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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수 Aug 20. 2023

담배

책상 위에 꺼내져 있는 펜만 쓰다가, 오랜만에 필통을 열었다. 작년에 친구가 준 담배 한 개비가 들어있다. 스카치테이프로 감겨 있는, 허리는 30도쯤 굽어진 담배. 처음에 그 담배를 소유(?)했을 때, 테이프로 입구를 대충 막아놨음에도 주둥이가 접힐정도로 톱밥 같은 갈색의 심지는 많이 빠져 있었다. 괜히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워 괜스레 향기를 맡아본다.

가족 중에 흡연자가 없기에 가까이서 담배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한창 그즈음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중 적지 않은 친구들이 담배를 폈었다. 성인이 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떻게 초등학교 5학년이 담배를 피우는 거지.'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친구들 중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핀 애들도 있었다. 아직도 그때 친구들이 폈던 담배를 기억한다. 말보로 레드. 그들을 따라 놀다가도, 인적이 드문 하천가 다리 밑이나 작은 숲 등에 가곤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까지 담배를 한 번도 피워본 적이 없다. 아버지한테 어렸을 때부터 "담배는 나쁜 거야. 담배는 한 번 피우면, 절대 끊을 수가 없어. 한 번 피는 순간 넌 평생 피게 될 거야." 같은 세뇌 교육을 받았는데, 담배를 한 번 피워볼까 고민할 때면, 아버지의 저 말들이 귓속에 들려와 자연스레 포기하게 됐다. 지금까지 백 번은 훨씬 넘을 수많은 타인의 권유와 나의 호기심 속에서, 한 번도 불 붙인 담배를 입에 물어보지 않은 나도 정말 독하네.ㅋ


담배를 혐오하는 비흡연자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걱정 없는 일이다. 그냥 담배가 있는 곳을 피하면 된다. 그러나 나는 담배를 혐오하지 않는 비흡연자이다. 일상을 담배를 피우고 싶은 호기심과 피면 끊을 수 없다는 이성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살아간다. 담배를 술처럼 진정으로 하나의 '기호' 식품으로 생각한다. 담배 연기나 냄새를 다른 연기나 냄새에 비해 특별히 더 싫어하지도 않는다. 고기불판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와 담배에서 타오르는 연기가 무엇이 다른가. 담배 냄새도 고기 냄새가 옷에 베기는 것이 싫은, 딱 그 정도로만 싫어하지 유독 담배 냄새난다고 그 자리를 피하거나 하지도 않는다. 또한, 흡연자인 친구들이 내 방에 놀러 오면 방 안에서 전자담배 정도는 마음껏 피게 한다. 어쩌면 달콤한 과일향을 뿌려주는 전자담배는 그 자리에 있는 나에게 좋은 기분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술이 그렇듯 담배가 인체에 해롭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담배 피우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 언제부터 담배 피우기 시작했냐고 물어보면, 다들 "어렸을 때, 안 좋은 애들이랑 어울리다가..."라고 말하곤 하는데, 정말 그들이 담배를 피운다고 하여 안 좋은 애들인 건가. 그 사람이 어떤 면에서 안 좋다는 거지. 물론, 미성년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은 엄연한 불법행위이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이 흡연을 단순한 불법행위 그 이상의 훨씬 악한 행위로써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흡연에 관한 편견도 많다. 학생들의 성적이 흡연과 관련이 있다든가. 전교 상위권 성적의 친구들은 무조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은 모두 하위권 성적일 것이라는 그런 것. 적어도 내가 경험한 것에 의하면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사람들은 무관한 두 가지 변수로 억지로 관계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한, 어떤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여성 흡연자에 대한 보수적인 사회적 시선이 남아있는 듯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여성 흡연자가 '담밍아웃' 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그래서 나는 흡연자인지 비흡연자인지 모르는 여성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친구들로부터 학습된 것을 바탕으로 무언가 담배를 피우러 가고 싶은 상황인 것 같으면, "혹시 흡연하세요?" 물어본다. 물론, 상대방에게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렇게 담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집착하는 이유는... 아직도 '담배가 무슨 맛일까' 정말 궁금하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이를 해소하는 경험을 하지 않더라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이 주위에 보이지 않으면 호기심도 잊기 마련이다. 그런데, 담배 피우러 갈 사람을 찾는 동료, 피고 오면 피어오르는 담배 향기는, 담배를 나에게 절대 자연스레 잊힐 수 없게 한다. 담배가 맛있다는 게 대체 무엇일까. 비행을 마치고 내려와서 피우는 담배, 밥 먹고 피는 담배는 맛이 더 특별한가. 운동하고 난 뒤 마시는 맥주 같은 느낌인 건가. 한편으로, 흡연자가 부러운 점도 있다. 의지할 것이 그래도 존재하기는 한다는 것. 무언가 일을 하다가 더 이상 진전이 없을 때, 리프레쉬할 수 있는 변환점이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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