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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Dec 26. 2019

도대체 작가는 어떤 사람들이 되는 거야?

여러분, 제발 글을 쓰세요.

일기 쓰 숙제에서 해방될 무렵부터 일기쓰고 싶어 졌다. 그때는 내가 자발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두 장 정도 쓰고 만 일기장을 몇 권이나 버렸는지 모르겠다. 일기를 쓰려고 앉았다가도 이상한 고민을 하다 펜을 내려놓곤 했다.

'내가 죽고 난 다음에 남은 가족들이 유품을 정리하다 일기장을 보면 어떡하지? 럼 좀 창피한데?'

런데 어이없게도 남들이 다 보는 싸이월드 다이어리는 엄청 열심히 썼다. 나는 좀 관종인 것 같다.


브런치는 그런 나에게 신세계였다. 내가 쓴 글을 다음 메인이나 카카오 채널에 노출시켜주고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해줬다. 조회수가 10,000을 넘었다는 알림을 캡쳐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나는 좀 관종인 것 같다'는 생각은 '나는 관종이 확실하다'로 발전됐다.


꾸준히 글을 쓰고 싶었다. 일주일에 2개의 글을 올리는 게 적당한 것 같아 월요일과 목요일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정해놓지 않으면 점점 미루다 흐지부지 될 것 같아서였다. 일주일에 2개의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제일 어려운 점은 쓸 게 없다는 거였다.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글을 쓰나 찾아봤는데 다른 나라에서 경험한 것을 쓴 글이 많이 보였다. 여행이든 이민이든 한 달 살기든. 그래. 저렇게 특별한 경험이 있어야 글을 쓰지. 집구석에서 온종일 애만 보는 내가 뭘 쓸 수 있겠어. 남편한테 해외에서 감을 얻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브런치 작가를 그만두는 게 낫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내 글과 다른 점발견했다. 다른 사람들의 에는 진짜 작가들만 쓸 것 같은 고급진 단어들이 있었다.  쓰는 사람보다 글로 쓰는 사람들이 더 많은 그런 단어들 말이다. 나도 그런 단어를 쓰면 좀 더 작가스러워질 것 같아 마음속에 몇 개의 단어를 저장해놨다. 지난한, 해사한, 톺아 같은 것들. 언제든 써먹으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나에게는 지난한 하루도 없었고 해사한 얼굴을 볼 일도 없었다. 톺아다는 무슨 뜻이었더라?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욕을 써보는 건 어떨까? 말끝마다 욕을 붙이는 사람은 상스러워 보이는데 적절히 욕을 섞은 글은 뭔가 예술가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 씨발 같은 단어들을 섞으면 쿨해 보이는 효과도 날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말로만 욕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글로는 욕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존나 욕하고 싶다 씨발.

 

글쓰기를 시작할 때는 금방이라도 책을 한 권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고작 열몇 개의 짧은 글을 쓰고 난 지금은 도대체 작가는 어떤 사람들이 되는 건지 궁금해졌다. 내가 아는 모든 단어를 생각나는 대로 쭉 늘어놔도 책 한 권 분량은 안 나올 것 같다. 내 어휘력과 표현력의 한계를 절실히 깨닫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쓸 것이다.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면서 내 인생을, 생각을,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내가 많이 불안했구나.', '내가 많이 우울했구나'를 알아차리게 되자 신기하게도 덜 불안해졌고 덜 우울해졌다.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들도 글쓰기를 통해 정리가 됐다. 말을 할 때는 "왜 그런 거 있잖아~ 막 그런 거~ 뭔지 알지?"라고 할 수 있지만 글은 그렇게 쓸 수 없었다. 어떻게든 내 머릿속에 모호하게 자리 잡은 '왜 그런 거'와 '막 그런 거'를 정리해야만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알게 됐다. 을 쓰기 전에는 흘려버리고 말았을 소중한 것들도 자주 기억하게 된다. 순간의 느낌을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해보려는 시도들이 많아지면서 그 느낌은 마음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생각보다 내 인생에는 소소한 행복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러분, 제발 글을 쓰세요.

나는 남들에게 무언가를 추천하거나 비추하는 것을 꺼려한다. 내가 추천해서 했는데 그 사람은 별로일까 봐. 내가 비추해서 안 했는데 그게 그 사람한테는 잘 맞는 거였을까 봐. 정적으로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극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에는 좀 하고 싶다. 좋은 글을 쓰는 방법, 글쓰기 꿀팁 같은 것을 말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글쓰기가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말할 수 있다. 글을 많이 써 본 건 아니지만 벌써 인생이 달라진 기분이다. 좋은 글이 아니라도 괜찮다. 그냥 주절주절 생각을 뱉어내듯 써 내려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왜 글쓰기를 추천하는지.


작가가 되고 싶다. 그저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내가 봐도 만족스러운 글, 남이 봐도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내 주제에 인문학적 철학적 생각이 담긴 글 까지는 쓰지 못 하겠지만 읽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 쓰고 싶다. 도대체 작가는 어떤 사람이 되는거냐면 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되는거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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