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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Sep 17. 2021

추석 아포리즘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

1. 컴퓨터 화면을 한참 바라보고 있다. 깜박거리는 커서는 '이쯤에서 얼른 쓰지 그래?'라고 말하는 것 같다. 추석에 대한 글을 쓰면 좋겠는데, 계속 머리만 긁적인다. 지금 기세라면 마감 기일을 훌쩍 넘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렇게 되면 마마뮤 작가님께 사랑의 매를 맞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작가님, 농담이에요. 제 마음 아시죠? :)


2. 생존 본능(?)을 발휘해 추석과 관련된 칼럼이나 글을 읽는데, 크게 마음에 닿는 부분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눈에 보이는 책 한 권을 집었다. 김현 시인의 산문집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이었는데, 130페이지를 펼쳐보니, 그의 책 제목처럼 '뜻밖에' 명절과 관련된 글이 있었다. 


말조심하셨습니까?
명절에는 누구나 범람하는 말 때문에 고생한다. 대학은 어디니, 취직은 했니, 연봉은 얼마니, 애인은 있니, 결혼은 언제 할래, 아이는 가져야지, 부모에게 효도해라... 끝없이 이어지는 '명절 소음'에서 멀어지기 위 부러 귀 닫고, 입 닫고, 눈 닫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테다. 한 사람이 하고 한 사람이 듣는 말이면서도 누구나 하는 말 같고 누구나 듣는 말 같은 이 '가부장의 언어'는 도대체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된 걸까. 언제, 누구에게까지 이어지게 될까. 부모와 형제, 친지들과 북적북적 어울리며 명절을 쇠고 '혼자'로 돌아오면 '조용해서 좋다'라는 말이 자연히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새삼 부모님께 감사했다. 

우리 집에선 '명절 소음'이나 

'가부장의 언어' 따위는 없었으니까. 


말미에 '명절을 쇠고 혼자로 돌아오면 조용해서 좋다, 라는 말이 자연히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라는 부분에서 공감했다. 동시에 결혼 전, 내가 느꼈던 추석은 어떤 결이었는지가 떠올랐다. 


일러스트레이션 백승영


3. 내게 추석은 외로운 결이었다. 객지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맞았던 2015년 9월. 그리웠던 가족과 친구를 마주하며 그간 말하지 못했던 숱한 이야기를 밤새 떠들었다. 허기진 마음을 채우는 시간이었다. 이내 짧고도 길었던 연휴가 끝나고 다시 광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참, 무거웠다. 몸도 마음도 땅바닥 밑으로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멀리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꼭 명절이 아니더라도 빈번히 오갈 수 있지만, 공허했다.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라 스스로 위로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매년 어김없이 같은 상태로 추석의 끝을 맞이했다. 익숙함은 힘이 없었다. 


시간이 흘렀고, 

그 여백은 사랑으로 채웠다. 



4. 이번 추석은 그동안 익숙했던 분위기와는 다르다. 우선, 고향집으로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아내가 내일 2차 접종을 맞게 되는데 컨디션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부분이 컸다. 유독 내 주변에서만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 모르겠지만 1차보다 2차 때 더 고생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내는 컨디션이 안 좋더라도 갈 거라고 말했지만, 부모님께 상황을 말씀드려 잘 매듭지었다. 그동안 바쁘다고 신경도 많이 못 써줬는데, 점수를 좀 따야겠다. 


또한, 계속 퇴고 작업을 진행해야 된다. 이달 초, 출판사 담당자는 상냥한 말투로 '9월 27일까지 마감 부탁드려요.'라고 말했다. 나는 씩씩하게 네,라고 대답했고 현재까지 전체 원고 중 40% 작업을 진행했다. 


낮에는 집안일, 밤에는 원고 작업. 

고단하지만, 행복한 나른함!

2021년 추석은 그런 순간들로 채워질 것이다.






글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 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 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9월의 주제는 우리의 명절, 추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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