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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채원 Jan 16. 2021

이 결혼은 내 책임이다.

어쩌다 결혼

결혼 생각은 없었지만, 연애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연애를 하다 보면 결혼 생활도 궁금하긴 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그랬다.  

'내 남자친구는 나랑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을까?'

'만약 이 사람과 결혼하면 어떨까?'

'사람들은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는 걸까?'




어쩌다 하게 된 소개팅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이 남자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절대 못 만날 만큼 싫지도 않았다. 나는 그때 낯선 동네로 발령받은 신규교사라서 외로웠고 서툴렀고 힘들었는데 이 남자를 만난 뒤로 많이 편안해졌다. 그래서 일단 조금 더 만나보고 싶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었다. 그가 서른다섯 살이라는 것. 결혼이 급할 것 같았다. 결혼까지 할 자신이 없으면 지금 당장 놔주고, 만날 거면 끝까지 책임져야 할 것 같았다. 나랑 몇 년 만나다가 헤어지게 되면 그때는 정말 늙을대로 늙어서 결혼도 못 하고 혼자 사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니까, 내가 이 사람한테 마지막 기회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거다. 정말 걱정도 팔자였다. 변명하자면 나는 그때 스물아홉이었다. 서른을 앞두고 마음이 심란했다. 서른이 되면 젊음도 인생도 다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니 서른다섯에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 해 나랑 소개팅을 한 이 남자에게 마음이 쓰일 수밖에. 결국 나는 내가 그를 구원해줄 유일한 사람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렸고 이게 숙명이라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생각보다 많은 일이 우연히 일어난다. 내가 결혼을 결심한 것처럼. 나는 그에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드디어 구세주가 나타났다며 절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반응이 시큰둥했다.

"뭐야? 결혼 안 급해? 반응이 왜 이래?"

"안 급한데? 어차피 늦어진 거 1, 2년 더 늦어진다고 뭐 큰일 나냐?"

아이고 이 답답이. 그러니까 서른다섯까지 결혼을 못 했지. 이 남자한테 맡겨뒀다가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적극적으로 결혼을 밀어붙였다. 그러니까 이 결혼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연애를 몇 번 해보고 나니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결혼에는 사랑 말고도 많은 것들이 작용하는데 내 경우에 가장 크게 작용한 건 타이밍이나 상황 같은 것이었다.


일단 결혼하자고는 했는데 점점 우울해졌다. '메리지 블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결혼을 앞두고 우울감을 경험한단다. 인생에서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과거에 대한 아쉬움이 섞이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하고 나서도 한동안 우울했다.

'내가 결혼을 했다고? 도대체 왜? 왜 이 남자랑?'


나는 쌍꺼풀 없는 눈을 좋아했다. 남자를 만날 때 직업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교사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온종일 선생님들이랑 일하는데 연애도 선생님이랑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처럼 책을 좋아하고 소주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데 내 남편은 쌍꺼풀이 있고 초등학교 교사다. 책만 보면 잠이 온다고 하고 술은 입에도 안 댄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사람과 결혼한 걸까? 혹시 내가 완벽하게 남편의 이상형이었을까? 그래서 남편이 나한테 엄청나게 공을 들였고 내가 거기에 넘어간 거 아닐까? 오, 드디어 알아냈다. 우리가 결혼한 이유. 그러지 않고서야 내가 남편이랑 결혼했을 리 없지. 남편에게 물었다. 어떤 여자가 이상형이냐고. 남편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피부가 하얀 여자"

남편의 이상형도 나와 정반대였다. 묘하게 위로가 됐다. 나만 망한 건 아니잖아?




한 번은 남편한테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오빠, 나는 서른다섯이면 엄청나게 늙은 건 줄 알았어. 그래서 오빠랑 결혼을 서둘렀던 거야. 막상 내가 서른다섯이 되어보니까 서른다섯 별거 아니더라고. 오히려 아직 너무 어리다는 생각도 들고. 서른다섯인데 결혼을 안 했으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봤는데 너무 좋을 것 같은 거야.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면서 살 수 있잖아. 그런데 그때 왜 나한테 말 안 해줬어? 서른다섯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오빠는 알고 있었을 거 아니야."

"말했잖아. 결혼 더 늦어져도 상관없다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말렸어야지. 그러면 결혼 같은 거 안 했을 거 아니야. 왜 안 말렸어?"

"여보가 좋아서"

방심한 틈에 오글 멘트를 훅 날린다. 거 봐. 내가 남편 이상형 맞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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