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도 드디어 어버이날을 안다!

내가 너 낳길 참 잘했다.

by 김채원

아이가 7살이 되니 유치원에서도 알림장을 써 온다. 매일 알림장에 그날 했던 활동 한 두 가지를 적어오면 내가 확인하고 싸인을 해서 다시 가방에 넣어준다. 아직 한글을 떼지 못해 선생님이 써 주신 글을 보고 그려오는 수준인데, 반듯하게 쓰려고 애쓴 흔적이 너무 귀여워서 알림장 확인할 때마다 미소가 번진다. 그런데 며칠 전, 아이가 특별한 요청을 해 왔다.

“엄마, 오늘은 알림장 내용 절대 보면 안 돼. 알았지? 보지 말고 싸인만 해줘.”

도대체 무슨 내용이 있길래 절대로 보면 안 된다고 하는 걸까? 아이가 엄마한테 숨기고 싶어 하는 것들은 좋은 일 보다 안 좋은 일일 확률이 높을 거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걱정이 되면서 궁금해졌다. 아이한테는 절대로 보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눈을 감고 싸인하는 척하며 살짝 실눈을 떠 재빨리 알림장 내용을 봤다.

어버이날 카드 만들었어요.

푸하하. 유치원에서 어버이날 카드를 만들었는데 깜짝 선물로 주고 싶어 비밀로 하려던 거였다. 혹시 사고라도 쳤을까 봐 걱정했던 게 미안해지면서 엄마 아빠한테 감동을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아이한테 어버이날 선물을 받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3살 때부터 해마다 어버이날이 되면 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선물을 만들어왔다. 아이의 손보다 선생님의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간 선물이었고, 아이는 선물의 의미도 잘 몰라서 평소 어린이집에서 만들어온 다른 작품들처럼 무심하게 가방에 넣어왔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가슴이 뭉클했었다. 런데 이번엔 아이가 어버이날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고, 선물을 받을 엄마 아빠의 반응을 기대하며 카드 만든 사실조차 숨기고 있다. 받기 전부터 이미 그 어느 때보다 감동이다. 이번 카드야말로 아이에게 받는 첫 번째 어버이날 선물인 거다.


이번 어버이날은 일요일이다. 그래서 아이는 금요일에 자기가 만든 카드를 가방에 넣어왔다. 이때부터 아이의 고민이 커졌다. 당장 가방 속에 있는 선물을 '짜잔!' 하고 꺼내고 싶은 마음과, 어버이날인 일요일까지 기다리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게 눈에 보였다.

"엄마, 내 가방 절대 열지 마. 알겠지? 일요일까지는 절대로 열면 안 돼!"

하고 엄포를 놓았다가

"엄마, 근데 어버이날이 일요일 맞지? 일요일 되려면 몇 밤 자야 되지?"

하고 슬쩍 힌트를 줬다가

"아, 몰라 몰라. 그냥 가방 열어봐!!"

하고 못 이기는 척 선물을 꺼낸 것이다.


나무로 만든 카드에는 우리 아이 글씨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 항상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손으로 카드를 쓰다듬으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에 차 있었는데 그런 꼴은 또 못 보는 우리 딸은 괜히 쑥스러운지 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아, 그거 그냥 선생님이 쓰란 대로 쓴 거뿐이야."

유, 정말. 감동 파괴자 같으니라고.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어깨가 잔뜩 올라간 아이를 보니 뿌듯했다. 어느새 이만큼 커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는 아이를 보며 '내가 너 낳길 참 잘했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직 어버이날을 모르는 둘째는 어린이집에서 예쁘게 꾸미고 사진을 찍어왔다. '엄마 아빠 딸이라서 행복해요'라는 종이를 들고 사진을 찍었는데, 하나도 안 행복한 표정이었다.


행복한 거 맞지?

사진을 왜 이런 표정으로 찍었냐고 묻자 둘째가 대답했다.

"지루해서"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래, 니가 뭘 알겠니. 너는 좀 더 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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