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친한 사람이랑 밥 먹어 봤어요?
소개팅보다 더 어색하다구요.
새 학기는 3월에 시작하지만 교사들은 2월에 출근해서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학년과 업무를 배정받고, 교육과정을 짜고, 업무 인수인계를 한다. 교실 구석구석 묵은 먼지들도 닦고 학습 준비물도 재정비한다.
운 좋게 1 지망으로 써낸 학년에 배정받았고, 다른 선생님들이 ‘사랑둥이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평판이 좋은 남자 선생님 두 분과 같은 학년을 맡았다. 과연 소문대로 두 분은 싹싹하고 친절했다. 지금까지 찾아낸 유일한 단점은 말이 너무 없다는 것 정도다. 하필 둘 다 말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그래도 각자 교실에서 일하는 시스템이라 크게 상관없을 것 같았고, 협의할 때는 필요한 말만 하니까 빨리 끝나서 좋기도 했다. 문제는 같이 밥 먹으면 체할 것 같다는 거다. 3일째 점심을 같이 먹었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금요일에는 중국집에서 간짜장과 볶음밥, 탕수육을 시켰다. 찍~ 딱!
나무젓가락 뜯는 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잠시 눈치를 봤다. 두 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음식을 드셨다. 옆에 앉은 선생님이 단무지를 씹는데 asmr영상을 틀어놓은 줄 알았다. 일부러 마이크에 대고 단무지를 씹는 것처럼
아삭~! 아삭~! 아삭~!
소리가 울렸다. 마음만 먹으면 단무지를 몇 번 씹고 삼키는 지 셀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절대 단무지를 먹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말이라도 걸어볼까 했는데 더 할 말도 없었다. 첫날 너무 어색해서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다 물어봤기 때문이다.
벌써 고향, 가족 관계, 심지어 처가가 어딘지까지 다 알고 있다. 다음 달에 아들이 태어난다는 것도.
“두 분은 안 친하세요? 너무 조용해서 어색해요.”
“아, 저희 되게 친해요. 그냥 말이 없는 편이라...”
“아... 그러시구나...”
쩝쩝.. 촵촵.. 아삭아삭..
이 어색함은 밥을 다 먹어야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젓가락으로 짜장면을 잔뜩 집어서 입에 욱여넣었다. 체면이고 뭐고 그런 건 모르겠고, 입 안 가득 면을 넣고 우물거렸다. 일단 입에는 넣었는데, 입 안에 있는 면발을 한꺼번에 삼키면 질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황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게 대수랴. 눈을 질끈 감고 삼켰다. 눈물이 살짝 났다. 한꺼번에 많이 삼켜서인지, 어색해서인지, 음식이 많이 남았지만 배가 터질 것 같았다. 눈치를 보며 짜장 소스 안에 면을 숨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뒤적였더니 다 먹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비주얼이 됐다. 미션 완료! 밥 먹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안 친한 사람이랑은 뭘 해도 어색하겠지만, 같이 밥 먹는 건 그중에서도 끝판왕 급이다. 어색함을 없애려 대화를 시도할 때도 타이밍을 잘 살펴야 한다. 상대방이 음식을 입에 넣는 타이밍이나 입 안 가득 음식을 우물거리고 있을 때는 피해야 한다. 음식을 삼키고 난 뒤, 그다음 음식을 입에 넣기 전, 그때가 말을 걸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다. 그런 걸 살피려면 정작 나는 밥을 제대로 못 먹는다. 그럼 또 망하는 거다. 상대방은 밥을 다 먹었는데 내 밥이 반도 넘게 남았다면 의도치 않은 먹방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같이 먹는 것도 어색한데, 나는 먹고 있고 상대방은 쳐다보고 있으면 밥이 코로 나올지도 모른다. 아, 어렵다 어려워. 음악이라도 틀어놓을까 했는데 어떤 음악을 틀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포기했다.
어색해서 밥을 많이 못 먹었더니 퇴근하기도 전에 배가 고팠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양푼에 밥을 비볐다. 참치랑 상추 넣고 고추장 크게 한 숟가락, 마요네즈 조금 넣어 쓱쓱 비볐다. 편한 자세로 앉아서 천천히 먹었다. 상추를 씹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눈치 볼 사람도 없으니 소리가 나든 말든 신경 안 쓰고 꼭꼭 씹었다. 어으~ 이 맛이지! 이제 좀 밥 먹은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