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에서 여수로 이사를 갔다. 아빠는 이삿짐을 정리하고 집을 요리조리 보며 수리할 부분이 있나 살펴보더니 철물점에 갈 건데 따라갈 거냐고 물었다. 동네 구경도 할 겸 아빠를 따라 철물점에 갔다. 철물점 아주머니는 처음 보는 우리를 보고는 혹시 이사 왔냐고 물어보셨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서울이요."
"아~ 여자 애는 초등학생 같은데 몇 학년?"
"5학년이요."
"아이고~ 우리 아들도 5학년인데 우리 아들 라이벌 하나 늘었네~"
5학년이면 친구지 라이벌은 무슨 라이벌? 아주머니의 반응이 이해가 안 돼 고개를 갸웃거리며 철물점을 나왔다. 다음 날부터 철물점 아들과 같은 학교에 다녔다. 누가 철물점 아들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친구도 라이벌도 아니었나 보다. 어쨌든 서울에서 전학 온 아이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아이들은 나에게 조심스레 서울 애들도 여수를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다고 하면서도 실망한 표정들이었다. 등하굣길에 마주치는 친구 엄마들은 나를 보며 수군댔다. 서울에서 무슨 사업을 하다 망해서 온 것 같다는 둥, 서울에서 왔으니 공부는 엄청 잘할 거라는 둥 '서울'이라는 단서 하나만 가지고 자기들 마음대로 추측을 해댔다. 혹시나 내가 들을까 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자기들끼리 바짝 붙어서 곁눈질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는데, 목소리 낮추는 걸 깜빡했는지 내 귀에도 잘만 들렸다.
지방에서 오래 살다 보니 나도 서울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다. 서울 사람들은 왠지 돈도 많을 것 같고 세련됐을 것 같다. 살짝 깍쟁이 같은 면도 있을 것 같고 남한테는 관심이 없을 것 같다. 아주 가끔 서울에 가보면 너무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이상할 때가 있다. 대한민국의 수도, 천만 인구가 사는 곳,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등 모든 것의 중심지, 그런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라니. 예전에 내가 왜 그런 오해를 받았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서울에서 여수로 이사 가기 며칠 전, 서울에 살던 친구들 이웃들과 작별 인사를 할 때였다. 같은 동네에 살아 친하게 지내던 삼촌은 나한테 지방 생활을 위한 꿀팁을 알려줬다.
"예쁜 샤프 몇 개 사 가. 시골 애들한테 그거 쫙~ 돌리잖아? 그럼 너 바로 인기 짱 되는 거야!"
삼촌 말을 듣고 샤프를 돌렸더라면 지금까지 이불킥할 엄청난 흑역사 하나 만들 뻔했다. 여수 애들도 예쁜 샤프 몇 개씩 기본으로 가지고 다녔다.
여수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하고 광주광역시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가끔 경기도 광주와 구별하기 위해 '전라도 광주'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광주광역시는 전라도와 붙어 있기는 하지만 전라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라고 표현해야 한다.) 광주에 가서 여수 사람이라는 걸 밝히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너네 집에 배 몇 척 있어?"
우씨. 싸우자는 건가. 놀라운 건 그들이 진심이라는 거다. 이런 바보들. 나는 그들을 앉혀놓고 설명을 시작한다.
"여수에 바다가 있는 건 맞아. 근데 바다만 있는 건 아니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여수에 마트 있어 없어? 있지? 그럼 마트 사장님 있어 없어? 있지? 여수에 학교 있어 없어? 있지? 그럼 선생님 있어 없어? 그래! 있어! 여수 산다고 전부 배 타고 고기 잡는 거 아니라고."
이런 당연한 사실을 알려주면 사람들은 대단한 진리를 알게된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편견이 이렇게 무섭다.
나도 지역에 대한 편견이 참 많다. 경상도 여자들은 애교가 많을 것 같고 경상도 남자들은 무뚝뚝할 것 같다. 충청도 사람들은 여유로울 것 같고 강원도 사람들은 추위를 안탈 것 같으며 제주도 사람들은 1년 내내 귤만 먹을 것 같다. 편견은 상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지역마다 특색은 분명 있겠지만 그 지역의 모든 사람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건 분명 편견이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출신 지역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자. 어디 사냐는 말에 순천에 산다고 하면 "고추장?"하고 되묻는 사람들이 있다. 고추장은 순천이 아니라 순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