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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일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내년에는 챙길 수 있기를

by 김채원

작년 4월, 곧 출산휴가에 들어가는 나를 위한 회식이 잡혔다. 공교롭게도 그 날은 결혼기념일이었다.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회식 소식을 전했는데 다행히도 쿨하게 알겠다고 했다. 덕분에 기분 좋게 저녁을 먹고 차도 한 잔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회식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집에 갔다. 조촐한 파티를 위한 케익도 하나 사서.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는데 남편이 물었다.

"케익은 왜 샀어?"

3초 정도 정적이 흐른 뒤 상황 파악을 끝낸 남편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남편은 쿨했던 게 아니라 결혼기념일을 까먹고 있었던 거였다. 어떻게 결혼기념일을 까먹을 수 있냐고 따졌더니 어떻게 결혼기념일에 회식을 할 수 있냐고 같이 따졌다. 이렇게 뻔뻔할 수가. 그때부터 나는 1년을 벼르고 별렀다. 다음 결혼기념일은 무려 5주년이니까 또 까먹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며.

1년이 흘러 또다시 결혼기념일이 가까워졌다. 이번에는 절대 까먹지 못하게 미리 알려줬다. 남편은 작년의 미안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애들은 친정에 잠시 맡기고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차피 데이트는 못하겠지만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집에서나마 맛있는 저녁식사라도 함께할 생각에 설렌건 사실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결혼기념일도 망해버렸다. 교사인 남편이 온라인 개학 준비로 엄청나게 바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말에도 집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할 상황. 남편은 할 일이 너무 많다며 주말에 애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 있으라고 했다. 둘을 친정에 맡기고 데이트를 하려던 남편의 계획은 나까지 셋을 친정에 맡기고 일을 하는 걸로 급히 변경됐다.
"토요일이 무슨 날인지 몰라?"
"알지..."
남편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작년에는 까먹고 올해는 일하고. 너무하는 거 아니야?"

서운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으니 애들을 데리고 친정에 왔다. 작년에 까먹은 거랑 올해 일하느라 못 챙기는 건 아무 관련 없는 일인걸 아는데도 연속으로 두 번이나 못 챙긴 게 왜 이렇게 괘씸한 지. 이번 일로 결혼기념일은 절대로 까먹으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번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혼기념일을 못 챙기게 됐을 때 예전에 까먹었던 일이 전과 기록처럼 남아 가중 서운함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친정에서 육퇴 후 조촐하게 술 한잔. 결혼기념일 축하해. (눈물 닦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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