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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Dec 06. 2022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잘 몰라서 싸우고, 화해하며 배운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이 말이 애들은 원래 자주 싸운다는 뜻인 줄만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더 깊은 뜻이 담긴 말이었다. 아이들은 별것도 아닌 일로 자주 싸우는데,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이들은 아직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으로 한참 발달하는 중이라 의사소통 능력, 감정조절 능력, 공감 능력이 어른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들 여럿이 모이면 자주 싸울 수밖에.


어제는 유난히 싸우다 우는 아이들이 많았다. 친구가 소리를 질러서 울고, 친구가 이름 대신 "야, 김 씨!"라며 성만 불러서 울고, 친구가 "너 인성에 문제 있냐?"고 해서 울고, 친구가 "너 때문이야."라고 해서 울었다. 시간을 내어 아이들에게 올바른 대화법을 알려줬다. 이럴 땐 일단 메라비언의 법칙부터 설명한다.


메라비언의 법칙이란, 상대방에 대한 인상이나 호감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시각이  55%, 청각이 38%의 영향을 미치는 반면 말하는 내용은 고작 7%만 작용한다는 이론을 말한다. 여기서 시각은 눈으로 보이는 것, 예를 들어 표정, 몸짓, 복장 등을 말하고 청각은 귀에 들리는 것, 예를 들어 목소리의 크기나 톤 등을 말한다. 다시 정리하자면 대화를 할 때 말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태도나 말투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메라비언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소리를 질러 친구를 울린 아이에게 앞으로는 말투에도 신경 써 줄 것을 당부했다. 


친구를 "야, 김 씨!"로 부른 아이는 오히려 억울하다고 말했다. 김 씨를 김 씨라고 불렀을 뿐인데 그게 왜 잘못이냐는 거다. 그 아이에게는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친구가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뚱뚱한 아이에게 "너 뚱뚱해."라고 말하는 게 실례고, 키 작은 아이에게 "너 키 작아."라고 말하는 게 실례인 것처럼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김 씨!"라고만 부르는 건 실례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너 인성에 문제 있냐?"와 "너 때문이야."에게는 상대방에게 불만이 있으면 비난만 하지 말고 원하는 걸 말하라고 설명했다. "너 인성에 문제 있냐?" 대신 "그런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너 때문이야." 대신 "같이 해결 방법을 찾아보자."로 고쳐줄 것을 요청했다. 한바탕 폭풍이 휘몰아친 것 같던 교실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하루가 지나고 오늘, 도덕 시간에 우리 반 인권 실태 설문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반의 가장 큰 문제는 욕설이나 놀림 같은 언어습관이었다. 놀랍지 않은 결과였다. '욕을 하면 안 된다.', '친구를 놀리면 안 된다.' 말해봤자 그때뿐이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다 깨달은 게 있었다. 지금껏 아이들한테 '하지 말라'고만했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친절하게 말해야 한다고 가르치긴 했지만 아이들에게 어려운 설명이었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연습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일단 쉬운 것부터 도전했다. 다정히 이름 부르기.


우리 반 아이들은 희한하게 친구를 부를 때 "야, 이효리!", "야, 유재석!"처럼 성을 붙여 부르곤 했다. 성을 붙여 부르다 보니 다정히 부를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지금부터는 "야, 이효리!"말고 "효리야~", "야, 유재석!"말고 "재석아~"로 불러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들은 내가 당장 둘이 사귀라고 하기라도 한 것처럼 질색을 하며 싫어했다. 못하겠다고 징징거리다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효, 효, 효리야.." 하며 입을 뗀 순간 이름을 부른 아이도 이름을 불린 아이도 깔깔 웃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2,3번 반복하더니 금방 적응한 것 같았다. 겨우 이름만 다정히 불러줬을 뿐인데 교실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 아직 잘 몰라서 싸우고, 화해하며 배운다. 그 과정에서 어른이 해야 할 역할은 '혼내기'가 아닌 '가르치기'다. 앞서 친구를 비난한 아이들에게도 말했던 것처럼, 아이들의 행동이 못마땅하더라도 "또 시작이야?", "넌 도대체 왜 그러냐?" 같은 말로 비난하기보다는 "그럴 땐 이렇게 행동하는 거야."라고 가르쳐줘야 한다. 물론 쉽지 않다. 어른도 화가 난 상태에서는 이성적으로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른은 더 노력해야 한다. 아이에게는 비난하지 말라고 해놓고 부모나 교사가 아이를 비난하면 금방 신뢰를 잃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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