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작가는 어떤 사람들이 되는 거야?
여러분, 제발 글을 쓰세요.
일기 쓰기 숙제에서 해방될 무렵부터 일기를 쓰고 싶어 졌다. 그때는 내가 자발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두 장 정도 쓰고 만 일기장을 몇 권이나 버렸는지 모르겠다. 일기를 쓰려고 앉았다가도 이상한 고민을 하다 펜을 내려놓곤 했다.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남은 가족들이 유품을 정리하다 일기장을 보면 어떡하지? 그럼 좀 창피한데?'
그런데 어이없게도 남들이 다 보는 싸이월드 다이어리는 엄청 열심히 썼다. 나는 좀 관종인 것 같다.
브런치는 그런 나에게 신세계였다. 내가 쓴 글을 다음 메인이나 카카오 채널에 노출시켜주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줬다. 조회수가 10,000을 넘었다는 알림을 캡쳐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나는 좀 관종인 것 같다'는 생각은 '나는 관종이 확실하다'로 발전됐다.
꾸준히 글을 쓰고 싶었다. 일주일에 2개의 글을 올리는 게 적당한 것 같아 월요일과 목요일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정해놓지 않으면 점점 미루다 흐지부지 될 것 같아서였다. 일주일에 2개의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제일 어려운 점은 쓸 게 없다는 거였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글을 쓰나 찾아봤는데 다른 나라에서 경험한 것을 쓴 글이 많이 보였다. 여행이든 이민이든 한 달 살기든. 그래. 저렇게 특별한 경험이 있어야 글을 쓰지. 집구석에서 온종일 애만 보는 내가 뭘 쓸 수 있겠어. 남편한테 해외에서 글감을 얻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브런치 작가를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내 글과 다른 점도 발견했다. 다른 사람들의 글에는 진짜 작가들만 쓸 것 같은 고급진 단어들이 있었다. 말로 쓰는 사람보다 글로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은 그런 단어들 말이다. 나도 그런 단어를 쓰면 좀 더 작가스러워질 것 같아 마음속에 몇 개의 단어를 저장해놨다. 지난한, 해사한, 톺아보다 같은 것들. 언제든 써먹으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나에게는 지난한 하루도 없었고 해사한 얼굴을 볼 일도 없었다. 톺아보다는 무슨 뜻이었더라?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욕을 써보는 건 어떨까? 말끝마다 욕을 붙이는 사람은 상스러워 보이는데 적절히 욕을 섞은 글은 뭔가 예술가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존나, 씨발 같은 단어들을 섞으면 쿨해 보이는 효과도 날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말로만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글로는 욕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존나 욕하고 싶다 씨발.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금방이라도 책을 한 권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고작 열몇 개의 짧은 글을 쓰고 난 지금은 도대체 작가는 어떤 사람들이 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내가 아는 모든 단어를 생각나는 대로 쭉 늘어놔도 책 한 권 분량은 안 나올 것 같다. 내 어휘력과 표현력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면서 내 인생을, 생각을,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내가 많이 불안했구나.', '내가 많이 우울했구나'를 알아차리게 되자 신기하게도 덜 불안해졌고 덜 우울해졌다.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들도 글쓰기를 통해 정리가 됐다. 말을 할 때는 "왜 그런 거 있잖아~ 막 그런 거~ 뭔지 알지?"라고 할 수 있지만 글은 그렇게 쓸 수 없었다. 어떻게든 내 머릿속에 모호하게 자리 잡은 '왜 그런 거'와 '막 그런 거'를 정리해야만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알게 됐다. 글을 쓰기 전에는 흘려버리고 말았을 소중한 것들도 자주 기억하게 된다. 순간의 느낌을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해보려는 시도들이 많아지면서 그 느낌은 마음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생각보다 내 인생에는 소소한 행복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러분, 제발 글을 쓰세요.
나는 남들에게 무언가를 추천하거나 비추하는 것을 꺼려한다. 내가 추천해서 했는데 그 사람은 별로일까 봐. 내가 비추해서 안 했는데 그게 그 사람한테는 잘 맞는 거였을까 봐. 결정적으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극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에는 좀 하고 싶다. 좋은 글을 쓰는 방법, 글쓰기 꿀팁 같은 것을 말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글쓰기가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말할 수 있다. 글을 많이 써 본 건 아니지만 벌써 인생이 달라진 기분이다. 좋은 글이 아니라도 괜찮다. 그냥 주절주절 생각을 뱉어내듯 써 내려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왜 글쓰기를 추천하는지.
작가가 되고 싶다. 그저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내가 봐도 만족스러운 글, 남이 봐도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내 주제에 인문학적 철학적 생각이 담긴 글 까지는 쓰지 못 하겠지만 읽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은 쓰고 싶다. 도대체 작가는 어떤 사람이 되는거냐면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되는거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