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 독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책을 읽을 때는 고개도 끄덕이고 밑줄도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는데 돌아서면 남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 기록을 하기로 했다. 인스타그램 공개 계정에 남기면 지켜보는 팔로워들을 의식해 한 권이라도 더 읽게 될 거라는 계산도 물론 했다.
2023년 12월 27일. 지금까지 책 계정에 리뷰를 남긴 책은 모두 25권이다. 얼마 전 올해 500권을 읽었다는 북스타그래머의 피드를 본 탓에 25권이라는 숫자가 조금 초라해 보이기는 하지만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인스타그램 계정에 차곡차곡 쌓인 책들
처음 북스타그램을 시작할 때 프로필에 적은 문구가 있다.
마음에 안 드는 책은 덮어요 끝까지 읽은 책만 기록해요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정말로 마음에 안 드는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피드에 올린 책들은 모두 내 마음에 든 책이고 끝까지 읽은 책이다. 한 번씩 그동안 올린 책들을 주욱 훑어보면 내 취향과 당시의 관심사까지 알 수 있어 북스타그램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김주환 교수님의 <회복탄력성>을 꼽을 것이다. 책을 읽을 당시만 하더라도 내 회복탄력성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었는데 요즘 들어 회복탄력성이 꽤 좋아졌다는 걸 느껴 신기한 마음에 자꾸 떠오른다.
회복탄력성이란, 자신에게 닥치는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는 힘을 말한다. 단순히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힘이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사실 나는 지금 회복 중이다. 3주 전에 운동을 하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이제껏 주변에서 실제로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우리 몸에서 가장 큰 힘줄이라는데 이렇게 쉽게 끊어질 거라고 예상도 못했다. 게다가 끊어질 때는 갑작스럽게, 그래서 더 어이없게, 찰나의 순간에 끊어져놓고는 수술하고 회복하는 과정은 길고 지난하고 인내와 노력을 요한다.
다친 지 3주나 됐는데 적어도 2주는 더 깁스를 해야 하고 깁스를 푼다고 바로 걸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목발과 휠체어가 없으면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하는 건 생각보다 더 불편한 일이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오르막과 내리막, 작은 문턱 모두 나에겐 커다란 장애물이다. 이건 비밀인데, 다친 다리는 3주 동안 한 번도 못 씻었다. 지금이 겨울이라 천만다행이다.
갑작스럽게 겪게 된 사고에 나는 겸허함과 감사함을 배웠다. 누구에게나 불행이 찾아올 수 있음을, 그러니 불행이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음을 받아들였다. 이 나이 돼서야 처음으로 깁스를 해 볼만큼 무탈하게 살았던 지난 세월에 감사했다. 덕분에 10일 넘게 병원에서 남이 해 준 밥을 먹고 누워 쉴 수 있어 감사했다. 남는 시간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둔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볼 수 있어 또 감사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세상에서 제일 유쾌한 환자가 되어보겠다고 다짐했는데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세상엔 나보다 유쾌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텐션을 끌어올려도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대신 아픈 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즐겁게 보내고 있다.
일상을 잃어보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누렸는지 알게 됐다. 다리는 다쳤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 건 더 높이 뛰기 위해 움츠릴 기회를 주기 위한 게 아니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든 것이 고맙다.
겨울나무가 말없이 봄에 꽃 피울 준비를 하듯 나도 다친 다리가 나을 때까지 더 높이 뛸 준비를 해야겠다. 3주 못 걸었다고 벌써 다리 근육이 다 빠졌다. 깁스 위로 드러난 종아리를 만져보면 시들어서 쭈글쭈글해진 홍시처럼 물컹한 게 축 늘어졌다. 이제 근력을 회복하고 탄력을 되찾을 일만 남았다.
병원에 있어보니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참 많더라.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혹시 아픈 사람이 있다면 하루빨리 회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역경을 겪고 있다면 분명 성장통일 거라고 굳게 믿어보자. 우리의 마음에는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회복탄력성이 분명히 존재하니까.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나를 표현하는 단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