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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길 Feb 13. 2022

전철에서 만난 홍길동 5

많이 사용한 몸들은 그만큼 닳고 또 우글쭈글해지나보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색이 허얘지고, 제 기능들이 저하되는 것. 

의자에 앉아 누가 내 이야기하나 하며, 

전철 이쪽 끝에서 다른 쪽까지 

빈 의자마다 눈과 고개를 휘돌리는 남자. 

무엇을 위해 눈을 몸을 저리 사용하고 있을까. 

흰 모자를 쓴 남자는 등산 조끼 차림. 

가벼운 산행을 하려는 듯. 

세상 보기에 지쳤는가, 이내 깜빡 잠에 든다.   

   

그의 고개가 너도 읽어라 너도 너도 읽으라며 뭐라 써댄다.

언제든지 졸 수 있고 

언제든지 깰 수 있는 건, 

순전히 나이 탓이지. 

시간이 나를 이렇게 해주었지. 

편하게.      


오늘 누구를 만날 것 같은가? 

사람? 아니 돌? 나무? 물가? 하늘을 만날 거라고? 

후후 그럴지도 모른다. 

내가 만나는 모든 것은 곧 그들이 되어야 할지니, 

그 모든 것을 만난다고 해서, 그래, 뭐 달라질 거 없지. 

지친 거.

지금까지 만났던 것들로 인해 

또 만나면 만날수록 내 몸과 마음은 작아져야 한다는 거야.

문제는 얼마나 즐겁게 작아지느냐, 이거지. 

그건 내가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해주려고 했느냐에 따른 거였어.  

   

잠깐 잠에도, 떠올리려 해.

나는 내가 나였다는 것을 확인하러 만났던 것들을.

잘 때는 혼자가 되니, 이 때마다 떠올리려고 애써. 

후후, 뭐 별 다른 느낌이 생겨나야 하겠지만, 어찌 말해 줄까. 

내 것을 어떻게 말해야 나만큼 웃겠느냐구. 

후후, 이 다음 시간엔 다른 느낌이 더 생겨나리라고 

어찌 강조해 웃으라며 말할 수 있겠느냐는 거지. 

나는 그것을 기다려 내가 만든 문들을 모두 열어 놓으려 하네.     


그러나, 결국 내 문으로 내가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그러다가 끝내 문을 닫아버리니 꼴이라니, 

후후, 이걸 어찌 들락거릴 때마다 설명할 수 있겠느냐구. 

그저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서로 다른 문이고 싶은 마음만이야 굴뚝일 뿐일세. 

그래도 

고개 돌릴 때마다 누구를 무엇을 만날 것임은 분명한 일이겠지.     


늙는다는 거? 

후후, 나와 상관없어. 

움직일 수만 있으면 되니까. 

움직이지 않을 땐? 

후후, 또 나와 상관없어. 

반드시 그런 때는 생기는 것이고, 

물론 그런 때는 누구에게나 지나가는 거니까.     


덜컹. 

전철이 멈추자, 

몸을 멈칫 움츠리는 남자 눈에서 맛없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늙은 웃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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