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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Aug 18. 2021

찾았다, 내 인생 머리!

대세는 숏컷 아닌가요?

미용실에 가는 건 설레면서도 두렵다.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기분 전환도 할 겸 미용실을 찾지만 이런저런 걱정이 앞선다. 내가 설명한 머리랑 디자이너가 이해한 머리가 다르면 어쩌지? 연예인 사진 보여주고 똑같이 해달라고 하면 속으로 비웃겠지? 과감히 변신을 시도했는데 나한테 안 어울리면? 돈은 얼마나 들까? 커트만 할까, 파마도 할까? 후, 그냥 조금 더 고민해보고 내일 갈까?


고민만 하다 미용실 갈 타이밍을 놓치지 일쑤였고, 나는 자주 긴 머리를 고수했다. 그러던 내가, 몇 년 전부터는 미용실에 가는 게 어렵지 않다. 헤어디자이너로 일하는 사촌동생이 우리 집과 가까운 미용실로 옮겼기 때문이다. 사촌동생이 디자이너면 아무래도 편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건 소통이 원활하다는 거다. 주고받는 솔직함과 돌직구 사이에서 오해가 생겨날 틈이 없다.


"뭐 원하는 스타일 있어요?"

"좀 어려 보이면서 세련된 느낌? 약간 귀여우면서 도도한?"

"불가능해. 그냥 다시 태어나."

"이럴 거면 뭐하러 물어봤어?"

"(무시) 언니는 똥손이니까 손질 편한 스타일로 할게요. 머리 감고 탈탈 털어서 말리기만 하면 되는 걸로. 오케이? 그리고 염색도 좀 하자. 검은 머리 진짜 안 어울린다. 머리도 좀 자르고. 언닌 머리 길면 얼굴 더 커 보인다니까. 숏컷 한번 해봐요. 강추 강추."


자꾸 뼈를 맞아서 욱신욱신하다. 그 와중에 숏컷? 모름지기 머리란 최대한 길러서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가리려고 있는 것 아니던가. 보호막이나 다름없는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내고 얼굴은 물론이요, 목덜미까지 드러내고 다닐 생각을 하니 흡사 벌거벗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부끄럽기까지 했다. '자르자'와 '안된다'의 팽팽한 접전 끝에 우리는 '짧은 단발'에서 합의를 했다. 머리를 자르는 동생의 얼굴에서 마음껏 잘라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느껴졌고, 나는 잘려나가는 기나긴 머리카락을 보면서 내 선택의 결과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커트와 파마 끝.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나는 인생 머리를 찾았다며 기뻐했고, 그 이후로도 머리가 길고 파마가 풀리면 다시 동생을 찾아갔다. 나는 마치 식당 단골손님이 "늘 먹던 걸로!"를 외치는 것처럼 "늘 하던 대로!"를 외쳤다.


문제는 동생이 아직도 숏컷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거였다.

"언니, 이번엔 숏컷 해볼까요?"

"아우, 난 자신 없어. 숏컷 했다가 기르고 싶으면 어떡해?"

"기르면 되죠."

"어중간하게 길었을 때 되게 지저분해지지 않을까?"

"거지 존을 거쳐야 되긴 하는데, 금방 길어요."

"아무래도 못 하겠어."


그렇게 거절하기를 여러 번, 동생의 한 마디에 마음이 움직이고 말았다.

"언니, 이제 이 머리 좀 질리지 않아요?"

"응.. 조금.."

"숏컷 해볼까요?"

"후.. 그래! 하자, 숏컷!"


나는 "짧은 단발+파마"의 조합이 내 인생 머리인 줄 알고 살았던 과거의 나를 귀여워한다. 아직 숏컷의 세계를 몰랐기에 자신 있었던 그 시절의 나를. 단언컨대 내 인생 머리는 숏컷이다. 짧은 단발도 나쁘진 않았지만 숏컷은 뭐랄까, 조금 덜 흔한 느낌이랄까. 게다가 내 머리는 숏컷을 할 때 굳이 파마를 안 해도 되는 머리였다. (이유는 까먹음) 동생의 말을 빌리자면 '숏컷에 최적화되어 있는 머리'가 바로 내 머리란다. 머리가 짧으니 감기도 말리기도 편하고, 미용실에 가도 커트만 해서 금방 끝나니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남자들은 원래 이렇게 살았을 걸 생각하니 그들의 현명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 진다. 날이 더워진 뒤로 숏컷을 한 내가 더 기특하다. 단발은 목을 덮어서 덥고, 길이가 짧아서 묶지도 못하는 반면, 숏컷은 그냥 있어도 시원하다. 여기까지 읽었으면, 이제 숏컷을 미치도록 하고 싶은 숏컷병이 생겼을 거다. 아니라고? 후. 이 얘기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올림픽을 보면서 더더욱 숏컷에 자부심을 느꼈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3관왕을 해 낸 안산 선수, 무릎 수술한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엄청난 활약으로 여자배구를 4강까지 이끌어준 김희진 선수, 여자 배구 디그왕에 오른 오지영 선수까지. 이 세 선수의 공통점이 뭔지 아는가? 바로 숏컷인이라는 거다. 이제 대세는 숏컷! 바야흐로 숏컷의 시대인 것이다.


사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니 어울리는 헤어스타일도 르다. 인생머리를 찾은 기쁨에 '숏컷이 대세'라고 외치기는 했지만, 유행을 좇기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게 훨씬 현명하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해보고 싶은 스타일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자는 거다. 긴 머리로 얼굴을 가리는 게 예의인 줄 알았던 내가, 짧은 단발을 거쳐 숏컷에 와서 인생 머리를 찾았다며 만세를 부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시도해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성공도 실패도 할 수 없다. 실패했을 때의 위험부담을 걱정하며 시도조차 못해본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머리는 금방 또 자란다. 그래서 헤어스타일 변신은 ‘시도’를 시도해보기에 적합하다. 실패하면 조금 기다렸다 다른 스타일을 시도해보면 되고, 성공하면 생머리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도전할 용기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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