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머릿속이 복잡하다고 느낄 때면 가슴도 같이 답답해지고, 숨 쉴 틈 없이 바쁠 때면 어깨가 묵직하니 말이다.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면 어른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몸만 늙어가는 나 자신이 소름 끼치도록 낯설다. 이러다 100살을 코 앞에 두고도 "100살이나 먹고도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구먼."하고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를 일이다.
가끔 내가 살아있다는 게 무서울 때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르고 태어나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같은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이 떠오르면 운동화를 신는다. 그리고 무작정 걷는다.
나의 걸음에는 목적도 목표도 없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보면 햇빛도 만나고 바람도 만난다. 강렬한 태양빛으로 어두워진 마음을 비추고 선선한 바람에 축 늘어진 몸을 살짝 말리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때부터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다. 몇 년을 살았는지 모를 나무들과 이름 모를 꽃과 풀, 모습을 감추고 목소리만 들려주는 새들까지. 이 모든 것들은 당장 나에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저 그곳에 존재할 뿐이다. 쓸모없는 것들에게 위로받고 나면 나의 쓸모를 고민했던 일이 멋쩍어진다. 자연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데 고작 내가 뭐라고 방황을 하나 싶다.
생각해 보면 나는 평생 쓸데없이 나의 쓸모를 증명하려 아등바등했던 것 같다. 수능 점수로 내가 얼마나 쓸모 있는 학생인지 증명하려 늦은 밤까지 공부를 했고, 유능한 인재인 척 면접을 통과해 직장도 얻었다. 불쾌한 말도 웃어넘기고 무리한 요구도 다 받아주며 남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 노력했다. 쓸모 있는 사람의 최대 단점은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진다는 것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마도 나는 평생을 쓸모 있는 사람인 척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생이 그러겠지.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쓸모를 따지기보다 그저 존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몇 년이나 곁에 있었는지도 모르고, 어쩌다 함께하게 됐는지도 모르지만 존재만으로 위로가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