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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건강검진을 하러 가는 기분

카운트 다운이 필요해

by 김채원

건강검진을 1월에 하는 사람도 있을까? 나는 그게 늘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1월은 건강검진을 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1월은 건강관리를 목표로 하는 시기다. 새해를 맞아 금연, 금주, 다이어트, 운동 같은 목표를 세워두고 건강을 다짐하는 시기에 건강검진을 하는 건 조금 이상하다. 어느 정도 관리를 한 다음에 기분 좋은 결과표를 받아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 비슷한 이유로 2, 3, 4월도 아직은 시기상조 같은 느낌이 있다.


5, 6, 7월은 건강검진을 잊고 살 시기다. 이제는 새해에 대한 설렘도 사라지고 예년과 같은 기분으로 폭염이나 걱정하고 있을 때다. 이때는 건강검진보다는 여름휴가를 생각하기에 알맞다. 제주도나 동해의 푸른 바다에 둥둥 떠 있을 내 몸을 상상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8, 9, 10월에는 다시 건강검진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물론 여전히 술은 마시고 있고, 몸무게는 1월보다 늘었다. 하지만 아직 여유가 있다. 12월 31일까지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급하지 않다.


로켓을 발사할 때는 카운트 다운을 한다. 10, 9, 8, 7, 6, 5, 4, 3, 2, 1, 발사! 로켓 발사는 카운트 다운이 모두 끝난 뒤에 해야 한다. 9나 5에 갑자기 발사를 해 버리면 안 된다. 나에게 건강검진이 그렇다. 국가에서 건강검진을 하라고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365일의 기회를 주지만 11월 30일까지의 334일은 아무 의미 없다. 그저 카운트 다운 기간인 셈이다.


12월이 되면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진다. 평일에는 출근을 해야 하니 건강검진을 할 수가 없다. 나에게 남은 건 4, 5번의 토요일뿐. 그마저도 전날 저녁에 금식을 해야 하니 금요일에 약속이 없어야 한다. 갑자기 울고 싶다. 연말이라 약속이 넘쳐나는데 금식이라니. 건강검진이라니. 여름에 방학도 있었는데 건강검진은 안 하고 뭐 했던 건지 내가 너무 싫다. 조금 위로가 되는 건 12월의 토요일 병원은 건강검진을 하러 온 사람들로 넘쳐난다는 거다. '너도? 나도!' 같은 눈빛을 건네며 동지애를 느낀다.


올해는 건강검진뿐 아니라 자동차 면허 적성검사도 해야 했다. 10년에 한 번만 하면 되는데도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금식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아무 때나 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안내문에 적힌 한 문장이 적성검사를 미루게 만들었다.


신체검사는 건강검진결과 내역 확인, 진단서 등으로 갈음


건강검진을 먼저 하면 신체검사를 따로 안 해도 된다는 뜻이다. 굳이 신체검사를 따로 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어 건강검진을 한 뒤 적성검사를 하기로 했다. 건강검진을 12월에 했으니 적성검사도 12월에 할 수밖에 없다. 드디어 오늘, 운전면허를 갱신했다. 새로 발급받은 면허증에는 내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가 적혀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다. 오히려 면허증 제일 아래에 적힌 2022. 12. 28.이라는 날짜가 나를 잘 드러낸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적성검사를 하라고 하면 12월 28일에서야 몸을 움직이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면허증 속 나는 살짝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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