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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Dec 09. 2019

나는 지금부터 큰 꿈을 가지기로 했다.

왠지 이루어질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장래희망이 수시로 바뀌었다. 장래희망란을 가장 많이 채운 직업은  선생님이었다. 어떤 분야에 타고난 재능이나 특별한 관심사가 없던 내가 꿀 수 있는 가장 무난하고도 그럴듯한 꿈이었다. 그러다 고3 때 수능을 치렀고 결과는 참담했다. 평소와 비슷한 컨디션으로 비슷한 느낌으로 시험을 봤는데 점수는 비슷하지 않았다. 잠깐의 충격이 있었지만 곧 잊어버렸다. 애초에 꼭 가고 싶은 대학교나 꼭 가고 싶은 과가 있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점수에 맞춰 3군데에 원서접수를 했다. 그리고 모두 불합격했다. 이때의 충격은 조금 더 오래갔다. 원서를 접수할 때 담임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무 안정적으로만 지원한 거 아니냐?"

불합격 소식을 전하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넌 여자라 군대도 안 가니까 1년 정도는 재수해도 괜찮아."

힘들게 찾은 위로의 말이었겠지만 위로는 되지 않았다.


재수를 하는 동안은 갑자기 인생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안되기도 하는구나 뭐 그런 생각들 말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나 또다시 수능을 보고 생각지도 않았던 통계학과에 입학했다. 세상에는 나랑 절대로 맞지 않는 학문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1년, 그게 통계학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1년, 학교를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는데 1년, 이렇게 계속 시간이 흘렀다. 이미 20대 중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부모님은 공무원 시험을 보는 건 어떠냐고 하셨지만 나는 대학 졸업장도 가지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그저 묵묵히 공부만 12년을 넘게 했는데 최종학력이 고졸이고 싶지는 않았다. 나이 제한 없이 취업이 가능한 일,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하는 일을 고민하다 다시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다.


그때부터는 누구보다 간절히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시크릿이라는 책을 보며 내 꿈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 책에서는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내 꿈은 이루어졌다. 25살에 교대에 합격했고 졸업 후 임용에도 합격했다.


일상에 여 자주 잊고 살지만 나는 꿈을 이다. 렸을 때부터 한 길만 파고 평생을 노력해서 꿈을 이룬 뭐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뤘다. 생각해보면 내가 이룬 꿈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산책하기 좋은 동네에 사는 게 꿈인 적이 있었는데 그 꿈도 이뤘다. 물론 더운 날 추운 날 가리다 보니 1년에 한두 번 산책하기도 어렵다. 운전을 하는 멋진 어른이 되는 것도 그저 꿈으로 남을 줄 알았는데 대중교통으로 출근이 불가능한 곳에 발령을 받아 운전도 한다. 그뿐인가. 후배랑 술 한잔하며 나중에 작가 같은 것도 해보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었는데 출간 작가는 아니지만 브런치 작가는 되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싶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이 항상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거니까.


그러고 보지루하기 짝이 없는 지금의 내 일상에는 과거의 내가 꿈꾸던 것들이 꽤 많이 쌓여있다.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몰랐을 뿐. 이럴 줄 알았으면 꿈을 좀 크게 가질 걸 그랬다. 그렇다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꿈은 크게 가지라고 말하지는 않을 거다. 그건 너무 꼰대 같으니까. 대신 나는 지금부터 큰 꿈을 가지기로 했다. 내 다음 꿈은 브런치에 로또 1등 당첨 후기 글을 발행하는 거다. 그리고 그다음 꿈은 그 돈으로 가족들과 전 세계를 여행하고 여행일기를 책으로 내는 거다. 왠지 이루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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