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봉길 Jan 28. 2022

블록체인 왈


갓밝이가 나오기 전에 깼다. 카톡을 통해 편지 한 통을 썼다. 무엇인가 나를 건드릴 것을 찾았다. 며칠 전 쓰다만 글을 마무리했다. 제목이 「블록체인 왈」이었다. 


    하하하하

    언제나 나는

    크게 웃으려 하네

    그대들 들리시는가

    톡, 톡

    이렇게 요렇게

    나를 건드릴 때마다

    간지러워 간지러워

    지르는 소리일세

    너는 무엇이냐

    묻고 또 물으니

    참을 수 없어 내는 소리

    나는 너라고

    그래서 너는 나라고

    처음부터 내던 소리였네

    우리 서로

    언제 또 어디 있어도

    그냥 이러저러하게

    확 펼쳐 웃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그대들 고마우이

    이리 살아있게 해주다니

    뭐

    또 건드려 주시게

    멈추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네

    왜?

    심심하니까

    웃고 또 웃고 싶으니까

    하하하하     



<후기 1>     


인간은 가끔 멍해질 때가 있다고 한다. 할 일을 갑자기 놓거나 아니면 일이 없다고 느껴지거나 할 때, 멍청스럽게도 멍해지는 것. 이러한 심심하다는 느낌이 몇 번 되풀이되면서 쓸데없이 짜증스러운 기분이 든다는 것. 그리고 이는 곧 무엇인가에 싫증을 느끼게 된다는 것. 이 막역한 싫증이 반복되면서 나 자신 느낌이 무엇이구나 느껴진다는 것. 이러한 일이 지속되다가, 문득, 자신의 한계상황에 부딪히게도 된다는 것. 뭐 어떤 땐, 그래서 무엇인가 새롭게 내가 느껴진다는 것. 이러한 일들이 뭐 실존인지 뭔지 한다는 것.      


한때, 실존에 이르는 길 중에 이러한 느낌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뭐 별 볼 일 아닌 일에 왜 그리 집착했는지, 이래저래 세월 좀 보냈구나 하는 실웃음이 나는 것이었다. 뭐 하나 매듭 짓고 나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으리라 생각했다. 멀리 있는 친구에게라도 하고 싶은 말인 양, 카톡 메신저를 열고 글자들을 적어 나갔다. 옆에 있어도 아마 같은 느낌의 투덜거리는 듯한 나열이리라.      


다시 새벽이네. 어제 10시 40분에 마지막 친구들이 토론을 끝내고 돌아갔지. 블록체인 이론이 전 세계를 뒤흔드는 시점이란, 얼마큼 다가서느냐에 따라, 그 일부 사람들에게 행운의 기회를 네. 아는 만큼, 또 누가 먼저인가, 그래서 그 기회에 익숙하려 의지가 있는가에 따라, 나름대로 삶의 새 판형이 만들어지는 것, 뭐 알고 있는 사실이지.  

    

나는 국내 컴퓨터 1세대로서 녹슬었지만, 그 마지막 기회를 위해 녹을 닦고 닦으려 하니 몹시 힘드네만, 엉뚱하게도 일반인에게 빛을 내려 하는 듯해 보람이 있지. 그 보람이 무엇인가 죽기 전까지 할 일이 있고, 그 일 자체가 행복감이라 여겨지네. 물론 누군가에게는 몹시 멍청한 일이겠지만 말이야. 그렇지, 나는 매 순간 나 스스로가 새로워지고 싶었고, 지금도 그렇고, 그 새로움이 내 것을 나누어주는 일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이 일을 신선하게 해 주네.      


블록체인 이론은, 알다시피, 자유와 평등 그 자체를 지향하네. 누군가 권력을 쥐고 흔드는 것을 원천 봉쇄라는 구조지. 그래 법도 권력도 필요 없는 사회가 되길 바라는, 어쩌면 정말 엉뚱함 그 자체일지 모르지. 이론은 결국 이론으로 끝날 수도 있으니. 그러나 지구가 이렇게 되기까지 수억 년이 흘렀었겠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인간은 지금도 변하고 있다는 것이라 보네. 나도 변하는 맛을 죽는 순간에도 느끼려 하는 일이야 어찌 마다할 리 있을까. 과연 무엇이 살아있는 맛일까? 저마다 가진 느낌만이 유효하지. 이 새벽도 물론 지나가겠지. 오늘도 다시 새로운 느낌의 사람들이 나를 찾아올 걸세. 또 내가 찾아가기도 하고. 그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시간이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발견하는, 그래서 그 순간이 나를 새롭게 하는구나 하고 나를 만끽할 기회가 오겠지.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매 순간 다른 즐거움을 나누고자 하는 일이 나를 존재하게 하네. 하이데거의 ‘시간과 존재’를 무턱대고 읽던 40여 년 전이 생각나네. 내 시간과 나와 과연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고, 재미없는 웅덩이에서 마음 졸이던 시절이 무척 행복했었다는 작은 미소로 살아나고 있네. 언제라도 좋으니, 끝장 토론 한번 하시게나그려. 블록체인이 실존과 같은 의미라고 서로 아니라고 우기면서 말일세. 하하하!     


<후기 2>      


컴퓨터는 인간이 무엇인가 넣어주어야 의미있다. 그 속에서 계속 건드려주기를 바라는 S/W들 때문에 그렇다. 블록체인은 인간 대신 컴퓨터인 채굴기가 숫자로 건드려 주어야 산다. 이즈음이면 인간이 할 일이 줄어드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사라질 직업군을 예상해 보는 일은 더 이상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인간을 건드는 직업은 늘어날 것. 인간이 새로움을 추구하려는 본능은 심심해서 그렇다고 한다.      


심심하지 않기 위해 나는 블록체인에 넣을 새로운 숫자들을 얼마나 더 생각해 내야 하는 것일까. 이것도 싫증이 나서 더 심심해지면?      


하하하! 그래서 사람들은 산이고 바다며 들로 휴가를 가는가 보다. 아마 거기 가서 묻고 답할 것. 김상용 시인처럼…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이렇게 대답하고 웃어보는 일이 최고일 것!


작가의 이전글 블록체인 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