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딸의 첫 떡볶이 데이트

이걸 데이트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by 김채원

이럴 거면 도대체 휴대전화는 왜 들고 다니는 걸까. 현재 시각 오후 8시. 우리 딸은 내가 오전에 보낸 문자메시지도 아직 확인 안 했다. 무음으로 설정해 두고 가방에 넣어두니 전화가 와도 문자가 와도 그냥 모르고 넘어간다. 휴대전화를 철저하게 발신전용으로만 사용하니 나는 늘 속이 터진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한 달이 채 안된 터라 매일 등하교를 함께하고 있다. 오늘도 방과후 수업 마칠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갔는데 10분이 지나도록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전화를 2번이나 했는데도 안 받았다. 마침 우현이가 내 앞을 지나갔다. 우현이는 우리 딸과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동창인데다 방과후 수업을 함께 듣는 아이였다.


"안녕? 우현아! 아솜이 엄마야."

"네, 안녕하세요?"

4살 때부터 예의 바르고 싹싹했던 우현이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여전히 반갑게 인사를 했다.

"방과후 끝났지? 아솜이 못 봤니?"

"방과후 할 때 아솜이를 보긴 했는데... 아솜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는 수 없이 계속 기다리는데 우현이도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섰다. 아솜이가 나오면 집에 같이 가겠다고 했다. 괜히 어색해서 학교는 재미있는지 오늘 방과후 수업은 어땠는지 같은 걸 물어봤다. 다행히 대화가 끊기기 전에 아솜이가 나왔다.


함께 기다려준 우현이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어 분식집에 가자고 했다. 우현이가 학교 앞 분식집에서 어묵을 먹는 모습을 몇 번 봤기 때문이다. 우현이 엄마에게는 우현이와 분식집에 가겠다고 미리 전화를 했다.

"뭐 먹을래?"

"떡볶이요."

중학교 1학년 형이 있는 우현이는 첫째인 아솜이보다 뭐든 빨랐다. 아직 빨간 양념은 시도할 생각도 안 하는 아솜이와 달리 자연스럽게 떡볶이를 고르는 우현이가 어른스러워 보였다.


딸, 너무 밝게 웃는 거 아니니?


매운걸 못 먹는 아솜이를 위한 어묵 1인분과, 우현이를 위한 떡볶이 1인분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자 우현이는 어묵꼬치 하나를 집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이모 먼저 드세요."

이 녀석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흐뭇해하며 어묵을 한 입 먹었는데, 매운맛이 확 느껴졌다. 국물에 고추를 넣은 모양이다. 고춧가루는커녕 후춧가루만 조금 넣어도 맵다며 혀를 내밀고 손부채질을 하는 아솜이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아솜이에게 어묵이 맵다고 미리 말해줬다. 아솜이는 용감하게 어묵을 베어 물더니 바로 물을 찾았다. 어묵 한 입, 물 한 모금, 어묵 한 입, 물 한 모금이 이어졌다. 우현이는 아솜이에게 떡볶이도 먹어보라고 했다. 아솜이는 떡볶이를 새모이만큼 뜯어먹더니 물을 더 달라고 했다. 씁-하-씁-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현이는 평소 먹방을 많이 보는지 '디진다 돈까스'가 얼마나 매운지에 대해, 불닭볶음면보다 훨씬 매운 '고스트 페퍼 라면'이라는 것에 대해, 매운 정도를 나타내는 '스코빌 지수'에 대해 설명하며 떡볶이를 먹었다.


아솜이도 우현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떡볶이를 계속 입에 넣었다. 떡볶이가 거의 떨어져 가자 우현이가 여기 김말이 튀김도 맛있다고 했다. 바로 김말이 튀김 1인분을 주문했다. 우현이는 김말이 튀김은 떡볶이 양념에 찍어 먹는 거라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아솜이도 우현이를 따라 떡볶이 양념을 살짝 찍어먹더니 나중에는 둘이 떡볶이 그릇을 설거지라도 하듯 김말이 튀김으로 싹싹 긁어먹었다.


김말이 튀김 추가


먹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다 먹고 난 뒤 우현이 입과 볼은 떡볶이 양념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아솜이는 마스크와 옷소매까지 떡볶이 양념이 묻어 있었다. 서로의 모습을 보고 깔깔대고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집에서 본 아솜이는 편식이 심하고 예민하고 화를 잘 내는 아이다. 그래서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유치원에 보낼 때도 학교에 보내면서도 걱정이 참 많았다. 아무래도 우현이처럼 뭐든 잘 먹고 붙임성 좋고 잘 웃는 아이를 선생님과 친구들이 더 좋아할테니, 밖에서도 집에서처럼 예민하게 굴다가 미움이라도 받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우현이와 떡볶이를 먹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한결 놓였다.


보호자와 상담을 할 때면 보호자들은 늘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는지 걱정이 된다고 하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는 어른들 생각보다 훨씬 잘해요. 걱정 마세요."라고 말했지만 내 아이가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늘 남에게 해주던 말을 나에게 해 본다. "아솜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자."




*우현이는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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