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로 돌아간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지금은 늘 버거울까
육아를 시작했던 때가 떠오른다. 맨몸으로 태어나 먹고 자고 싸고 우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아기를 쳐다보고 있자니 막막했던 기억이 난다. 아기가 울 때마다 먹이고 재우고 싼 거 치우며 틈틈이 먹고 자고 싸고 했었다. 다행히 우는 건 아무 때나 할 수 있었다.
하루 24시간을 이렇게 알차게 쓸 수 있다니 놀라울 지경이었다. 수시로 자고 깨는 아기한테 맞춰서 깨어 있으려니 잠이 절반으로 줄었다. 설거지도 빨래도 늘어났다. 아기 돌보는 일에만 하루를 다 쓰고 싶지는 않아서 틈틈이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술을 마셨다. 애 낳기 전에 이렇게 열심히 살았다면 지금쯤 대단한 사람이 됐겠다 싶었다. 뭘 해도 성공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다. 초등학교 때는 '1학년으로 돌아가면 무조건 내가 1등일 텐데' 하는 상상을 했었다. 중학교 때는 초등학교로 돌아간다면, 고등학교 때는 중학교로 돌아간다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삼학년이 아니라 사망년이라고 부를 정도로 과제가 많았던 교대 3학년 때는 고3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돈 내고 다니던 학교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돈 받고 다니는 직장은 오죽하겠냐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인생은 왜 늘 버거울까.
인생의 매 단계마다 늘 힘들었다. 그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이전 단계는 쉬워 보였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나온 단계는 이미 해낸 일이라 쉬워 보이는 것 같다.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돌아가면 잘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인생은 게임과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인생의 스테이지를 하나하나 깨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스테이지를 깰 때마다 내 캐릭터도 레벨업을 하면서 말이다. 스테이지와 캐릭터 레벨 사이에는 늘 꼭 1단계만큼의 차이가 있어서 스테이지 5를 플레이하고 있을 때 내 캐릭터는 레벨 4인 그런 게임. 그래서 플레이하고 있는 단계마다 모두 버겁지만 힘들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그 보상으로 레벨업을 한다. 이전 단계를 능숙하게 할 수 있을 만큼만.
첫째는 5살, 둘째는 8개월이다. 내가 3년 동안 한 아이의 엄마였다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 8개월이 됐다는 뜻이다. 이제 한 아이를 키우는 건 일도 아닌 것 같다. 오버 좀 한다면 발로도 키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아직 버겁다. 아마 셋째를 낳는다면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쉬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는 일은 버겁겠지. 나는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지 않고 이번 스테이지에 머물기로 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든 두 아이의 엄마로 사는 것을 선택했다.
남의 염병이 제 고뿔만 못 하다고 누구든 자기 인생이 제일 버겁게 느껴질 것이다. 자기 인생도 현재는 힘들지만 조금 지나고 나면 웃어넘길 수 있는 일들로 가득하다. 삶이 버거울 때면 지금 내가 게임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해봐야겠다. 이 시간을 버티면 레벨업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는 것이다. 아니면 레벨업에만 몰두하지 않고 게임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 힘들어지면 현질을 해서 좀 쉽게 가도 괜찮고. 커피 한잔이나 책 한 권 정도만 질러도 다시 열심히 살아갈 힘이 생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