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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Dec 02. 2019

얼마나 가난해야 가난한 걸까?

생각하기 나름

"나 셋째는 안 낳을 거야. 돈 없어. 어렸을 때 가난해서 힘들었거든. 내 자식들은 그렇게 키우기 싫어."

아이는 셋 낳고 싶다던 친구의 말이다. 내가 친구네 경제 사정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하지만 어렸을 때도 지금도 친구의 형편은 나보다 나아 보인다. 그런 친구가 가난해서 힘든 시절이 있었다니, 돈 없어서 셋째는 안 낳겠다니 의외다. 그러다 가난에 관해서라면 할 말 많은 내 어린 시절 일들이 떠올랐다.


작은 공장에 딸린 더 작은 단칸방이 우리 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기서 어떻게 살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은 우리 집에 모고 공장 삼촌들은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삼촌들이 모두 퇴근한 저녁이 되어야 우리 집은 온전히 우리만의 공간일 수 있었다. 아, 밤에는 천장에서 쥐가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으니 그때도 우리 집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냉장고를 둘 데가 없어 집 밖에 내놓았다. 그러다 쥐가 냉장고를 갉아먹어 고장 나기도 했었다. 화장실도 에 있었다. 불도 들어오지 않는 재래식 화장실이어서 밤에는 내 몸 만한 손전등을 들고 화장실에 가야 했다. 손전등을 켜 놓고 쪼그려 앉으면 등 뒤에 커다란 내 그림자가 생겼는데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엘리베이터를 타 보고 싶어 친구 집에 놀러 간 적도 있었다. 친구네 집에 있는 몰티즈도 부러웠다. 우리 집 앞 공터에는 늘 똥개 몇 마리가 살았는데 나랑 정이 들만하면 공장 삼촌들의 몸보신을 위해 희생되었다. 생일이라고 초대장을 만들어서 나눠주는 친구들도 부러웠다. 나도 생일 파티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선생님한테 촌지를 주지 않아서 반 친구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 선생님은 너네 엄마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이냐며,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면 학교 보내지 말고 직접 키우지 그러냐고 나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이 얘기를 엄마한테 전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충격이었던 같은 반 친구가 엄마에게 말했고 그 엄마를 통해 우리 엄마도 그 일을 알게 됐다. 나는 그게 더 속상했다. 그 선생님은 어느 날 화장실에서 넘어져 크게 다 담임이 바뀌었다.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다쳤는데 잘 됐다는 생각이 든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러다 꿈에 그리던 아파트로 이사를 갔지만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10평 남짓한 5층짜리 주공아파트였기 때문이다. 방이 2개라서 남동생이랑 같은 방을 썼다. 래도 좋았다. 이제 공장 삼촌들이랑 같이 살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친구도 집에 데려올 수 있었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이 된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는 내 방을, 엄밀히 말하면 나와 동생 방을 둘러보더니 비웃으며 말했다. "이런 데서 살아야 1등 하는 거구나. 내가 1등 못하는 이유가 있었네." 그 친구는 정말 공부를 못했다. 엄청 부자였나 보다.


중학교 때는 조금 더 큰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꼭대기층인 15층이어서 엘리베이터는 마음껏 탈 수 있었다. 처음으로 내 방도 생겼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들을 눈으로 훑었다. 이 직육면체 모양의 방이 나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을 계속 확인하고 싶었다. 공부를 하다 졸릴 때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식 아파트라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밖이 훤히 보였다. 반짝반짝   빛나는 밤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내가 뭐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쓰다 보니 나는 한 번도 가난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계속해서 형편이 나아졌다는 것이다. 부유하게 살다가 갑자기 가난해졌다면 더 불편했겠지만 처음부터 가난이 당연했던 나는 점점 나아지는 형편에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내가 살았던 집 중에 제일 좋다. 그렇지만 가난하지 않은 건 아니다. 집이 있긴 하지만 빚이 절반이고 대출 빚을 갚느라 저축은 꿈도 못 꾼다. 맞벌이를 하지만 아이가 둘이라 쓰는 돈도 많다. 게다가 지금은 아이가 어려 육아휴직 중이라 외벌이인 셈이다. 문득 공장에 살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려본다. 그 아이가 보기에 지금의 나는 가난하지 않은 거겠지?


얼마나 가난해야 가난한 걸까?

가난 기준은 없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가난한 것이고 만족하면 가난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얼마만큼을 가져야 만족할 수 있을까? 내 친구가 말하는 가난은 얼마만큼의 가난이었을까? 알 수 없다. 흔히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더 속상하다. 나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했을까. 앞으로는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방법이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남편이 말한다.

"블랙 프라이데이인데 뭐 살게 없네. 아이패드나 살까? 한 번 써보고 싶긴 했는데."

뭐라고? 아이패드? 내가 우리 집 형편을 잘 몰랐나 보다. 아이패드를 살 수 있을 정도면 가난하지는 않은 것 같다. 확실히 가난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돈을 많이 벌어서 가난을 벗어나느니 마음을 고쳐먹는 게 빠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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