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취향대로 살고 있나요?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
"난 뭐든 괜찮아."
"그래, 그럼 그게 좋겠다."
늘 상대방의 취향을 존중하는 내 성격이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취향이 없는 거였는데 말이다. 예전에 나는 필요한 게 있으면 제일 먼저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제품, 판매율 1위인 제품을 찾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런 제품을 골라서 샀다. 쓰다 보면 '이게 왜 1위지?' 싶은 제품들도 많았지만 다음번에 또 다른 추천 제품을 쓰면 그만이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의 추천은 내 마음에 쏙 들지 않았고 나는 유목민처럼 이 제품, 저 제품을 갈아타기 일쑤였다.
그러다 생각해낸 방법이 모든 쇼핑을 남편한테 맡기는 것이었다. 어차피 다른 사람이 추천해주는 제품을 쓸 텐데 고민하는 시간이라도 줄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빠~ 샴푸 떨어졌다."
"오빠~ 치약 좀 사줘."
말 한마디면 며칠 뒤에 택배가 왔다. 그런데 나랑 같이 사는 이 남자의 취향은 왜 나랑 정반대일까? 우리 남편은 10개의 제품이 있다면 내가 10위로 꼽을 것 같은 그런 것만 골라서 사는 특이한 재주가 있었다.
나는 내가 뭘 쓰든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고, 다른 사람이 골라준 물건을 군말 없이 잘 쓰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랑 취향이 정반대인 남편 덕분에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내 취향을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 마트에 갈 일이 생겨 이번에는 남편 없이 내가 혼자 장을 보기로 했다. 마트에서 제일 먼저 화장품 매장에 들러 바디워시를 사기로 했다. 직접 향을 맡아보며 신중히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바디워시를 고를 때 향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 용기의 디자인을 두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나치게 신중히 고르고 있는 나를 보다 못해 직원이 다가왔다.
"바디워시 보세요? 이 제품이 제일 잘 나가요."
직원은 내가 마음속에 1위로 꼽고 있던 제품을 보여줬다.
제일 잘 나가는 거 말고 내 마음에 드는 걸 사려고 큰 맘먹고 나왔는데 내 마음에 드는 게 제일 잘 나가는 거라니. 기운이 빠졌다. 이럴 거면 그냥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살걸.
그다음으로는 마트를 한 바퀴 빙 둘러보며 필요한 식료품을 샀다. 올리브유를 고를 때 고민이 시작됐다. 평소 같았으면 제일 싼 걸로 샀을 텐데 제일 싼 거 옆에 예쁜 유리병에 들어있는 올리브유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가격 차이가 조금 났지만 그 날만큼은 예쁜 병을 포기하기 싫었다. 그렇게 마트에서 한참을 내 취향에 맞는 것들을 정성껏 골랐다. 6만 원을 쓰는 데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요즘은 샤워할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다. 바디워시의 은은한 향도 좋고 연베이지색에 검은색이 어우러진 용기도 마음에 쏙 든다. 검색해서 샀으면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없었겠지. 취향이 생겼다는 건 행복해지는 일이었다. 싱크대 한 켠에 놓인 올리브유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저 올리브유만 있다면 셰프급 요리 실력이 생겨날 것 같았다.
쇼핑을 하는 게 제일 귀찮고 어려웠던 내가 이제 직접 내 취향에 맞는 물건을 고르기 시작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정말 중요한 행복 비결이다. 물론 아직도 내 안목을 믿지 못해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기도 한다.
"아솜이 원피스 좀 사려는 데 이거 어때?"
사촌 동생은 내가 보여준 사진을 보며 말했다.
"오~ 예쁜데요?"
흡족해진 마음으로 결제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