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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명절이 끝났다

결혼 6년 차 여자의 개인적인 생각

by 김채원

드디어 명절이 끝났다. 결혼 6년 차, 이제는 명절이 조금 편해졌다. 시간이 해결해 준 도 있고 그 사이 내가 많이 변하기도 했다.


신혼 때는 명절이 끔찍했다. 아니, 남편의 가족을 만나는 모든 순간이 스트레스였다. 나랑 남편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이었고, 남편의 가족은 우리 가족이랑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때는 항상 내가 피해자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그냥 우리가 서로 다 탓이라고 이해한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늘 말이었다. 한 마디 한 마디 서운하지 않은 말이 없었다. 대통령보다 얼굴 보기 힘든 며느리라는 말도, 내가 늦게 일어나서 아침 식사가 평소보다 늦어졌다는 말도, 옷은 왜 이렇게 입었냐는 말도 무엇하나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하루 종일 내가 받은 말들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곱씹으며 집에 갈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집에 오면 남편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나 아까 좀 서운했어."라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내면 남편은

"뭐가?"라고 물었다. 뭐가?라는 두 글자에 실린 목소리와 표정서 정말로 몰라서 묻는 자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항상 나를 더 화나게 했다. 어떤 걸 먼저 말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남편은 그중에 하나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가 난 나는 하나하나 따지기 시작했고 남편 자기 가족들을 변호했다. 졸지에 나는 가족이 아닌 사람이 되곤 했다.


그러기를 몇 번, 남편에게 말하는 것이 조금도 도움되지 않음을 깨닫고 그만뒀다. 그리고 그 속상함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늘 내 편이 되어줬고 내 서운함을 이해해줬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는 남편의 가족들을 만나야 했고 나를 향한 말들을 견뎌야 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찾아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글에서 한 번도 '시가 식구들'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남편의 가족들'이라는 말을 썼다. 이런 말을 쓰는 게 남편의 가족들을 편히 만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아무래도 '시'자가 들어가면 거부감이 생긴다. 오죽하면 결혼하면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말이 생겼겠는가. 같은 말이라도 우리 아빠가 하면 농담 같은데 시아버지가 하면 기분이 나쁜 것도 '시'아버지가 한 말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시'를 붙이지 않기로 했다. 내 머릿속에 남편의 가족들은 남편의 엄마, 남편의 아빠, 남편의 누나로 정리됐다. 말이 가지는 힘은 생각보다 컸고 내 마음은 많이 편해졌다.


'남편의 가족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도움도 됐다. 내가 어렵고 불편한 그 사람들이 모두 남편의 '가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남편과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그 프로그램에서 "당신의 인생에 등대가 되어준 인물은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한테 등대는 누구야?"

남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부모님"

그때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늘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남편에게는 인생의 등대 같은 분이라니. 갑자기 세상 모든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이내 인정하기로 했다. 세상에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은 없으니까. 나게 자주 상처를 주는 그 분들이 남편에게는 좋은 분들일 수도 있다. 그리고 분들에게 남편은 좋은 아들이고 나는 안 좋은 며느리겠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 좋은 며느리이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부모님에게 남편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아들이었는데 그건 늘 나를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대적으로 내가 덜 좋은 사람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욕심을 접었다. 나는 좋은 며느리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남편의 부모님은 나에게 좋은 시부모님이 될 필요가 없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더 이상 남편의 가족들의 말에 상처 받지 않는다. 나에게 상처를 줬던 말들의 대부분은 나와 친해지기 위한 농담이었던 것도 이제는 알겠다. 그저 나와 농담의 코드가 맞지 않았던 거다. 말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무엇이든 듣는 사람이 불편하면 그건 더 이상 농담이 아니라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고 "기분 나쁘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내 자신도 내 마음대로 바꾸기 힘든데 다른 사람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오만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상대가 나보다 훨씬 어른이라면 평생을 그렇게 살아와 관성처럼 몸에 굳어진 습관을 내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고 남편의 가족들이 늘 나에게 상처만 주는 것은 아니다. 남편의 부모님이 남편이나 우리 딸들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엄청난 애정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인간적인 동질감을 느낀다. 우리는 한 번도 합의한 적이 없지만 어느샌가 합의된 것처럼 살아간다. 명절이면 나는 명절 이틀 전부터 2박 3일을, 에 빨리 가자고 보채지 않고 남편의 부모님 집에서 보낸다. 남편의 부모님은 술 좋아하는 나를 위해 매일 저녁 식사에 술을 준비해 주신다. 다른 인간관계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 노력한다.


가족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 명절에 정작 즐거운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욕심을 줄이니 덜 괴로워졌다.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룰은 아니겠지만 상대방을 바꾸기보다 내 마음을 바꾸는 게 훨씬 쉬운 일임은 확실하다. 도대체 명절이 뭐라고 차 막히고 복잡한 날 굳이 만나야 되는 건가 싶은 마음도 크다. 그런데 또 달리 생각해보면 1년에 두 번인데 못할 일도 아닌 것 같다. 여전히 언젠가는 명절에 여행을 떠나는 꿈을 간직한 채 이번 명절도 잘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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