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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Sep 27. 2021

명절엔 나도 아들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아들 없는 여자의 안 흔한 명절 고민

명절엔 안부를 묻기가 조심스럽다. 반가움에 건넨 인사가 잔소리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명절 안부는 늘 어긋난다. 내가 애인이 있을 때는 아무도 애인이 있냐고 묻지 않는다. 대신 취업은 언제 할 거냐고 묻는다.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고 나면, 아무도 직장 얘기는 꺼내지 않고 결혼은 언제 할 거냐고 묻는다. 명절이 오기 훨씬 전부 이번에는 어떤 용한 점쟁이가 내 아픈 곳을 콕 집어낼지 걱정하느라 심장이 벌렁거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다. 오죽하면 몇 년 전부터 명절만 되면 '잔소리 메뉴판'이 인기를 끈다. "대학 어디 갈 거니?"는 5만 원, "애는 언제 낳을 거니?"는 30만 원 하는 식이다. <제 걱정은 유료로 판매하고 있으니 구매 후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라는 친절한 안내 문구도 있다. 내 나이 이미 삼십 대 중반.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잔소리 메뉴판'에 해당하는 건 없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많다. 딸만 둘인 나를 살뜰하게 챙겨준다.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


다행히 나는 그 말에 조금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기 때문이다. 아들이 있고 없고는 내 관심사가 전혀 아니기 때문에, 나에게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이 옷 이번에 산 건데 예쁘지 않니?"와 다를 게 없다. 그저 웃으며 "아, 네 예쁘네요." 하는 것처럼 영혼 없이 "아, 네 뭐 하하하."하면 그만이다.


그런 나에게도 몇 년째 기억에 깊이 남아있는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에피소드가 있다. 이 이야기는 명절 때나 겨우 만나는 먼 친척 어르신에 관한 이야기인데, 편의상 그분 내외를 할아버님, 할머님으로 칭하겠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였다. 명절을 맞아 친척 집을 방문했다.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잔뜩 부른 내 배를 보고 다들 "아이고, 축하한다." "장하다 장해." 하며 손뼉을 치셨다. 그런데 단 한 분, 그 할아버님만은 날카로운 눈빛을 유지한 채 말씀하셨다.

"딸인지 아들인지는 물어보고 축하를 해야 할 것 아니여!"

"딸이에요."

수줍은 나의 고백에 할아버님은 낮은 탄식의 소리를 내셨다.

"아이고..."

안타까워하는 할아버님을 보며 할머님이 언성 높여 말씀하셨다.

"모르는 소리 말아요. 첫째는 딸이 좋아요."

할아버님도 지지 않고 큰소리로 맞받아치셨다.

"그건 둘째가 아들이라는 보장이 있을 때지!"

두 분의 열띤 토론을 들으며 나는, ‘첫째가 딸이라서 좋은가?’, ‘둘째는 아들이라는 보장이 있는가?’, 아니 그보다 첫째도 아직 배 속에 있는데 ‘둘째를 낳긴 할 것인가?’ 하는 혼란에 빠졌다.  


첫째가 3살이 되었을 때, 감사하게도 둘째가 생겼고 둘째도 딸이었다. 이번에는 할아버님이 어떤 말씀을 하실지 궁금해 내심 기대(?)하며 친척 집을 방문했다. 둘째도 딸이라는 소식을 들은 할아버님은 흡사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지으셨는데, 할머님의 말씀이 대박이었다.

"셋째는 아들 낳겄지, 뭐가 걱정이에요!"

생각지도 못했던 '셋째+아들' 공격에 순간 아찔해졌다. "셋째는 아들 낳겄지."는 너무 강렬한 한방이어서, 그날 이후에도 그 장면이 문득문득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럴 때면 평생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믿고 산 어르신들, 딸이 둘이면 셋째를 낳는 게 당연한 어르신들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 내가 평생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것들도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어르신들께 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 나는, 이제는 '아들 타령'을 들으면 진지하게 셋째를 고민해보는 듯한 표정이라도 짓는다. 그래야 그분들 마음이 편해지실 것 같아서.


보통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니?"는 어르신들이 많이 하는 말씀이다. 그나마도 요즘에는 사정이 많이 달라져서 딸 둘을 데리고 외출하면 "딸이 둘이라서 참 좋겠어."라고 말을 걸어오는 어르신들도 많다. 그런데 한번은, 나보다 몇 살 어린 동생이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하고 물었다.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궁금했지만, 어르신들께는 감히 묻지 못했던 것을 동생에게는 편하게 물었다.

"왜?"

동생은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누나 죽고 나면 제사 지낼 사람은 있어야 하잖아요."

나는 답변을 듣자마자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깔깔깔 웃어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나는 죽고 없어져서 제사를 지내는지 안 지내는지도 모를 텐데, 내 제사를 위해서 아들을 낳아야 하다니. 아마도 그 동생은 큰 뜻 없이 한 말에 내가 “왜?”하고 물으니 급하게 준비한 대답을 내놓았을 것이다. 별 의미 없는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지금까지 나에게 '아들 타령'을 한 사람들이 모두 내 사후를 걱정했던 거라고 믿기로 했다. 어쩐지 웃음이 났다.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사람들은 벌써 내 제사를 못 지낼까 걱정이란 말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명절 스트레스는 비단 잔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차례 지내고 벌초하고 성묘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꼭두새벽부터 음식하고 상 차리고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다시 음식을 해야 하는 일도 고되다. 평소에는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명절만 되면 내 맘 같지 않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또 어떤가. 서로 조금만 이해하고 배려하면 될 것 같은데 자꾸만 부딪히는 그녀들을 보며 나는 나중에 절대로 그러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는 명절 한 달 전부터 아들한테 전화해서 이번 명절은 따로 보내자고 통보할 거다. 여기서 중요한 건 며느리한테 전화를 하지 않고 아들한테 한다는 거다. 명절이 아니라 짧은 휴가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 말할 거다. 나도 오랜만에 바람도 쐬고 여유를 즐기겠다고. 명절 분위기를 내고 싶으면 각자 집 앞 반찬가게에서 전 조금, 잡채 조금 사다가 먹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할 거다. 혹시 서운할 수 있으니 며느리는 잘 있는지 손주들은 잘 크는지 안부는 물어야겠다. 그러다가 아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으니 아이만 좀 봐줄 수 없냐고 물으면 흔쾌히 알겠다고 할 거다. 그래도 명절인데 얼굴은 봐야하지 않겠냐는 말에서 진심이 느껴지면, 못 이기는 척 며느리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만나 맛있는 밥 한끼 사주고 들어올 거다. 헤어지는 길에 용돈도 많이 챙겨주고. 내가 생각해도 나는 완벽한 시어머니가 될 준비가 끝났다. 그런데 여기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나는 절대 시어머니가 될 수 없다. 아들이 없기 때문이다. 아, 아들이 없다니. 이럴 땐 나도 아들 하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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