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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과 브런치를 대하는 나의 자세

엉망진창, 혹은 아무렇게나

by 김채원

인스타 감성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나에게 인스타 감성은 카페다. 하늘하늘 거리는 하얀 커튼을 친 창이 있는 카페. 골드 컬러로 포인트를 준 화이트 테이블과 의자. 감각적으로 플레이팅 된, 먹기에는 조금 불편해 보이는 브런치. 카페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잎이 큰 녹색 식물의 화분 같은 것들. 인스타 감성이 느껴지는 사진들로 꽉 찬 피드를 보고 있으면 '오 인스타 좀 할 줄 아는 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꼭 유행하는 인스타 감성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컨셉을 유지하고 있는 계정도 눈길을 끈다. 읽은 책만 쭉 올리는 계정이나 다이어리 꾸민 것들을 올려놓은 계정, 음식 사진만 올리는 계정 같은 것들을 보면 내 마음까지 잘 정돈되는 기분이다.


나는 인스타그램 하수다. 인스타그램에 내 일상을 그대로 올린다. 사진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어 그냥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찍는다. 술 사진을 올렸다가 책 사진을 올리고, 브런치에 올린 글의 조회수를 캡처해서 자랑하기도 하고 아주 아주 가끔은 셀카도 올리고 이런 식이다. 내 삶의 모습이 인스타 감성과는 다른데 굳이 꾸미고 싶지는 않다. 계정을 분리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번거로울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아이들 사진을 올리는 비공개 계정과 내 일상을 올리는 공개 계정 두 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정도면 인스타의 기능을 잘 활용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브런치에서도 마찬가지다. 브런치의 엉망진창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내가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던 때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년, 한참 우울하던 시기에 브런치를 우연히 알게 됐다. 브런치에서는 누구나 작가가 된다는 말에 정말 누구나 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어지러운 마음을 글로 정리했는데 글을 발행하려면 작가 신청을 하란다.

누구나 된다면서요

그때까지만 해도 '작가 신청''카페 가입 버튼 누르기' 정도쯤로 생각했다. 그런데 샘플 글도 보내야 했고 앞으로 어떤 글을 쓸 지도 적어서 보내야 했다.

'뭐야? 이럴 거면서 왜 누구나 될 수 있댔어?'

그래도 아쉬운 건 나니까 시키는 대로 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정말이지 솔직하게 썼다.

나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평범한 엄마고, 브런치 작가가 된다면 평범한 일상을 쓰게 될 것이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지만 복직하면 학교 이야기도 쓸 수 있겠다. 어쨌든 내가 쓸 수 있는 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뿐인데 평범한 이야기의 장점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거 아니겠냐. 나 작가 시켜줘라.

이런 내용의 이야기를 조금 더 정중하게 쓴 것 같다. 운이 좋게도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약속한 대로 정말 평범한 이야기를 썼다.


매거진이라는 게 있길래 만들었는데 인스타 계정 분리할 때랑 똑같이 '육아 이야기'와 '그 외'로 만들었다. 아를 글로 쓰려니 조금 쑥스러웠다. 내가 뭐 대단한 엄마라고 육아에 대한 글을 쓰나 싶었다. 그래서 그 매거진의 제목은 "그렇게 대단한 엄마는 아니지만"으로 정했다. '그 외'의 제목은 정하기가 더 어려웠다. 하나의 주제나 컨셉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라고 정했다. 그렇게 해서 브런치는 내 인스타그램을 닮게 되었다. 내 일상의 여러 부분을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가져와서 올리기 시작했다. 내 인스타나 내 브런치를 볼 때마다 컨셉이 확실하지 않음이, 정돈되지 않음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데 둘을 같이 놓고 보니 내 컨셉은 확실하다. 엉망진창, 혹은 아무렇게나.


그러다 브런치북을 알게 됐고 올해는 브런치북 한 권 만들어봐야겠다는 목표도 생겼다. 브런치북은 진짜 책과 똑같다. 주제나 성격이 비슷한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내가 쓴 글들은 한 책에 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브런치북은 만들고 싶은데 어떤 주제로 만들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물론 여러 가지 이야기를 쓴 에세이집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기에도 내 글 하나하나의 완성도가 책을 만들 수준인지는 의심스럽다.


어떤 작가님들은 사소한 것에서 대단한 생각을 해낸다. 예컨대 그런 작가님들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내 글로 표현한다. 그에 반해 나는 사과가 떨어진 이야기만 끝까지 쓴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내 글을 읽은 분들 중에 누군가가 발견하시기를 바라면서. 물론 나도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끝내고 싶다. 그런데 발견을 못하는 걸 어쩌겠나.


한 번쯤은 나도 잘 정돈된 인스타그램 피드를 관리하고 싶다. 한 번쯤은 나도 목차가 있는 브런치북을 만들고 싶다. 장은 아니고 언젠가는. 앞으로도 나는 계속 먹고 마시고 읽고 쓰는 내 일상을 뒤죽박죽 인스타에 올릴 것이고 사과가 떨어진다는 글이나 목욕탕 물이 넘친다는 글들을 브런치에 쓸 예정이다. 유레카를 외치는 건 독자님들의 몫으로 남겨둔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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