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5학년 아이들과 순천에 있는 클라이밍장으로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나도 클라이밍장은 처음인데, 사전에 예약을 하면서 알아보니 순천에 있는 이 클라이밍장이 무려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한다. 뭐든 '최초', '최대'는 서울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순천에 이런 게 있으니 지역부심이 생긴다.
하네스(등반할 때 착용하는 장비로 허리 벨트와 다리 고리로 이루어져 있다.)를 차고 암벽화를 신고 호기롭게 준비 완료! 애들이랑 같이 체험하려고 옷도 편하게 입고 갔다. 예전부터 클라이밍을 해보고 싶었던 터라 기대가 컸다.
첫번째 체험은 리드 클라이밍이었다. 리드 클라이밍은 암벽에 걸린 로프를 하네스에 연결해 암벽을 타고 올라간 뒤 손을 놓으면 천천히 내려오게 되는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손을 놓는 게 무서울 수 있지만 몇 번만 해 보면 내려올 때가 가장 재미있다는 강사님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들었다. 아이들 체험이 끝나고 나도 리드 클라이밍에 도전했다. 5m쯤 올랐을까. 위만 보고 올라갔어야 했는데 바닥을 내려다 본 게 잘못이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를 내려가 보니 팔다리가 후들거려 더 올라갈 수가 없었다. 일시 정지 상태인 나를 보고 아래에서 강사님이 소리치셨다.
"왼발을 올리세요!!!!!"
"저 내려갈래요!!!!!"
"손을 놓으세요!!!!!"
"으앙~ 무서워서 못 놓겠어요."
놓으라는 강사님과 못 놓는다는 나. 그렇게 같은 말만 되풀이하기를 몇 번, 강사님이 나를 설득하기를 포기하셨다.
"네~ 그럼 팔 힘 다 떨어질 때까지 그러고 계셔요~"
아우~ 얄밉다 정말.
나는 손을 못 놓고 홀드(암벽 등반할 때 손으로 잡거나 발로 밟는 곳)를 하나 하나 밟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 2미터쯤 남았을 때 올해 쓸 용기를 모두 그러모아 손 놓기에 성공했다. 슈웅~ 막상 놓으니 별 거 아니었다. 발이 땅에 닿고 나니 그동안 떨었던 호들갑이 생각나 민망했다. 애들 사이에 겁쟁이라고 소문이 났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취미로 클라이밍을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사님도 나이가 들수록 근력을 키워야 한다며 클라이밍을 강력 추천하셨다. 클라이밍은 근력 뿐만 아니라 지구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대화 주제가 아이들 이야기로 옮겨갔다.
"어제는 OO초등학교 5학년 애들이 왔었어요."
"네? OO초등학교라고요?"
OO초등학교라면 내가 작년까지 근무했던 학교였다. 게다가 그 학교 5학년 아이들이 1학년일 때 내가 담임이었다. 만난 것도 아닌데 괜히 반가웠다. OO초등학교는 읍지역 시골학교다. 강사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확실히 순천 아이들이 시골 아이들보다 클라이밍을 잘 한다고 했다. 왜 그럴까? 이유가 궁금해졌다. 강사님 생각으로는 시골 아이들은 이런 시설에서 체험을 해 볼 경험이 적으니 시설 분위기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 같다고 하셨다. 반면 순천 아이들은 클라이밍은 처음이더라도 여러 체험 시설을 이용해 본 경험이 있어 금세 적응하는 것 같다고.
일리가 있었다. 순천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가면 규모에 쫄아서 기를 못 펼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은 크면 서울로 보내라고 하는 건가. 문득 시골에 1년 살다가 오랜만에 백화점에 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탔을 때가 생각났다. 어찌나 생경하던지 왼발 먼저 올릴까 오른발 먼저 올릴까 고민했었다. 시골 아이들도 도시에 가면 그때 내가 느꼈던 그런 기분을 느끼겠지. 그렇다고 당장 서울로 이사갈 수도 없으니 아이들한테 괜히 미안한 기분이다. 아이들이 조금 크면 방학 때 서울 한달살기라도 도전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