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글이 안 써질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럴 때 선택지는 고작 둘 뿐이다.
1. 글을 쓰거나
2. 글을 안 쓰거나
글이 안 써질 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글을 안 쓰는 거다. 안 써지는 글을 붙들고 끙끙 앓으면서 괴로워하지 말자. 날 때부터 글을 썼던 사람은 없다. 글 안 쓰고도 충분히 잘 살아오지 않았는가. 안 쓴다고 큰일 나는 거 아니다. 그러다 평생 글을 못 쓰게 되면 어떡하냐고? 그럴 수도 있지 뭐.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게 아니라면 마음을 좀 편하게 먹길 바란다. 그러다 보면 또 글이 당기는 날이 올 거다. 글은 그때 쓰면 된다.
지금 당장 글을 써야겠다면 왜 글이 안 써지는지 생각해 보자. 내 경우에는 마땅히 쓸 게 없거나, 글감은 떠올랐는데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거나 둘 중 하나다.
마땅히 쓸 게 없다면 하루를 되돌아보자. 오늘 하루만 해도 출근해서 여러 사람을 만났다. 세끼를 꼬박꼬박 먹었고 간식까지 챙겨 먹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 코로나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와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됐으며 그 때문에 둘째 어린이집은 당장 내일부터 휴원이다. 이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쓸 게 없다면 내가 너무 '그럴듯한 글감'만 찾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널리고 널린 글감 중에 보석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원석을 다듬어 보석을 만들어 보자.
글감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을 때도 욕심을 조금 덜어낼 필요가 있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어렵게 키보드 앞에 앉아 타자를 치기 시작했어도 백스페이스키만 누르게 된다. 우리는 '잘 쓰기' 이 전에 '쓰기'를 해야 한다. 글 쓸 때 필요한 건 거창한 글감도 뛰어난 재능도 아니다.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잘 쓰지 않아도 된다는 너그러움이면 충분하다. 일단 볼품없는 초고라도 완성해서 저장해 놓으면 '내일의 나'와 '모레의 나'가 힘을 합쳐 고치고 다듬어 줄 것이다.
쓸만한 인풋이 없어서 아웃풋이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 흔히 글을 쓰는데 필요한 인풋이라고 하면 독서를 떠올린다. 독서가 중요한 인풋이지만 유일한 인풋은 아니다. 살면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인풋이 된다. 이 모든 게 쓸만한 인풋이 되려면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느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를 하면서 칫솔이 이에 닿는 느낌에 집중해보자. 치약에서 나는 향은 어떤지 입을 헹군 뒤 기분은 어떤지도 느껴보자. 출근하려고 운전석에 앉았을 때 어제까지는 엉덩이가 시릴 정도로 차가웠던 시트가 오늘은 괜찮지 않은가? 봄비에 떨어진 벚꽃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연둣빛 잎도 유심히 살펴보자. 오늘 하루 내 오감을 자극한 모든 것들이 결국엔 글이 되어 나올 것이다.
평탄하기만 한 인생은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 훌륭한 작가도 매일 술술 써 내려가지는 못할 것이다. 오늘은 거칠고 험난한 길에서 고군분투하지만, 내일은 잘 닦인 고속도로 같은 길을 만날 수도 있고 알록달록 꽃길을 만날 수도 있다. 나와 당신의 앞에 펼쳐질 모든 '글 길'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