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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May 03. 2023

추억은 왜 미화되는 걸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어린 아기를 볼 때마다 불쑥 셋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내 특기가 망각인 건 확실하다.


자는 아기의 날숨에서 나는 뽀얀 젖 냄새 작은 손끝이 빨개지도록 내 손가락을 움켜잡는 힘그리울 때면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사람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린.

"내 남편 지금 어디 있지? 빨리 셋째를 가져야겠는데."


아기는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하지만 육아는 괴로움과 고통과 인내의 연속이다. 그 지난한 고행을 견딘 보상으로 보드라운 아기의 뺨을 만져볼 수 있고 모닝빵 같은 아기의 엉덩이에 입 맞출 수 있다.


새벽 2시에 아기가 배고프다고 울어 젖힐 때는 이러다 미쳐버리고 말겠다는 암울한 생각을 하며 힘겹게 잠을 쫓았던 것 같은데 둘째가 5살이 되고 보니 그때가 왜 이렇게 그리운 걸까.


추억은 자주 미화된다. 나는 미화된 추억에 속아 같은 남자와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헤어졌을 때는 좋았던 일들만 기억나면서 "그래도 걔만 한 애가 없다."는 생각에 그리워지고, 다시 만나보면 무심코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잡은 것처럼 화들짝 "우리가 이래서 헤어졌었지." 깨닫고 냄비에서 손을 떼듯 그에게서 마음을 떼곤 했다.


추억은 왜 미화되는 걸까. 눈물 콧물에 피까지 철철 흘리며 겨우 지나온 가시밭길인데 왜 지나고 보면 가시는 몇 개 안 보이고 장미만 보이는 걸까.


이미 지나간 고통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과거에 믿었던 친구가 나를 배신했던 고통보다 지금 내 운동화 안에 굴러들어 온 모래 한 알이 더 괴롭기 때문일 테다. 현실의  삶도 팍팍해 죽겠는데 과거의 괴로움까지 생생하게 붙잡고 있어야 한다면 인생은 얼마나 더 힘들까.


그러니 어쩌면 추억 미화는 생존을 위한 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살면서 겪은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과 두려움 같은 것들을 있는 그대로 다 기억한다면 나이가 들수록 슬픈 추억, 괴로운 추억, 고통과 두려움의 추억이 차곡차곡 쌓여 자기 목을 조를지도 모른다.


아무리 힘든 일도 지나고 보면 다 추억이 될 테고 그 추억은 적당히 미화될 테니 세상도 그럭저럭 살만한 게 아닐까. 인생의 암울한 시기가 찾아왔을 때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정신으로 버텨내면 결국 그 또한 미화된 추억이 되겠지.

 

인간의 뇌에는 추억을 미화하는 필터가 있어서 좋긴 한데, 미화된 추억을 미끼로 달고 나 자신에게 드리우는 낚싯바늘도 함께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방심하고 미끼를 덥석 물었다간 이미 데어 본 불구덩이에 다시 뛰어드는 수가 있다.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추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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