터 낭송되는 시 만큼 자연스럽게 48시간 이내에 시낭송을 들려주지 못하면 당신과 연결된 모든 컴퓨터의 자료가 모두 지워짐. 준비가 되었으면 크게 손뼉을 치시오.”란 경고 메시지가 연속해서 나타나더란 것이었다. 친구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본사에 이 사실을 알렸더니, 즉시 동작을 멈추라는 지시가 있었다. 두 시간도 못되어 본사 ‘컴퓨터바이러스퇴치연구소’ 연구원 몇 명과 ‘컴퓨터바이러스퇴치협의회’의 전문가 그룹이 도착했다. 한참 토론 끝에 우선 그 시를 들어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손뼉을 크게 치자 시가 들리기 시작했는데,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시를 읊고 있었다. 시는 자연을 예찬한 내용이었는데, 낭송이 끝나자마자 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깊은 마음의 박수가 저절로 나오더란 것이었다. 그 박수 소리와 동시에 같은 시가 되풀이 되어 들리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시낭송 관련 단체가 온 것은 다음 날이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시를 듣더니 “이 여자는 지금부터 30여년 전에 요절한 낭송 전문가였다.”라고 말하며,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동료를 여럿 알고 있으니 찾아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었다. 서둘러 ‘예술인자료은행’을 조회한 결과 그 사람의 거주지가 남해안 모처로 확인되었다.     


그 원로 낭송가의 시가 입력된 것은 제한 시간 30분을 남겨둔 긴박한 상황이었다. 친구는 자신의 단말기가 되살아나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세상 공기와 차단된 방에서 가상현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몰두하다 보니 아내의 죽음을 몰랐다. 30년 후면 이 가상현실시스템들이 인간 환경 자체를 바꾸어 버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그러한 첨단 과학이 대신하지 않으리라 믿어진다. 나는 그 경종을 위해, 이 ‘시낭송바이러스’ 제작을 끝으로 아내의 자연 속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며칠 후, 세계순회시낭송공연을 위해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다가 김포로를 따라 혼자 걸었다. 점심 먹을 시간을 잃고, 저녁 어스름을 맞으며 실컷 유행가를 부르고, 또 친구가 낭송한 시를 보며 크게 읽다가 외우다가 내 노래라 만들어 부른 날, 그날 가족과 함께 먹은 저녁 밥은 생애 최고의 만찬이었다. 


(월간에세이 1992년 4월호)     

매거진의 이전글 블록체인 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